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현장실습생의 등을 떠밀었나?
대체 누가 현장실습생의 등을 떠밀었나?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①]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학생의 이야기
2018.04.11 17:10:19
대체 누가 현장실습생의 등을 떠밀었나?
특성화고 학생(출신)들의 사망 사고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구의역을 시작으로 LG유플러스, 제주 음료회사까지. 

지난 3월 28일에는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점검하던 이 모씨가 목숨을 잃었다. 일한 지 1년6개월 만의 일이다. 그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으로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마트의 하청업체였다.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다. 가장 화두가 된 것은 조기 취업으로 불리는 현장실습 제도의 존폐였다. 학생들을 착취하는 제도인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는 그대로 두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결국, 이 제도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렇다면 이제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은 사라지게 될까. 

아마 누구도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은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은 특성화고 학생들 사망 사건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현장실습의 사망 문제는 교육과 노동의 교집합에서 발생한다. 이를 들여다보면서 그들 죽음의 이면을 톺아보려 한다. 

첫 번째로 작년 11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공장 옥상에서 투신한 박 군은 공단 내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박 군은 선임에게 욕설을 듣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직접적인 욕설이 없었으며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했다고 설명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박 군 사건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의 속내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박 모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합뉴스


일한 지 한 달 만에 쫓겨난 아들

문영애 씨에게 자식은 한 명이다.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고, 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아들인 박 군은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인문계에 가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게 싫다고 했다. 영애 씨는 아들이 인문계에 진학했으면 싶었으나 고집부리는 아들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공부도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는건데..."

그렇게 간 학교는 경기도 내에서 취업률 10위 안에 드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아들은 화학공업을 전공했다. 수업시간에 화학약품 다루는 것을 배웠다. 아들은 그곳에서 2년 반의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3학년 졸업반인 2학기가 시작할 무렵, 도금업체에 취업했다. 

공고, 즉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 때 대부분 취업에 나간다. 이른바 '현장실습'이다. 그게 아니면 대부분 학생들은 특성화고 특별전형으로 전문대에 진학한다. 

9월 1일, 처음 출근한 아들. 하지만 일한 지 며칠 만에 '문제아'가 됐다. 업체 사장과 면담한 학교 담임선생은 아들이 회사 분위기를 망치고 직원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출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실습생 신분의 아들이 그렇게 했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담임의 말은 이어졌다. 아들의 입이 문제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 일하기 힘드니 업무 중 툴툴거렸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회사 대표 말로는 아들이 자기는 여기에서 6개월만 일하고 나간다고 했단다. 업체 입장에서는 그렇게 짧게 일하고 나갈 거면 굳이 일 가르치며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아들 대신 다른 학생으로 교체해달라고 담임에게 요구했다.

아들의 병력도 문제가 됐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간질을 앓은 이후부터 뇌전증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었다. 그 약을 먹는 동안 간질은 재발하지 않았다. 이미 완치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됐다. 엄마는 아들이 돌려보내진다 하더라도 아들의 병력이 기록에만 남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아들의 장래 때문이었다. 아들의 병력이 기록에 남는다면 다른 데도 못 갈까 걱정됐다. 

담임이 업체와 이야기를 한 끝에 업체에서는 아들을 한 달간 지켜보기로 했다. 담임은 아들에게 앞으로 한 달간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말을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시 잘 다니게 된 거로 만족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무렵, 업체에서 아들을 불렀다.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고 했다. 이유는 같았다. 회사 분위기를 흐리고 직원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했다. 한 달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일한 지 한 달 만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엄마는 아들이 걱정됐다. "첫 직장인데, 그렇게 쫓겨나다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아들의 투신, 왜?

아들은 회사로 가던 발길을 다음 날부터 학교로 돌렸다. 아들은 취업반에 속해 있었던 아들이기에,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이 없었다. 대신 인성교육, 취업교육 등이 진행됐다. 제대로 교육이 될 리 없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닌텐도' 게임만 하고 집에 오는 듯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복교한 아들에게 '눈치'를 주는 듯했다. 주변에 들어보니 특성화고에서는 현장실습 나간 학생이 돌아오는, 즉 복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했다. "문제아로 낙인찍고, 죄지은 사람처럼 몰아간다"고 했다. 아들도 그렇게 대우받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이대로는 아들이 제 몫을 못하는 사람이 될 듯했다. 특성화고에서 취업하지 않으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학을 가려 해도 이미 지원 시기도 놓쳤고 공부할 능력도 안 됐다. 학교에서 매일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에 아들이 다시 현장실습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친지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운 업체에서 사람을 보내달라고 했다며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플라스틱 제조 업체였다. 회사 분위기도 좋고, 환경도 깨끗하다고 했다. 학교에서 그렇게 말하니 믿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들이 새롭게 일을 시작한 지 8일째 되던 날이었다. 애초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던 아들이었는데, 그날만 시간을 바꿔서 아침 8시에 출근했다. 급히 나가느라 작업할 때 숙지해야 하는 내용을 적은 수첩을 집에 두고 나갔다. 화학재료를 조합하는 공식, 순서 등을 적어놓은 수첩이었다. 엄마는 급히 아들에게 전화해서 "수첩을 두고 갔다"고 알렸지만, 아들은 "늦었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첩을 가져가지 않은 게 전조였을까. 그날 오후 6시께 아들은 자신이 다니던 업체 건물 옥상 4층에서 뛰어내렸다. 아들은 다리와 머리 등을 심하게 다쳤다. 투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할 정도로 위중했다. 

평소 회사 관련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왜 뛰어내렸는지 의문이었다. 아들은 투신하기 전, 담임선생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담임에 따르면 아들은 "문신한 형(선임)이 제게 쌍욕을 했어요"라며 일하면서 힘든 일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들이 선임과 일하는 과정에서 선임에게 욕설을 들었다는 것이다. 

담임은 그런 아들을 다독였다. "한 번 더 참아봐라. 한 번 더 그러면 (업체를) 찾아가서 이야기할 테니, 한번 더 참아봐라". 그러면서 "너도 잘못한 게 없는지 한 번 생각해봐라"라고 아들에게도 주의를 줬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들은 담임과 전화통화 직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뒤, 투신했다.

오후에 그 일이 있기 전인 오전에도 '사고'가 있었다. 아들이 화학재료를 섞는 작업을 하다 재료를 잘못 배합했다. 결국, 그 재료는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회사에서는 1000만 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을 탓했다. "미처 아침에 챙겨주지 못한 수첩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엄마는 이미 오전부터 아들의 실수를 두고 심한 모욕성 발언이 이어졌으리라 추측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오후에도 선임이 욕설을 하니 결국, 투신했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아들의 기억만 돌아오길 바랄 뿐"

아들이 투신한 다음 날, 남편이 업체를 찾았다. 작업장 문이 열리니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했다. 아들이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노동자 상당수가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좋은 회사라고 소개해준 담임선생이 야속했다. 업체를 바라보는 담임선생과 엄마의 눈높이는 서로 달랐다.  

아들은 현재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아직 걷지 못하고 있다. 작년 12월 말부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투신하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영애 씨는 아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학교에서도 일정 책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는 도의적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설 직전 학교에서는 엄마에게 합의서를 보내면서 사인해달라고 요구했다. 학교에서 경제적 도움으로 위로 성금 430여만 원을 줄 테니 더는 불편과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는 게 골자였다. 다시 말해 성금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걸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학교에서는 아들 투신에는 가정사도 어느 정도 내포돼 있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아들의 투신을 두고 "평소 부모의 잦은 다툼 및 부모 간 오가는 이혼 이야기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있던 차에, 다니던 회사 선배와의 다툼이 화근이 되어 분노조절이 안 돼 발생했다고 추측된다"고 교육청에 보고했다. 

남편과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지만 이것을 이유로 아들이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영애 씨였다. 학교에서 아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지도하지 못한 것을 면피하기 위해 내세운 이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투신한 이유를 알고 있는 아들은 당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경찰에서도 수사 중이지만, 아들의 진술조사를 하지 못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산업재해를 신청하려 해도 아들의 기억이 돌아와야 한다. 의사는 기억이 돌아오려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했다. 

아들을 그렇게 만든 업체, 그리고 아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내버려 둔 학교를 생각할 때면 영애 씨는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민다.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들의 기억만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학교, 그리고 업체 "억울하다"

그렇다면 학교와 업체 입장은 어떨까. 우선 박 군이 일했던 업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받지 않아도 되는 현장실습생을 받았다가 사단이 났다고 씁쓸해했다. 업체의 업무 자체가 기술을 요했다. 하루 이틀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곁에 두고 일을 가르쳐야 그나마 노동자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박 군에게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박 군은 일을 배우는 단계였다"며 "누구도 박 군에게 과한 일을 시키거나, 욕설을 한 적이 없다. 일한 지 8일만에 그런 사단이 났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을 어떻게 시킬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업체 관계자는 "사장이 특성화고 출신이라 일부러 특성화고 학생을 뽑았다. 잘 가르쳐서 좋은 기술자를 만들려고 했다"며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특성화고 학생을 채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도 관리감독이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박 군이 업무에 매우 만족했을 뿐만 아니라 불만을 느끼는 등 투신할 만한 낌새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는 "담임선생과의 문자 내용에서도 학생은 회사가 너무 좋다고 했다"며 회사 생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학교 측 관계자는 "애초 박 군이 처음 업체에서 한달 만에 복교했을 때, 학교에서는 더는 이 학생을 업체에 보내지 않으려 했다"며 "하지만 부모가 적극적으로 취업을 알선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재취업을 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원할 경우,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현장실습 시스템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업체도, 학교도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시스템은 이명박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구축됐다. 실업계고를 특성화고로 전환시키고 취업률 목표까지제시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고, 업체 입장에서는 '숙련도'를 기대할 수 없었으며, 학교 입장에서는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취업률', 수치 관리에 목을 맸다. 그렇다면 누가 박 군의 등을 떠밀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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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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