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구걸'과 '적선'...이재용이 왜 당당한가?
뒤바뀐 '구걸'과 '적선'...이재용이 왜 당당한가?
[기자의 눈] 경영권 강화 지름길 요구한 이재용, 비용은 사회가 치른다
2018.08.09 10:28:40
뒤바뀐 '구걸'과 '적선'...이재용이 왜 당당한가?

문재인 정부는 삼성에 투자와 일자리를 구걸했나? 혹은 구걸하려 했나?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찬찬히 따져보자. '구걸'은 누가 하고 있나?

국립국어원은 '구걸'을 "돈이나 곡식,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빎"이라고 풀이한다. 요컨대 정당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 혜택을 누리는 일이다. 한마디로 비굴한 짓.

삼성이 앞으로 3년 동안 국내외에 180조 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공개 면담을 한 지 이틀 뒤인 지난 8일 발표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인도에서 만난 날로부터는 한 달 만이다.

삼성 반도체 13조 원 투자해도, 일자리는 650개 늘어

'정부가 삼성에 구걸했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삼성의 투자 발표는 돈을 거저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지 않고, 한국 사회에 하는 기부여야 한다.

과연 그런가. 삼성이 앞으로 3년 동안 투자한다는 180조 원 가운데 50조 원은 해외 투자다. 국내 경기 부양 및 일자리 확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나머지 130조 원 가운데 100조 원가량은 삼성 반도체 평택 공장 등 반도체 부문에 투자한다.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늘 수십조 원 규모였다. 삼성이 반도체 부문에 투자하는 비용 대부분은 설비를 업그레이드 하는 데 쓰인다. 인건비 지출은 극히 미미하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반도체 부문에 13조 원을 투자했다. 그래서 반도체 부문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고작 650명이었다. 이 비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1년에 33조 원(3년 동안 100조 원) 투자해서 늘어나는 일자리는 약 1675명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비 또는 공장 건설 등에 쓰는 돈 가운데 많은 부분은 협력업체로 흘러간다. 그래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규모는 흔히 생각하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이다. 기계가 돈을 먹는다. 


삼성 아니어도 취업할 곳 있는 이들에게 돌아갈 기회


게다가 앞서 거론한 신규 일자리 대부분은, 첨단 기술을 익힌 고학력자들의 몫이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굳이 삼성이 아니어도 취직할 곳이 있었다. 지금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이들에게 새로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물론 삼성은 앞으로 3년 동안 4만 명을 신규 채용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기존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요컨대 일자리의 총량까지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4만 명 가운데 약 7000~8000명은 올해 초 직접 고용하기로 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앞으로 3년 동안 3만2000~3만3000명을 새로 뽑는다는 뜻이다. 이는 일반적인 신규 채용 규모보다 약간 늘어난 수치다.

요컨대 삼성이 한국 사회에 거저 주기로 한 것은 없다. 원래 계획돼 있던 투자 및 채용 규모보다 조금 더 큰 숫자를 내놨을 뿐이다. 그나마 조금 더 늘어난 게 어디냐,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그 역시 "거저 주기"와는 거리가 있다.

삼성이 국내에 투자한다는 130조 원 가운데 반도체 설비에 잠기는 돈을 뺀 나머지는 약 30조 원이다. 이 가운데 25조 원은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이동통신(5G) 장비,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미래 성장 사업에 투자한다. 통상적인 신규 채용 규모보다 더 뽑은 직원은 이들 분야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건 '투자'다. "거저 주기"가 아니다. 이익을 노린 행위이며, 그 결실은 이재용 부회장 일가를 포함한 삼성 주주들이 먼저 챙긴다. 게다가 새로 늘어날 일자리는 역시 첨단 기술을 익힌 고학력자들, 굳이 삼성이 아니어도 취업할 곳이 있는 이들의 몫이다. 일자리 자체를 못 구하는 이들에게 돌아올 기회는 미미하다.

규제 완화, 비용은 사회가 치른다세월호 참사 벌써 잊었나?


'구걸'은 거저 달라고 비는 짓이다. 그런데 삼성은 거저 주겠다고 한 게 없다. 정부가 삼성에 구걸해야 할 이유는 애초 없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삼성에 거저 주겠다고 한 게 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인도에서 만난 지 열흘 뒤인 지난달 19일, 문 대통령이 직접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을 방문해 의료기기 분야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겠다고 약속했다. 그다음 날인 지난달 20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원격의료 물결 안 타면 한국 의료는 '톱' 유지가 어렵다"라며 맞장구쳤다. 원격의료 규제는 박근혜 정부도 풀지 못했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이야기하는 규제 완화 폭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수준을 뛰어넘는다. 


규제는, 사인의 이익과 공공의 위험 사이의 경계에서 정해진다. 규제가 풀려서 누군가가 이익을 누린다면, 그건 사회 전체가 위험을 감수한 대가다. 세월호 참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경제부총리 만나서 복제약 값 인상 요구한 삼성 


최근 한 달여 사이, 온갖 규제 완화 논의가 급류를 탔다. 삼성은 예상 수혜자 범위 안에 거의 늘 포함돼 있다. 삼성이 이익을 누린다면, 이는 사회 전체가 위험을 감수한 대가다. 왜 한국 사회는 그 대가를 삼성에 청구하지 않는가.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얻어가는 쪽은 오히려 삼성이다. '구걸'을 해야 하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삼성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거저 얻어가는 쪽이 오히려 당당하다. 지난 6일, 김동연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가격을 올리는 길을 열라고 요구했다. 이는 바이오시밀러 업계 전체의 요구가 아니며, 오로지 삼성만의 요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분 대부분을 가진 자회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논란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 평가 방식 변화와 맞물려 있다. 적자기업이던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회계상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란이다. 그리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이 대주주였다. 지난 2015년 이뤄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이뤄지려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우량기업으로 변해야 했다. 회계상으론 그렇게 됐고,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에 다가가는 비용을 낮췄다. 


이재용은 경영권을 공짜로 강화하고, 의료 비용은 사회가 치른다

요컨대 삼성이 지난 6일 김 부총리에게 요구한 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수익성을 합법적으로 올릴 수 있게끔 해달라는 것이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복제약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면 어떻게 되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지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를 높인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이다. 정부가 복제약 가격 규제를 푼다면, 수혜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가 삼성 경영권을 강화하는 비용이 떨어진다. 

대신 한국 사회가 비용을 치른다. 복제약이 필요한 환자에겐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이 된다. '보장성 확대'를 내건 '문재인 케어'의 전망 역시 어두워진다. 한국 사회가 이런 부담을 왜 거저 짊어져야 하나?


'구걸'은 이재용왜 촛불 정부가 '구걸' 흉내 내나?


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은 앞서 거론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로부터 부당한 도움을 받았고, 그 때문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연인원 1500만여 명이 주말마다 생업을 접고 촛불을 들게끔 한, 범죄 피고인이다. 이런 그가 다시 자신의 경영권을 거저 강화할 길을 열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 때문에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비용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구걸'을 하는 쪽은 사실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는 혜택을 거저 달라고 요구한다. 자기가 치러야 할 비용을 지금도 사회에 떠넘긴다. 그런데 적선하는 쪽이 오히려 '구걸' 흉내를 낸다. 심지어 '촛불 민심'을 대변한다는 정부가 그렇다. 대체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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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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