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미FTA 뜯어보기 531]20개국 경제학도들, 한국에 '한미FTA 비준 반대' 편지
2007.05.07 16:51:00
"한국은 지금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9월 정기국회에서 한미 FTA에 대한 비준동의 여부가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영미권 국가들에서 수학하고 있는 20개국의 경제학도들이 한미 FTA 비준동의에 반대하는 내용의 편지를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7일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 5일 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한미 FTA는 한미 양국의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들의 이해를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공동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불공정한 양자간 무역협정 및 투자협정을 촉발할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한미 FTA에 대한 비준동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미 FTA가 한미 양국의 일부 계층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국가들을 불공정한 무역체제 속으로 밀어넣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많은 국내외 학자들도 한미 FTA는 세계 무역 체제의 방향을 '다자주의'에서 '양자주의'로 전환시킨, 전세계 경제사의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뉴욕 뉴스쿨대학의 경제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신희영 씨는 7일 이 공개편지를 보내게 된 배경으로 "지난 4월 14일~30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경제학과 기타 사회과학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미 FTA의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며 "그 서명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 공개편지를 통해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한미 FTA의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등 20개 국가에서 온 73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경제학이나 경제학과 인접한 학문을 전공하고 있다.

다음은 이들이 지난 5일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앞으로 보낸 공개편지의 요약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반대를 위한 공개 편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의원 여러분께,

우리는 최근 협상 타결이 선언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야기할 수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우리는 현재 한국과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 등지에서 경제학과 인접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입니다.

우리는 한미 FTA가 한미 양국의 중소기업과 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농어민들의 경제적 안정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미 FTA는 한국 정부의 독립적인 거시경제적 정책 수행 및 집행 능력을 현저하게 제약함으로써, 미국 경제에 대한 종속성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것이 '국제적으로 불공정한 무역 체제 및 금융 체제 (unjust and unequal trade and financial system)'를 확대·온존하는 효과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미 FTA뿐만 아니라 지난 해 콜롬비아-미국, 페루-미국, 파나마-미국 간의 FTA 협정문에 공통으로 명시돼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Investor-State Dispute) 조항은 다국적 기업들과 금융 투자자들이, 해당 정부의 특정한 정책 때문에 자신들의 잠재적 이윤이 줄어들었다고 판단할 때마다, 언제든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지금까지 국제적 투기 자본가들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 빈번하게 악용돼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은 다양한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부의 사회 정책을 근본적으로 잠식할 위험이 큽니다.

둘째, 미국 행정부 산하의 무역대표부(USTR)가 지금까지 체결한 모든 양자간·지역간 FTA 협정문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금융 서비스" 항목은 협정 체결국 내 제조업 부문의 성장에 필요한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금융적 토대를 궁극적으로 부식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항들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조항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그것은 중소 규모 제조업 부문의 '탈산업화 (deindustrialization)'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경제 전반적으로는 소수의 금융자산가들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금융부유화'(financialization) 과정을 초래해, 그렇지 않아도 이미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미 간의 양자간 FTA가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악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FTA는 현존하는 국제적 불공정 무역 및 투자 체계에 내재한 수많은 문제점들과 의제들을 다루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들 모국이 미국과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양자간·지역간 협상 및 비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한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점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첫째, 한국 정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FTA 협정문 내의 독소조항들을 제거하고 일체의 FTA 추진을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한국 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다른 지역 안의 개발도상국가들 사이의 경제협력을 촉진하고 상호 간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다른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할 것을 촉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개발도상국가들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2007년 5월 5일
한국,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에서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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