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노란조끼, 단순 폭동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봉기
佛 노란조끼, 단순 폭동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봉기
[분석] 프랑스 정부 '백기투항'....'68혁명' 넘어서나?...서구에 확산 조짐도
2018.12.06 16:21:44
佛 노란조끼, 단순 폭동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봉기

"유류세 인상 철회는 없을 것"(2일)
"유류세 인상 6개월 유예"(4일)
"유류세 인상 전면 폐지"(5일)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발하며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에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한달도 못돼 '백기투항'했다. 그것도 불과 3일 사이에 입장이 180도로 달라지는 '권위 상실' 정부의 모습까지 드러냈다.

당초 프랑스 정부는 지난 1년간 경유 유류세를 23%, 일반 가솔린 유류세를 15% 올린 상태에서 내년 1월1일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유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차량 의존도가 높은 도시 외곽·농촌 지역 거주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적 친기업 노선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거센 피플파워에 굴복하고, 지지율이 23%까지 떨어진 상황을 보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랍의 봄'처럼 노란조끼 시위가 국경을 넘어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미 벨기에와 네덜란드 등으로 비슷한 시위가 번져가고 있다.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가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 철회 등 굴복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AP=연합


 "경제 문제 집중, 정치세력 연계없이 놀라운 응집력"


일각에서는 노란조끼 시위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노선에 대해 마침내 민중의 힘이 결집돼 정부를 굴복시킨 이례적인 사건으로 주목하고 있다. 2011년 미국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1%에 대한 99%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구심점을 잃고 흐지부지된 것과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노란조끼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처럼 특정한 정치세력과 연계하지도 않은 민중의 자발적 봉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굴복시키고도 앞으로도 계속 시위를 예고할 정도로 견고한 응집력을 보이는 현상을 분석했다.

신문은 "노란조끼 시위대는 인종이나 이민 등의 문제를 거론하지도 않고, 상징적인 지도자에 이끌리는 것도 아니다"면서 "시위대는 세금 인하, 임금 인상, 재정적 불안 해소, 삶의 질 개선 등 경제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신문은 노란조끼 시위대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한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감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 노조, 정부기관들에 대해 거부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노란조끼 시위대는 사회당, 극우정당 등 어떤 정치세력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쫓아냈다.

노란조끼 시위대의 주축세력이 중산층이 아니라는 점도 이례적이다. 지난 주말 파리에서는 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 주변 상점이 약탈당하고 다수 차량이 불태워졌으며, 파리 개선문에 있는 상징적인 조각상까지 파손할 정도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 과정에서 지금까지 모두 4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노란조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후 개선문 안쪽의 마리안 조각상의 얼굴 부분이 시위대에 의해 파손된 모습. 훼손된 마리안 조각상은 개선문 외벽의 부조상에서 본뜬 것으로, 마리안이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의 정신을 표상하는 그 상징적 의미로 인해 프랑스인들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AP=연합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 붕괴 상실감 반영"

 

이처럼 격렬한 노란조끼 시위 참가자 중 파리 거주자는 5500명이었던 반면, 파리 밖에서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은 16만3000명으로 훨씬 많았다.

파리 교외와 소도시 저소득층 등 대도시 주변에 사는 서민들이 유류세 문제로 분노를 폭발시킨 배경에는 "마크롱 정부가 부자들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부자들을 위해 세금이 쓰이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5일 집계한 '2017년 예비조사치'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 201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 비중이 46.2%로 36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한국은 GDP 대비 26.9%로 OECD 전체 평균치 34.2%보다 훨씬 낮아 32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 집권 이후 프랑스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평균보다 훨씬 떨어지고, 삶의 질도 하락했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게다가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5월 총선을 앞두고 부유세가 투자를 저해하고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며 기존의 부유세(ISF)를 부동산자산세(IFI)로 축소, 개편했다. 부유세가 부동산자산세로 축소되면서 부유층이 소유한 요트, 슈퍼카 등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자 프랑스의 많은 서민층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세금정책의 정당성에 큰 의문을 갖게 됐다.

노란조끼 시위에 굴복한 마크롱 정부는 이제 와서 "부동산 자산과 고급 미술품 거래 등에 한정한 부유세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노란조끼 시위대는 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너무 늦게 나왔으며, 내용도 미흡하다"며 8일 4차 주말 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노란조끼 시위대의 대변인 토니 루셀은 "유류세 문제는 시작일 뿐"이라면서 "다른 모든 종류의 세금, 임금, 최저임금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특단의 대책을 정부가 내놓을 때까지" 시위가 중단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

노란조끼 시위대가 3주만에 정부에 완승을 거두자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68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1968년 자본주의적 권위주의 질서에 반발한 68혁명이 전세계적인 '의식혁명'의 변화를 촉발시켰으나 자본주의 질서는 더욱 공고화된 반면, '노란조끼'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민중봉기'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도니미크 레이니에는 "프랑스 정당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위가 일어났다"면서 "시스템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하고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있는 엔리코 레타는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영국 등지에서 마찬가지의 공포와 분노, 불안이 표출되고 있다"면서 "이들 나라에서는 계층 붕괴 현상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레타 교수는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지위에 있던 나라들"이라면서 "세계의 중심에서 평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리는 것에 익숙했던 그들이 이제는 모든 것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커다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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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입사해 주로 경제와 국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왔습니다. 현재 기획1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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