이제 대선에 상속은 없다
이제 대선에 상속은 없다
[기고] 안희정의 낙마로 요동치는 차기 대선 정국
이제 대선에 상속은 없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다이나믹 코리아'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비핵화 가능,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같은 경천동지할 남북 간의 합의가 이뤄지고, 대선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단박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정말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안희정 전 지사의 낙마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급한 것이긴 하지만, 다음 대선은 '000의 정치적 후계자' 혹은 '000의 정치적 상속인' 같은 후광이 없이 치러질 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 말이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이자, 정치적 후계자로서 누렸던 후광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의 절친이자 정치적 상속인으로서 누렸던 상징권력을 누릴만한 후보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유시민 정도가 예외이긴 할 것 같은데, 유시민은 직업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논외로 치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다음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 다수의 집합적 선호를 적확하게 포착해 이를 대중적으로 이슈화하고, 이슈화된 여론을 표로 연결시키는 사람이 승자가 될 확률이 높은 선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 다수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알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나는 다음 대선까지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사로잡을 이슈가 '공정성'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완전고용 상태의 확보, 정년보장, 소득의 빠른 증가, 자산가격의 상승 등의 요인들이 어우러지면서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결사적인 수준에 이르진 않았다.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정년이 보장되며, 소득과 자산이 느는 사회에 사는 시민들에게 설사 사회가 좀 덜 공정하다해도 견디지 못할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됐다. 좋은 일자리는 찾기 어렵고, 정년보장은 공무원 등 특수직역만의 혜택(?)이며, 노동계급 안의 양극화는 같은 계급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극심하고, 소득과 자산의 상승은 더디다. 게다가 자산과 소득의 극심한 양극화가 세습되는 기미가 역력하다. 즉 한국사회는 '노력' 보다 '출생'에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사회로 재편된 것이다. '공정성'이 한국사회의 화두가 된 이유다.


'공정성'은 출발의 공정성과 과정의 공정성을 포괄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그동안 과정의 공정성만 강조되는 경향이 짙었다. 과정의 공정성은 당연히 담보되어야 하지만 출발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한 불구의 것이 되기 쉽다. 100미터 달리기를 생각해보자. 70미터 앞에서 달리는 사람과 0미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공정한 과정 속에 경주를 했다고 해서 그게 공정한 것인가? 설사 우샤인 볼트라도 70미터 앞에서 출발한 사람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출발의 공정성을 해치는 주범은 단연 지대(특권)의 사유화다. 지대는 토지 같이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과 인간이 만들었지만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것이 있다. 마땅히 공동체 구성원 전부가 누려야 하는 지대(특권)을 특정 법인이나 개인이 독식하면서 출발의 공정성이 현저히 훼손되는 것이다. 따라서 출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대(특권)을 조세의 형태로 사회화하는 것이 간절하다.

지대(특권)을 사회화해 출발의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면 한국사회는 지금과는 완연히 다른 사회가 될 것이다. 출발과 과정이 공정한데다 공정한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에 활력과 창의가 넘치고, 넘치는 활력과 창의가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의롭고 부강한 대한민국이 되는 길은 지대(특권) 개혁을 통한 공정성 회복에 있다 할 것이다.

끝으로 지대(특권)의 사회화를 통해 마련된 재정을 사용할 용처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여러 좋은 방안들이 있겠지만 혼인과 출생을 구성요인으로 하는 가족의 구성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궁리해 볼만 하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태어난 사람(출생아 수)은 35만7700명인데, 같은 해 사망자 수는 28만5600명으로 집계됐다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사망자 수의 증가와 출생아 수의 감소에 따라 인구감소가 2028년에 시작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총인구의 감소 시작이 불과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계 다시보기]'출산율'과 '출생률' 어떻게 다를까요

대한민국이라는 유기체는 늙어가다 못해 얼마 있지 않으면 죽기 시작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도 인구감소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게 사실이지만 정책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대(특권)개혁을 통해 마련된 재정을 가족의 생산(?)을 위해 집중 투입하는 건 어떨까? 대표적인 지대인 토지 불로소득에만 제대로 과세해도 15조 원 이상의 재정 확보가 가능하다. 토지 불로소득 등에 과세해 마련된 재정을 주거, 보육, 교육 등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면 해체된 가족의 부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분명한 건 다음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해 슬로건화하고, 유권자 다수가 동의할 '킬러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재명, 박원순, 추미애, 이낙연, 김부겸 등 중에서 누가 이 일을 해낼 것인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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