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관계에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이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이 궁금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묻지도 않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고는, 저도 그 분위기에 동참하길 바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속내를 털어 놓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거나, 뒷말을 해요. 그런 식으로 유지되어야 할 관계라면 안 보고 사는 게 맞는데, 걸려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가슴만 답답해요."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편이 모임 사람들에게 저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대고 있는 거예요. 말 못할 이유도 없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꺼내 놓는 게 이해도 안 되고, 다른 곳에 가서도 저랬으리라 생각하니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워요. '저 사람들이 나의 뭘 알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하는 말들마다 나 들으라고 하는 것 같고, 눈빛 하나 표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여서 모임만 나갔다 오면 몸살이 나요."

진료하면서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관계에서 상처받은 분을 만났을 때입니다. 병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살피고 그것이 일으킨 몸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 다시 파이팅할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가 제 역할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현실에서 다시 받을 상처들이 눈에 보이고, 예상대로 오래지 않아 다시 찾아 올 때면, '사람만이 희망이긴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야기이긴 할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왜 타인의 삶을 그토록 궁금해 하고 상관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종은 오랫동안 집단을 이루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은 중요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거나 강한 개체와 친하게 지내면 생존의 확률은 보다 커졌겠지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 겉모양은 변했지만, 아군과 적군, 그리고 이용가치의 유무를 판단하고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류하는 게 개인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의 많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공유할 수밖에 없고 사람이 정보였던 불과 수십 년 전의 삶과 지금의 현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히키코모리란 말이 사회부적응자를 일컫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굳이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고, 정보는 이미 넘쳐서 감당 못할 수준이 되었습니다. 낯선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보다는 도리어 두려움이 일고 경계를 하게 됩니다. 환자들을 살피다 보면 사람 사이에서 받는 위안보다 어쩌면 피로와 상처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제발 나를 가만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좀머 씨처럼 말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마냥 사람사이의 관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타인의 삶의 방식을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합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다른 사람도 나와 같으리라는 것이지요.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누군가 공감하리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원하지 않는 누군가의 삶에 관여를 하려고 한다면, 모든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관심이나 선의로 포장된 또 다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인정해 주어야 하고, 원치 않는다면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많은 사람을 사귀고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것을 즐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 자체가 부담스럽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곁을 적게 내어주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향의 차이일 뿐, 마땅히 어떻게 하라는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환자를 보다보면 육식동물 같은 이도 있고 초식동물 같은 이도 있습니다. 풀 같은 사람도 있고 나무 같은 사람도 있지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가만히 제 길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먹이 피라미드와 같은 관계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관계에 지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일 테고요.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선의와 관심이란 명목아래 행해지는 관계의 폭력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이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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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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