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안희정 1심, 대법원 판결 변화와 배치"
조국 "안희정 1심, 대법원 판결 변화와 배치"
[프레시안 books] <형사법의 성편향> 개정증보판 내..."강간은 영혼살해"
2018.09.07 14:01:39
조국 "안희정 1심, 대법원 판결 변화와 배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지난 2003년 발간한 <형사법의 성(性)편향>(박영사 펴냄)의 전면개정판을 냈다. 조국 수석은 지난 2004년 제2판을 발간한 뒤 현시점에서 전면개정판을 내게 된 계기로 2018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운동'을 지적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은 단지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피해자의 고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거나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 성폭력 가해자의 보다 엄격한 처벌과 피해자의 보다 철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 법조계·언론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성적 자기결정권 및 이에 대한 침탈인 성폭력에 대해 자신의 인식을 전화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해 상당한 대중적 공감이 이뤄지게 됐다. 사실 이러한 사항은 제1판에서부터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었다."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이 대다수의 피해자가 되는 범죄를 다룬 이 책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평가, 강간죄 성립 요건인 최협의설에 대한 비판, 형사절차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의 보호 조치, 비동의 간음죄 신설 주장에 대한 우려 등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담겼다. 다만 조 수석은 "이 책의 주장은 '학자'로서 제기하는 것이지, '민정수석'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며 과도한 정치적 의미 부여에 대해 경계했다.

"안희정 재판, 피고인보다 피해자가 더 의심받아"

▲ <형사법의 성편향>(조국 지음, 박영사 펴냄). ⓒ박영사

조 수석은 '안희정 사건'의 1심 판결에 대해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를 지적했다. '안희정 사건'은 형법 제303조 '피보호·감독 성인 대상 위력간음죄'와 관련해 크게 관심을 모았었다. 


조 수석은 "1심 재판부는 '위력' 여부에 대한 '종합판단'을 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는바, 통상의 성폭력범죄 재판에서의 문제점인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보다는 피해자가 더 의심을 받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김지은 씨는 지난 8월 18일 변호사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세분의 판사님. 안희정에게 물으셨습니까?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셨나요? 가해자의 증인들이 하는 말과 그들이 낸 증거는 왜 다 들으면서, 왜 저의 이야기나 어렵게 진실을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셨나요?"고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조 수석은 또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재판부가 (피해자의) '저항' 여부를 유무죄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강간죄 관련 대법원 판결의 변화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이 책에서 2005년 7월 28일 대법원 판결(2005도3071)과 2012년 7월 12일 대법원 판결(2012도4031)을 강간죄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보여주는 판결로 소개했다. 그는 두 판결이 "피해자의 강력한 저항 여부와 범행 전후 피해자의 행동을 평가할 때 피해자가 처해 있던 두려움과 당황과 고통의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함을 요구"했으며 "특히 피해자의 현장 이탈이 없었다던가 사력을 다한 반항이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피해자가 불리한 판단을 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했다"고 평가했다.

안희정 1심 판결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최근 판결에 비해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는 조 수석뿐 아니라, 다른 법조인들도 지적하고 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는 지난 8월 19일 성명을 내고 대법원이 1998년 유치원 원장이 원장 신분을 이용해 유치원 교사 및 예비교사를 추행한 사건, 2004년 직장상사가 등 뒤에서 피해자 의사에 명백히 반해 어깨를 주무른 사건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를 인정한 사실을 지적하며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시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근거에 대해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협의설 비판경한 강간죄 신설해야"

조 수석은 로빈 웨스트 미 조지타운대 교수의 발언인 "강간은 영혼살해"라는 말에 공감했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정조'나 '여성의 성적 순결'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이다. 이를 이유로 조 수석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저항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하거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행사한 것이 입증될 때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최협의의 폭행·협박설'을 비판한다. '최협의설'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악(CEDAW)에서 한국에 수차례 폐기를 권고했다. 


조 수석은 미국과 독일의 형법을 예로 들어 '최협의설'을 비판했다. 미국은 강간죄 성립 요건으로 '극도의 저항'이라는 요건을 폐기하고, '합리적', '진지한' 저항을 범죄 성립 요건으로 인정했다. 또 미국에는 성교 그 자체에 폭력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 행위에 내재한 물리적 폭력을 초과하는 폭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 판례, 피해자의 주관적 공포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합리적 이유로 인정하고 있는 판례가 존재한다.

독일 형법은 1997년 폭행과 협박 이외에도 '피해자가 행위자의 공격에 대하여 보호 없이 노출된 상태를 이용하여' 동의 없는 성교를 한 경우 강간죄가 성립되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조 수석은 이런 개정이 "피해자가 경악으로 몸이 굳어 버렸다거나, 또는 가해자에 대한 공포, 기타 다른 심리적 이유로 저항할 능력이 없었던 경우, 또는 피해자가 타인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고 가해자는 체력적으로 우월하여 저항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저항을 포기한 경우에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게 됐다"고 해석했다.

조 수석은 '최협의설'에 대해 "피해자의 거부의사를 폭행·협박으로 제압하고 성교를 하였음이 확인된 피고인도 형사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과소범죄화"라며 "사용된 폭행·협박의 정도는 유·무죄가 아니라 양형에서 고려되어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협의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 방안으로 '경한 (유사) 강간죄'를 신설을 제안한다. 징역 3년 이상인 강간죄, 징역 2년 이상인 유사강간죄 이외에 징역 1년 이상의 '경한 (유사) 강간죄'를 신설해 '협의의 폭행·협박'을 범죄 구성 요건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비동의간음은 형사불법이 아니라 민사불법으로"

조 수석은 그러나, 2018년 미투 운동으로 논의가 활발해진 '비동의간음죄' 신설에 대해선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비동의적 성교를 모두 범죄로 규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지적한 '비동의간음죄' 신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폭행·협박뿐 아니라 위력까지도 사용되지 않은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과잉 범죄화 편향이다. 2) 이런 비동의간음은 여성의 '동의' 여부가 범죄 성립의 관건인데, 이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형법상 범죄로 규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3) 홍철호, 강창일,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비동의간음죄'가 만들어지면 형법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제302조, 303조)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게 될 수 있다. 4) 범죄행위자의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아내 강간이 인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동의간음죄'는 이혼 과정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5) 통상의 의사 능력이 있는 성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일체의 침해를 형법을 통해 막아주어야 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조 수석은 "'경한 강간죄'를 신설하거나 또는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요건을 완화하는 해석론을 취한다면, 처벌되지 않는 비동의적 성교의 범위는 실질적으로 줄어들므로, '비동의간음죄' 신설론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대부분 흡수될 것"이라며 "폭행·협박·위력 없는 비동의간음은 형사불법이 아니라 민사불법으로 의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간피해자보호법 도입 필요"

조 수석은 성폭력범죄에 있어서 "형사실체법 개혁보다 형사절차법 개혁이 더 중요하다"며 "증거조사와 유무죄 확정은 형사절차를 통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형사절차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제2차 피해'에 대해 강조했다. 강간죄의 핵심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인데,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피해자의 품행, 평판 및 성관계 이력(履歷)을 문제 삼아 강간죄를 둘러싼 남성중심적 편견을 작동시켜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획득하려는 전략이 사용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는 일종의 '제2차 강간'이 가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문제는 형사소송법 제299조와 형사소송규칙 제74조, 제77조 등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지만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성폭력범죄 재판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피해자의 프라이버시가 온전히 보호되기 위해 강간피해자보호법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eild Law)은 강간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 이력이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제약하는 법이다. 그는 대법원장의 결단으로 즉각 개정될 수 있는 형사소송규칙에 이 내용을 담는 것만으로도 개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성폭력범죄 사건에서는 피고인만이 아니라 피해자도 사실상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며 형사절차에 대한 개혁이 있어야만 "남성중심의 재판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고난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며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형사 피의자·피고인과 대등하게 맞서 형사절차에서 실체적 진실을 두고 다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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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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