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자가 건강해야 우리도 산다
공익제보자가 건강해야 우리도 산다
[서리풀 연구通] 공익제보자의 삶은 이어져야 한다
공익제보자가 건강해야 우리도 산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기무사가 작년 3월 시민들의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탱크로 밀어버리려 했다는 끔찍한 사실이 폭로되었다(☞관련 기사 : "촛불집회, 탱크 200대·장갑차 550대 투입…전두환 쿠데타 흡사"). 또한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과 장관의 통화 감청을 비롯하여 수백만 명의 민간인을 사찰해왔다는 사실이 현직 기무사 요원의 제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 "기무사, 노 전 대통령 통화 감청…현직 기무사 요원이 제보"). 


올해 초 안태근과 안희정의 권력형 성범죄를 폭로하여 #미투 운동에 힘을 보탠 이들도 해당 조직의 중요한 일원이었다. 조금만 뉴스를 검색해보면 이런 종류의 '내부 고발'이 올 한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 비리", "대한항공 직원 '단톡방' 제보", "원장들 배만 채우는 어린이집 급식", "군산시각장애인협회 보조금 횡령", "빙상연맹 논란", "큰 스님들의 추악한 민낯", "천주교 신부들의 잇따른 성추행 파문", "서울미술고 사태" 등 그 목록은 길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정권의 부도덕성이나 군의 불법사찰, 선거부정 등을 내부 고발하는 것이 하나의 조직현상으로 나타났다(<사회비평> 35호에 실린 이지문의 글 "한국의 내부고발자, 그들은 누구인가?" 참조). 지난 정권의 민간인 사찰이나 4대강 사업 문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등의 진실을 밝히는 데도 공익제보는 큰 역할을 했다. 


부패방지법(2001년)과 공익신고자보호법(2011년)에 의하면,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할 수 있으며, 공익신고자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의 경우 내부고발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를 고려해 아예 '공익신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내부 고발자들이 직면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강제보직전환과 징계에 시달리는 대령", "하청업체 직원의 자살", "미래를 날린 대학원생", "대학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파면당한 교사들", "인격모독과 따돌림으로 사직한 직원" 등 내부고발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도하는 기사도 줄을 잇는다. 아주 짧은 사회적 찬사 이후, 내부고발자들은 보복과 실직, 심각한 재정난, 지루한 법적 공방, 가족이나 동료와의 갈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 등 온갖 스트레스에 맞닥트린다.

최근 국제학술지 <심리학 리포트>에 실린 네델란드 틸뷔르흐대학교 반 더 벨든 교수팀의 논문은 이러한 내부고발자들의 고난을 좀더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자 했다(☞논문 바로 가기 : Mental Health Problems Among Whistleblowers : A Comparative Study)


연구팀은 내부고발자들의 건강상태가 다른 인구집단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계량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네덜란드 내부고발자 그룹(Dutch Expert Group Whistleblowers)'과 네덜란드 정부가 세운 단체 '어드바이스 포인트 휘슬블로어(Advice Point Whistleblowers)'를 통해 연구 참여자를 모집했다. 그리고는 간이건강검사(SF-36)의 정신건강문항(MHI-5)과 주관적 건강 평가문항을 이용하여 측정한 내부고발자 27명의 건강상태를 네덜란드 사회과학연구패널(LISS-panel)에서 뽑아낸 4개 집단과 비교했다. 


이때 4개의 비교집단은 첫째, 성별, 연령, 교육수준, 배우자 동거여부 등에서 비슷한 조건을 가진 대조집단 135명, 둘째, 암이나 악성종양, 백혈병, 림프종 환자 집단 130명, 셋째, 신체적 또는 정신적 문제로 인해 노동 능력이 제한된 집단 194명, 넷째, 심근경색, 뇌졸중, 뇌경색, 파킨슨 병 등 11개의 특정 질병이 없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집단 200명이었다. 


또한 간이정신건강검사(SCL-90-L) 문항을 이용하여 불안, 우울, 광장공포증후군, 대인 민감성과 불신, 수면장애에 대해 조사하고 이를 네덜란드 국민의 무작위 대표 표본(1026명)과 비교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부고발이 일, 소득, 가족 기능, 자녀들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이전 동료와의 관계 등에 미친 영향, 건강상태(전반적 정신건강, 주관적 건강상태, 정신건강관련 증후군)를 평가하고 지난 12개월 동안 정신건강서비스 이용 여부를 검토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였다. 참여자 대부분은 내부고발이 일(80.8%), 소득(81.5%), 이전 동료와의 관계(61.5%)에 매우 부정적 효과를 미쳤다고 보고했다. 가족기능이나 파트너, 자녀와의 관계에는 부정적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내부고발자들의 건강은 대조집단이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집단과 비교했을 때 '매우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가 있음', '전반적인 건강이 안 좋음', '1년 전과 비교하여 건강이 더 나빠짐' 항목에서 유의하게 나빴다. 암환자 집단만이 전반적인 건강, 지난 1년과 비교해서 건강이 악화된 정도가 내부고발자 집단보다 나쁘게 나타났다. (표 참조)

[표] 내부고발자와 비교 집단들 사이의 전반적 건강 수준 차이

또한 내부고발자들의 85.2%가 '심각하다'부터 '매우 심각하다' 수준의 불안, 우울, 대인민감성, 불신, 광장공포증후군, 수면장애 등의 문제를 한 가지 이상 겪고 있었다. 이런 정신건강 문제 유병률은 대형 재난을 겪은 지 2-3주 된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한 내부고발자들의 대부분은 지난 1년간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고, 이런 정신건강문제는 내부고발이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지속되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내부고발이 당사자에게 일, 소득, 대인관계 등 삶의 중요한 측면들에서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마치 강력한 규칙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내부고발자들에게 직업상실이나 법적비용에 대한 재정지원, 사회적 지지와 상담·치료 같은 조치, 그리고 내부고발자 보호 법률 이행을 촉구하였다. 사회가 내부고발자 덕택에 여러 편익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부담의 불균형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내부고발자 뿐 아니라 미래의 내부고발자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이나 갑질제보 단톡방은 거대한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터와 다양한 사회조직이 민주적이고 공평한 곳으로 바뀌기를 열망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내부고발 릴레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동료 시민들의 용기를 뉴스 클릭 한번으로 소비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어쩌면 자신의 삶을 걸고 알려준 진실의 가치에 보답할 것인가. 


공익제보자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그들의 삶을 계속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 또한 그만큼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자들이 처한 정신적, 사회적 건강 문제에 주목하고, 이들의 부담을 나눠 갖기 위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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