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정에 현금을 직접 지급해야 한다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지금까지 각 국 정부는 '실행하기에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일부 부자를 제외한 전국민에게 1인당 1000달러 정도의 현금을 이르면 2주 내에 지급할 것이라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급여세(근로소득세)를 대폭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대에 부딪쳐 포기하고 일종의 '제한된 재난기본소득' 방안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등 일부 학자들은 "단기 부양책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쓸 돈이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가진 자들에 영합하는 정책을 써왔다면서 '현금 지급' 방안을 택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트럼프의 참모들도 개인들에게 현금을 지급하자는 방안에 대해 "공중에서 헬기로 돈을 뿌리는 것"이라면서 일축해 왔다.
"코로나 확산으로 미국 수백만 명, 영국 수십만 명 사망" 경고
<뉴욕타임스>와 CNN은 코로나19를 독감 정도로 여겼던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처럼 입장을 확 바꾸게 됐는지 그 배경을 전했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트럼프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코로나 19 확산이 통제불능상태가 될 경우, 미국에서만 220만명, 영국에서는 51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19 환자가 모두 치료를 받을 수있다고 해도, 영국에서 25만명, 미국에서는 110만~12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보고서가 백악관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전달된 직후 지난 1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사태가 7~8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을 인정했다. 이전까지는 여름이 되면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통을 받는 미국의 가정들에 즉각적인 현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설득됐다"면서 "크고, 과감한 지원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현금 지급 등 패키지 지원책 규모는 8500억 달러 정도로 알려졌으나, 1조2000억 달러로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지에는 △현금 지원 및 세금 감면 5000억∼5500억달러 △중소기업 지원 2000억∼3000억달러 △항공 산업 구제 500억∼1000억달러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보고서에 놀란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제2의 이탈리아화'가 되고 있는 유럽 국가의 최고지도자들도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돌연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부만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갑자기 돌아선 것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도 기업과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풀겠다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세계 지도자들은 글로벌 경제에 사상 유례없는 충격이 닥치자 전통적인 경제해법에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재난기본소득 등 패키지 방안 예산은 최대 1조2000억 달러다. 영국은 3300억 파운드(약 497조 원)에 달하는 기업 긴급대출보증과 200억 파운드(약 31조 원) 규모의 재정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이념이나 신념을 앞세울 때가 아니라, 과감하게 나설 때"라면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경제위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 민주주의 사상 최대 규모의 자원 동원을 해야 한다"면서 1000억 유로(약 137조 원)의 대출보증 방안 등을 발표했다.
브뤼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면서 450억 유로(약 61조 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승인하고, 기업 국유화까지 포함한 방안을 약속했다.
프랑스도 3000억 유로(408조 원)에 달하는 기업 유동성 지원책을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내놓은 국가적 지원 규모만 총 1조 유로(1351조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날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각 국 정부가 보다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한 데 고무돼 급반등했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048.86포인트(5.20%) 오른 2만1237.38로 거래를 마쳤다. S&P 500 지수는 143.06포인트(6.00%) 뛴 2529.19로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430.19포인트(6.23%) 급등한 7334.78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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