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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평화'와 '상생'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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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평화'와 '상생'을 꿈꾸다

[기고] 북중 접경지역을 가다①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은 공식 출범(2.25)을 앞두고 2019년 1월 9일부터 13일까지 4박 5일 동안 훈춘(두만강)에서 단둥(압록강)까지 북중 접경지역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답사에 참여한 이들은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장을 맡은 조성찬 박사와, 김해순 동북아- 유럽통합연구센터장(전 독일 괴테대학 한국학 학과장), 강도현 대외협력팀장 및 이원정 교육지원팀장 네 사람입니다. '동북아의 평화와 상생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편안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필자주)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보았던 대한민국 지도는 저 멀리 북한의 끝자락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명한 백두산은 어린 눈에도 금방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북한과 러시아 및 중국이 만나는 동해쪽 접경지역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금단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그곳은 지도의 끝이었다. 그래서 일찍이 이곳은 갈 수 없는 땅이라는 자기 선긋기를 해 버렸다. 어릴 적 시골 아이의 생각이 그랬다.


올 해 1월에 그 지구의 끝자락을 다시 살펴보고 왔다. 어린 시절 변방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신영복 선생님 표현대로 하면, 변화와 창조 및 생명이 꿈틀대는 공간이었다. '변방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양면성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선 동북아의 평화와, 상호 경제협력을 통한 상생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신영복 선생님은 아예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갈파하셨다. 이러한 점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변방을 찾아서>(2012)를 통해 나눈 다음의 통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변방 의식은 세계와 주체에 대한 통찰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방 의식은 우리가 갖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脫走) 그 자체이다. 변방성 없이는 성찰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세상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도 그러하고, 집단이든 지역이든 국가나 문명의 경우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를 조감하고 성찰하는 동안에만, 스스로 새로워지고 있는 동안에만 생명을 읽지 않는다. 변화와 소통이 곧 생명의 모습이다. (26-27쪽)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 담론'은 북중은 물론 북중러 접경지역의 지정학과 변방(경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핵심에 새로운 공존 방식에 대한 탐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조선 후기, 일제 시대,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다양한 역사적 배경에서 한민족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오가며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접경지역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상상을 해 보자.

전체 일정


첫째날에는 오전 11시 경에 연길공항에 도착한 후 연변대학을 방문하여 역사학과 교수님과 식사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는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룡정시 명동촌을 둘러보고 다시 연길시로 돌아와 북한식당을 방문했다. 둘째날에는 두만강 접경도시인 도문과 북측 남양을 둘러본 후, 북한의 원정리로 넘어가는 권하세관 및 북중러가 만나는 훈춘시 방천을 방문했다. 셋째날에는 연길에서 5시간 넘게 타고 고속기차를 타고 단둥으로 이동한 후, 압록강단교 주변을 둘러보았다. 넷째날에는 압록강 맞은편의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 단둥 외곽에 위치한 신압록강대교, 황금평과 단둥 신시가지 및 그 내부에 있는 호시무역구를 방문했다. 마지막 날에는 고속기차로 단둥에서 대련으로 이동한 후 지하철을 갈아타고 대련공항에 가서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체 계획인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대학 연변대 그리고 관광지가 된 명동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두 시간 가량 타고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동포들이 터 잡고 삶을 어렵게 이어온 곳 연변,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면적 4만3474 제곱킬러미터로 남한 면적의 절반에 못 미치는 크기다. 2009년 기준 인구수는 217만9000명이다. 연변자치주는 19세기 중반부터 북한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52년 9월 3일에 조선민족 자치구(성급 행정구역)가 설치되었는데, 1955년에 조선족 비율이 2%에 불과한 둔화 현이 편입되면서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조선족 현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2030년 경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길시, 룡정시, 도문시를 하나의 시로 통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주었다. 이는 이미 연변 조선족 수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나온 이야기다.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주 설립 요건이 '소수민족 비율이 최소 30% 이상'이어야 한다.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 비율이 32%였다. 이튿날에 방문한 훈춘시는 이미 연변조선족 자치주 관할이 아닌 길림성 직속 관할로 변경되었다. 백두산이 있는 안도현도 마찬가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미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라는 마음으로 보면 방문한 곳들이 더 의미있게 보인다.

연길공항에서 연변대학으로 이동하여 캠퍼스에 들어가니 돌에 새겨진 교가(아래 사진)가 본관 앞에 있었다. 그 내용을 보니 학생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더욱 깃들고 경제적 활동무대가 되는데 중심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조성찬

연변대를 나와 차를 타고 룡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터를 방문했다. 지난번과 달리 중국 룡정시 정부가 관광구로 개발하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명동촌은 윤동주 말고도 송몽규, 문익환 등 뛰어난 인물이 배출된 곳이다. 명동촌의 정신적 지주는 김약연 목사다. 이곳 역사를 공부한 동행의 설명에 따르면, 김약연 목사가 명동촌 토지를 1/3은 개인 생계로, 1/3은 독립운동으로 그리고 나머지 1/3은 교육을 위한 부지로 구분하여 활용하였다. 복원된 생가 안으로 들어가니 윤동주의 시가 우리를 맞이한다. 윤동주의 삶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이곳에 오면 왠지 쓸쓸해진다. 그런데 윤동주의 마음도 그랬나보다.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2월 16일은 서거 74주기가 되는 날이다. 예정된 2월 기행에서는 직접 묘도 방문하여 추모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 조성찬

두만강 접경지역 관광합작구에서 '1구 3국 공동관리' 실험


북중러 접경지역인 훈춘시 방천에 가는 길에 도문시를 들렀다. 두만강 건너로 오른쪽에 북한의 남양이 보인다. 기차로 연결된 두 도시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행한 이는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에서 스케이트 대회를 하자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한국의 아이들과 중국 및 연변에 사는 조선족 동포, 그리고 북한의 아이들이 함께 스케이트 타는 날이 언제 올까? 아쉽게도 철조망이 있어서 두만강변으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강변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방천으로 이동했다.

ⓒ 조성찬

ⓒ 조성찬
방천으로 가는 길목에 이곳이 특별한 구역임을 알리는 알림판이 있었다. 알림판에는 중국훈춘국제합작시범구(中国浑春国际合作示范区)라고 씌여 있었다(왼쪽 사진). 간판은 이곳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관할권이 아닌 중국 중앙정부의 관할권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드디어 북중러 접경지역인 방천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도로 확장공사로 승차감이 좋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아래 왼쪽 사진). 도로만이 아니라 이미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도 새롭게 건설되었고(아래 오른쪽 사진), 앞으로 물류 비행장도 만들 계획이다. 방천에는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도 새롭게 조성해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었다(아래 하단 사진). 이런 다양한 사업이 가능한 이유는 우선 훈춘이 2012년에 '중국훈춘국제합작시범구'로 지정되었고, 두만강지역개발합작이 중국의 '일대일로 6개 구' 지역관광 일체화에 편입된 것을 계기로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가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요트 선착장은 이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현재 북중간 관광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러시아가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만강삼각주국제관광합작구에서는 '1개 구, 3개 나라 관리모델'을 실험하면서 '72시간 비자면제'를 추진하고 있었다. 즉 접경지역 세 나라가 공동 관광구역을 설정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모델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럽연합(UN)의 초기 출발점이었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와 유사한 성격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만약 그렇다면 아직 지역경제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동북아에서 '평화체제'와 '상생발전'이 동전의 양면처럼 작동하는 초기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는 의미부여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보다 자세한 연구과제로 남겨놓는다.


ⓒ조성찬

ⓒ조성찬

ⓒ조성찬
좌측 사진은 러시아 하산(사진에서 왼쪽)과 중국의 방천(사진에서 가운데) 및 북한의 두만강(사진에서 오른쪽)이 만나는 접경지역이다. 저 멀리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핵심인 두만강철도가 보인다. 그 너머에는 동해바다가 있다. 중국은 15키로미터만 더 가면 동해바다로 연결되는데 여기서 막힌 것이다. 왼쪽의 러시아 하산 쪽 어딘가에 이순신 장군이 근무하던 '녹둔도'가 있다.


(하나누리동북아연구원은 2월에도 북중접경지역 여행을 떠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다음의 안내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안내 바로 보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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