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에 홍콩 시위에 관해 수많은 기사가 넘쳐나지만 대부분 반중국(anti-China) 경향성을 띠고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을 표피적으로 다룰 뿐이다. 탓얀콩(Tat Yan Kong)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SOAS University of London) 비교정치개발학과 교수를 만나 홍콩 사태의 원인과 전개 과정과 향후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탓얀콩 교수는 홍콩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 비교 정치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선진 자본주의의 노동과 세계화, 사회적 대화, 미시-코포라티즘과 부패 문제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최근 들어 북한의 정치경제학과 북중 관계 연구에도 관여하고 있다.
- 홍콩 정부가 추진한 송환법은 악법인가
수정을 거친 개정안은 괜찮다고 본다. 제출된 개정안을 보면, 중국 정부가 송환을 요구하더라도 그 결정은 결국 홍콩 법원이 하게 된다. 홍콩 법원이 거부하면 중국으로의 송환은 안 된다. 문제는 관료 출신인 캐리 람 행정관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홍콩 연락사무소와 심도 있는 상의를 하지 않고 송환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홍콩 재계와 기업인들은 송환법 추진에 가장 크게 반발한 집단에 속한다. 재미난 것은 홍콩 주재 미국상공회의소도 송환법에 강하게 반대해왔다는 점이다.
- 시위대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식민지 시절부터 홍콩은 간첩들(spies)의 천국이었다. 영국 간첩, 중국 간첩, 대만 간첩, 미국 간첩 등이 외교관, 기자, 사업가, 종교인 행세를 하며 암약해왔다. 재미난 사실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인 1995년 영국 정부가 홍콩 경찰 조직에서 대간첩 활동을 하던 정보부(Special Branch)를 없애버렸다. 지금도 홍콩 정부는 대간첩 부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이 시위대에 '믿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의회가 통과시키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홍콩 민주화법'은 그 형태만 다를 뿐 이미 존재했다. 미국이 만든 홍콩 관련법 때문에 홍콩이 제재를 받게 되면 중국은 홍콩을 덜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홍콩에 '양제', 즉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허용하면서까지 분리하여 유지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될 것이다. 베이징의 홍콩 개입과 홍콩의 중국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결국 홍콩은 일국양제가 보장한 고도의 자율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홍콩의 이익에도 위배되지만 중국의 당면 이익에도 위배된다.
- 홍콩특별행정구의 수장인 행정관은 사실상 베이징의 꼭두각시가 아닌가
홍콩 기본법상 사실상 행정수반인 행정관은 권한이 굉장히 많다. 중국 본토의 지방정부 수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홍콩 행정관은 베이징 정치, 즉 중국 중앙의 권력자가 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정치적 야망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베이징의 이익을 고민하고 행정 집행에서 그걸 고려해야 하는 위치인 것은 맞다.
캐리 람 행정관은 시진핑을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연락사무소는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임명한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진핑이 직접 임명한 이들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캐리 람은 연락사무소와의 권력 관계에서 상당히 독립적이다. 이런 연유로 별다른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송환법을 밀어붙였고, 이게 민심 이반을 불러온 것이다. 행정가로서의 능력과 정치가로서의 능력은 다른데, 캐리 람은 아직도 '관료'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캐리 람의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보는 듯한데…
정치란 타협이다. 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시위가 격화되니까 갑자기 철회했다. 강하지도 않고 유연하지도 않은 것이다. 홍콩 정부의 내각 격인 행정회의(行政會議, Executive Council)는 행정관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데, 행정회의의 모든 주요관원(主要官員)은 행정관이 임명한다.
주요관원은 대부분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없어 행정관에게 제대로 된 정치적 자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정된 시기에는 관료적 능력이 돋보이지만, 위기가 오면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캐리 람 행정관이나 행정회의의 주요관원들 모두 정치적 능력과 정치가로서의 경험이 부족하다.
- 중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는 것인가
사실이 그렇다. 중국은 홍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국양제를 유지하려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일국양제가 무너지면 중국에도 이로울 게 없다. 홍콩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로 통하는 중국 경제와 금융의 창문(a window)이다. 군대가 개입하고 폭력 상황이 이어진다면 글로벌 금융 자본은 홍콩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런민비에 더불어 홍콩 달러라는 외환을 활용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글로벌 자본이 홍콩을 떠난다면 중국은 경제와 금융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 홍콩의 노동운동은 현 사태에 대한 입장이 어떤가
제1노총인 홍콩공회연합회(香港工會聯合會, HKFTU)는 재계와 연합하여 최저임금제 도입이나 노동권을 개선하는 데 반대한 전력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 안정을 통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크다. 물론 이들이 중국의 이익을 자신들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건 아니다. 베이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자기 조직과 회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입법회 안의 직능단체들이 대부분 이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반중국 성향의 노동운동도 있다. 홍콩직공회연맹(香港職工會聯盟, HKCTU)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노동자의 경제적 이슈(bread and butter)보다는 민주화 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런 점에서 홍콩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에 주목하는 유럽 노동운동에 비해 정치화(politicised)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입법회가 재계에 의해 장악되어 노동자를 위한 입법이 불가능한 제도적 연유와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주력 부대가 없는 조직적 한계가 그 배경이라 생각된다. 한국에는 현대자동차 같은 제조업 대기업에 기반한 주력 부대가 있지만, 홍콩에는 그런 세력이 없다. 홍콩의 노조 조직률은 25%로 한국보다 훨씬 높지만 대부분 서비스업이나 공공부문에 기반해 있으며, 경제 문제보다는 정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 홍콩에서 중국인들이 '기생충(parasite)'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과도한 것 아닌지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나 탈북자 혹은 조선족을 그렇게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탈북자나 조선족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탈북자나 조선족이 식당 아줌마나 건설 현장의 일용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현대나 삼성 같은 잘나가는 기업에서 일한다면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지금 홍콩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서방은 물론 중국에서 몰려든 '엘리트'들과 경쟁해야 한다. 특히 능력 있는 중국 출신자들의 노동시장 유입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하위에 있는 기피 직종에 '비한국인(Non-Koreans)'이 많다고 난리인데, 홍콩에서는 노동시장의 중상위에 있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 중국에서 온 교육 잘 받고 능력 있는 '비홍콩'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중산층-상류층이 외국에서 들어온 이주민과 경쟁하는 경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개방된 도시라는 특성으로 인해 홍콩의 노동시장에서는 중산층-상류층이 외국에서 들어온 중산층-상류층과 경쟁해야 한다. 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 중국의 사업가와 중산층이 대규모로 합세한 상황인 것이다.
- 홍콩의 사회경제적 문제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것으로 영국과 중국이 합의한 '일국양제' 원칙으로 인해 베이징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유럽이 영국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국의 복지도, 일자리도, 법률적 독립성도, 정치적 주권도 유럽연합 때문에 모두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홍콩으로 돌리면 홍콩은 영국인 것이고 중국은 유럽연합인 것이다. 부패한 중국인들이 부동산에 투자해서 주택 문제와 토지 부족이 야기된 것이고, 중국 관광객과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세금이 엉뚱한데 쓰이는 것이고, 중국인이 홍콩의 일자리와 심지어 대학교의 장학금까지 빼앗아가면서 홍콩의 생활 방식과 문화도 바꾸려 한다는 홍콩 민족주의(nationalism) 혹은 지방주의(localism)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 홍콩 시위의 미래는 어떻게 예측하나
정치적 타협이 있을 것으로 본다. 베이징이 취할 카드는 캐리 람의 사퇴다. 시위대 요구의 하나인 사과도 사퇴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중국이 제안했던 것을 좀 더 보완한 행정관 직선제가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정해진 대로만 하는 관료적 능력보다는 민의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적 능력을 갖춘 행정관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행정회의를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대한 공개 조사도 홍콩 정부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홍콩 경찰도 중립적 조사를 원하는 눈치다. 홍콩 경찰이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난사하면서 시위대에 거칠게 대응하게 된 계기는 시위대의 공격으로부터 입법원과 연락사무소를 보호하는 임무에 실패한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홍콩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시위대의 자유민주적 요구를 수용하고 시위대도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위 규모는 앞으로 축소될 것이지만, 시위의 폭력성은 더욱 증대할 것으로 본다. 일본 학생운동의 적군파가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 과도한 폭력을 쓰는 시위대에 고등학생이 섞여 있다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반중국 성향의 교사노조의 탓이라 여긴다. 교과 과정과 내용에 중국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현재의 제도를 이용하여 교사들이 중국에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청소년들은 인터넷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여기서 정보도 얻고 마스크나 검은 옷 등 시위 장구를 구입한다.
- 시위대의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
단결된 지도부가 없다. 2014년 '우산 혁명' 세대가 시위를 이끌기는 하지만, 이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입법원 안에 공식적으로 '범민주' 연합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치인들은 시위대를 지도하는(lead) 게 아니라 시위대를 추수하고(follow) 있다. 시위대는 인터넷 기술에 기반하여 움직이는데, 40대 이상인 정치권과 운동권의 기성 지도자들은 운동과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듯하다.
- 시위가 격화될 경우 베이징은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 보는가
영국은 1960년대 시민들의 시위에 군대를 사용한 적이 있지만, 현재 중국이 지금의 상황에 대응하려 군대를 동원할 것 같지는 않다. 미디어 보도와 달리 홍콩의 폭력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moderate). 또한 군사 개입은 중국의 국제 금융 센터로서 홍콩이 갖는 중요한 위치를 약화시킬 것이다. '양제'에 따른 홍콩의 법률 제도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상하이나 션젼같은 중국의 선진 도시들이 누릴 수 없는 혜택이다.
- 홍콩 사태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홍콩과 한국의 공통점들이 있다. 사회는 부유하지만 빈부격차의 덫에 빠져 있으며,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주택난과 세대 간의 충돌도 극심하다. 산업 재배치와 외주화로 자본이 해외로 이전하는 사정도 비슷하다.
홍콩을 정치적 시각으로만 바라 봐선 안 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과 부동산 투기 등 사회경제적 모순에도 주목하길 바란다. 한국 경제도 대외 개방에 노출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해외에서 노동력이 한국의 노동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이나 탈북자들이 노동시장의 하층부를 넘어 중상층에 진입할 때를 미리 고민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심에 제대로 반응하려는 정부의 능력, 즉 국가의 민주성을 강화해야 한다. 홍콩 행정관 캐리 람은 어린 시절 공부만 잘해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관료 경험만 쌓고 정치에 입문한 정치인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좋은 사례다. 한국에도 고시를 통과해 고위관료 경험만 가진 정치인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의 민주성은 관료적 경험과 기술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진 민중과의 교감에 능한 이들이 정치를 이끌 때 확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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