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체면 중시 北이 폭격기 훈련 속 회담?"
정세현 "체면 중시 北이 폭격기 훈련 속 회담?"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영향 미치기는 어려워 보여
2018.05.16 12:07:06
정세현 "체면 중시 北이 폭격기 훈련 속 회담?"

북한이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연합 공중 군사 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가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위반한 '도발'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 표명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F-22와 같은 전투기가 참여하는 것을 보고 북한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F-22 8대가 훈련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상황이 이런데도 아무 말 없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진행한다면 앞으로 미국이나 남한이 자신들을 만만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는 훈련 규모를 축소시켰기 때문에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는 체면이 섰다. 또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예년 수준의 한미 훈련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훈련이 예년 수준과 다르다는 점"이라며 "F-22가 8대나 동원된 것과 함께 전략폭격기인 B-52도 참가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고위급 회담에 나서기에는 북한이 체면이 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북한의 의도와 관련, "북미 정상회담에서 훈련 문제를 협상 카드 중 하나로 사용하려는 전략도 있을 것"이라며 "한미 정상회담 때 훈련 문제를 이야기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훈련을 강하게 요구했을지라도 우리가 좀 나서서 톤 조절을 했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했고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으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하자고 했어야지, 이렇게 세게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한 판단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6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그는 "당장 북미 정상회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예년 수준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미국도 일단은 북미 회담 계획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라서 당장 회담 성사에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15~16일에 걸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인터뷰에는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도 함께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남북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달려왔던 남북관계에 암초가 나타난 것일까요?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 당일인 16일 새벽에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는데요.

정세현 : 한미 연합 공중 군사 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F-22와 같은 전투기가 참여하는 것을 보고 북한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F-22 8대가 훈련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북한 입장에서는 상황이 이런데도 아무말 없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진행한다면 앞으로 미국이나 남한이 자신들을 만만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도 직전까지 훈련을 했는데 왜 북한이 유독 이번에만 이런 반응을 보이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훈련 규모를 축소시켰기 때문에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는 체면이 섰습니다. 북한은 한미 양국이 이번에는 지난 봄에 하지 못했던 훈련을 추가적으로 보태서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또 지난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예년 수준의 한미 훈련은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훈련이 예년 수준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F-22가 8대나 동원된 것과 함께 전략폭격기인 B-52도 참가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고위급 회담에 나서기에는 북한이 체면이 서지 않았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훈련 문제를 협상 카드 중 하나로 사용하려는 전략이 있을 겁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정상회담 때 훈련 문제를 이야기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라고 합의했는데요. 당시 합의가 발표될 때도 일체의 적대 행위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남한 정부가 저 말뜻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 정부가 저 합의 사항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음에도, 또 자신들이 예년 수준으로 하는 것은 이해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훈련을 했기 때문에 반발하는 겁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훈련을 강하게 요구했을지라도 우리가 좀 나서서 톤 조절을 했어야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도 했고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으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하자고 했어야지, 이렇게 세게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한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북미 정상회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예년 수준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미국도 일단은 북미 회담 계획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라서 당장 회담 성사에 영향을 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볼턴, 미국 여론 달래기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문제 삼았다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강경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3일(현지 시각) ABC와 CNN 등에 출연해서 북한의 핵 탄두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미국에 가져와서 이것부터 없애겠다고 이야기한 건데요.

일반적인 핵 폐기는 '핵 활동 중단 → 핵 동결 → 검증 → 불능화' 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에 해체하는 것인데 볼턴은 자기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부분인 핵 탄두와 ICBM 처리부터 먼저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미 간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세현 : 볼턴 보좌관 말대로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북한에 해줘야 합니다. 만약 그게 정말 볼턴의 본심이고 미국이 진짜 그렇게 하려는 것이라면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비핵화를 했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를 본 북한은 절대로 리비아식의 비핵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011년 당시 "리비아 핵 폐기 방식은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무장 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을 북한에 다시 쓸 수 있다구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볼턴의 이야기는 미국 내에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미국 내 여론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미국이 이렇게 확실하게 처리할테니, 회담하기 전부터 입방아만 찧고 있지 말라는 것이죠.

▲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볼턴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세현 : 그런데 의료용이나 종자 개량 등 평화적 목적의 핵 활동까지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경수로를 가지고 핵폭탄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이병철 : 그 대목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만 해도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보장하고 있는 20% 미만의 우라늄 저농축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북한에도 우라늄 저농축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할 겁니다.

또 미국은 불시에 북한의 민간 시설을 사찰할 수 있는 AP(additiona protocol, 추가 의정서) 규정을 적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역시 양측 간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라늄 저농축이든 AP 규정 적용이든 이러한 것들을 진행하려면 북한이 일단 NPT에 복귀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핵에 관여했던 핵심적인 과학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뽑아 내려고 할 것입니다. 이들을 빼지 않은 이상 미국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검증 부분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찰은 과학적이지만 검증은 정치적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환자의 엑스레이를 검사하는 것은 사찰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들이 모여서 이 엑스레이 자료를 해석하는 것은 검증에 해당됩니다. 검증을 미국이 주도하겠지만 여러 목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신뢰의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볼턴의 말은 결국 북한이 모든 핵 활동을 다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인데 이게 가능할까요?

정세현 : 지난 1992년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북미 수교를 미국에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에 NPT 탈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볼턴의 발언 그대로 추진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라면 1992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볼턴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 투자가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걸 두고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요. 폼페이오의 메시지는 북한용이고 볼턴의 메시지는 미국 대내용인 것일까요?

정세현 : 일종의 역할 분담을 통해 양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고, 볼턴을 통해서는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식이죠.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하게 될 겁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일정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 정상회담을 열 수 있을까요? 또 폼페이오 장관이 두 번이나 평양을 방문하고 두 번째 방문에서 그렇게 웃으면서 김정은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김정은 위원장은 만족스러운 합의를 했다고 하고 폼페이오 장관은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이야기했을 수 있었을까요?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일 북한에 방문하기 전에 첫 평양 방문 때 함께 갔던 코리아미션센터(KMC) 팀들이 평양에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걸 보더라도 유엔에 있는 뉴욕 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서 조율을 하고, 폼페이오 장관이 최종적인 정리를 하러 평양에 두 번째 방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 한국계 미국인 억류자 3명과 함께 평양에서 빠져나왔는데, 이건 일종의 연막전술이었다고 봅니다. 무대 위에서는 그 억류자 3명이 주목받았지만, 실제 커튼 뒤에서는 김정은과 폼페이오가 확실하게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매듭지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폼페이오의 이번 평양 방문에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의 상당 부분이 그려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 물질과 시설, 보유 무기에 핵 과학자들 문제까지 이들을 두 단계로 끝내버리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걸 3~4단계로 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0년까지 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보여지는 김정은의 스타일로 보면 통 크게 묶어서 물질과 시설을 한꺼번에 폐기하겠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핵물질 들고 나가라고 했을 수도 있고요.

프레시안 : 북한 입장에서도 트럼프 정부 1기 임기인 2020년 전에 비핵화를 끝내고 반대급부를 얻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합의가 어떻게 뒤집어질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정세현 : 그렇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도자가 결심하면 2년 내에 가능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미국 국내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의회의 동의 없이 행정부가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시간과 북한의 시간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9일 평양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프레시안 :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것만 많이 보도가 돼서 그렇지만, 북한이 비핵화 대신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갈 것인지도 중요한 대목인데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경제 분야의 성과가 될텐데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이 아니라 민간 영역의 투자를 권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합니다. 폼페이오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는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한 확실한 보장을 해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경제지원은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나왔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7일 다롄에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치에 대해 포괄적으로 합의한다면 지원을 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세현 : 신의주에서 서울까지 고속철도를 놓자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 미국이 북한을 두고 투자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당시를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믿지 못해서 중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이 보도의 내용인데요. 오히려 거꾸로 북한이 미국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중국은 우리한테 투자 안할 거냐, 미국에 뺏겨도 되냐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중 양국에 투자 경쟁을 붙이는 구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트럼프, 싱가포르 택한 이유는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에 다소 암초가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는 6월 12일 싱가포르로 확정됐습니다. 한국은 판문점에서 열리길 바랐고, 후문에는 북한은 끝까지 평양을 고집했다고 하는데요. 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결정된 것은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남북 정상회담 이후 트위터에서 판문점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이나 평양 생각이 있었지만 주변 참모가 반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할 경우 "미 제국주의가 백기를 들고 평양에 들어왔다"는 식의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반대했을 겁니다.

지난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갔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는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중국의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반제국주의‧반미를 강력하게 외쳤는데, 갑자기 입장을 바꾼 셈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저우언라이는 이 고민을 김일성에게 이야기했는데, 김일성은 미 제국주의가 백기를 들고 중국 땅에 들어왔다고 이야기하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시처럼 북한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에 들어오면 공개적으로는 그렇게 말을 못하겠지만, 입소문을 내는 식으로 "드디어 미제가 원수님(김정은)의 통 큰 행보에 따르기로 했다"고 내부적인 선전을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런 부분을 우려했을 겁니다. 평양을 가면 북한의 이른바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프라이즈'(Prize)를 준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말렸을 겁니다.

다음으로 판문점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서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정치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측면에서는 판문점도 나쁘지 않은 장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취재진들이 보다 자유롭게 취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려면 평양이나 판문점보다는 싱가포르가 더 나았을 수 있습니다.

또 싱가포르는 미국과 아시아, 유럽 어디서 오더라도 비교적 거리에 대한 부담이 덜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리적 접근성이 판문점이나 평양보다는 좋은 것이죠. 국제적인 회담을 개최한 적도 여러번 있어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요. 또 싱가포르가 미국, 북한과 모두 수교한 곳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판문점에서 했다면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될 경우 곧바로 남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이를 통해 종전선언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만 일단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만약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까지 함께 참여해서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한다면, 판문점보다는 싱가포르가 좀 더 용이한 장소일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트럼프, 아베에 발목 잡히지 않을 것

프레시안 : 한편 일본에서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도 불능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정세현 : 그 문제까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그건 북일 정상회담을 열고 거기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할 이유가 중거리 미사일 외에 별다른 요인이 없기도 합니다. 납치자 문제만으로는 북일 간 정상회담까지 가기는 어렵습니다.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 전에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이 부분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럴 수도 있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는 아베한테 발목 잡히면 본인이 구상한 길이 갈지자가 돼버리기 때문에 뿌리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북한의 ICBM이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ICBM을 빨리 없애야 하는데 난데없이 일본이 이야기하는 중거리 미사일과 납치자 문제를 북한과 이야기하면 자신들의 목표도 이루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과 직접 이야기하라면서 교통정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일본도 사실 미국의 등에 업혀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이란 핵 협정을 탈퇴했는데요.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행보는 'ABO(Anything But Obama)', 즉 "오바마만 아니면 된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조에서 이란 핵 협정을 저런 식으로 처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이란 핵 협정이 15년 동안 이란이 핵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협상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오히려 이란 핵 협정을 보며 북한에 "저런 식으로 질질 끌지 않을테니 북한 너네들도 질질 끌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일자가 한미 정상회담과 시기가 겹치는데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갈 거라고 보시나요?

정세현 : 폼페이오가 직접 북한에 두 번씩이나 들어가서 협상을 해놓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을 어떻게 다룰지 나름대로 파악을 했겠지만, 미국 사람이 김정은의 속마음을 읽는 것과 한국사람이 읽는 것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김정은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과외를 좀 받아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접한 김정은과 폼페이오 장관이 접한 김정은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은 그동안 문화권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협상해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중국이나 베트남을 대하면서 잘못된 판단을 한 적도 꽤 있구요. 이건 미국이 상대방을 있는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쪽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과외가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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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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