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전시장이 된 선거
혐오의 전시장이 된 선거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선거는 끝났지만 혐오는 끝나지 않았다
혐오의 전시장이 된 선거
선거는 하나의 무대다. 후보자들이 모두 입장한 후 선택받은 한 명의 당선자를 제외한 모두가 퇴장한다. 23년 만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60%를 넘어섰다니 무대에 쏠린 관심은 적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당선자들은 대부분 파란옷을 입었고 빨간옷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 제7회 지방선거 및 교육감선거의 결말에 대해서도 나눌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결말이 났으니 과정을 되짚어볼 이유는 사라진 것일까?

지난 5월 14일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발족했다. 선거에서 후보자들의 혐오 표현을 감시하고 대응하겠다는 취지였다. 5월 말에는 전국 11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혐오 없는 선거, 평등한 지역 만들기' 기자회견이 열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보름여 운영된 혐오신고센터에는 모두 61건의 제보가 접수되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혐오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혐오의 양상을 더욱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혐오의 전시장이 된 지방 선거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덜 그럴 것이라 기대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 소수자에 대한 비하 발언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들은 후보자의 입을 통해 곧잘 흘러나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도시를 여성에 빗대며 "매일 씻고 피트니스도 하고 해서 자기를 다듬"고 "옆집하고도 비교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강원도지사 후보였던 최문순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딸의 유세일정과 사진을 올리며 "안구복지타임"이라고 표현했다. 증오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사라져야 할 표현들이다.

위와 같은 발언들이 후보의 수준을 보여준다면 혐오를 선거 전략으로 삼는 것은 정치의 수준을 보여준다. 19대 대선 TV 토론에서 시작된 '동성애 찬성, 반대' 검증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 세력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네트워크'로 신고된 혐오표현은 80.3%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동성애는 흡연보다 해롭다"고 말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상대 후보가 동성애와 관련된 답을 회피했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최동용 춘천시장 후보 등은 모두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동성애 혐오를 동원했다.

일부 교육감 후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혐오를 선동했다. '동성애 반대'를 공보물에 적시하고 현수막으로 게시하였다. 학생인권조례 등 청소년 인권을 증진시키는 정책과 '동성애'를 연결시킨 후 동성애 혐오를 자극하며 인권 정책에도 반대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안산에서는 4.16생명안전공원이 제물이 됐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생명과 안전의 미래를 약속하는 장소가 되어야 할 4.16공원을 '납골당'이라 이름 붙이며 사람들의 혐오감을 부추겼다. 중요한 쟁점에 대한 생산적 토론은 봉쇄되고 누군가는 공공연히 모욕당해야 했다. 혐오의 정치가 문제되는 이유를 총망라해 보여준 선거였다.

선거, 혐오 표현 규제의 필요성 더욱 높아

혐오 표현에도 차별을 드러내기, 공개적으로 모욕하기, 증오를 선동하기 등의 범주를 나눌 수 있다. 혐오 표현을 규제할 때에는 이와 같은 범주와 내용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 말을 통한 폭력은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환경을 만들고 급기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여러 나라들은 직접적인 증오 선동에 이르지 않더라도 혐오 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

독일은 일반평등대우법('평등대우 원칙의 실현을 위한 유럽지침의 이행을 위한 법률')에서 소수자에 위협적, 적대적, 모욕적인 환경을 조성하거나 야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형법에서도 소수자집단에 대해 '경멸, 악의적 중상 혹은 명예 훼손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공격하는 행위'는 별도로 제재한다. 캐나다는 주 차원의 인권법들에서 '차별 혹은 차별 의도를 나타내는 재현물의 출판, 발간 혹은 게시'를 차별행위로 금지하는 규정을 포함한다. '이민자들에게 집을 임대하지 말라'는 버튼 배포는 법 위반이다.

선거에서의 혐오 표현은 더욱 규제의 필요성이 높다. 같은 내용이라도 화자의 지위와 영향력, 청중의 규모, 매체의 파급력, 고의성과 반복성, 청중의 행동가능성 등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언론의 조명을 받을 뿐만 아니라 공보물과 TV 토론은 집집마다 전달된다. 혐오신고센터로 제보된 건의 3분의 1은 공보물에 실린 내용이었다. 한 시민은 동성 연인과 거리를 지나던 중 "동성애는 죄이고 몰아내야" 한다는 유세를 들어야 했고 "그 장소에 있기 곤란했다"며 신고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퀴어도 시민입니다. 해당 후보자의 유세 자체가 폭력으로 다가옵니다. 제발 입 좀 닫게 해주세요"라며 절박한 마음을 담아 신고했다. 세금 내고 모욕 당하는 선거가 된 것이다.

"나를 모욕하는 선거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시민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람"이었다는 한 시민은, 시장 후보의 공보물에서 4.16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으로 비하하는 것을 보고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제보를 했다. "여성 서울 교육감 후보라 반가운 마음으로 공보물을 보다가 후보의 청소년 인권 인식 수준과 성소수자 인식 수준을 보고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며 제보를 한 시민도 있었다. 후보자들의 혐오 표현은 더욱 심각해지고 그만큼 정치의 수준이 낮아지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평등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평등으로 한걸음 내딛는 자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와 자유한국당 참패라는 예상된 결과를 제외하면 녹색당 여성 후보의 선전과 정의당의 전반적 득표율 상승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듯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선전은 페미니즘의 진전과 무관하지 않다. 포스터를 노골적으로 훼손한 여성혐오범죄는 혐오에 맞서는 힘을 오히려 결집시켰다. 정의당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이유로 한 후보의 직무정지를 명령하고 당원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혐오가 아니라 평등에 대한 지지를 조직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덕분이다. 성북구청장 당선자인 이승로는 자신의 명의로 발송된 혐오선동글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명의가 도용됐다는 변명과 부족한 사과에 그쳤지만 혐오와 선을 긋게 한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대응을 주문하는 것에 비해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직도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 6월 5일 '네트워크'는 서울 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들의 혐오 표현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후 진행된 면담에서 선관위는 마땅한 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나 비방 등은 선거법 위반으로 예방하거나 감시하는 활동을 할 수 있지만 혐오 표현에 관해서는 어렵다며 발을 뺐다. 그런데 문제는 법제도가 미비하다는 점보다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있었다.

선거는 어떤 과정이어야 하나

선거는 어떤 과정이어야 할까? 선거를 후보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하여 유권자들에게 선택받는 과정으로 보면 후보들이 더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된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며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으로 본다면 시민들이 더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혐오 표현은 모든 사람이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훼손한다. 시민 누구도 후보에게 모욕당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혐오에 밀려 민주적으로 토론할 기회를 잃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평등에 관해 더욱 많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년 후 치를 국회의원 총선거는 달라야 한다. 선관위에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 논의도 필요하고 선관위 자체적으로도 역할을 만들어가야 한다.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보다 혐오 표현이 없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방향임은 당연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19일 여러 단체와 874명의 시민들이 김문수의 혐오 표현에 대한 차별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사건의 처리가 혐오 표현에 대응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혐오 표현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의 문제로 미루지 않아야 한다. 후보자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시민들은 잘 선택하면 된다는 접근을 넘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거가 하나의 무대라면, 무대를 짓는 시민들이야말로 주인공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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