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여, 벌써 히로시마 대공습의 악몽 잊었나"
"일본인이여, 벌써 히로시마 대공습의 악몽 잊었나"
[신간] 日평화운동가, '피해자의 시선'으로 팔루자 학살 봐야
2004.04.19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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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여, 벌써 히로시마 대공습의 악몽 잊었나"
강양구 기자
"팔루자에서는 지금 수백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인질의 목숨만 걱정하고 있으니.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을 텐데......"

이라크 팔루자에 미군의 대규모 융단폭격이 계속되는 와중에 한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민간인들이 인질로 잡히는 사태를 보면서, 한 중학교 교사가 한 말이다. 언제부턴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지적이다.

이번에 출간된 일본의 대표적인 반전ㆍ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가 2002년도에 펴냈고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전쟁인가 평화인가-'9월11일' 이후의 세계를 생각한다>(이규태ㆍ양현해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오다 마코토는 이 책에서 '가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선'으로 전쟁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은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개인의 체험에 기반을 둔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소설 <아메리카>, <히로시마>, <옥쇄(玉碎)> 등의 작가이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데도 앞장서온 오다 마코토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직후 한국을 방문해 그 부당함을 강하게 역설하기도 했다.(본지 2003년 5월12일자).

***"일본인이여, 1945년 8월14일을 기억하라"**

오다가 '피해자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면서 '평화주의'만이 인류가 지향할 길이라고 확신하게 된 데는 개인의 체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그가 13살 때인 1945년 6월15일과 8월14일 미군의 '히로시마 대공습'이 바로 그 사건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그 때, 미군은 6월15일에 B-29 폭격기 4백40대를 동원해 소이탄 3천1백57톤을, 일본의 항복을 하루 앞둔 8월14일에는 B-29 폭격기 8백대가 해군 연료창고가 있던 도쿠야마와 무기창고가 있던 오사카에 6천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 2번의 대공습 때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던 오다는 오사카 시내에서 직접 공습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특히 8월14일 공습 때는 1톤 폭탄이 오다의 집 바로 가까이에 떨어졌다. 그 폭탄이 좀더 가까운 곳에 떨어졌더라면 정원 앞에 판 조잡한 방공호에서 가족과 같이 있었던 오다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비록 오다는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난사(難死)'를 당했다. 히로시마 시민들은 폭음과 귀를 찢는 듯한 낙하음을 내며 낙하해오는 폭탄, 소이탄을 피해 "죽기 싫다", "죽기 싫다" 하면서 도망다니다 검게 타버리는 무의미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오다는 나중에 미국의 대학 도서관에서 6월15일 대공습 사진을 실은 <뉴욕타임스>를 보고 전쟁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과 '가해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1백20쪽이나 되는 두꺼운 '일요판' 신문이었던 당시 <뉴욕타임스>는 프로야구 사진, 백화점 광고, 여성의 속옷이나 패션 광고 속에 오사카를 막 공습하고 있는 B-29 폭격기가 찍은 그 사진을 싣고 있었다. 13살의 오다가 체험한 화염과 그 뒤에 남겨진 검게 탄 시체들을 보면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히로시마의 현실을 그 사진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다는 한 때 조선침략, 식민지 지배를 시작으로 '죽이고, 태우고, 빼앗는' 역사를 아시아에 전개했고, 그 대가로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고, 빼앗기는' 경험을 한 일본이 피해자 편이 아닌 가해자 편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함께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이라크 무장 세력이 일본을 비롯한 이라크 침공에 협력한 나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오다는 이미 전쟁 시작 전부터 '가해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지지할 때 닥쳐올 파국을 경고했던 셈이다.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이런 오다의 경험에 기반을 둔 주장은 이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의 경험과 공명하면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워드 진은 오다가 폭격을 당했던 바로 그 때 B-17 폭격기를 타고 독일, 프랑스, 헝가리, 체코 등을 폭격하고 다녔다. 하워드 진의 회고에 따르면, 독일 패전 3주 전에 참여한 프랑스 보르도에서 가까운 로와이안이라는 작은 마을에 대한 공습 작전은 그에게 깊은 상처로 각인됐다. 그 마을에는 1천명 정도의 독일 병사들이 독일군 주력부대로부터 이탈해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군은 1천3백대나 되는 폭격기로 대공습을 가해 독일 병사들과 인구 2만의 작은 마을 로와이안을 초토화시켰다. 하워드 진은 나중에 이 작전이 신형 살생도구인 네이팜탄의 실험과, 훈련된 군인들을 놀리지 않기 위해서 진행됐다고 지적한다.

이후 하워드 진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최일선에 서게 되며, 그는 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이 진행되던 북베트남의 하노이에 미군 인질을 인수하러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때 그는 바로 오다와 자신이 폭격한 로와이안 마을 주민들이 경험했던 그 공포를 하노이의 방공호에서 적나라하게 체험하게 된다. '살해하'는 측과 '살해당하는' 측의 공포를 동시에 맛본 하워드 진이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다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면 전쟁은 그 자체로 거부해야 할 '추악한' 것이며, 결코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다와 하워드 진이 간파한 이 진실은 수많은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증명되고 있다. 당장 미국은 2천5백명이 목숨을 잃은 9.11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보복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만 3천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민간인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당장 팔루자에서만 며칠 만에 수백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시민으로서 전쟁 반대에 앞장서자"**

오다는 책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일본과 세계 각국이 '평화주의'를 앞으로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다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주의'에 대해서 '국익'을 이유로 불가피하다고 또 이상주의라고 비판하지만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 사람들이 바로 체험으로써 '전쟁의 공포'를 이미 경험했음을 상기시킨다. '가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종의 개인과 공동체의 가장 절실한 생존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한 국가의 일원(국민)'이 아닌 '세계 공동체의 일원(시민)'으로서 '평화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그 때는 단지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고, 빼앗길' 뿐이다.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바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개인은 '시민'으로서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런 오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협조하고 유사법제를 통과시켰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익'의 이름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한 우리나라는 이제 '2차 파병'을 앞두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류는 전쟁을 금기(taboo)로 만들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2차 파병'을 앞둔 우리는 과연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강양구 기자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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