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개발자 잔혹사, 정부는 無대책
IT개발자 잔혹사, 정부는 無대책
[IT 일상다반사] "구조적인 하도급 폐해, 손 놓은 정부"
2010.08.30 07:27:00
IT개발자 잔혹사, 정부는 無대책
한국의 IT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1997년 말 외환위기 극복의 첨병으로 국가적 지원을 받아온 IT시장은 올해 현재 통신서비스·IT서비스·소프트웨어·어플리케이션을 합쳐 38조 원이 넘는 규모(한국IDC 조사 결과)로 성장했다.

그러나 급격한 발전은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절대 다수의 기업은 장기계획을 짜는 게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한 경영환경에 노출됐고, 하도급 구조가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노동자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업무환경이 조성됐다. 기업 능력의 약화와 노동자 착취 구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산업의 미래를 좀먹는 '악의 고리'로 굳어졌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 개선이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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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특히 중소기업 비중이 99%를 차지(지식경제부 통계)하는 IT서비스 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이하 협회)에 따르면, IT서비스 산업은 IT컨설팅과 시스템 통합(SI), IT아웃소싱(ITO),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부와 정치권, 관련 업계 단체 등에서는 다양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적 문제인 하도급 개선과 노동자 처우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제 제도를 만들 때가 아니라 '의지'를 보여야 할 때라는 평가다.

문제는 하도급 구조

정부가 IT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내놓은 대표적 대안은 작년 5월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포함된 SW관련 제도 변경안이다. 지식경제부는 미래선도산업으로 △바이오·나노 △로봇 △차세대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신재생·그린에너지 산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산업을 6대 필수 산업으로 포함시켰다.

이 안의 중요한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작년 4월 1일부터 대기업이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준을 종전 20억 원에서 40억 원으로 상향조정했다(매출 8000억 원 미만 대기업은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조정). 이는 공공기관 발주물량을 대기업이 싹쓸이해 하도급 업체에 개발 일부를 맡기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나온 조치다.

이에 더해 공공기관이 소프트웨어 사업 하도급계약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해 사전승인을 받도록 했다. 저가 하도급 계약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올해부터 모든 공공기관은 소프트웨어 사업을 반드시 분리발주하도록 규제했다. 이 역시 대기업의 싹쓸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공공기관이 관련 사업을 모두 모아 하나의 사업으로 규정, 사업규모를 키운 뒤 대기업이 입찰 가능하도록 한 기존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도다.

공공기관 발주의 개발비 산정시 기존의 코드라인방식(Line of Code)·투입인력방식(Man Month)을 폐지하고, 기능점수방식(Function Point)의 적용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코드라인방식이란 개발된 프로그램의 최소명령단위(문장)의 수를 측정해 단가를 산정하는 방식이고, 투입인력방식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의 단가를 미리 결정해 인력 수에 따라 개발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투입인력방식의 개발자 노임은 올해의 경우 중급기술자 기준으로 일일 19만 원 정도다. 5개월에 걸쳐 10명의 개발자가 투입되는 업무라면 하루 190만 원을 개발비로 산정한다. 건설업의 경우 시멘트, 철근 등 필요한 자재 견적을 바로 단가에 반영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은 특성상 오직 인력에 의존하다보니 사람의 일당을 단가에 반영하게 돼 이런 단가 산정 방식이 생겼다.

이에 반해 기능점수방식은 발주자가 요구한 기능을 두고 난이도와 업무량을 점수로 측정해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내 전용 메일프로그램을 발주할 때, 추가로 구글, 야후메일 등을 사용 가능토록 하면 이에 걸맞은 단가가 부가된다. 난이도 및 업무량 측정기준은 이미 국제표준으로 정의돼 있어 보다 투명한 단가 산정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들 정책의 초점은 일관되게 하도급 구조 개선에 맞춰져 있다. 이는 그만큼 IT업계에서 하도급 구조가 뿌리깊게 자리잡았고, 이에 따른 폐해가 큼을 보여준다. 지식경제부 소프트웨어정책과 관계자는 "정부 개선안이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했다"며 "올해 말 그간 성과를 재점검해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27일 말했다.

▲ ⓒ지식경제부 제공

하도급 구조의 폐해로 정부와 업계는 중소 IT기업의 성장성 저해를 꼽는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현재 상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판매하는 국내기업은 약 1980여 곳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연간 17억 원선에 불과하며, 안정적인 매출처인 공공기관에 대한 매출비중은 전체 매출의 14.5%에 그친다. 절대 다수 중소기업이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상품을 팔고 있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안 돼 영세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함을 뜻한다.

협회는 "2004년 이후 전문 IT서비스 기업의 영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영세한 기업은 종합(대형) IT서비스 기업과의 협업이 불가능해 하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업체의 난립은 자연스럽게 과당경쟁을 유발하고, 이는 하도급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이 결과가 기업이 내놓는 상품(프로그램)의 품질 저하다. 협회에 따르면 한국 IT서비스 기업의 개발 진행 능력 수준은 미국·유럽 등지의 IT 강국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미래를 책임질 산업'이라는 정부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산업 경쟁력이 형편 없다는 얘기다. 저성장의 늪에 허덕이는 기업이 연구개발(R&D)에 힘을 쏟을 리 없고, 이는 뛰어난 개발자를 기르지 못하는 구조를 낳아 자연스럽게 산업 경쟁력 자체를 떨어뜨리게 된다.

대안 실효성도 떨어져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대안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 분리발주 의무화 정책은 유명무실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자(프리랜서)인 손모 씨(40)는 "분리발주가 2007년부터 시행됐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공공기관부터 작은 사업을 다 끌어모아 큰 사업으로 부풀린 다음 대기업에 발주해준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40억 원 규모의 프로그램 통합, 20억 원 규모의 서비스 사업을 정부에서 발주할 때, 이 사업을 공공기관이 통째로 묶어 60억 원 짜리 사업으로 통합발주해버린다는 얘기다. 이 경우 대기업은 아무런 제한 없이 발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대기업이 이 사업을 따가는 건 당연하다. 결국 정부부터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하도급화, 그리고 이에 따른 과다노동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와 관련, 감사원이 작년 말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3개 공공기관이 작년(3월~12월) 분리발주한 39개 사업 중 실제 분리발주가 이뤄진 것은 38.5%인 15개 사업에 그쳤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배은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월 18일 통합발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배 의원은 "발주 금액이 '사업 금액'으로만 규정돼 있어 사업을 묶어 발주할 때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할 길이 없다"며 "소프트웨어 사업자의 참여 사업금액 하한을 '단일사업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기업의 싹쓸이를 막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간 과당경쟁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한 IT업계 담당자는 "업체 간 경쟁요소는 가격밖에 없다"며 "손해를 보고 입찰하는 것은 물론, 무료로 개발을 하겠다고 나서는 데도 많다"고 한탄했다. 이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발주시 공공기관이 제시한 예정가격의 일정 수준 이하로는 입찰할 수 없도록 가격 하한선 규정까지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자 처우 개선부터 이뤄져야

무엇보다 개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서부터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평가다. 개발자들의 재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가격 경쟁만 이어지다보니 개발자 질이 떨어져 산업 경쟁력 악화를 부른다는 이유다. 개발자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도 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선 거론되는 문제가 현행 투입인력방식의 부작용이다. 정부가 비록 새 가격산정방식(기능점수방식)을 내놓았지만,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한 하도급 현장에서는 여전히 투입인력방식이 적용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최종성 IT노조 위원장은 "업계에선 가격 후려치기가 관행이다보니 10명이 다섯 달에 걸쳐 프로젝트를 수주키로 해놓고 실제로는 8명, 5명이서 밤을 새워 일한다. 그래야 이윤이 남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개발자들의 무리한 근무 형태가 개선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기능점수방식이 상대적으로 훌륭한 방식이지만 여전히 개발 현장에서는 절대 다수가 투입인력방식을 이용한다"며 "서류상으로만 기능점수방식을 이용한 것처럼 하는 관행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현장의 관행은 결국 개발자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이어진다. 소프트웨어 생산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공정을 통해 이뤄진다. 우선 수주 기업(갑)이 필요한 제품을 지정된 하도급 업체(을)에 통보한다. 그러면 미리 이뤄진 하도급 체계를 따라 2차, 3차 하청업체가 줄줄이 이 사업에 달라붙는다.

이들 개발은 반드시 자기 회사에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부분은 발주자(갑)의 생산기지에 하도급업체 개발진이 일제히 모여 일한다. 출퇴근 통제, 각종 업무지시 등이 모두 발주자에 의해 이뤄진다. 개발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없다보니 이들 파견업무자들은 중노동과 상대적 박탈감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손 씨는 "3개월 짜리 프로젝트를 최근에 맡았는데, 이 기간 내내 발주처의 관리자가 출퇴근 체크를 했다. 어린 친구에게 관리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며 "말이 프리랜서이지, 회사를 바꿔가며 혼만 나는 게 프리랜서 개발자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대형 IT업체에서도 원격지 개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원격지 개발이란 발주처, 혹은 1차 수주자(대기업)의 개발 센터로 관련 사업 개발자 전원이 입주해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 개발자들이 자기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이행토록 하는 방식이다.

"무리한 야근, SI 발주자에게 하소연하기 위한 것"

최 위원장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가장 큰 악습이 바로 프로젝트별 개발자들이 모두 모여 일하는 지금의 방식"이라며 "발주자에게 '보여주기식' 프로젝트로 사업이 변질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노동강도가 강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하도급 업체가 헐값에 사업을 수주하다보니 투입할 인력은 줄어들고, 그마저도 중간에 형성된 인력회사를 거치느라 이익규모가 더 줄어든다. 자연히 개발능력은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하도급 업체는 '개발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늦게까지 개발 센터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과다 근무를 시킨다.

최 위원장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빴다면, 도저히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거나, 발주자의 요구가 과도했기 때문'이라는 하소연을 하기 위해 억지로 일을 더 시킨다"며 "발주처에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 인정에 호소하는 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부터 개선 의지가 없다. 지난 6월 30일 국회 미래성장동력산업연구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최 모 행정안전부 과장은 "원격지 개발을 도입하면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게 어렵고, 수·발주자 모두 기술력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개발자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어야 통제가 쉽고, 발주자의 요구사항이 즉시 도입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됐다"며 "실제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프로젝트팀원 전체에 공지할 사항은 메신저나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하고, 팀 리더들끼리만 중간 회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IT산업은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IT서비스업의 취업계수는 8.74로 일반 제조업(4.19)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인력 상당수는 저임금과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 잦은 이직을 결정한다. 작년 5월 29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2009 IT·SW잡페어'에 참가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정부 의지 필요

정부가 오히려 IT노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또 다른 사례가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다.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란 개발자의 보유기술 역량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단을 만들자는 취지로 지난 2008년 12월 도입됐다. 약 9만7000여명의 신고 대상자 중 올해 8월 현재 약 7만7000명이 등록했다.

IT노동조합에 따르면 정부에 신고를 하더라도 일반 전산 업무직의 경우 경력의 80%만 인정받는다. 경력 신고기관에서 임의로 개발자의 경력을 판단해 몸값이 깎여나간다는 얘기다. 손 씨는 "경력이 13년차인데도 5년차로 인정받았다"며 "기업들이 개발자 몸값을 후려치는 제도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에서 필요한 대안은 다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단 하나도 지켜지는 게 없다"며 "정부에서 직접 하도급이 난립하는 기업 현장을 통제할 생각을 않고 캠페인성 정책만 내놔봤자 하도급 폐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이미 4~5년 전에 다 만들어놓은 관련 정책이 제대로 기업 현장에 적용되도록 정부 기관에서 감시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