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미투'를 '하이재킹' 했다
그들은 '미투'를 '하이재킹' 했다
[당신들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⑤ 동덕여대 교수 성폭력 사건
그들은 '미투'를 '하이재킹' 했다

6월 7일. 동덕여자대학교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인권장례식-동덕인의 인권은 죽었다'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학생 인권 어디 갔냐! 학생 고소 웬 말이냐!" 검은 옷을 맞춰 입고 국화꽃을 든 100여 명의 장례 행렬이 외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학내 성추행과 여성 비하 문학론 교육 등 H교수가 일으킨 사건의 해결이다. 공동행동 내내 학우들에게 받은 응원과 지지 덕에 '오늘처럼 연대를 이어가면 곧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도 품었다. 그렇게 또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비대위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H교수를 지지하는 시인 B씨의 게시글 때문이었다. B씨의 SNS에 올라온 장문의 글은 H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 학우를 비방하고 고발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었다. 동시에 가해 교수의 성범죄와 위계 폭력을 축소하고자 2차 가해를 주도하는 글과 사진들을 배포하는 데도 서슴지 않았다. 피해 학우의 실명을 공개하기까지 한 B씨의 게시물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비대위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포털 사이트에 부적합한 게시글로 신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려한 대로 바로 다음 날, H교수의 인터뷰가 M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바로보기)기사는 가스라이팅(가해자가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의 현실 인식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자 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해당 언론이 어떤 이유로 가해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공정한 보도를 지향해야 할 언론이 성범죄 사건을 매우 경솔하게 다룬 것은 분명한 문제이다. 2014년도 한국기자협회 정관 중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을 살펴보면,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으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마찬가지로 사건 당시 피해자와 H교수 간의 연락이 H교수의 성추행을 부인하는 증거로 사용되려면, 사실관계 확인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M언론은 피해자에게 사건 취재를 요청하지 않았다. 기사 하단부에는 피해 학우가 과거 3월에 밝혔던 입장이 짧게 기재됐을 뿐이었다. M언론이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피해자는 이미 H교수 측의 주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모든 진술을 마친 상태였지만 이러한 사실은 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H교수 측의 새로운 2차 가해를 신속하게 방어 및 대응할 수 없었다.

"강제성이라 하면 그야말로 완력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키스는 급습한 것", "그걸 강제성이라고 한다면 강제성이 있다고 하겠다" (바로보기) 이처럼 H교수는 과거 언론과의 통화에서 피해 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M언론은 성추행을 수차례 입맞춤, 키스라고 표현해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미치는 사진을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잘못된 걸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H교수의 인터뷰가 퍼지면서 그를 두둔하는 이들은 각종 미디어 플랫폼에 피해자를 향한 악성 여론을 형성했고, 이중 몇몇은 본교 총학생회 SNS를 찾아와 비방 댓글을 남겼다. 그들은 피해자가 어렵게 내뱉은 '#MeToo'를 빼앗아 가짜라고 진위를 가리며 조롱하기 바빴다. 현실적으로 피해 학우가 B씨를 포함한 이들 모두를 상대로 법적 대응 하기란 쉽지 않다. 심리적, 재정적 압박에 H교수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상습협박에 의한 고소까지. 아니, 왜 피해를 본 이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 가해자들이 만들어낸 여파는 모두 피해자와 그 연대체에 몰아쳤다.

악성 댓글이 학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자 피해 학우는 Y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바로보기) 다행히도 기사는 당시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짚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대중이 자극적인 M언론의 보도만큼 Y언론 기사에 관심을 보일까 하는 우려가 계속됐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달 19일, H교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 학우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로 파악돼 차별시정소위원회에서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공동저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을 통해 "피해자의 증언이 믿을 만한 것인지 등을 가려내려는 여론의 검증은 예전보다 혹독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검증이 되고 나면, 피해자의 직접행동은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권위의 판결이 난 현재, '여론의 검증'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걸까.

7월. H교수와 M언론의 인터뷰로부터 어언 한 달이 지났다. 피해 학우는 본인을 두고 H교수를 음해하고자 거짓 폭로를 했다고 주장한 B씨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서울 종암경찰서는 H교수가 피해자를 상대로 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상습협박 고소를 '혐의없음'이라 결론 내고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본 사건을 성추행, 즉 범죄로 인식하는 여론도 다시금 생겨났다. 그러나 그 속에 #MeToo를 폄하하고 피해자에게 폭언을 일삼던 이들의 반성은 없었다. 본인이 어떤 범죄를 옹호하고 2차 가해를 저질렀는지 모르는 양, 관련 게시글과 댓글 모두 그대로였다. 여전했다. 가해자들이 형성한 그들만의 여론은 지금도 피해 학우를 검증, 아니 '가해 중'이다.


아직도 피해자 주변에는 H교수가 무고죄로 고소했다는 허위사실이 퍼져있다. 이번 인권위법 34조에 따른 수사 의뢰는 강한 수위의 판결로, 앞선 보도에 따르면 해당 경우는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범죄를 지우고 꽃뱀 프레임을 생산하는 무고죄 소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 H교수는 R언론과 두 차례의 인터뷰(☞ 바로보기 /  )를 통해 외국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는 등 앞으로도 작품 집필을 이어갈 계획임을 밝혔다. 인터뷰 답변 내내 본 성추행 및 위계 폭력 사건에 대한 일말의 사과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대학은 '중립'이라는 투명 망토를 쓴 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껏 분주히 움직여왔다. 자발적으로 모인 몇몇이 연대체를 이룬 것을 시작으로, 7건의 대자보 및 입장서, 3건의 기자회견, 4건의 공동행동 등 점차 그 목소리를 확장해냈다. 그 때문에 이 검증의 굴레를 함께 끊어내자고 자신 있게 요청한다. 이다음은 사회에 변화를 견인할 힘을 끌어낼 차례라고.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 H교수 관련 공동행동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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