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찾아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찾아서
[인문견문록]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찾아서
소득격차가 더욱 확대되었다는 통계청 뉴스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았는데, 오히려 불평등이 더 커지다니…. 불평등해소에 관심도 없던 보수세력이 앞장 서 문재인 정부 탓을 한다. 불평등한 한국사회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불평등' 그 자체를 사유하는 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돈, 권력만이 아니라 지식으로도 자신들을 보호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발한다는 '유인(incentive)이론'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 빈부격차가 고착화된 21세기도 이럴진대, 하물며 18세기 중엽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용기 있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심에 장 자크 루소가 있었다.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주경복 옮김, 책세상 펴냄)을 쓴 계기는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 공모전이었다. 디종 아카데미가 낸 주제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였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선했지만 문명의 발전과 함께 타락했다'는 과격한 주장의 논문을 디종 아카데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상에 실패하자 루소는 제네바공화국에 대한 헌사를 논문에 덧붙여 1755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불평등의 기원을 탐색하기 위해 태곳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소는 왜 불평등한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태고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모험을 하는 것일까? 루소가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제도와 사회로 어지럽혀지지 않은 인간이 원래 품고 있던 본성을 찾는 것이 루소의 목표였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이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진 후 사후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경쟁·시기·폭력·사치와 같은 정념을 인간의 본성이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루소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정념들을 한 꺼풀씩 벗겨 가면 결국 이런 정념을 유도한 사회적 관계가 나온다. 이런 사회적 관계 이전으로 돌아가서야 진정한 인간의 본성과 맞닥뜨리게 된다. 태고의 역사로 올라가서 발견한 인간의 모습을 루소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거기서 어떤 동물보다도 약하고 민첩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 어떤 동물보다도 유리하게 조직된 한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떡갈나무 아래에서 배불리 먹고 시냇물을 찾아 목을 축이며, 자기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준 바로 그 나무 발치에서 잠자리를 발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욕구는 충족될 수 있었다."

루소가 그리는 태곳적 원시인은 무척 목가적이다. 장자가 말하는 절대 자유 '소요유(逍遥游)'의 경지에 있는 존재인 듯도 하다. 루소의 이런 주장에 당장 '원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데 무슨 황당한 소리냐?'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것 같다. 역사를 연구하려면 자료나 유물에 의존해야 한다. 루소는 독특한 방법을 취한다. 루소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루소는 자신의 탐구를 가상적 추론이라고 적시한 후 글을 전개해 나간다.

'가상적 추론'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토머스 홉스가 설정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역시 홉스만의 가상 상황 설정인 것이다. 20세기 정치철학계의 슈퍼스타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 역시 가상이다. 가상임에도 그들의 주장은 한 시대를 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가졌다. 가상은 허구와 다르다. 가상은 주어진 조건을 고려할 때 가장 개연성 높은 상황을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루소가 사용한 방법이 '가상적 추론'이었다. 또한 정승옥 강원대 명예교수는 논문 '루소에 있어서의 자연과 역사의 문제'에서 가상적 추론이 단순 상상이 아님을 밝힌다. 정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루소가 가상적 추론으로 보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세력이 막강하던 기독교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루소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으로 선천적인 불평등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 안에서의 상호 간의 약속으로 성립하는 도덕적·정치적 불평등이다. 두 가지 불평등 중에 정치적 불평등만이 인간 자신이 만든 인위적인 산물이기에 진짜 불평등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이런 종류의 불평등은 자연상태의 인간에게는 없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미개인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행복하다. 루소는 미개인의 적은 연약함, 노화를 포함한 병뿐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병을 예로 든다. 현대인이 태곳적 인간보다 더 건강한가? 루소의 긴 항변을 인용해 본다.

"나는 의술을 정성 들여 연마하고 있는 지역보다 그것을 소홀히 다루고 있는 지역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확실한 견해가 있는가 묻고 싶다. 의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법보다 우리가 더 많은 병에 걸려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활에서의 극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것, (중략)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대부분이 우리 자신의 탓이며 따라서 우리가 자연이 명령한 소박하고 일정하며 고독한 생활양식을 간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고약한 증거들이다."

루소의 주장이 황당한가?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런 주장은 어떠한가? 그는 농경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사람의 수는 더 적었어도 신석기 시대의 사람보다 신장이 평균 15센티미터 정도 더 컸고 뼈도 더 두꺼우며 골밀도 또한 높았다. 재레드는 생리학적으로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화했다고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류학자 마샬 살린스도 오랜 현장 연구를 통해 수렵채취 경제에서 살던 초기 인류가 못 살았으리라는 것은 오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늘어난 것과 삶의 질은 정확히 비례하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 20년간 북한의 인구는 약 200만 명이 늘어났다. 북한이 살기 좋았던 것인가?

루소가 미개인의 건강함과 문명인의 비참함을 비교한 것 자체가 철학·사상적 도발이다. 루소는 왜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과 모순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불평등을 구체적 사례 하나하나에 개입해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루소의 목표가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때 누군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라고 하면 논쟁은 끝난다. 루소가 의도하는 바는 이것이다. 루소의 작업이 300년 전이나 통할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현시대의 탁월한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적 작업도 루소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어 평등할 것을 주장하고 고진은 인간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평등 본능인 '억압된 것의 회귀'에 기대어 평등을 말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태초의 인간은 '고립된 인간'이었다. 이 시기 인간의 유일한 관심은 생존본능인 자기애였다. 이 시기를 거쳐 인간은 야만인의 단계로 들어선다. 낚싯줄을 만들어 고기를 낚고 활로 동물을 사냥한다. 관계에 대한 욕구도 커졌다. 일시적으로 자유로운 방식의 협동이 행해졌다. 야만인은 문명적 진화를 거듭해 미개인으로 진입한다. 돌도끼와 움집을 만들며 가부장적인 가족을 형성한다. 생존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문명이었고 삶은 순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순해지고 관계가 확대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라고 루소는 말한다.

도구는 삶을 풍요롭게 했고 인간 사이의 유대도 꽃피던 시기였다. 미개인 시대 전기의 모습이었다. 이때를 루소는 "원시상태의 무위와 우리 이기심의 극성스러운 활동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인간 기능 발달의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라고 말한다. 태초의 고립된 인간이 살아가던 자연상태 이후 다시 좋았던 제2의 자연상태였다. 공동생활은 이루어지지만,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가 엄격하진 않았던 이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평화롭고 목가적인 미개인'을 말하는 루소의 주장에 강력히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다. '원시전쟁' 저자 로렌스 H. 킬리는 현장에서 얻은 연구를 토대로 원시시대는 잔혹한 전쟁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대에 남아 있는 원시 부족의 사례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뉴기니의 두굼 다니(Dugum Dani) 부족은 약 5개월 보름에 걸쳐 일곱 번의 전면전과 아홉 번의 습격을 감행한 것이 관찰되었다. 남아메리카의 야노마뫼 부족의 어느 마을은 15개월 동안 무려 스물다섯 차례의 습격을 받았다. 이들의 전쟁을 관찰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전쟁은, 결국 자원 확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킬리만이 아니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또 다른 학자도 있다. <고결한 야만인>(강주헌 옮김, 생각의힘 펴냄)을 쓴 나폴리언 섀그넌도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개사회는 평화롭지 않았다는 킬리와 섀그넌의 연구 때문에 루소의 이론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치 않다. 고봉만 충북대 교수의 논문 '레비스트로스의 루소 읽기'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학자들이 찾았다고 생각한 남미지역 밀림의 미개인들은 실제적인 미개인들이 아니었다. 고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 지역에 대한 관찰과 항공사진들을 통해 사람들은 예전에 개간되고 경작됐던 공간들을 숲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가 1950년대에 이야기했던 당시의 남비콰라 부족은 원시인들이 아니라 퇴화된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루소에 반박하는 주장들의 증거로 제시되는 많은 사례가 루소가 말한 시대 이후의 것이다. 평화로운 시대를 지나 폭력적인 시대의 사회의 유산을 보고 원시사회가 폭력적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판단이다.

갈등과 폭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인간은 고립된 자연인에서 출발해 야만시대, 미개인시대로 진입한다. 미개인시대 전기를 지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야금술과 농업을 발견한다. 생산성의 발달을 가져온 두 발명으로 인해 인간 사이의 평등한 관계는 결정적으로 변화되었다. 루소는 야금술과 농업이 몰고 온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토지의 점유는 곧 토지의 소유권으로 변한다. 또한 야금술은 인간사회에서 분업을 더욱 심화시킨다. 경작 대신 철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몫까지 밀을 생산해야 했다.

농업이 도입되면서 불평등이 증가한다. 루소는 이런 상태를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했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노동을 더 교묘히 이용했으며 재간이 있는 사람은 노동을 절감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고안해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벌었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먹고살았다. 이리하여 자연적 불평등이 새로운 원인의 결합에 따른 불평등과 더불어 조금씩 전개되었다."

소유권의 도입으로 인간의 이기심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루소는 소유권의 등장에 대해 혹독히 비난한다. "경쟁과 대항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이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숨겨진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소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소유권의 등장으로 인류는 드디어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고 무질서가 초래할 위험에 대해 경고한 홉스는 사회발달단계에서 바로 이 지점을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루소 역시 홉스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루소는 이런 사회를 "부득이 먹고살 것을 부자에게서 얻거나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 각자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묘사한다. 루소는 홉스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하는 사회가 원초적 공간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많이 진행된 사회라고 홉스의 오류를 지적한다.

불평등에 이어 무질서가 뒤따라온다. "이렇게 해서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궁핍한 자가 그의 힘이나 욕구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그들이 볼 때 소유의 권리와 동등한 권리-로 생각함에 따라 평등은 깨지고 뒤이어 가장 끔찍한 무질서가 초래되었다."

무질서가 일으키는 공포감조차 부자들은 이용했다.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은 부자와 지배계급에 의해 증폭된다. "부자들은 절박한 필요에 따라 가장 교묘한 계획을 생각해냈다." 부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만 민중에게는 불리한 제도를 도입하자고 백성들을 꼬드긴다. 불평등 사회에서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며 각자에게 소유를 보장해주기 위해 단결하자. 정의와 평화를 위해 단결하자. 우리의 힘을 하나의 최고 권력에 집중하자.' 이렇게 부자들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인민은 권력의 노예가 된다.

자연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래 모습과 본성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는 루소의 의도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황당한 주장을 한 것으로 안다. 루소는 그의 글 어디에서도 원시적 자연상태로 돌아가자고 말한 적이 없다. 또한 과거의 인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보지 않았다. 루소의 본심에 대해 칸트는 "루소가 원한 것은, 인간이 다시 자연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처한 단계에서 자연상태를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헤겔 연구의 대표적 연구자 나종석 연세대 교수는 "근대의 정치이론은 근본적으로 계약이론적"이라며 사회계약론의 창시자는 홉스라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회계약론자인 루소는 홉스적 인간이해는 그릇된 것이라며 딴지를 건다. 성악설과 무질서가 결합된 홉스의 생각은 결국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리바이어던만이 해결책이 된다. '본원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구성되어야 할 인간 사회의 청사진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사회계약론의 주창자인 두 사람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는 확연히 갈린다.

루소는 홉스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홉스)는 미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한 노력 속에, 그 자체가 사회의 산물이며 법률 제정을 필요하게 만든 수많은 정념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까닭 없이 넣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다." 루소가 지적하는 홉스의 오류는 사람들을 갈등으로 몰아넣는 과도한 욕망은 자연적 욕구가 아니라 사회가 구성된 후 새롭게 증폭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루소는 홉스가 말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망은 미개인의 욕구가 아니라 근대인의 욕망을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본다. 욕망이 강렬하기에 갈등도 처절해진다. 욕망이 아닌 욕구가 되면 갈등은 낮은 수위로 완화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로하자면, 욕망은 분명히 한 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젊은 시절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살았는데 그때 무척 특이한 경험을 했다. 뉴질랜드에 살다 한국에 돌아오는 즉시 정념들이 꿈틀대며 활동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로 가면 정념은 다시 잠잠해졌다. 필자 몸 안의 정념은 같건만, 필자가 느끼는 강도는 확실히 달랐다. 사회에 따라 정념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누그러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루소가 정확했던 것이다.

루소의 주장은 매력적이다. 지금 비록 이렇게 살지만 원래의 우리는 다른 모습이었다. 솔깃해지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울림이 있다. 루소적 영향은 2011년 출간되어 학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김유동 경상대 교수의 <충적세문명>(길 펴냄)까지 연결된다. 지난 1만 년 역사를 천착한 보기 드문 역저이지만, 산업사회의 도래를 문명적 퇴보로 평가하면서 김 교수는 루소와 마찬가지로 고대로 향한다.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책의 기저에 루소주의가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루소는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천재다움'에 참으로 감탄했다. 루소의 책에는 에리히 프롬의 사회적 성격,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애담 스미스의 연민, 지배계급의 거짓 선전인 이데올로기, 언어 발달 기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로서의 종교 등 후대에 중요하게 된 많은 개념들이 맹아적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제네바공화국에 바치는 헌사'에 나오는 지정학적 통찰은 해퍼드 매킨더도 울고 갈 수준이다.

루소의 주장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루소 본인은 역사의 진행이 '우연'이라고 주장하지만 책 속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을 이미 밝히고 있다. 루소는 "인간은 안락의 추구가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력임을 경험으로 배웠다"고 적고 있다. 인간의 '안락 추구'가 가장 중요한 역사의 추동력인 것이다. 역사의 전개는 결국 선택압이 작용한 결과다. 대부분의 사회가 원시시대로부터 출발해 비슷한 단계에 도달했다면 이 역시 '안락'이 역사의 최종 심급에서 선택압으로 작용한 덕분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안락 추구'를 가장 중요시하는 인간이 노력한 결과, 인간의 '안락'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제와 결과가 전도되는 지점이다. 루소를 읽으면서 이 점이 매우 아쉬웠다.

자연상태를 동경한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한가한 지식인의 몽상으로 치부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회계약론까지 포함한 루소로부터 비(非)마르크스적 혁명의 전망을 읽어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로서는 '루소는 몽상이기에는 너무나 정치(精緻)하고, 혁명적 설계이기에는 너무나 몽상적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18세기가 허용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계까지 자신의 사고를 밀고 나갔다. 역사의 동인은 '안락'이지만, 루소의 동인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루소가 이 책을 왜 썼는지, 루소가 어째서 위험스러운 인물이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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