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교수의 자발적 양보가 대학개혁의 첫걸음
정규직교수의 자발적 양보가 대학개혁의 첫걸음
[민교협의 시선] 송호근 교수의 주장과 진보의 약점
정규직교수의 자발적 양보가 대학개혁의 첫걸음
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이 너나없이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이 표류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그런데 이러한 불만을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정책 담당자들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은 좀 부당하다. 촛불시민혁명을 진전시키려면 교육 현장의 주체들도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지적하고 싶다. 국가교육회의를 비롯해서 정부의 관련 위원회에 초중등교사가 위촉되지 않다가 얼마 전 출범한 대입개편특위에 현직 교사 2명이 겨우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현장의 실태가 꼼꼼하게 파악되고 현장의 밑바닥 여론이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기 어렵고, 교육부가 밝힌 '공론화'의 이름에 걸맞은 과정이 되기 어렵다. 게다가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교수에 비해 부당하게 제약당하고 있다. 정당 활동 금지는 물론이고 정치 후원금을 내는 것조차 위법이니, 투표장에 가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외에 꽁꽁 묶여 있는 셈이다. 심지어 교사는 사직을 해야 교육감 출마도 가능하니 다가오는 지방선거의 교육감 후보로 교수들만 대거 나서는 현상도 씁쓸하다. 지방분권시대의 진정한 교육자치를 이루려면 교사에게 합당한 정치적 몫과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고등교육으로 시선을 돌리면, 4년제 일반대학에 비해 전문대학 교수는 정부위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진보 진영의 대학개혁 논의에서도 전문대학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주로 일반대학 중심의 개혁방안이 부각된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고등직업교육'도 분명히 들어있건만, 전문대학의 정치적 발언권은 과거와 똑같이 무시당하고 있다. 전문대 학생 대부분이 집안이 어려워 취업을 우선하는 젊은이일진대, 이런 상황은 촛불정부로 자처하는 현 정부가 계급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할만하다. 한마디로, 교육 주체인 교사와 교수가 함께 교육 분야의 촛불혁명을 이끌고 나아갈 튼튼한 연대의 객관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한계를 타파할 치열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학교육에 국한하면, 교육개혁의 주체는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아우르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등 각자가 처한 상이한 조건에 따라 관심과 입장이 달라 갈등의 소지도 크다. 교수들이 정부에 대해 집단적으로 요구할 분명한 개혁 프로그램의 기본틀을 공유하는 데 못 미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문제를 하루바삐 해결하지 못하면 칼자루는 '교육 마피아'의 중요한 축인 교육관료에게 완전히 넘어간다. 사학비리 척결을 위해 만든 교육부 사학혁신추진단이 접수한 숱한 비리 제보 내용의 일부가 교육부 공무원에 의해 제보자의 신원과 함께 해당 사학에 몰래 넘겨진 어이없는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개혁의 방향타를 확실히 쥐지 못한 김상곤 장관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교육 마피아'가 다시 준동하는 데에는 강력한 연대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수들의 책임이 더 크다. 물론 현실적 조건이 다른 터에 전국의 교수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이다. 서로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른 요구를 내세우는 것을 인정하되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최우선 과제, 자원이 가장 먼저 배분되어야 할 과제들에 합의하는 큰 흐름이 만들어질 필요가 절실하다. 이미 존재하는 교수노조나 각종 교수연합회들을 하나로 묶는 조직적 노력이 아쉬운 것이다. 

비정규직교수를 포함하면 10만 명을 훨씬 넘는 전국의 다양한 교수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아무리 느슨하고 유연한 형태라고 하더라도 엄두를 내기 힘든 난제이다. 이를 해내기 위해 선결과제가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직 교수들의 자발적 양보이다. 달리 표현하면, 정규직교수들이 그동안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비정규직교수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진보개혁 진영에서 대의를 위해 정규직교수의 양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진보의 약점이다. 오히려 보수 논객인 송호근 교수가 발빠르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해 말 송 교수는 모 일간지의 고정 칼럼에서 '박사 낭인'(2017.11.14.), '눈물 젖은 편지'(2017.12.26.)라는 두 편의 글을 통해 정규직교수의 양보를 제안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 누적된 수만 명의 박사 실업자를 '박사 낭인'으로 칭하면서 이들을 위해 국책 연구소의 정원 증대와 함께 정규직교수의 "62세 정년 단축이나 60세 임금 피크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내가 송 교수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진보개혁 진영의 안이함과 약점을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글을 써 사회적 관심을 끌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진보 진영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우리의 허점과 무감각을 방증한다.

물론 송 교수의 글은 기본 시각이 잘못되어 있다. 우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밑바닥 수준인 교수 충원율을 방치한 교육부의 책임은 따지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대학구조조정을 위한 대학평가에서 교수 충원의 법정 기준조차 무시해도 점수 따기에 지장없는 엉터리 평가체제를 만들어 짬짜미를 해온 비리사학과 교육관료의 추악한 행태는 안중에도 없다. 전임교수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송 교수의 시각에는 정치권력과 국가기구의 잘못보다는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의 책임을 더 먼저 추궁하는 뿌리깊은 습성, 건강한 보수주의 아닌 한국형의 불구적 보수주의의 냄새가 짙다. 

그의 구상은 디테일에서도 약점을 드러낸다. 그는 요즘 초임 교수 평균연령이 43.6세라고 밝히는데, 만약 62세 정년제를 도입하면 초임교수는 20년도 재직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셈이다. 신진 학자들도 달가워하기 어려운 개혁안이다. 또 정규직교수에게 연봉 3000만 원 이하의 기아 임금을 주거나 정규직의 외관만 갖추었지 사실상 비정규직인 교수 형태의 창궐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비리사학과 정부의 책임은 쏙 빼놓고 그냥 나이든 교수 월급을 깎아 교수 자리를 늘리자고 하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고, 자칫하면 비리사학만 뒤돌아서서 웃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60세 임금 피크제'는 진보진영이 진지하게 고민할 화두이다. 이런 양보가 있어야 고등교육 재정 증대에 머뭇거리는 정부를 설득할 수 있고, 대학개혁의 절박함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임금 피크제 도입에는 두어 가지 전제가 따른다. 우선, 교수의 적절한 임금 수준에 대한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 대학은 (대개 형편없는 교수-학생 비율을 수용하는 대가로) 지나치게 많은 월급을 받지만, 어떤 대학은 형편없는 급여에 고통받고 있다. 다시 말해 적정한 교수 보상체계에 대한 논의가 병행되어 열악한 급여를 강요하는 대학을 없애는 효과가 있어야 마땅하다. 또 임금 피크제로 확보된 재원은 정규직교수 증가에 쓰지 말고 당분간 몽땅 비정규직교수의 처우 개선에 써야 한다. 실태를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한국 대학 비정규교수의 처우 개선은 그만큼 화급하다. 정규직교수 늘리는 재원은 사학의 경우 학교 법인이 마련해야 옳고, 국공립은 정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 

짧은 지면 탓에 언급하지 못한 다른 변수들도 있고 실제로 실현하기까지 복잡한 장애물들이 있겠지만, 의지만 있다면 현실적 방안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선배 교수들이 스스로 나서서 양보하며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요구할 때, 비로소 탄탄한 국민적 지지도 가능하고 교육 마피아를 분쇄하며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촛불혁명이 혁명이 되려면 당연히 발상과 실천도 혁명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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