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침체의 긴 터널 어디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 경기침체의 긴 터널 어디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해외시각] "위기의 끝에서 세계 경제는 재편될 것"
2012.05.01 08:12:00
영국은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0.3%, 0.1% 감소하면서 '더블딥'(회복기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현상이 공식 확인됐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영국 경제는 지난 100년 이상 기간 동안 최장기 침체 국면을 보이고 있다"라고 진단할 정도다.

영국만이 아니다. 스페인은 지난 3월 실업률이 24.4%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청년실업률은 그 2배에 육박하는 상태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정책에 대한 시위가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도 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그리스 역시 긴축정책에 신음하는 국민들의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는 수년 전 시작됐지만 위기의 원인과 해법, 이에 소요되는 자원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위기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고, 금융권에 대한 단호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도 망설인다. 지난해 중동에서 시작된 시위 물결이 유럽과 미국 등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재현됐지만 경제위기 해결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20세기 초반 대공황 사례를 복기하려는 시도도 나온다. 도널스 사순 런던대 교수는 29일(현지시간) <가디언> 칼럼에서 20세기 대공황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전 세계의 경기침체 사례 역시 현재의 위기와 비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기대침체 시대라 불리는 당시 경제위기는 물가 하락이 주된 현상이었고 침체의 정도는 현재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는 국제 무대에서 강대국의 정책 변화를 유도했고, 주요 국가들의 위상을 바꾸었다. 동시에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노동자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복지국가의 근간이 마련되는 성과도 있었다.

사순 교수는 이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두 번의 위기에서 경제위기를 예측한 이들도, 경제위기의 결과로 어떤 국면이 전개될지 예견한 이들도 드물었다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현 경제위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전쟁이 경제를 부양하는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 정부가 바라는 방식으로 위기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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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 대출금을 갚지 못해 강제퇴거 위기에 몰린 이들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과거의 경제위기를 보면 해법이 나올까?

'성장, 성장을 다오. 이 왕국을 줄 테니 성장을 다오!'(*셰익스피어의 <리처드3세>에 나오는 대사를 각색) 하지만 그 왕국은 더블딥에 빠졌고 여기에서 빠져나려오는 고통스런 싸움은 정부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오래 갈 것 같다. 다른 곳의 사정도 재밌지 않다. 스페인은 25%에 가까운 실업률과 함께 심각한 경기후퇴를 겪고 있다. 국외 자금조달 금리는 오르고 있고 이는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영국 제품의 주요 수입국이다. 경제가 불안정한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의 프랑수와 올랑드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위기는 항상 우리와 함께 했다. 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의 일부다. 이 위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뜻하는) "우리는 한통속이 아니다"를 제외하고는 과거 어떤 심각한 자본주의 위기와도 닮지 않았다. 승자와 패자가 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불명확하다.

1929년 위기, 대공황이라고 불리는 위기는 최초의 위기였고, 위기의 원형이 됐으며, 다른 모든 위기와 비교되는 위기였다. 현재의 경기하강이 1929년만큼 심각한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당시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특히 유럽에서 그렇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 의장은 적어도 미국의 상황에 대해 더 낙관적이다. 그는 단호한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경제 붕괴(meltdown)가 대공황 때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는 항상 유용하다. 하지만 사실 1929년 대공황은 오늘날의 위기와는 꽤 다르다. 세계가 매우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계는 더 국제화됐고 (서양에서) 보다 금융화됐으며, (우리가 통상 제3세계라고 칭하는 곳에서) 더욱 산업화됐다.

1929년 당시 교훈을 얻고자 과거 자본주의의 큰 위기상황, 1873~1896년 소위 '장기대침체 시대'(Long Depression)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밀히 말해 장기대침체 시대는 경기침체나 마이너스 성장의 개념에서 보면 진짜 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물가가 내려갔고, 이는 소비자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기업 입장에선 재앙이었다. 성장은 불안정했지만 결코 후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위기는 세계적이었다. 세계 경제의 재편성이 있었다.(큰 위기는 이러한 재편을 낳는다) 미국이 영국을 대신해 선도적인 산업국이 됐고, 독일이 영국을 따라잡았다.

물가 하락은 (1873년 오스트리아 빈과 1882년 프랑스 파리처럼) 일련의 주식 폭락 사태를 불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관세전쟁을 벌였다. 영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보호무역주의를 받아들였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안식처가 된 미국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보호무역이 심한 국가였다. 현재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믿음과는 반대로 국가의 힘이 증가했다. 미 연방의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국주의국가(프랑스와 영국)들은 제국을 확장했다. 다른 국가(독일과 이탈리아)는 그 대열에 합류하려 열심이었다.

국가들은 또한 보다 권위적인 모습을 갖춰나갔다. 1870년대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반(反) 가톨릭, 반 사회주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 정부는 남부의 '노상강도'(bandits, 바티칸시국을 이름)를 상대로 사실상의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채찍에 이은 당근이 있었다. 주당 노동시간이 짧아졌고, 특히 독일과 벨기에, 영국 같은 부유한 국가에서 현대적 방식으로 규제되는 복지국가의 근간이 세워졌다.

노동의 부상이 이러한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1889년 노동자당과 사회주의자들이 창설한 제2인터내셔널의 핵심 강령에 노동이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끝내는 꿈을 꾸는 한편 성인의 보편적인 참정권과 여성권, 법적 원조, 하루 8시간 노동, 무상의료, 무상교육 을 포함한 평등권 도입 등 효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했다.

장기대침체 시대에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이 세워졌고, 1918년까지 몇몇 정당은 현재보다 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물론 그들은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사회주의자 아우구스트 베벨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일 밤 전 부르주아 사회의 마지막 순간이 닥칠 것이란 생각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라고 썼다. 엥겔스는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렇지만 베벨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악화되는 실업, 심화되는 자본의 집중, 파업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붕괴되지는 않았다. 대신 강대국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경쟁이 커져갔고 결국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는 더욱 강화됐고,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으며 유럽은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정치적 힘을 상실하는 시작점을 맞았다.

1929년 대공황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했다. 1936년까지 위기는 해소된 것처럼 보였지만 1년 뒤 2차 경기침체가 위협을 가했다.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엄청난 국가 부양책을 마련하면서 상황을 해결했다. 케인즈는 사람들이 도랑을 파고 다시 그것을 메우는데 돈을 지불하는 게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더 가치가 있다. 전쟁은 무기를 만들고 그 무기로 대량 파괴를 벌이도록 사람들을 고용한다. 그 결과 유럽은 국제 사안에서 어떤 주도적 역할도 맡지 못하게 됐다. 미국이 정치적 패권국가로 떠올랐고, 소비에트연방(USSR)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물론 오늘날 세계대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모두가 중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1870~1896년의 위기, 혹은 1929년 대공황을 예견한 이들은 거의 없었고, 그 결과를 예측한 이들은 더 적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위기를 예상한 이들이 거의 없었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사건들(이슬람 근본주의의 부상, 소련 해체, 아랍의 봄 등)을 예견하는 것에 관한 한 우리는 도살한 염소의 내장에서 미래를 읽던 우리의 조상보다 거의 앞서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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