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詞] 시인, 땅끝에 잠들다
[弔詞] 시인, 땅끝에 잠들다
민중서정시인 故 김태정을 추모하며
2011.09.18 18:42:00
[弔詞] 시인, 땅끝에 잠들다
시인 김태정(1963~2011)의 부고를 들은 건 문자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작가회의에서 보낸 단체 발송용 문자였다. 시인 김태정 회원 별세, 해남 제일 장례식장, 발인 9월 8일.

처음에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껏 김태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집 한 권을 수년전에 내었다는 사실밖엔 없었으니까. 시들이 참 단단하고 단아하여서 마음이 땡볕 같은 날에 꺼내보는 시집이었다.

그녀의 살아생전 유일한 한 권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에 소개되어 있는 그녀의 약력은 이렇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雨水」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태정의 시들은 어느 하나의 경향에 가둬놓는 일이 어리석을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동시대 여느 시인들과는 다른 어떤 지점을 그녀가 선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인 정우영은 그녀의 시집 해설에서 그녀의 시를 '민중서정시'라 명명하고 있다.

개천 건너엔 여직 환한 공장의 불빛/점심 먹고 저녁 먹고/실밥을 따고 아이롱을 달구는 당신/늦게 나온 별처럼 깜빡깜빡/고단한 두 눈이 졸음으로 이울고/숨차게 돌아가는 미싱 소리에 이 밤은/끝도 없을 것 같아도/오늘밤 무슨 불꽃놀이라도 있는지/잔치라도 한판 걸게 벌이려는지/물 위에 드리워진 불빛을 밟고/가만 가만히 다가가서는/당신의 창가에서 펑펑 터지는 별들/그러나 당신은 아랑곳없고/미싱은 숨차게 돌아가고/실밥은 하나 둘 쌓여가고//보세요 당신/그 거친 손에서 달구어진 아이롱처럼/이밤사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들을/따버린 실밥들이 하나 둘 쌓여갈 때마다/활발해지는 이 어둠의 풍화작용을/보세요,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 당신/누구의 땀과 폐활량으로 오늘밤/하늘의 사막에 별이 뜨는 지

- 「해창물산 경자언니에게」중에서

절창이다. 시인 정우영의 해설처럼 "노동의 가치가 이처럼 다사롭게 울리는 시도 달리 찾기 어렵"겠다. 80년대 노동시의 생경함과 90년대 서정시의 공허함과 2000년대 환상시들의 난해함에서 그녀의 시들은 멀찌감치 비켜서 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경자언니'들이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고 노동을 하고 있질 않은가. 그녀의 다른 시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김태정의 시에는 저 박노해의 절절함과 허수경의 관능미가 편편에 녹아 있다.

▲ 故 김태정 시인
그런 김태정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올 봄의 일이다. 63년생이라면 올해로 마흔 아홉인데 참으로 단출한 약력이다 싶어 나는 그녀의 시를 읽다 문득문득 검색 창에 <시인 김태정>을 쳐보곤 하였다. 첫 시집 출간에 관한 기사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김태정 시인의 근황을 알 게 된 건 이원규 시인이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아프다. 많이 아프다. 지난 연말 암 판정을 받았지만 이미 늦었다. 얼마나 홀로 고통을 견뎌왔으면 이미 골수 깊숙이 암세포가 다 번지고 말았을까. 대학병원에서는 3개월 못 넘길 것이라고 선고했지만 김태정 시인은 지금 외딴 농가에서 홀로 견디고 있다. "뭐 하러와. 그냥 조금 아프네. 난 괜찮아. 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하며 힘없이 웃는 그녀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보일러기름이나 떨어지지 않았는지 둘러볼 뿐이었다. 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에겐 죽음이 이토록 가까운 것일까."

- 이원규, <땅끝 해남의 시인들……김남주 고정희 그리고 김태정>, 경향신문 2011년 4월 13일, 중에서

서울 토박이인 그녀가 훌쩍 땅끝마을 해남으로 떠난 것은 2004년의 일이라 한다. 그녀의 시들에선 해남에서의 생활이 간단치 않은 언어로 녹아 있다. 시인 정우영이 명명한 '민중서정시'의 많은 시들이 그곳에서 씌여진 듯하다. 아쉽게도 나는 그녀와 이승에서의 인연이 없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녀의 빈소에 찾아가질 못했다.

이상한 가을이다. 분명히 9월은 가을이라 배웠는데 연일 폭염주의보다. 이 가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셋이나 잃었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 무쇠팔 투수 최동원, 그리고 '민중서정시인' 김태정. 연일 매스컴에서는 장효조의 기록적인 통산타율과 최동원의 전대미문 한국시리즈 4승을 보도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단 한 줄, 내 사랑하는 시인이 이 세상을 등졌다는 기사 하나가 없다. 너무나 유치한 고민이라고 해도, 시샘이라고 해도, 이 땅의 시인들 설 자리가 땅끝마을 저 바깥으로 자꾸만 내몰리는 것 같아 나는 자꾸만 서러워진다. 시인이 내려놓고 간 계절의 모퉁이에 나는 내 방식대로 조사(弔詞)를 쓴다. 시인이여, 부디 저 세상에서는 편히 쉬기를.

이상한 가을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죽었다
무쇠팔 최동원도 죽었다
그리고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김태정도 죽었다
9월이었다

김태정의 시를 읽다가
마음이 먹먹해져
느리게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 저녁이었다
티브이를 켰는데
오래된 화면에서
마운드엔 최동원이
홈플레이트엔 장효조가
서 있었다
1984년의 가을이었다
이상한 저녁이라고 생각했다

글_시인 박진성_2001년 『현대시』등단. 시집 『목숨』, 『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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