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를 파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김연아를 파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최동호의 한국스포츠당] <4> 김연아의 기적을 기회로 활용해야
2013.03.26 16:11:00
김연아를 파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2007년 어느 날이었다. IB스포츠(김연아의 전 소속사) 이희진 사장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전 직원이 참가했다. 이희진 사장은 평소와 다르게 흥분된 모습이었다. "피겨스케이터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맡기로 했습니다." 당시 김연아 선수는 IMG코리아 소속이었다. 이희진 사장은 한마디 덧붙였다. "IMG코리아와 일전도 불사하겠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IB스포츠에겐 기회였다. 동시에 전지훈련 비용은 물론 숙소 임대, 영어 교습, 코치 비용까지 전담해야 하는 상당한 위험의 도박이기도 했다. IB스포츠는 당시 매니지먼트 경험이 일천했다. 동계 종목, 더군다나 피겨스케이트를 경험한 마케터도 전무했다. IB스포츠가 당시로선 무모해 보일 수 있었던 김연아 매니지먼트에 도전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덴츠였다.

IB스포츠의 김연아 매니지먼트는 덴츠의 제안이었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세계적인 광고 회사이자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덴츠는 IB스포츠에 김연아 매니지먼트를 제안하며 그랑프리 시리즈 한국 개최, 중계권 사업 협조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김연아 선수의 가능성을 간파한 덴츠의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IB스포츠로선 롤모델인 덴츠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상상 그 이상의 대성공이었다. 덴츠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피겨 시장을 열었고 IB스포츠는 김연아 선수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김연아 선수 역시 IB스포츠의 지원을 받으며 독보적인 '피겨 여신'으로 오롯이 홀로 섰다.

2007년 김연아 선수가 IB스포츠와 계약하자 IMG코리아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김연아 관리 소홀'을 인정해 IMG 패소 결정을 내렸다. 관리 소홀은 대우뿐만이 아니라 훈련 여건과 지원이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IB스포츠는 재활 훈련과 캐나다 전지훈련을 제공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 등으로 짜인 5명의 코치진으로 드림팀을 구성했다. 김연아 선수가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3년 동안의 캐나다 전지훈련이 김연아 선수 성공의 밑바탕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모두 김연아에 취해 있다. 그런데 '김연아 이후'는 누가 고민하고 있나? 김연아가 지난 18일(한국 시각)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갈라쇼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김연아 선수라면 한국에서도 피겨스케이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덴츠의 혜안이 없었다면, IB스포츠가 덴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김연아 선수의 '피겨 여제' 등극은 시기적으로 몇 년 늦춰지거나 불발에 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5년까지 김연아 선수는 자비로 훈련 비용을 부담했다. IMG 소속이었던 2006년의 수익은 6억 원에 불과했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 씨는 "경기에 전념하기 위해서 후원자를 원했지만 IMG코리아는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IB스포츠로 옮긴 2007년부터 김연아 선수는 훈련 비용을 제외한 순수 수입만 3년간 매년 평균 40억 원을 벌었다. 충분히 경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덴츠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뿐만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아시아축구연맹(AFC) 등 국제 스포츠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향력의 원천은 마케팅 대행이다. 덴츠는 IOC와 FIFA를 대신해 아시아에서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판매한다. 2002부산아시안게임 중계권과 휘장 사업도 덴츠를 통해 분배됐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아시아 전역의 광고주를 모으겠다는 것이 덴츠의 계획이다. 미디어를 움직이고 기업의 후원을 얻어내고 시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스타를 만들어낸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가 발표한 '스포츠 업계 거물 100인'에서 스타 선수는 20명에 불과했다. 구단주를 포함한 리그 관계자 37명, 미디어 관계자 21명, 스포츠 마케팅 관계자가 16명이었다. 오래된 자료지만 스포츠계의 작동 방식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이케다 츠토무 덴츠미디어코리아 대표는 "다양한 매체의 광고가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광고를 통해 움직일 수 있도록 치밀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피겨 여제'가 복귀했다. 2014소치동계올림픽까진 불과 1년 남짓 남았다. 김연아 선수에겐 마지막 시즌이다. 그랑프리 시리즈와 파이널에 참가한 뒤 마지막 무대를 소치올림픽에서 장식하게 된다. 김연아 선수가 한국 피겨 최초의 시니어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이 2006년 11월이었다. 그리고 이후 7년의 시간. 무엇이 변했을까? 바뀐 것은 오직 하나. 김연아 선수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가 만들어졌다는 것뿐이다. 김연아 선수 위주의 마케팅 회사인 올댓스포츠가 신인 선수를 육성하고 시장을 창출하기엔 역부족인 듯싶다. 김연아와 3년의 시간을 보낸 IB스포츠의 경험도 새롭게 빛을 발하진 못하고 있다. 포스트 김연아를 책임질 유망주 발굴에도 실패했다. 김연아 개인에겐 CF가 끊임없지만 ISU를 후원하는 국내 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 리 감독은 자신이 제작한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 다큐멘터리에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비교했다. "일본의 선전이 국가와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기적이라면, 김연아의 우승은 진정한 자생적 기적이다"라고 평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김연아는 기적이다. 그러나 한국 피겨와 스포츠 마케팅 업계는 기적이 아니라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했다. 2006년 이후 7년의 시간은 끝없는 김연아 소비였다. 김연아 팬덤은 감정 소비와 분출에 치우쳤고 한국 피겨는 김연아에게 빌붙었다. 스포츠 마케팅 업계는 돈벌이에만 집중했다. 김연아의 기적을 일본은 1989년에 맞이했다. 이토 미도리의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이토 미도리를 계기로 피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고 이에 편승해 일본은 아라카와 시즈카(2006토리노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2011세계선수권대회 1위), 다카하시 다이스케(2012세계선수권대회 2위) 등을 발굴했다. 덴츠는 노련하게 미디어를 움직이며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김연아를 파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유수의 한국 스포츠 마케팅 업체가 대한빙상경기연맹, 기업과 협조해 판을 짜는 것을 보고 싶다. 김연아 은퇴 후 텅 빈 한국 피겨를 보는 것은 너무 허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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