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만남의 끝은 전쟁일까, 평화일까
트럼프-김정은 만남의 끝은 전쟁일까, 평화일까
[정욱식 칼럼] 미국의 'CVID'와 북한의 '핵무력 완성'이 충돌하면
트럼프-김정은 만남의 끝은 전쟁일까, 평화일까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정점에는 5월 이내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게 될 곳은 높고도 험준한 산의 정상(summit)이다.

만남 이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정상에서 내려와 한반도와 세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할지, 아니면 잡은 손을 놓고 한반도와 세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연히 전자를 간절히 바라지만, 후자의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가이드로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통하는 마이크 폼페이오를 기용키로 했다. 트위터로 렉스 틸러슨에게 해고를 통보하고는 CIA 국장으로 있었던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것이다. 이로써 폼페이오에게 북미 정상회담 준비와 후속 조치를 포함한 대북정책에 상당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될 전망이다. 그야말로 '실세' 국무장관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키 플레이어'로 등장한 폼페이오는 CIA 국장 재직 시절 북핵을 "존재론적 위협"으로 일컫기도 했다. 국내 언론에선 주로 그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에 수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발언이 비중 있게 보도되곤 했지만, 정작 그는 "북한의 ICBM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의 이익, 미국의 엄청난 자산들이 북한의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보유는 단순한 억제력이 아니라 외화벌이용이자 "한반도 적화통일용"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었다. 반면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CIA의 최우선 임무로 북핵 저지를 삼고선 군사적 수단에서부터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 및 심리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 도구들을 마련하려고 했었다.

'CVID'라는 목표와 제재라는 수단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폼페이오는 진작부터 북핵 문제와 관련해 '열공 모드'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11일 폭스뉴스와 CBS 방송 인터뷰에서 "CIA의 실패한 협상 역사에 대해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며,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고 장담했다.

그를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심지어 미국 주류를 지배하고 있는 사고는 '북한의 패턴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미국은 합의를 해주고 북한이 이익을 얻은 후에 합의를 깨고는 다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왔다'는 굴절된 역사 인식이 대단히 강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 유력한 수단이 바로 "최대의 압박"이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는 11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임 정부들이 약한 위치에서 협상한 반면 지금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전례 없는 제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대한 힘을 갖고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와 수단은 현실적인 것일까? 먼저 CVID의 역사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을 주도했던 네오콘이 2003년에 고안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2003년 4월에 열린 북미중 3자 회담 및 그 해 8월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서 북한에 CVID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일축했었다. CVID는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표현"이고, 미국의 의도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평화적 핵 활동"까지 금지시키려고 하는 데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전까지 CVID를 둘러싼 북미 간의 거친 말싸움으로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치열한 공방 끝에 9.19 공동성명에는 "완전한"과 "불가역적인"이 빠졌고 "검증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담기게 되었다. 대신 북핵 포기 조항에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을 넣었다.

그 이후 CVID가 되살아난 시기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다. 이후 한미 양국, 혹은 한미일 3자회담에서 CVID가 북핵 해결의 원칙이라고 밝혔고,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도 CVID를 북핵 해결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상당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만약 한미 양국 정부가 CVID를 북한에 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과거 6자회담 때처럼 북한과 거친 말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대단히 크다. 더구나 당시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던 반면에, 지금은 6차례의 핵실험과 수많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상태이다.

CVID를 관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제재를 삼고 있는 것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선 김정은이 비핵화 의사를 밝히고 협상 모드로 전환한 이유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덕분이라는 해석부터가 아전인수에 가깝다.

김정은이 제재가 자신의 전략적 판단을 바꿀 정도로 두려웠다면, 매번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가 부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력 건설 완성"을 향해 폭주를 거듭했던 것 자체가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변신(?)은 "핵무력 건설 완성"이라는 자신감과 힘을 가졌기에 가능해졌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물론 김정은도 제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병진노선의 또 다른 축인 경제발전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 제재에 고통을 느끼더라도 자신들이 굴욕으로 간주했던 CVID를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제재가 실질적으로 완화·해제되지 않는다면, 북한이 비핵화에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패턴'을 종식하겠다며 'CVID'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이에 동의할 가능성은 극히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과거와 유사한 합의에 만족할 가능성도 낮다.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것은 '차별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제안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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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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