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판부는 삼권분립과 충돌하지 않는다
특별재판부는 삼권분립과 충돌하지 않는다
[최창렬 칼럼] 민주주의의 보루 포기한 사법농단 사건
특별재판부는 삼권분립과 충돌하지 않는다
1975년 4월에 자행된 사법살인은 독재정권의 사법부가 저지른 사법만행이었다. 이른바 '인민혁명당 사건'을 날조하여 무고한 국민을 판결 18시간 만에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엄혹한 시절에도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사법은 철저히 부정한 권력의 호위무사로 전락했다.

이른바 '사법농단'의 혐의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다. 법관사찰, 재판개입, 재판거래 등을 비롯한 30개의 혐의로 구속된 임 전 차장의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등 전직 고위 대법관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 있을지, 만약 수사가 확대될 때 법원은 전 고위직 법관들의 수사에 압수수색과 구속 영장 발부 등 얼마나 협조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단죄하기 위한 재판부 구성을 둘러싸고 법조계 내부와 여야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특별재판부 구성의 위헌 여부와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핵심이다.  사법적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된 전·현직 판사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3년 대법원 재상고 이후 5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소송을 제기했던 피해자 중 한 명만 생존해서 결과를 지켜봤다. 법관 해외파견을 위해서 청와대와 거래하여 재판을 연기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이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이듬해 서울고법은 '원고들에게 피고는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피고측의 재상고 이후 대법원은 이유 없이 심리를 미뤘다. 박근혜 청와대가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거론하며,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 했고, 외교부·법무부 등과 대법원 수뇌부가 확정판결을 미뤄온 것이다. 이 사건은 사법농단의 대표적 사례다. 이 외에도 무수한 재판개입 정황들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주도한 재판거래의 전모가 밝혀져야 하는 이유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특히 대통령제에서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삼권분립은 중요한 권력운용 원리다. 내각제에서는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는 의회중심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삼권분립은 더욱 강조된다. 삼권분립의 이론적 기초는 몽테스키외의 저서인 '법의 정신'에서 기원한다.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종종 다수에 의한 폭정(tyranny of majority)의 우려를 낳는다. 이 원리가 미국 대통령제에 준용된 것이 삼권분립이다. 
 
미국 건국 때 연방제가 채택된 이유는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였다. 의회 견제의 차원에서 미국의 사법부가 전통적으로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삼권분립은 입법·행정·사법의 세 부서 중 한 부서가 다른 두 부서로부터 견제받고, 다른 두 부서를 견제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출이라는 국민 위임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국민에게 수직적 의미의 책임을 진다. 사법부는 선출 권력이 아니지만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에 국회 동의가 전제되기 때문에 나름의 간접적인 수직적 책임을 진다. 

그러나 사법부 판결은 국민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대표성과 책임성의 고리에서 벗어나 있는 지점이며, 헌법에 명기된 국민주권주의와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헌법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사법권 역시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최소정의적 접근에 따른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할 정도의 도덕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는가. 박근혜 정권의 양승태 대법원은 군사독재 시대의 사법부와 얼마나 달랐나. 헌법 101조에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되어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법원 밖에 새로운 재판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헌법 101조에 위배되지 않는다. 또한 사법농단은 헌법 103조에 어긋난 일이었다. 이러한 논리적 인과관계로 볼 때 특별재판부 설치는 삼권분립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사법부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사법농단은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국민의 믿음을 배신한 행위다. 박근혜 국정농단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범법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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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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