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유라시아, 미국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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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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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 발제를 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선행 조건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없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이 궁극적인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최 명예교수의 글에 대한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의 토론문을 싣는다.

1. 최원식의 “남북연합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논지가 가진 가치

최원식 선생의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가 지향하는 논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그 동의의 강도도 높다. 그의 논지가 다다르고자 하는 지점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보자는 것이다.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의 글 바로가기 : 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남과 북,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명사적 맥락은 당연하게도 일차적으로 동아시아이며 여기서 출발하는 세계사적 위치와 역할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전쟁과 식민지, 패권체제가 지배해온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유형의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4가지 지점이 그의 글 속에서 주목되고 있다. 

첫째는 한반도 문제와 동아시아 문제가 서로 얽혀 돌아가는 “연동(coupling)체제”라는 점, 둘째는 남북연합이라는 설정이 물리적 통일체제의 중간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반패권적인 “분단 해소형 중형국가”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 셋째로는 동아시아의 범주를 포괄적으로 재 확정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시민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넷째로는 아시아적 관점을 근거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결론은 때에 따라 멀건 가깝건 상대를 향한 ‘공(攻)’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을 해체”하고, “지금 이곳의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동아시아적이면서 세계적 호소력을 행사할 사상과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지침은 소국주의를 토대로 전방위적 교린 관계를 일궈나가는 “유원능이(柔遠能邇)”의 원칙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가 정리한 대로 “부국강병을 기초로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으로 질주한 천하대란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원교근공에 반대하는 유원능이가 평천하(平天下)의 원리 즉 평화사상의 심법(心法)으로 제출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남과 북의 연합체제가 확장된 개념의 아시아적 관점을 가지고 반 패권적 공생/평화 체제를 동아시아에서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세계사를 파악하는 시선이 “지구적 연계체제(transnational linkage)”라는 점에서 타당하고, 종국에는 제국주의 지배담론이 된 서구적 틀에서 벗어난 아시아적 경험세계를 근거로 하는 관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시민연대의 기초를 강조하고 있어 지역공동체 EU의 현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그의 논의가 지향하고 있는 점에 대해 이론(異論)을 달 이유는 없다. 그런 까닭에 이 토론문은 그의 핵심논지에 대한 비판보다는 논의가 보다 확장, 심화되었으면 한다는 점에서 보론적 성격이 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보론적 확장

(1) 동아시아/유라시아 체제에 대한 이해

최원식의 동아시아 개념에는 동남아시아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구도를 확장하는 진전을 보인다. 

그런데 중국 하나만 놓고 봐도 중국을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의 개념에 한정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중국은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내륙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를 포괄한 유라시아 체제 전반에 걸친 지리적 경계를 지녔다. 내부적으로도 신장지역과 티베트, 내몽골 그리고 과거 만주지역을 통괄하는 복잡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북한은 중국만이 아니라 두만강을 경계로 과거 만주 그리고 러시아의 동북지역과 연계되어 있다. 동남아시아를 뺀 동북아시아의 동아시아체제만 보더라도 한-중-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범주적 확장성이 내면화되어있다. 

유라시아 체제에 대한 이해는 고대 문명사의 실크로드로부터 시작해서 몽골의 유라시아 벨트만이 아니라, 유목기마와 정주문명의 관계에 대한 문명사적 접근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설정하는 동아시아는 이러한 유라시아 체제 전반의 변동과 직결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유라시아 체제의 근대적 변화의 과정은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해양 교역권의 변화와도 맞물려 돌아간다. 종교적 단위로 보면 이슬람의 최대인구가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이 지역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가 더욱 깊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동아시아의 개념은 이런 관점에서 수정 보완 내지 기준자체의 점검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러시아의 요소가 직접적으로는 빠져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와 다른 지점이 있긴 하나,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영국과 러시아의 유라시아를 근거로 만들어진 대치전선은 이 지역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단지 동남아시아를 포괄한다고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유라시아 체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해 들어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 유럽이 단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문명사적 개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동아시아 역시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유라시아 체제의 전체적 연동구조를 통해 이해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2) 패권체제에 대한 극복문제

최원식 선생의 글에서 미국의 존재를 주목하는 대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번에 각별히 확인한 바는 한반도가 비분쟁 상태로 변환하는 것에 비우호적인 미국 주류의 민낯이다.....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함께 불화할 때 미국의 위상은 두드러진다.” 그런데 미국의 위상은 이렇게 특정한 국면에서 그 위상이 드러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것일까?

인용된 김동춘의 글 한 대목은 “냉전은 식민지배의 연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보다 강조되고 확장된 접근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냉전은 식민지배의 연장이면서도 매우 새로운 방식의 식민체제이자 미국이 요구하는 세계 정치경제적 요구와 그대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냉전은 미국과 구 소련간의 세계적 대치전선을 구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 패권체제의 주도세력 사이에는 냉전(Cold War)이라도 냉전체제로 인해 제3세계로 분류된 지역은 열전(Hot War)을 치른 역사였다. 그것은 한국전이나 베트남전과 같은 전면전도 있었고, 중남미처럼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fare)을 겪은 지역도 있다. 냉전체제 아래 열전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명백하게 식민지해방전쟁이었고 중남미의 저강도 전쟁은 미국에 의한 제국주의 체제 유지의 군사적 방편이었다. 이에 대한 저항은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식민지 해방투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이 식민지 해방전쟁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남과 북이 단연코 다르다. 그리고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국전쟁을 그렇게 파악해 들어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식민지 해방보다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쪽의 한국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을 전후(戰後)를 기점으로 파악해 들어갈 때에는 다른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생겨난다. 논의의 정치적 위험성을 전제로 하고 말하자면, 한국전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주권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남쪽이 미국의 보다 강력한 관할체제로 흡수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는 일종의 “후기 식민지 체제(post-colonial domination)”의 성격을 갖게 된다. 

군사적 주권의 상실은 그 토대이고 바로 얼마 전 남북 철도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국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은 그러한 주권상실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문제다. 자신의 영토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주권행사를 하지 못하는 국가체제는 유형적으로 식민지체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한 이후 미국의 지배구조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정도가 아니라 군사주의와 대자본의 동맹이 국가에 의해 매개된 방식(National Security State Corporate Complex/NSSCC)이다. 냉전체제가 한반도에서 여전히 해체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이러한 식민지배 구조의 온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종전선언과 남북의 연합/공동외교는 이러한 식민지배질서의 일정한/점진적 해체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가 과거 반제와 반 패권주의를 표방한 반둥체제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냉전과 식민지배의 구조가 결합된 현실을 돌파하는 것은 동남아시아와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데도 긴요하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전쟁참여에 대한 사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도 있지만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또한 매우 막중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남북 연합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구상, 설계하는데 미국을 배제시킬 수도 없고 장차도 그럴 까닭이 없지만 우리와 미국의 관계가 이런 상태로 지속된 채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의 미래 또는 유라시아와의 관계 확대는 “식민지배의 보이지 않는 확장”이 될 수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질서를 어떻게 해체하고 남과 북의 독자적이며 자주적 미래설계의 토대를 만들 것인가는 지금의 현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패권체제 지배력을 약화시켜나가는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한-중-일 동북아시아 역사 해석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만으로 한정해서 생각해 볼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난관에 봉착하는 역사해석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이는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기초를 바로 세우는 데 중대한 장애다. 동아시아 근대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고통 그리고 패권체제의 문제는 과거로 마무리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시민연대를 바탕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동아시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과제가 된다.

일본에서 공부한 중국의 정치학자 쑨거가 동아시아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의 법학자이면서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에 대해 비판적 논쟁을 벌여온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가 갈등과 대립을 넘는 한-중-일 역사의식에 대한 제언을 하는 모습들은 모두 동아시아 역사의식과 직결된 현실이다. 한-중-일 간의 역사해석이 갖는 공통의 지점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으나 이는 현실에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내부로 들어가면, 앞서 언급했듯이 몽골, 만주, 신장, 티베트 그리고 타이완까지 합쳐 논의할 필요가 있는 복잡성 역시 존재한다. 한족(漢族)중심주의에 대한 역사해석의 반격이 엄연히 있다. 

이렇게까지 확대되어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령 동북아시아 3국의 인민들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태평양 전쟁의 종결을 정리한 동경재판에 대한 논의가 한-중-일 사이에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연대는 매우 난이도 높은 작업이 된다. 패도(覇道)를 극복하려는 “유원능이(柔遠能邇)”는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과 성찰 그리고 시민적 공유가 동반되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다.

3. 결론

최원식 선생의 남북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논의가 당위로서 바람직하나, 이것이 구체적 현실성을 가지려면 첫째, 유라시아 체제의 맥락, 둘째 냉전과 식민지배를 결합시킨 미국의 패권체제의 해체, 셋째, 역사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통의 축적이 긴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모두 사실상 장기적 과제이나, 매일 급속하게 변모하는 현실까지 지속적으로 담아내면서 진행하는 논의가 된다면 학문적 긴장과 현실적 적합성 그리고 시민적 실행력을 길러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기대해본다. 좋은 논제를 주신 최원식 선생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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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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