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의 역설'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의 역설'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욱식 칼럼] 남북미 종전선언은 끝이 아니다
'종전선언의 역설'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68년 만에 '종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각)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직후 기자들에게 "한국전쟁은 가장 긴 전쟁"이라며 "한국전쟁 종식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이처럼 종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는 특히 '종전 문서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논의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남북한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올해에 종전 선언을 추진키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미 확대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 혹은 종전을 위한 선언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시간차 최소화해야

하지만 종전 선언이 가져올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전과 정전체제의 '불편한 동거'이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종전 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와 대립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이에 따라 종전 선언이 나와도 법적·제도적으로는 정전체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시간차가 길어질수록 불편함은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 체결을 늦추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경계하고 평화협정의 촉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종전 선언에 "조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해 법적 제도적으로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목표 시한을 명시하면 더욱 좋다.

또 하나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사이의 기간 동안에 실질적인 조치와 준비를 하나둘씩 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그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질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라도 이들 합의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행하면 앞서 강조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시간차도 최소화할 수 있고 내실도 기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중요하다. 비핵화가 가시화되더라도 한미 양국 내에선 북한의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을 이유로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 이후 한미동맹과의 군사적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이전에라도 남북한의 군사력 및 주한미군의 감축 계획을 논의하고 일부 실행할 필요가 있다.

▲ 지난 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만남을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반도 탈냉전과 아시아 신냉전의 조우?


남북미 종전 선언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우려는 한반도의 탈냉전과 아시아의 신냉전이 조우할 가능성에 있다. 이는 1차적으로는 '차이나 패싱론'과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앞선 글에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표명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트럼프가 거론한 '중국의 영향력'이 아니라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부절적한 대북 강경 발언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보기)

그런데 트럼프는 '중국 배후설'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 때리기'를 통해 '차이나 패싱론'을 재부각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는 "두 정상이 남북한이 연내 추진키로 합의한 종전선언을 북미정상회담 이후 3국이 함께 선언하는 방안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5월 26일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서 종전 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5월 초 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전화통화를 갖고 종전 선언 단계에서부터 양국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문 대통령 발언 직후 중국의 관영매체와 전문가들이 "중국의 힘을 과소평가 말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낼 정도로 한중관계에 또다시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런데 종전 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자고 한 쪽은 트럼프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1일 (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중국도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시진핑이 "위대한 사람"이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도 확답을 피했다. 대신 중국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 것이다.

문제는 '차이나 패싱'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종선 선언에서는 중국이 빠지더라도 평화협정 단계에서는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도 평화협정에 당사국 지위로 참여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에 동의할지의 여부가 불확실하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트럼프의 기질상 다른 정상이나 나라가 참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평화협정 협상에 참여해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미국이 경계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양국이 남중국해 및 대만 문제를 놓고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자칫 미중간의 신경전과 평화협정 당사자 문제가 뒤섞이면서 평화협정 자체에 난기류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한반도 탈냉전 프로세스가 아시아의 신냉전을 재촉하는 과정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전쟁·정전이 세계 냉전이라는 구조적 힘의 발현이었다면, 아시아 신냉전의 출현은 한반도 탈냉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보면 지독한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의 불안한 정전체제가 미중간의 대결을 일정 정도 가려주는 가림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에서부터 최근 사드 배치에 이르기까지 그 최대 구실을 '북한위협론'으로 삼았었다. 중국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북한 때문이라고 응수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될수록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가령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드가 철수되지 않는다면, '그 사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미국의 대중 강경파들은 끊임없이 중국위협론을 유포하면서 한중관계를 이간질시키려고 한다. 이를 통해 혹시라도 북핵 문제가 풀리면 중국위협론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차이나 패싱론'에 대한 조바심의 이면에는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의도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대안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 이 성명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중 4자간의 "별도의 포럼"을 열기로 한 만큼, 3자 종전 선언 이후 4자회담을 조속히 여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6자회담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였던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도 본격적인 논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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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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