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史가 되어버린 國防委 會食사건
正史가 되어버린 國防委 會食사건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39ㆍ끝>
正史가 되어버린 國防委 會食사건
서점에서 우연하게 윤하선(尹河璿) 인하대 교수의 학술논문집「한국민주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발견하여 샀다. 정년기념이다. 윤 교수는 외무 차관을 지낸 윤하정(尹河珽)씨의 형님으로 신범식(申範植) 전 문공장관이 1950년대 중반에 하던 사회문제연구소의 이사로 있었고 나도 그 연구소에 관계하여 안면이 있기 때문에, 30여년이 흐른 후 어떠한 학문적 성취를 했나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 책의 맺는 말은 1986년 4월에 집필하였다고 적어놓았는데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하여―정책요령고」라는 논문의 끝부분은 나로서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1986년 3월 국방위원회 의원과 10여명의 군장성 간담회 석상에서 국회사령탑인 여야 총무와 몇몇 국회의원이 군장성에 의해서 구타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군벌의 권력핵이 기타 권력핵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일화였다 하겠다. 이 사건처리 여하에 따라서 군벌의 힘의 귀추가 결정될 것이다.”

이른바 국방위 회식사건은 여하간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진상이 소상하게는 밝혀진 일이 없다. 나도 그 사건의 중요당사자이지만 약간 늦게 그 자리에 참석하였고 하여 전모를 완전하게는 알지 못한다. 또 김동영(金東英)의원 말고는 관련자가 모두 생존해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튼 그 진상을 밝히는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따라서 나도 어느 누가 거론을 하기 전에는 발언을 삼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갖고 있다. 사건 후 어쨌든 화해술을 마셨으니 그 일에 대해 함구하는 것이 주도(酒道)일 것도 같고….

다만 그 사건을 취재한 기자의 매우 훌륭한 기사는 있다. 동아일보의 김재홍(金在洪)씨는 국방부 출입기자로 군사전문이 되어 하나회를 폭로하는 일 등으로 명성을 날렸었는데 그가 신문에 연재한 글을 종합하여「군(軍)」1부ㆍ2부로 책을 냈다. 1994년에 동아일보사에서 펴냈다. 그 책의 제1장이 국방위 회식사건인 것이다. 그만큼 무게 있게 다루었다.

김재홍씨는 그 후 정치부차장, 논설위원이 되었고, 기자 때에 신군부에 의해 신문사를 쫓겨난 기간을 선용하여 서울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하였기에, 지금은 경기대학의 교수로 그리고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 제1장을 대폭 단축하여, 그러나 원문을 그대로 살려 소개한다. 중요한 한 대목에 이견이 있지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이하 인용문 처리)


***제1장 금배지와 별, 누가 센가 - 국방위 회식사건**

1986년 3월 21일 저녁7시,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요정 ‘회림’. 20여명이 모인 한판 술자리가 벌어졌다.

육군 참모총장 등 군 고위장성 8명과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맞은편 줄에는 8명의 육군수뇌들이 자리했다. 참모총장인 박희도(朴熙道ㆍ육사12기)대장, 참모차장 정동호(鄭東鎬ㆍ육사13기)중장, 인사참모부장 이대희 (李大熙ㆍ육사15기)소장, 총장 비서실장 구창회(具昌會ㆍ육사18기)준장 등 육군의 노른자위들이었다.

오후 7시 반 조금 넘어 지역구가 지방인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약속시간에 대지 못 했음에도 여유만만한 태도로 들어섰다.

“허, 힘있는 거물은 안 오고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

순간 분위기는 묘하게 변했다. 김 총무가 내뱉은 첫 ‘인사’는 돌출적이라기보다는 정국의 풍향을 반영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날은 제129회 임시국회가 개회된 날이었다. 게다가 3월초에는 안양시 교외의 박달 예비군 훈련장에서 개헌시비로 인한 폭행치사 사건까지 일어났다. 발단은 교관이 정신교육시간에 야권의 개헌론을 비난하자 이를 한 예비군이 야유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맞은 뒤 군수사기관을 거쳐 안기부로 넘겨졌는데 나중에 장 파열로 숨지고 말았다.

45도 짜리 국산양주 10여 잔을 거푸 마셔 취기가 진해진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이날 술자리를 마련한 박희도 육군 참모총장에게 소리쳤다.

“여보 박총장, 여당 총무는 안 오기로 했나, 어떻게 된 거야. 이세기를 불러와.”

배짱 있는 야당투사로 이름높았던 김 총무도 이 날 모인 별들이 전두환계의 선봉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박 총장은 육사12기의 하나회 중심인물로 지난 79년 12.12사건 때 실병력을 움직여 무력행사를 벌였던 장본인.

한편 회식현장의 또 다른 실력자 정동호 육참차장도 육사13기의 하나회 핵심. 그는 5공 초기 현역소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낼 만큼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으며 정치권에도 널리 알려진 장성이었다.

또 전방 노태우 장군의 9사단에서 연대병력을 끌고 서울로 들어온 9사단 참모장이 이날 술자리의 막내 장성인 총장비서실장 구창회 준장이었다.

이날 술자리에서 사회를 본 육군 인사참모부장 이대희 소장은 12.12와 직접 관련은 없다. 그러나 그도 정통TK에다가 하나회의 핵심. 이른바 ‘하나회 성골(聖骨)’ 들만 거친다는 수경사 30단장, 33단장을 역임한 뒤 승승장구해가는 장성이었다.

이 총무는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술자리에 나타났다. 그는 술이 얼큰해있었다. 지역구 행사와 문상을 다니며 두어 잔씩 마셨으나 평소 주량이 세지 못한 그는 제법 취한 상태였다.

김동영 신민당 총무가 넓은 방의 한쪽 소파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총무는 군 장성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술잔공격을 받아 취할 대로 위한 상태였다.

이 총무를 보자 정동호 차장이 약간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李세끼 총무,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 그러니까 야당측에서 우릴보고 똥별이라고 하지 않나 말이야…….”

정 차장은 이 총무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이 총무가 잡힌 팔을 빼려 하자 정동호 육참차장은 손아귀에 더 힘을 주어 붙들고 “후래자가 3배는 해야지”라며 얼음물을 담아놓던 컵에 양주를 부어 내밀었다.

“나는 술을 잘 못하는데 이미 지역구에서 3차나 했으니 노래로 벌을 대신하지.”

이 총무는 사회를 보고 있던 육본 인사참모부장 이대희 소장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들었다.

노래를 한 곡 끝내고 자진 앙코르로 들어가려 하자 장성 둘이 나와 그를 떼밀다시피해 정 차장 곁에 앉혔다.

“술도 한 잔 하셔야지, 노래만 하면 됩니까?”

총장 비서실장으로 여흥을 책임진 구창회 준장이 술 한잔을 따라 이 총무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에 이 총무는 짜증을 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왜들 이렇게 취했어. 마셔도 정신들은 좀 남겨놓아야지.”

천영성(千永星)위원장이 육군장성 출신이기만 했어도 뭐라고 끼어 들었을지 모른다. 그는 공사 1기 출신의 예비역 공군소장. 육군장성들에게 해ㆍ공군 출신의 선배노릇은 안 통한다. 천 위원장은 이날 덜 취했으나 분위기를 추스릴 만한 무게를 갖지 못했다.

이 총무가 마지못해 한 잔을 비우자 정 차장은 그를 끌고 소파에 누워 있는 김 신민당총무 옆으로 다가갔다.

“자, 여당총무 왔는데 정치 좀 잘해야지. 둘이서 손잡고 잘 할 수 있잖아. 정치를 잘 해줘야 바깥에서도 안 떠들거 아닌가?”

정 차장은 이 민정총무의 손을 끌어다 김 신민총무의 손위에 얹었다.

이 때 이총무는 겸연쩍음을 느꼈다. 군장성이 정치 얘기를 꺼내며 ‘여야총무의 제휴’를 주선하려는 듯한 몸짓을 한다는 데 거부감도 느껴졌다.

“이거 놓아, 왜 이래. 이렇게 인사불성인데…….”

그는 손을 뿌리쳤다. 그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우리 노래나 합시다”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러자 정 차장이 뒤따라가더니 이 총무의 목덜미 근처 셔츠를 움켜쥐었다. 정 차장의 취중의식은 여야총무이 제휴가 중요하지, 노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 총무를 김 신민총무쪽으로 끌었다.

이 총무는 목이 죄어짐을 느껴 “아야얏”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방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 때 한쪽에서 유리컵이 날아 벽에 부딪쳐 박살났다.

“뭣하는 짓들이야, 이게.”

민정당의 남재희 의원이 유리잔을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남 의원은 이 날 약속보다 1시간 가량 늦게 왔다. 그러니까 김 신민총무의 ‘똥별 발언’을 모르는 상태.

그런데 보고 있자니 육군 중장이 국회의원을, 그것도 여당의원의 대표인 총무를 구슬리는 모양새가 몹시 불경스러웠다. 그는 신문사에서 정치부장, 편집국장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 날 군 장성들이 국회의원에게 대하는 행동거지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자신이 질서 없는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중진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 자리의 주관자 박 총장은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 지난 78년 그가 10대의원일 때 박 총장은 그의 선거구에 있는 1공수여단장의 단장이었다.

술기가 오르기도 한 남 의원은 군 장성들에게 무언가 뼈대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연거푸 유리컵 2개를 맞은편 벽에 냅다 던졌다.

“손님으로 초대해 놓고 이따위 짓들이야.”

그러자 그 쪽에 앉아있던 이대희 소장이 “어, 이게 뭐야”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왼쪽 눈두덩에서 피가 흘러 하얀 와이셔츠에 떨어지고 있었다. 유리잔 파편이 튀어 눈꺼풀 위를 스쳤던 것.

순간 양말바람인 이 소장의 발길이 남 의원의 안면에 날았다.

“술을 먹으려면 제대로 먹어!”

피를 본 이 소장은 흥분했다.

앉은 자리에서 뒤로 벌렁 나자빠진 남 의원의 왼쪽 입술 안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피로 물든 셔츠를 내려다보며 이대희 소장은 씩씩거렸다. 태권도 4단인 이 소장의 반사행동에 얻어맞은 남재희 의원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얼굴은 금세 부어 올랐다.

다른 쪽에서는 이세기 민정당 총무를 정동호 육참차장 등이 우격다짐으로 쥐어 잡았다. 이 총무가 남 의원쪽으로 가려 하자 장성들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조치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박희도 총장과 김용채 국민당 총무가 일어나서 소리쳤다.

“이러지들 마, 다 술이 취했는데 정신들 좀 차려!”

그 때까지 말없이 지켜보던 박 총장은 사태가 점점 심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우선 장성들에게 조용히 자리에 앉을 것을 지시했다.

이런 소동 속에서도 술에 만취한 김동영 신민당 총무는 술상으로부터 좀 떨어진 소파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이 민정총무와 박 총장은 남 의원의 양옆으로 가 상처부위를 살폈다. 이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입술이 안쪽에서 찢어졌다. 발로 차거나 얼굴을 맞은 양쪽이 모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김 신민총무가 종업원의 등에 업혀 나간 뒤 박 총장은 먼저 남 의원에게 사죄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다 제가 부덕한 소치입니다. 용서하십시오.”

남 의원은 잠시 눈만 껌벅이며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눌렀다. 술기가 도는 데다 머리가 멍멍했으나 정신은 좀 들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섰다. 그러나 군 장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얻어맞은 것이 얼굴 깎이는 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민정총무도 남 의원 손을 잡으며 넙죽 엎드리듯 빌었다.

“아이쿠 남 선배, 이거 완전히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모셔 가지고 어떡하나.”

이 때 박 총장이 남 의원을 가격한 이소장에게 눈짓을 했다. 빨리 빌어서 위기를 모면하라는 뜻이다.

이 소장은 남 의원 옆으로 가지 않고 술상 맞은편에 앉아 허리를 굽혔다.

“순간적으로 제가 좀 격해져서 그만……죄송합니다.”

김 국민총무가 큰 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자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인데 화해하고 없었던 일로 하지.”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 나라는 시끄럽고 우리가 잘 해보자고 한 잔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없었던 일로 칩시다.”

남 의원과 이 소장은 악수를 했다.

“ 우리가 이대로 헤어질 수 있나. 화해술로 2차를 합시다.”

이들은 당초 자리했던 2층 방에서 아래층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 천영성 국방위원장과 박 총장 등은 공식회식 행사의 종료를 선언하고 귀가했다. 화해 술자리에는 이 날 활극의 직접 당사자들을 포함해 6,7명만이 참석했다.

“우리 손수건을 기념으로 교환합시다.”

두 사람은 피묻은 손수건을 서로 바꾸었다.

이 날의 사건은 이렇게 현장에서 화해로 끝났다. 그리고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지 않도록 함구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국회에서 일어났다. 모이기로 예정된 여야총무들이 제시간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국방위 회식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86년 3월 22일 낮 12시 반 국회 본회의장. 이재형(李載灐) 국회의장이 개의를 선포하며 뼈 있게 한 마디 했다.

“원내 교섭단체간의 의사일정 합의가 돼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의장이 직권으로 개의합니다.”

이날 신민당 의원들은 ‘회식사건의 진상규명이 없는 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당 확대간부회의의 결정에 따라 전원 본회의에 불참했다.

22일은 토요일. 김동영 신민당 총무는 주말 이틀간 주독(酒毒)을 풀고 월요일인 24일 국회 내 야당총무 집무실에 출근했다.

“21일 밤 회식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집에 가고 없었어. 민정당 사람들하고 군 장성, 저 (저희 )끼리 치고 받고 한 긴데 멀 우리가 나서서 대리전 할 필요가 있나?”

김 총무는 신민당 의원들이 이 날부터 본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무언가 부딪힌 듯 멍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 이건 말이지, 그 날 밤 만취해서 난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는데, 밤에 화장실 가다가 문에 받힌 기다. 내가 누구한테 얻어맞겠나.”

그는 당 간부와 기자들에게 폭행 당한 사실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활극현장에서 인사불성으로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날 오후 본회의에 앞서 열린 국방위원 간담회.

천영성 국방위원장은 회식사건으로 인한 불똥을 빨리 꺼야한다고 역설했다.

“사석인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거론돼 좋을 게 없습니다. 우리가 동료의원들을 설득해야겠습니다.”

이어 이기백(李基百ㆍ육사11기)국방장관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변대에 섰다. 그는 우선 머리부터 조아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겠습니다. 군 간부들의 불미스런 행동으로 물의가 빚어진 데 대해 깊이 사과합니다.”

사건 당일 군 장성에게 얻어맞은 남재희 의원도 당사자들끼리 일단락 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술좌석의 일입니다. 즉석에서 화해했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맙시다.”

그러나 신민당 의원들은 그 정도 사과에 양해할 수 없었다.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의원들이 더 흥분했다.

“그런 자리는 결코 사석(私席)일 수가 없어요. 더구나 초청 받은 사람을 쥐어 팬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낱낱이 진상을 밝혀야 돼요. 육군의 누가 국회의원 누구를 깠는지…….”

신민당은 이 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국방위 회식사건을 정치문제화하기로 공식 당론을 전했다. 이로 인해 4월 1일과 4일 국방위는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업무보고 때 이 사건을 놓고 일대논란을 벌인다. ‘12.12’ 이후 위세 높던 군 수뇌가 국회에 불려와 곤욕을 치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4월 1일 오후 3시 국방위 회의실.

천 국방위원장이 개의선포와 함께 이 국방장관의 보고를 듣겠다고 의사일정을 밝혔다. 그러자 야당의석에서 이의를 표시하는 ‘의원장!’ 소리가 합창처럼 터져 나왔다.

▲ 허경구(許景九) 의원(신민) = 이장관이 불편하더라도 회식폭행문제에 대한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해야 합니다.

▲ 천위원장 = 이 문제는 이중재(李重載)의원 외 89명의 이름으로 국회에 진상조사 요청이 있었고 운영위에 계류 중입니다. 장관이라 할지라도 그 진상은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아닙니까?

▲ 김동영 의원 = 그 날 회식에 참가했던 사람으로 뒤에 ‘그 광경’은 보지 못 했습니다……. 내가 군의 총에 맞아 심지어는 죽었다, 또는 귀아래로 스쳐갔다더라는 전화가 우리 가족들한테 온 것만도 30통이 넘습니다……. 군인 일부가 정치에 관여해서 지탄받는데, 군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사이에 충돌사건이 있었다는 데서 유언비어도 많이 돌아다니고…….


이 날 회의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국방위는 결국 4일 다시 회의를 갖기로 하고 어렵사리 산화됐다.

그러나 4일 속개된 회의에서도 이 장관의 보고는 신민당측 제지로 중단됐다.

▲ 이 장관 = 취중에 우발적으로 유감스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나 의도성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화해하고 없었던 일로 했던 것입니다.

▲ 김동영의원 =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것은 국민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모총장이 그 자리를 주재했으니 총장이 이야기해주세요.


그래서 국방위 개의 때 인사만 하고 돌아갔던 박희도 총장이 다시 불려왔다.

▲ 박 총장 = 이 문제는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의원님과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겠습니다. 그 자리는 개인적으로 대화하다가 우발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사석으로 보아야 합니다.

▲ 박종률(朴鍾律)의원(신민) = 손님이 주법(酒法)을 무시하고 실수했다고 해도 손님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인간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항간에는 또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데 대통령이 뭐라고 했다더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어요. 이런 것도 듣기 거북스런 얘기들입니다.

▲ 유근환 의원(민정) = 그 때 술마시는 수준이 안 맞아 나는 도중에 일찍 돌아갔어요. 그러나 동양의 미덕상 술 취해서 주정한 것을 나중에 따지는 일은 없었지 않습니까?

▲ 이기택(李基澤)의원(신민) = 아마 정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국회의원들이 많은 국민을 접촉하고 국민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더 잘 알 겁니다. 지금 정부나 여당입장에서는 이 사건을 마치 집안문제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알고 짚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니까 정치인들이 겁을 내 할 말도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국회가 정부의 시녀라는 모욕적인 얘기도 들입니다.

▲ 박 총장 = 이번 일은 사석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사석에서 취중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국민과 의원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장관께서도 보고한 바와 같이 육군에서 응분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종률 의원 = 국방위의 장소를 식당으로 옮기고 음식이 나온 것만 다르지 그것도 국방위 간담회와 똑같지 않습니까? 사석이 아니지요.

▲ 이기택 의원 = 회식사건의 주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재희 의원이 상황을 직접 설명해주면 이해가 잘 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답변을 들었으면 합니다.


국회는 신민당측의 주도로 이장관과 박총장의 사과를 받고 그 날의 폭행장성에 대한 응분의 조치를 요구하는 선에서 끝났다.

육군은 결국 정동호 참모차장을 전역시키고 이대희 소장은 전방부대로 좌천시켰다.

80년 5월 광주 시민항쟁의 무력진압에 이어 또 한차례 민군(民軍)관계의 얼룩으로 남은 국방위 회식사건은 결국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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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선 교수는 국방위 회식사건 처리 여하가 대단히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하였는데, 책에서도 언급된 대로 정동호 참모차장은 바로 예편되었고, 이대희 소장은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와 같이 신속하게 대처하였는데 나는 그 조치에 대해 전 대통령이 공정했다고 평가하는 글도 썼고 발언도 했었다. 나에게는 전혀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다는 것을 꼭 첨부해서 말해두어야 하겠다.

대학강의 같은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까다로운 이론이지만 민주화(民主化)와 자유화(自由化)는 비슷한 것 같고 또 항용 혼용되지만 엄밀히 따져 다른 것이다. 민주화는 쉽게 이야기하여 3권분립과 선거제도 문제다. 정치발전에 있어서 민주화와 자유화가 병진하기도 하지만, 민주화는 되는데 자유화가 안되는 경우, 자유화는 되는데 민주화가 안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약간 자유화는 되는 것 같지만 민주화는 요지부동으로 안한다. 1956년 헝가리 의거가 있은 헝가리는 동유럽에서는 가장 많이 자유화되었었다. 그러나 민주화는 공산권 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월항쟁과 6. 29선언 후 민주화는 성큼성큼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정권때 자유화는 지지부진했으며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에서도 자유화는 아직 미숙한 상태다. 국가 보안법의 남용 같은 게 그 대표적 예이다.

윤하선 교수가 국방위회식사건 처리의 귀추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을 때 그가 민주화 문제까지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는 안되더라도 권위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가느냐, 조금은 부드러워져 약간이나마 자유화의 낌새를 느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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