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선 인천시장의 쓸쓸한 몰락
최기선 인천시장의 쓸쓸한 몰락
정치입문 당시는 '청렴의 대명사'였으나ㆍㆍㆍ
2002.04.09 15:56:00
최기선 인천시장의 쓸쓸한 몰락
지난 93년부터 인천시를 책임맡고 있는 우리나라의 최장수 시장인 최기선 인천시장이 3억원의 수뢰 혐의로 10일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올해 들어서만 유종근 전북지사의 4억원 수뢰 혐의 구속, 문희갑 대구시장의 20여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 우근민 제주지사의 성추행 의혹 등에 이어 네번째로 터지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스캔들이다.

***대우로부터 용도변경해주고 3억원 수뢰 혐의**

대검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인천시 본청 및 송도신도시 개발의 핵심부서인 도시개발본부에 대해 일체의 서류를 모두 압수, 최 시장의 비리 혐의를 포착해 8일 최 시장에게 10일 검찰에 출두하라는 소환통고를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 시장의 혐의사실은 지난 97년 10월9일 대우그룹 본사 유치와 관련,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9의7 14만8천여평의 유원지부지를 상업용지로 용도변경을 추진하면서 3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대우그룹은 대우타운 조성을 위해 유원지 부지의 용도해제를 요청, 자연녹지 13만3천평을 준주거지(9만7천평)와 일반상업지역(3만평)으로 변경키로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받아냈다. 그러나 결정고시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IMF사태가 발발하면서 사업추진이 유보됐다가 99년 대우 부도로 사실상 백지화됐다. 그러다가 올 들어 대검이 대우그룹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비리 수사를 하던 중 최 시장의 수뢰 의혹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최 시장은 자신에게 좁혀드는 법망을 이미 오래 전에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일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93년부터 10년째 인천시장으로 재임중인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천국제공항 개항, 인천지하철 개통, 송도신도시 1백27억달러 외자유치 등의 성과를 스스로 내세우며 재출마 의욕을 붙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송도 신도시의 외자유치는 시장 재출마 가능성을 높여준 임기 막바지의 호재였다. 최 시장은 불출마 선언 전에 민주당에 입당해서 합의추대 형식으로 시장 재출마를 고려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던 그가 급작스레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주위에서 놀랄 수밖에. 이에 주위에서는 불출마로 자신에게 좁혀오는 법망을 피한 뒤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는 불출마를 선언하고도 정계은퇴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었다. 그는 "중앙무대에서의 정치력도 필요하고, 좀 더 넓은 세계에서 제 역할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으로 볼때 시장 임기를 마친 뒤 인천을 발판으로 국회진출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적 타협을 거부했고, 그 결과 이제 최 시장의 정치 생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한때는 정치권 청렴인사의 대명사**

최 시장의 몰락은 그가 한때 민주화운동의 앞장에 섰었고, 정치권 내에서 가장 깨끗한 인물중 하나로 꼽혔던 인사였다는 점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안타깝다는 탄식을 낳게 하고 있다.

최 시장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야당총재 시절부터 그의 뒤를 따라다닌 명실상부한 YS맨이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79년 신민당 총재 공보비서를 시작으로 그후 20여년간 YS의 충실한 그림자로서 YS와 영욕을 함께 나눴다.

84년에는 민추협 대변인을 맡아 85년 2.12 총선의 기적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고, 88년에는 부천 남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 성공했다. 그 해 김영삼 민주당총재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조차 못할 정도로 빈한하면서도 올곧은 정치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YS가 "최기선이는 제 밥벌이조차 스스로 못하는 위인"이라고 혀를 차며 비서들 가운데 유일하게 매달 월급을 챙겨줄 정도로 그는 부패와 거리가 멀었다. 88년 국회의원 출마때에는 요구르트 배달원이던 부인이 팔다남은 요구르트를 부천역전의 자그마한 선거사무실에 가져와 이것으로 손님접대를 할 정도였다.

이처럼 평소 YS의 믿음이 두터웠던 까닭에 그는 YS집권후인 93년 인천시장에 임명됐다. 그후 최시장은 95년 민선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고, IMF사태후인 98년에는 자민련 당적으로 나와 인천시장 3선에 성공했다.

정가에서는 최기선 시장이 97년말 대우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도 98년 선거와 무관치 않았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총알이 아쉬운 마당에 대우쪽에서 유혹의 미끼를 던지니 넘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최 시장은 재임기간중 부인이 자살하는 등 개인사적으로 적잖은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름대로 의욕적으로 시정을 펼쳐 비교적 무난한 자치단체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인천시장 4선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치권 입문 당시의 초심(初心)을 잃고 부패의 늪에 빠져듦으로써 끝내 쇠고랑을 차게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최 시장의 몰락은 80년대 민주화 정치권세력의 또하나의 초라한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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