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적십자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나"
"나는 왜 적십자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나"
[인터뷰] 한국 피씨엘 김소연 대표
2018.05.08 09:14:25

'피'는 곧 '생명'이다. 대한적십자사가 혈액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이유도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사명에 부합되는 조직이라는 역할과 기대 때문이다. 1974년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위탁을 받아 혈액사업을 도맡아온 적십자사는 과연 그 기대에 부합하고 있을까?

최근 적십자사 혈액 사업의 공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면역진단시스템 관련 입찰 과정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채혈용 혈액백 입찰 결과를 놓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면역진단시스템 공개 입찰에 참여한 한국피씨엘(주) 김소연 대표를 만나 왜 적십자사 입찰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4일 들었다.

한국피씨엘은 적십자사의 지난 2월 1일에 공고가 난 면역진단시스템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면역진단은 헌혈 받은 혈액의 안전성 검사 중 하나다. 제한된 시간 내에 수혈 받은 다량의 혈액에 에이즈, B형 간염, C형 간염, 백혈병 등 4가지 고위험군 바이러스가 있는지 검사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에게 4가지 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을 수혈할 경우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피씨엘은 기존에 4가지 바이러스에 대해 한 번에 하나씩 키트를 만들어서 검사를 하던 것과 달리, 세계 최초로 4가지를 1번에 검사하는 다중 면역 검사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 입찰에는 피씨엘을 포함해 LG화학 컨소시엄(시약은 LG화학과 영국 회사, 장비는 지멘스), 녹십자 컨소시엄(시약은 녹십자와 프랑스 회사, 장비는 지멘스), 한국로슈진단(주) 등 4곳이 참여했었다.


▲ 김소연 한국 피씨엘 대표 ⓒ프레시안(전홍기혜)


"복지부와 산자부가 지원한 신기술, 정작 적십자사는 외면"

프레시안 : 공개 입찰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됐나?

김소연 : 적십자사는 처음에는 우리 회사에 진단 기계를 설치하라고 했다. 그런데 LG화학과 녹십자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지멘스사는 현재 적십자사에서 사용 중인 기계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했다. 현재 쓰고 있는 기계가 노후화되어 이 장비를 교체하기 위한 입찰인데, 이 업체는 기존 장비로 성능평가를 하면 기존 장비를 그대로 쓰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능평가를 하지도 않은 새 장비를 쓰겠다는 것인가? 이런 조치부터 납득하기 어려웠다.

우리 회사는 정작 기계를 설치하자 서류에서 탈락했으니 기계를 다시 철수하라고 했다. 기계를 작동 한번 안 해보고 탈락시켰다. 게다가 모든 연락을 문자로만 했다. 내가 적십사 측에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았다. 10년 동안 개발한 기술인데, 어느 업체가 작동 한번 안 해보고 철수하라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수긍할 수 있겠나.

(적십자사 반론 : 면역검사시스템 노후장비 교체 사업은 규격.가격 동시입찰로 진행 중에 있으며, 규격평가는 서류/성능 평가로 이루어짐을 공지했다. 또한 서류 평가 부적합시 성능평가를 시행하지 않음을 공지했다. 피씨엘의 경우 서류평가 부적합으로 성능평가를 시행하지 않았다. 서류평가 상 공고된 규격에 맞지 않아 규격평가위원회에서 부적합 판정하였기에 성능평가를 시행할 수 없었다.)

프레시안 : 피씨엘의 기술 개발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도 있었다고 들었다.

김소연 : 우리가 개발한 다중 진단 기술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보건신기술로 인정했다. 또 우리 회사는 산업자원부에서 좋은 기술로 인정받아 국책과제 등으로 100억 원 넘게 정부 지원을 받았다. 기술 개발과정에서 적십자사의 지원도 있었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인데 정작 적십자사는 외면하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의학잡지에서 저희 기술에 대한 기사가 나기도 했고, 미국 적십자사와도 계약 여부를 논의 중이다. 미국 적십자사에서 한국 적십자사는 왜 이 제품을 안 쓰냐고 묻는다. 미국에서는 자국 기업의 신기술을 국책 사업을 할 때 우선적으로 써주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전자 전체를 시퀀싱하는 기술을 5년 동안 다른 나라에 팔지 못하게 했다. 일본 적십자사도 자국 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나라 기술을 보호한다.

하지만 적십자사에서 우리 제품에 대해 신기술이니까 장기간 동안의 안전성에 대해 불안하다고 한다. 채혈진단은 먹는 약이 아니라서 유효성이 중요하다. 또 원천기술은 내가 대학 교수로 있을 때부터 갖고 있었고, 회사를 창업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주력한 일이 대량생산과 제품 안전성 문제다. 적십자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공개 입찰을 선택한 이유는 어느 나라든 입찰의 성능평가는 굉장히 공정히 이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성능평가를 통과하면 가격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입찰 과정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적십자사 반론 : 적십자사는 면역검사시스템 구매와 관련하여 특정 기업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없다. 2016년 면역검사시스템 구매와 관련된 2017년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일부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 지적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조치를 완료했으며 일부 외국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지적한 사항인 2016년 사업 진행 초기에 장비의 시장 상황을 검토하기 위해 외국계 2개 회사(애보트, 지멘스)와 회의를 진행한 것은 당시 식약처 허가를 득한 장비와 4등급 시약을 가진 유일한 업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16년 시행된 면역검사장비 교체 관련 입찰은 외국계 2개 회사 모두 입찰 규격 및 가격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유찰되었다.)

"복지부도 통제 못하는 적십자사...혈액 관리 독점의 폐해"

프레시안 : 보건복지부가 적십자사를 관리, 감독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입찰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인데도 복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소연 :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신기술 인증 제품은 공공기관에 우선 구매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이걸 근거로 적십자사가 우리 제품을 우선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강제 조항은 아니라고 한다.

복지부 산업진흥과에서는 적십자사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데, 담당인 생명윤리정책과에서는 원론적인 얘기를 한다. 적십자사 사업에 대해 복지부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적십자사 직원들은 의사 등 전문가로 업무를 계속해온 반면, 복지부 공무원들은 담당자가 계속 바뀌니까 전문성을 갖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적십자사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도 외부 위원들을 잘 구성해 충분히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해외의 경우 혈액 사업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김소연 : 유럽의 경우, 혈액 관련 사업 관리는 적십자사가 아니라 주로 정부가 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헌혈만 하고 실제 혈액 관리는 혈액관리법에 근거해 정부가 한다. 우리나라도 혈액관리법이 있지만, 적십자사에 모든 권한을 위탁하고 있다.

적십자사가 이런 행태를 보일 수 있는 것은 독과점에 의한 폐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적십자사에서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적십자사에서만 하니까 적십자사가 정하면 룰이 된다. 이런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혈액사업 관리에서 평가와 실제 수행을 분리해야 한다. 


▲ 적십자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김소연 대표ⓒ한국 피씨엘



"적십자사 재공고도 문제 있다"

프레시안 : 적십자사는 지난 4월 26일 불공정 의혹이 제기된 면역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기존 입찰에 참여한 모든 업체에 부적격 통보를 한 뒤 당일 오후 바로 재입찰을 공고했다. 그리고 5월 3일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를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다. 김 대표는 이 현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재입찰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

김소연 : 공개 입찰에서 재공고는 규격을 전혀 바꾸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하다. 3일 설명회에서 들어보니 3가지 규격이 바뀌었다고 판단한다. 이런 변경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없었던 A사가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이 바뀌었으면 규격 공고를 다시 하고 규격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적십자사는 규격이 바뀐 게 아니라 '마이너한 변경'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입찰은 신규 장비로 5년 짜리 계약이다. 연장 되면 10년이 될 수도 있다. 장기간 유지되는 계약이라는 점에서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십자사 반론 : 5월 3일 재입찰에 따른 제안요청서 설명회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에 의거한 재공고로, 재공고 입찰시에는 기한을 제외하고 최초의 입찰에 부칠 때에 정한 가격 및 기타 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 제안요청서 설명회에 타 업체도 참석을 하였지만 어느 업체도 본 재입찰에 대해 규격이 변경되었다고 얘기하는 업체는 없다. 다만, 이전 입찰에서 피씨엘이 제기한 소송이 기각되었으므로 다시 한번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해당 내용을 설명했다. *앞서 피씨엘은 법원에 '입찰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4월 24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편집자주)

특히 항원항체시약 문제는 항원, 항체를 검출하는 면역검사시스템과 유전자 검출이 목표인 분자진단 시스템은 서로 보완을 하며 감염혈액을 검출한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도 면역검사시스템과 분자진단시스템을 함께 도입하고 있다. 당시(적십자사의 혈액수혈연구원이 항원항체 시약의 문제성을 지적한 논문을 발간할 당시) 항원항체시약은 개발 초기 단계의 시약으로 일부 시약에서 위양성이 있다고 보고되었으나, 현재 개발되는 시약들은 민감도 면에서 항체만 측정하는 이전 세대 시약에 비해 더욱 우수하고, 위양성율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피씨엘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항원항체 시약 관련해서는 국내 식약처가 헌혈자검사 사용 허가한 4등급 시약으로 참가자격이 된 것이다. 또한 적십자사는 과거 2009년, 2012년에 시행한 시약입찰에서도 이미 녹십자, LG 국내 회사들의 HIV 항원항체 시약의 참여를 허용했으며, 공정한 성능평가가 이뤄진 바 있다. 이번 적십자사 입찰은 특정 업체를 위한 변경 사항은 전혀 없다.)

프레시안 :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보건의료단체에서는 입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심사기준과 평가위원 등 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업체의 로비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소연 : 관련 전문가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업체의 로비는 마음만 먹으면 명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구조다. 이미 업계는 '갑'인 적십자사의 눈치를 알아서 보는 상황이다. 다른 계약을 통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가보다도 낮은 값으로 제품을 납품을 하는 일도 있다.

공정한 심사기준, 평가과정, 평가위원 등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진행한다면 '을'인 업체에서 어떻게 이런 저런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는가? 내 입장에서 적십자사의 재공고는 공정성 제고를 위한 노력 없이 기존의 불공정성 문제제기를 무화시키고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겠다는 뜻으로 밖에 안 보인다.

(적십자사 반론 : 적십자사 전 직원이었던 위원은 현재 질병관리본부의 혈액관리 실무 책임자로서 위촉이 되었다. 그 외 외부평가위원이 특정업체의 지원을 받은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프레시안 : 적십자사가 혈액 사업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적십자사를 상대로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인다.

김소연 : 작게는 우리 회사의 문제이지만 다른 국내 의료기기업체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발판으로 글로벌 회사가 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기술 개발을 독려해야할 공공기관들이 노골적으로 국내 의료기기는 불편하다며 다국적 회사 제품을 선호한다. 문제는 근거를 가지고 정당하게 평가를 하는 제도도 제대로 마련해놓지 않고 편하고 익숙한 것만 찾는다. 가장 좋은 것은 써주는 것이다. 30년 전에 댜국적 회사 제품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때는 불편한 것을 참아가며 써서 익숙해진 것이다. 신기술 제품이 성능에서 더 우수하다면 불편함을 참고 써야 한다.

최근 한국 혈액백 시장에 세계 100여국에 혈액백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인 프레지니우스 카비가 진출하는 것처럼 한국 시장도 커져서 해외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기업은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에 가야 하나? 의료 산업계 전반에서 다국적 회사들이 완전 토착화 되어서 국내 기술을 막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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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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