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영미 "'n'을 'En'으로 쓴 게 가장 큰 용기였다"
[인터뷰] 최영미 "'n'을 'En'으로 쓴 게 가장 큰 용기였다"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최영미 시인
2018.03.24 12:14:23
지난겨울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 세상에 나왔다. 각계각층의 여성들은 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여성들은 광장으로 나왔다.

지난 22일부터 이어진 '2018분 동안의 이어 말하기'가 끝난 23일 저녁,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가 열린 청계광장은 '성폭력 문화'로부터의 해방 공간이었다. 광장에 나온 여성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대교통에서 겪은 자신의 '일상'을 소리 내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워 꼭꼭 숨겨둔 성폭력 경험을 광장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 지난 3월 2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의 참석자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 사회는 미투(#MeToo)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들이 '말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투는 성폭력으로 점철된 '일상'을 더이상 일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선언이다.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의 마지막 발언자로 최영미 시인이 무대에 올랐다. 최영미 시인은 "작년 겨울 '괴물'을 완성하고 처음으로 소리 내 읽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광장에 모인 여성들 앞에서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된 시 '괴물'을 낭독했다.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 쓰듯이 시를 읽어 나갔다. 그의 낭독을 듣던 여성들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

낭독을 마친 최영미 시인은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니다. 알리려고 썼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며, 과거와 현재의 싸움이다"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목소리는 아픈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아픈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태까지 너무 오래 참았다. 지금 이 싸움은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지난 3월 2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영미 시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무대를 내려온 그에게 달려가 즉석에서 인터뷰를 부탁했다. 그는 몇 초간 망설이더니 흔쾌히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그는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을 바라보며 "시위에 나온 여성들을 보며 나도 용기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오늘 '괴물'을 쓴 뒤 처음으로 소리 내 읽는다"

프레시안 : 오늘 '2018분 동안의 이어 말하기' 무대의 마지막 발언자로 깜짝 등장했다. 

최영미사실 감기에 걸려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숙대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광화문으로 왔다. 또 주변에서 신변을 걱정하는 충고들이 있어서 밤에 다니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SNS에서도 나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는 댓글이 있다. 그래서 나의 출연을 미리 알리지 말아 달라고 주최 측에 부탁했다.

프레시안 : 어떤 계기로 '2018분 동안의 이어 말하기'의 발언대에서 발언을 하기로 결심하게 됐나.

최영미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웃음). 내가 시를 써서 일을 벌이지 않았느냐. 뒤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이 시('괴물')를 지난해 9월에 썼다. 난 투사도 아니고 내 스타일이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당연히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 지난 3월 2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에서 대자보를 보고 있는 참석자들.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본인은 투사가 아니라고 했지만, 발언대에서 발언할 때 투사의 면모가 보이기도 했다.

최영미본디 수줍음이 많아 항상 맨 뒤에 앉고 그랬다. 그러나 글은 용감하게 쓴다. 글 쓸 때 용감해지는 것 같다. 평상시에는 겁도 많고 소심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다. 내 성격이 그렇다. 사실 문단에 등단해서도 온갖 모욕적인 일을 많이 당했다. '술 따르라', '손이 없냐 술 떨어진 거 안 보이냐' 등 참고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해서 술을 어떤 사람의 머리에 붓고 그랬다. 아까 발언대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괴물'이라는 시를 싸우려고 쓴 게 아니라 알리려고 썼다.
 
"시에 등장하는 'En'을 'n'으로 쓸까, 'En'으로 쓸까 고민했다. 겁이 났다"

▲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실린 최영미 시인의 '괴물'. 구글 검색 갈무리.

프레시안 :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
물'의 반향이 대단했다. 

최영미친구들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시의 형식으로 쓰지 않고 고발의 형식으로 썼다면 오히려 파장이 적었을 거라고. 강력한 힘은 시였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에서 묘사를 잘하고자 노력했고 사람들이 시이기 때문에 궁금해하는 부분도 있다. 가장 오래된 문자예술인 시의 힘이다. 제가 가끔 시의 힘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요즘 같은 때다. 지난해 12월 초에 이 시를 발표하고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시를 쓰면서 겁나기도 했다. 시에 등장하는 'En''n'으로 쓸까, 'En'으로 쓸까 고민했다. 어떤 날은 'En'으로 썼다가 'n'을 빼서 쓰기도 하고….

프레시안 : 'En'과 'n'사이에서 고민했다니, 얼마나 고민을 하셨나.

최영미 : 청탁을 받고 원고를 넘길 때까지 거의 한 달을 고민했다. 시 세 편을 청탁받았는데 가장 먼저 쓴 게 이 시다.

프레시안 : 'En'과 'n' 사이에서 두려움도 느끼고 갈등을 오래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고민이 있는 줄 몰랐다.

최영미 : 'n'을 'En'으로 쓴 게 나한테 가장 큰 용기였다. 이런 얘기는 처음 한다. 지금은 'En'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겁이 났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n'으로 고쳤다가, '아니야 다시 바꿔야겠다'고 또다시 'En'으로 고치기를 반복했다.

프레시안 : 시 '괴물'에는 결국 'En'으로 적혀 발표됐다. 'En'으로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최영미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한 점을 양해 바란다.


"그 시를 발표했을 때 내가 전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신변의 위협을 조심하라는 주변의 충고가 있다고 했는데.

최영미 : 시집이 많이 나왔을 당시 스토커들이 있었다. 2009년 때쯤, 춘천의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해서 춘천경찰서에 신고했던 적도 있다.

프레시안 : '괴물'이 화제가 되기 이전부터 스토킹의 위협에 시달렸다는 말인가.

최영미 : 그렇다. 그 전부터 스토커가 몇 있어서 미리 조심하는 것이다. 이번 일로 더 화제가 됐기 때문에 좀 걱정스럽다. 

프레시안 : 문단계 내에서 최영미 시인을 음해하려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일이 있었나.

최영미 : 당연히 있었다.

프레시안 : 주변 시인 동료들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나.

최영미 : 물론이다. 그 시를 발표했을 때 내가 전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지도 않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각오한 게 있어서 대응하지 않았다. 거의 대응을 안 하고 반박도 안 하지 않았느냐. 본질을 호도하는 것 같아서 대응하지 않았다. 2차 피해는 곁가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2차 피해 때문에 고통스러운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게 나를 흔들어 놓는다거나 나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진 않는다. 멘탈이 강하다고 친구들이 말한다(웃음).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난 하나도 겁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사회가 변화해 나가면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내가 감당해야 될 몫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혹시 '괴물'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최영미 : 없다. 

프레시안 : '괴물'의 측근으로부터 접촉은 없었느냐

최영미 : 노코멘트 하겠다. 지금 말하고 싶진 않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뒤, 행진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던 최영미 시인은 시를 쓰던 당시를 회고하며 "'n'을 'En'으로 쓴 게 나한테 가장 큰 용기였다"라고 다시 한번 나지막이 말했다.

미투와 위드유(#WithYou)로 서로의 용기가 된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의 참석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광화문을 거쳐 종로로 행진했다. 그들은 거리를 돌며 "세상아 이제 들어라!"라며 "우리가 그 증거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런 시대는 성차별·성폭력·강간 문화는 끝장나야 한다"라고 외쳤다.  

이제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할 차례다.

▲ 지난 3월 23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에 참석한 여성 ⓒ프레시안(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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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기자 daramj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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