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국책연구소들이 재벌 흉내 내게 됐나?
어쩌다 국책연구소들이 재벌 흉내 내게 됐나?
[한미FTA 뜯어보기 544 : 릴레이기고] 한미FTA 영향평가, 이론&실증 둘 다 실격
지난 4월 3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이 합동으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발표한 후,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 '한미 FTA 영향력 평가팀'의 릴레이기고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반론' 성격이다.

이번에는 신범철 경기대 교수(경제학)의 기고를 소개한다. 단, 원문의 내용이 전문적이고 분량이 방대해 <프레시안>은 요약본을 게재한다. 원문은 요약본 아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편집자>


4월 3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연구기관들이 공동명의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분석'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3% 증가한다는 것이다. 여기다 생산성 향상과 자본축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GDP는 6% 증가한다.

이들이 이런 결과를 뽑는 데 사용한 CGE(연산가능일반균형) 모델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이 연구결과가 경이로울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같은 모델을 이용해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추계해 온 필자를 포함한 계량경제학자들에게는 '개그' 수준의 '뻥튀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난해 조작 의혹을 받았던 KIEP의 한미 FTA 영향평가에서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그대로 되풀이됐다.

필자는 지난해 KIEP의 한미 FTA의 거시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복제'해본 적이 있다. 경제학에서의 '복제'란 다른 학자의 연구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그 연구자가 사용한 데이터를 이용해 그 연구자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모델을 돌리고, 그 복제 결과가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지난해 이들 연구기관의 한미 FTA 연구보고서를 복제하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KIEP의 연구보고서 2편 중 2004년 보고서 일부는 복제에 실패했다. 그나마 성공한 일부 복제에 들어간 시간도 무려 8개월이었다. 보통 1개월이면 복제가 가능한데 말이다.

이것이 필자의 전문성 부족 탓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KIEP가 핵심 데이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엉뚱하게도 '저작권 침해'였다. 그나마 내놓은 자료들도 국정감사 때 심상정 의원 등 국회의원들의 요구 때문에 할 수 없이 할 수 없이 찔끔찔끔 내놓은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11개 국책연구기관들의 공동명의로 나온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도 아직 복제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난 번과 마찬가지다. 이들이 보고서를 만들 때 사용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국정감사마저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이 무슨 재벌 연구소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초자료는 공공재이고, 세금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서라도 누구에게나 공개돼야 마땅하다. 게다가 이 자료가 공개돼 한미 FTA의 영향력을 추정하는 일에 더 많은 학자들이 참여한다면 훨씬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겠는가?

전 세계 개방론자들도 부정하는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개혁'론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국책연구기관들이 내놓은 한미 FTA 영향평가의 문제점을 비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들이 내놓은 연구보고서의 내용과 이에 대한 설명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뻥튀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무역개방이 생산성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논쟁적인 가정 △한미 FTA 영향평가의 유일한 방식으로 선전되는 CGE 모형 자체의 결함 △이들이 적용한 '외생적 생산성 모형'의 결함 등 크게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우선, 경제개방의 확대가 자원배분의 효율성, 규모의 경제, 경쟁 촉진 등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 이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국책연구기관들의 가정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역개방과 경제성장 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한창 진행 중이다. 세계 경제학계는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결론을 내지 못했으며, 가까운 미래에도 쉽게 결론에 도달할 것 같지 않다. 최근까지도 이와 관련된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오히려,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로드릭 교수와 로드리게즈 교수는 최신 논문에서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이런 비판은 대표적인 친(親)개방론자인 볼드윈 교수나 크뤼거 교수도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적절한 거시정책과 제도 정비가 없으면 무역개방이 경제성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의 적절한 경제정책과 제도개혁이 무역개방에 선행돼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상식'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의 저명한 개방 찬성론자들도 우리 정부가 당연한 듯 주장하는 '외부충격에 의한 내부개혁'이나 '先개방 後개혁'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CGE 모형, 무엇이 문제인가

두 번째로, 이들 국책연구기관이 사용한 CGE(연산가능일반균형) 모형의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CGE 모형은 외부충격, 즉 무역개방에 따라 형성되는 새로운 균형을 추적하고, 이 균형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추계하는 모형이다. KIEP가 추계에 사용한 미국 퍼듀대학의 GTAP은 이런 CGE 모형을 구현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CGE 모형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형에서는 개별 소비자의 선호 차이와 개별 생산자의 기술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 쌀에 대한 대통령의 선호와 농부의 선호가 동일하고, 재벌과 중소기업의 LCD 생산기술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차이가 인정되지 않는 개인의 효용을 단순 합산한 효용함수, 즉 '사회후생함수'는 이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우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된 바 있다('불가능성 정리'). 게다가 CGE는 개인의 효용을 단순 합산하는 만큼, 사회후생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진다는 결함을 가지게 된다. 즉, CGE는 이론상 분배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CGE 모형은 다른 '대형 예측모델(Big Model)'처럼 '루카스 비판'에 치명적이다. '루카스 비판'이란 경제 주체들이 정부 정책으로 인한 미래의 경제적 효과를 예상해 이를 현재의 경제적 행위에 반영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효과가 예상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런 대형 예측모델은 세계경제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전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모델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CGE 모델은 '시장청산 조건'을 가정하고 있다. 이 조건 아래서는 시장이 언제나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초과수요나 초과공급에 따른 경기변동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의 실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필요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이밖에도 완전경쟁의 가정, 완전정보의 가정 등 CGE 모형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 모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KIEP의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이런 한계는 설명하지 않고, 오로지 'GDP 6% 증가'라는 뻥튀기 결과만 선전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를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희대의 '개그'를 근거로 한미 FTA 비준동의 하라니

마지막으로 국책연구기관들의 '뻥튀기' 수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KIEP의 FTA 팀장인 이홍식 박사는 얼마 전 <국정브리핑>에 게재한 글 '그들의 주장은 왜 메아리가 없을까?: 한미 FTA 경제효과 분석에 대한 황당한 비판들'에서 "CGE 모형은 (…) 2세대 모형(불완전경쟁 모형)을 거쳐 3세대 모형, 즉 자본축적 모형(동태모형)에 이르고 있다"면서 KIEP가 사용한 '자본축적 모형'이 현대적 기법이라고 강변했다.

KIEP 측이 '최신 모형'이라고 주장하는 CGE 모형은 10년 전에 만들어진 GTAP 초기모형에 불과하다. 다만 이 구닥다리 모형이 2002년에야 비로소 한국에 도입된 것이다. 이미 한국 밖에서는 4세대, 5세대 모형이 개발된 상태다. 이건 또 무슨 새로운 '개그'인가?

게다가 이들이 사용한 '자본축적 모형'은 애초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모형은 1992년 나온 '볼드윈 모형'을 기초로, 여기다 성장함수를 추가한 것이다, 볼드윈은 '무역 자유화→경쟁력 있는 산업으로의 생산요소 이동→자원배분의 효율성 제고 →소득 및 자본스톡의 증가→경제성장'의 경로를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요소 이동이 발생시키는 매몰비용, 특히 노동 이동 시 발생하는 재교육 비용 등을 감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KIEP 등의 연구결과를 '뻥튀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들이 사용한 모형이 이론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최소한 세 가지의 실증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이들은 한미 FTA가 GDP뿐 아니라 후생수준도 급증시킨다고 주장한다. 자본축적과 생산성 향상을 가정하면 GDP 대비 2.9%, 즉 21조 원의 사회후생이 증가한다고 하니, 한미 FTA는 그야말로 '요술방망이'인 셈이다. 그런데 이미 50년 전에 하버거 교수는 무역개방에 따른 후생수준의 변화는 GDP 대비 최대 0~1%라고 추산했다. 이는 2000년 세계은행의 연구로 재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한 사회후생의 증가는 최대 6조 원 수준이다.

둘째, KIEP 등은 한미 FTA로 한국에서 1.1%의 '생산성 향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가 희한하다. "미국의 서비스산업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이 연평균 0.88%인데, 한국의 서비스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미국의 4분의 1이라고 가정하면, 한국의 5년 간 서비스업 생산성 증가율을 1.1%"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1.1%의 수치가 나온 이유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만 생산성 향상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뿐 미국에서는 이를 쏙 빼놨다는 것이다. 필자가 KIEP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의 생산성 향상을 고려해 미국의 GDP 증가분을 계산해봤더니, 놀랍게도 그 수치가 기존 0%에서 5~6%로 변했다. 최근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2%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인들이 놀라 자빠질 수치다. 미국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만 했어도, 미국이 마지막 협상에서 한국으로부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KIEP 등은 한미 FTA의 경제적 크기를 측정하면서, 생산요소의 분류 방식과 이동성 크기 등 일부 부문에서는, 자신들이 사용한 GTAP 모형이 제시하지 않은 임의의 방식이나 수치를 채택했다. KIEP는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도 '저작권' 때문일까?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이미 객관성을 상실했다. '한미 FTA는 좋은 것'이라는 정부의 선험적 가정에 '한미 FTA는 역사적 사명'이라는 대통령의 미화까지 곁들여지면, 이들이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동기는 사라지게 된다. 국책연구기관들의 '뻥튀기'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는 국민들을 웃길 '개그'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국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를 해달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설사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결과가 '뻥튀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비현실적인 가상의 세계에 불과한 CGE 세계에서 추계된 결과를 한국 역사상 최대의 사건의 될 수도 있는 한미 FTA 체결의 결정적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원문보기(영향평가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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