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보도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전쟁 보도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한쪽 눈 잃은 종군기자, 시리아에서 숨지다
2012.02.23 14:13:00
"전쟁 보도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시리아의 유혈 사태는 종파 간 내전으로 번지며 계속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부상자 치료를 위해 하루 2시간의 휴전을 시리아 정부와 반군 양측에 제의했지만 어떤 응답도 없는 상태다. 22일(현지시간) 시리아 전역에서는 60여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인 시리아 중서부 홈스에서도 포격은 이어졌다.

이날 홈스를 겨냥한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은 바바 아므르 지구에 설치된 임시 언론 취재센터도 비껴가지 않았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 베테랑 종군기자 1명과 프랑스에서 온 젊은 사진기자 1명이 이 포격으로 숨졌다. 현지 활동가들은 최소 2명의 서방 기자들이 추가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신의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는 아이티와 아랍의 봄 시위를 취재했고 언론상 수상경력도 있는 장래가 촉망받는 인물이었지만 28세로 생을 마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언론인들이 있지 않았다면 대량 학살은 훨씬 심했을 것"이라면서 "이제 충분하다. 시리아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비난했다.

<선데이타임스>의 마리 콜빈은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면서 한쪽 눈을 잃은 이후에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만을 골라 다닌 인물이다. 향년 56세.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그들의 죽음은 홈스 주민들이 겪는 일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면서 "매일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시리아인들의 고통을 상기시켜줬다"고 평했다.

콜빈은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미 국적자로 20년 이상 특파원 생활을 하며 코소보, 체첸, 동티모르, 리비아에서 취재 활동을 했다. 지난해 숨진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도 인터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재능있고 존경받던 특파원"이라며 그를 기렸다.

콜빈의 고국인 미국도 시리아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잔혹한 행위의 또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날 국무부와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시리아가 더 무장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추가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시리아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선데이타임스>의 편집자 존 위드로우는 <BBC> 방송에 "콜빈은 특별한 인물"이었다며 "그가 중요하게 여겼던 전쟁에 대해 보도해야 한다는 열정이 그를 이끌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콜빈을 전쟁터로 이끈 '열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의 답은 2010년 11월 영국 세인트브라이드 성당에서 그 자신이 했던 연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콜빈의 연설 전문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22일(현지시간) 시리아 홈스에서 숨진 <선데이타임스>의 종군기자 마리 콜빈(1956~2012). 이집트 혁명의 심장 타흐리르 광장에서. ⓒAP=연합뉴스

"우리의 임무는 이 끔찍한 전쟁을 보도하는 것입니다"

여왕 폐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21세기의 전쟁을 보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언론인들과 그 조력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모임에서 여러분께 연설할 기회를 갖게 돼 영광입니다. 저는 제 직업 경력의 대부분을 종군기자로 보냈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소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선에서의 객관적 보도에 대한 필요는 더욱 더 강렬했습니다.

전쟁을 취재한다는 것은 혼돈, 파괴, 죽음으로 찢겨진 장소에 가 사실을 증명하려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군대와 부족(部族), 테러리스트들이 충돌할 때 빚어지는 프로파간다(선전)의 모래폭풍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물론 위험한 일입니다. 스스로에게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트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국방부가 제공하는 영상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또 '스마트 폭탄'과 '제한적 공습'을 묘사하는 온갖 '살균'된 언어들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거의 동일한 상태입니다. 폭발로 파여진 구덩이들, 불탄 집들, 무수한 시체들.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와 남편을 위해 울고 있고 남성들도 아내와 어머니, 자식을 위해 웁니다.

우리의 사명(mission)은 이런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편견 없이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감당해야 할 위험의 수준이 기사의 가치에 비춰 합당한가? 용기란 무엇이며, 또 무엇이 만용인가?

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으며 어려운 선택과 직면하게 됩니다. 때때로 그들은 가장 고귀한 것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과 지원 스태프 49명을 기립니다. 우리는 또한 상처입고, 불구가 되고, 납치돼 몇 달씩이나 인질로 잡히기도 한 전 세계의 언론인들을 기억합니다. 종군기자가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전쟁터의 언론인들은 제1의 타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리랑카 내전에서 매복 공격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저는 기자의 접근이 금지된 북부 타밀 지역에 갔고 아직 보도되지 않았던 대재앙과도 같은 인권 유린 사태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경계선을 다시 몰래 넘어올 때, 한 병사가 저에게 유탄을 발사했고 파편이 제 얼굴과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주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친구인 사진가 조앙 실바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무력이 횡행하는 아프간의 마을과 들에서 사람들이 느껴야만 하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프간에서는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폭발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되며 이는 악몽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저와 커피를 마신 이틀 후, 조앙은 지뢰를 밟아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스스로에게 물어 왔거나 지금 묻고 있을 겁니다. 그게 목숨을 걸 만한, 비통한 일과 손실을 감당할 만한 일인가? 그렇게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저 또한 부상당했을 때 이런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머리기사 제목을 '마리 콜빈, 이번에는 너무 멀리 나간 걸까?' 이렇게 달았더군요.

그러나 당시에건 지금에건 저의 대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당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런 경험들의 대가를 견뎌내야 했던 친구와 동료, 가족들이 와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또한 막대한 재정적, 감정적 대가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특파원들을 계속 전쟁터에 보내 기사를 쓰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전쟁터로 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도합니다. 대중은 우리 정부와 우리 군대가 우리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거친 첫모습을 고국에 보냅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상과 특히 민간인들에게 일어난 잔혹한 행위들을 폭로함으로써 차이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 직업의 역사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첫 종군기자는 <더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입니다. 그는 영국이 주도한 연합군이 러시아군의 침입에 맞서 싸운 크림전쟁[1853∼1856]을 취재했습니다.

군인들로부터 '빌리 러셀'이라고 불린 그는 부적절한 장비 상태와 부상자에 대한 명예롭지 못한 처우, 특히 그들이 본국에 송환됐을 때의 처우, '경기병대의 돌격'으로 유명한 영국군의 멍청한 행위가 최고 지휘부의 무능함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 본국에서 대중들의 분노를 크게 폭발시켰습니다. 그의 보도는 전쟁 보도에서의 일대 약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전쟁은 초급 장교들이 언론사에 파견돼 불러주는 방식으로 보도됐습니다.

빌리 러셀은 열린 마음과 망원경, 수첩, 그리고 브랜디 한 병을 가지고 전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 전쟁터로 갈 때, 타자기를 들고 갔고 텔렉스 타전법을 배웠습니다. 최전선에서부터 전화나 텔렉스 기계를 쓰기까지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전쟁 보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위성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비디오 카메라와 방탄조끼를 들고 전쟁터로 갑니다. 아프간 서남부에서도 위성전화기 버튼만 누르면 기사는 송고됩니다.

매일 24시간 뉴스가 흘러나오고 블로그와 트위터 메시지가 나오는 시대에 우리 언론인들은 있는 장소가 어디든지 항상 '대기중'입니다. 하지만 전쟁 보도는 여전히 동일한 정도로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현장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총에 맞는 현장, 누군가가 당신에게 총을 쏘는 현장에 가지 않고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어려움은, 정부가 됐든 군인들이 됐든 길거리의 사람들이 됐든, 사람들이 우리가 보낸 뉴스가 지면이나 웹사이트, TV화면에 나올 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믿을 만큼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고 있음을 믿기에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일한 위험에 처하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한 운전기사와 통역, 현지 코디네이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차이를 만들 수도,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최전선의 언론인들 못지않게 진실을 추구하다가 숨진 그들을 기립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신념을 지켰습니다. 우리의 일이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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