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이 룸살롱을 못 끊는 이유는?
삼성 임원이 룸살롱을 못 끊는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부경복의 <부패 전쟁>
2011.10.28 16:05:00
삼성 임원이 룸살롱을 못 끊는 이유는?
'아, 이거 내가 찜해뒀던 제목인데….'

부경복이 쓴 <부패 전쟁>(프리스마 펴냄)이라는 책을 펼쳤을 때,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첫 번째 장(章)의 제목이 '룸살롱 비즈니스의 나라'다. 이런 제목의 기획 기사를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전에 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내기 위해 변호사 김용철이 일하는 빵집으로 매일 출근하면서 삼성 그룹 수뇌부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듣고 기록하던 무렵이다.

골프장·룸살롱 없이는 비즈니스 못하는 나라

그때, 참 착잡했다. 아등바등 노력해서 대기업 임원이 됐는데, 기껏 하는 게 '로비'라니.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서 잘 파는 게 기업의 역할이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이런 역할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임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업에서 윗자리로 갈수록 로비가 주된 업무다. 이런 업무가 이뤄지는 장소는 골프장과 룸살롱이다. 물론, 삼성만 이런 것은 아니다.

기자가 예전에 한 벤처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때도, 자주 듣던 말이 '정치'였다. 회사에서 정말 중요한 결정은 결국 정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게다. 기술적인 문제도 다 정치로 해결된다고 했다. 실무 능력은 젊은 시절에만 중요하고, 조금 나이를 먹으면 '정치력'이 승진의 관건이라고 했다. 자신이 정치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자부심도 대단했다.

이들은 걸핏하면 자신의 넓은 인맥을 과시했다. 자잘한 규정이나 원칙을 따지는, '좀스러운' 태도를 비웃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이들이 말하는 정치력은 사회과학 책에 나오는 개념과 다르다. 의사 결정권자(이른바 '갑')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 한마디로 로비하는 능력이다. '로비 따위엔 도무지 소질이 없어서 공과 대학에 진학하고 엔지니어가 됐는데, 이게 뭐람' 싶었다. 그래서 직업을 바꿨다.

김용철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시절이 생각났다. '왜 한국에서 비즈니스는 늘 룸살롱 아니면 골프장에서 이뤄져야 할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골프장과 룸살롱을 빠뜨린 비즈니스를 생각할 수 없기에, 한국에서 여성은 늘 비즈니스에서 소외된다. 아니면 '명예 남성'이 되는 길이 있을 뿐이다. "저는 그런 곳에 가기 싫습니다" 하고 말하는 남성 역시 여성과 다르지 않다.

기자처럼 아예 직업을 바꾸거나, 회사에서 승진을 포기하고 지내다 머지않아 책상이 빠지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적어도 기업 조직 안에선 설 자리가 거의 없다.

월급 300만 원 회사원의 하룻밤 술값은 100만 원

<부패 전쟁>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룬 책이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영 대학과 같은 대학교 법과 대학을 차례로 졸업"했으며, "법과 대학 3학년 재학 시 사법 시험에 합격"했고,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는 부경복의 문제의식은, '룸살롱 비즈니스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큰 따옴표 안의 내용은 책에 실린 저자 프로필 내용을 글자 하나 안 바꾸고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 부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대형 법률 사무소"(역시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다!)에서 일했던 변호사답게, 그가 묘사하는 '룸살롱 비즈니스'의 현장은 아주 생생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처음 룸살롱이라는 곳에 가본 것은 1999년 입사 축하연 자리였다. 당시만 해도 내가 다닌 첫 직장은 조건에 맞는 예비 변호사에게 따로 연락해서 입사를 제의하고 입사 의사를 확정하면 축하연을 열어주는 호사를 마련해주곤 했다. 룸살롱의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다.

(…) 한번은 룸살롱 방에 앉아 있는데 옆방에서 낯익은 레퍼토리의 가요들을 익숙한 순서대로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담에게 '옆방에 선배 형이 와 있네요' 했더니 얼굴 표정 하나 안변하고 그분은 안 오셨단다. (…) 룸살롱 마담들이 자신의 손님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고 손님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 당시만 해도 그리 흔하지 않던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이유로 팔이 비틀려 친구들에게 '좋은 곳'에서 술을 사야 했다. 내 팔을 비튼 녀석들은 평범한 회사원, 그야말로 사원들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마담과 녀석들의 친밀도였다. 매주 출근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서로 확인하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 술값이 하루에 적어도 100만 원은 넘을 것이 확실하고, 녀석들 월급은 많아 봐야 300만 원, 도저히 계산이 안 맞는다. 이곳이 회사 비용으로 회사 거래처 사람들을 접대하는 단골집이라는 것을 안 것도 역시 한참 뒤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접대 노력은 눈물겹다. 그만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경제의 곳곳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 부패 행위로 오염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부패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제거될 때 기존과는 다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고, 기업 간의 경쟁력 우위도 현재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받는 뇌물'은 욕해도, '주는 뇌물'은 비난 못한다?

▲ <부패 전쟁>(부경복 지음, 프리스마 펴냄). ⓒ프리스마

인용한 내용에서 드러나듯, 부경복은 윤리라는 관점에서 룸살롱 비즈니스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김앤장 변호사 출신답게 '기업 경쟁력' 관점에서 비판한다. 부패로 의사 결정이 왜곡되면, 결국 기업 경쟁력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이 대목에선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도 생각이 같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이건희는 '기업 부패'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한다. 지난 6월 삼성테크윈 임직원의 내부 비리가 삼성그룹 감사팀에 적발됐을 때 이건희는 진노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그룹은 내부 부정 부패를 해소하기 위한 '빅 배스(Big Bath, 대규모 정화 운동)'에 나선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내부 정화 움직임이 외부로 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요컨대 삼성 직원이 협력 업체로부터 접대를 받다 적발되면, 호된 징계를 당한다. 반면 삼성 임원이 권력층을 접대하는 일,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또는 부도덕한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떤 징계가 이뤄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설명이 없다. 과거 변호사 김용철이 삼성그룹의 정·관·법조·언론계를 향한 불법 로비를 낱낱이 고발했고, 그 결과 이건희가 잠시 경영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점을 지적한 흥미로운 칼럼이 있다. <이데일리> 기자가 쓴 것인데, <부패 전쟁>에도 소개돼 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삼성의 이런 '방침'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 뇌물을 주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뇌물을 받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다. (…) 이건 이중적이거나 모순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 결과다. 필요한 경우 뇌물을 주긴 하되 받지는 않는다는 것, 그게 바로 깨끗한 조직 문화라는 원칙이다. 뇌물을 주는 것은 비도덕적이지만 조직에 이롭고, 뇌물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이지만 조직에 해롭다는…."

한마디로 궤변이다. "뇌물을 주는 것은 비도덕적이지만 조직에 이롭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조직'은 삼성그룹을 가리킨다. '삼성에게 이로운 행동이 사회엔 해롭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빠져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뇌물을 주는 것'은 삼성에는 이로울지 몰라도 전체 사회에는 몹시 해로운 행동이다.

사회는 이런 행동을 규제하고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데일리> 칼럼 식이라면, 폭력, 사기 등의 범죄가 행위 당사자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았을 때 이를 처벌하거나 비난할 근거가 사라진다.

미국 정부가 해외부패방지법 꺼내든 이유

철저히 기업 경쟁력 관점에 서서 논의를 전개하는 부경복은 <이데일리> 칼럼 식의 논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역시 비판적이다. <부패 전쟁>의 부제가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없는 이유"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업이 '주는 뇌물'까지 단속하고 처벌해야만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유는 명료하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열린 시장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미국 애플과 갤럭시S를 파는 삼성전자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게 좋은 예다. 대부분의 국가가 마찬가지다.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기업은 해당 국가 토종 기업과 사활을 건 경쟁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이들 토종 기업이 해당 국가 정부와 온갖 비리를 고리 삼아 긴밀히 유착돼 있다는 걸 잘 안다.

앞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 입장에선 이런 유착 관계가 일종의 불공정 행위로 비친다. 기술도, 마케팅도 모두 뛰어난데, 단지 권력층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을 빼앗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글로벌 기업이 꺼낸 무기가 '투명성', '공정성'이다. 룸살롱, 골프장에서 음습하게 만나 뒷거래하지 말고, '페어플레이' 하자는 게다.

이걸 반박할 수 있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뒤에서는 욕해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다. 글로벌 기업은 이런 점을 파고든다. 이미 글로벌 기업,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미국 정부는 '부패 방지'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이다.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은 1977년 제정되었으니 2011년 올해로 34년이나 된 법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최근 3년간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기소 건수가 과거 20년간의 전체 건수의 세 배가 넘는다. 의도적인 정책적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치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 2008년은 미국이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기업들이 자국 내와 세계 시장에서 모두 어려움에 처한 시점과 일치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다른 국가보다 미 당국의 기업 부정부패 감독이 공격적인 게 사실이라며 일부에서는 금융 위기 이후 자국 기업과 경쟁하는 해외 기업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뇌물'이라는 사다리, 선진국은 이미 걷어찰 준비 끝냈다?

미국의 간판 기업인 애플과 경쟁하는, 심지어 아이폰 신제품의 한국 내 판매 금지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한국 정부 및 법원을 상대로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면, 미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과거와 달리, '주는 뇌물' 역시 삼성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부경복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로, 이런 상황을 설명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말인데,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된다. 선진국은 지구 환경을 마구 오염시킨 대가로 경제를 키웠다. 개발도상국이 뒤늦게 경제를 키우려 하면, 환경오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족쇄를 건다. 그때는 선진국 기업들이 친환경 기술에 상당한 투자를 해둔 상태다. 더 이상의 환경오염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므로,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요구하는 질서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환경오염'이라는 사다리를 개발도상국이 타고 올라가려 할 때, 이미 위에 올라간 선진국이 사다리를 걷어찬 셈이다.

이런 논리가 고스란히 부패 문제에 적용된다는 게 부경복의 생각이다. 선진국 기업 역시 과거에는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정부와 유착해서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패 문제가 또 하나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진국 기업은 사다리를 걷어찰 준비를 했다. 권력층에게 '주는 뇌물'을 단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과 '맞짱'을 뜨는 삼성전자 역시 사다리 위에 있는 기업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라는 말이다. 삼성전자 역시 사다리를 걷어찰 준비를 끝낸, 다른 글로벌 기업과 발을 맞춰야 한다는 게 부경복의 생각이다. 계속 사다리를 붙잡고 있다가는, 넘어지는 사다리와 함께 쓰러질 수 있다.

부경복은 삼성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삼성의 성공을 뿌듯해한다. 빨리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는 제안이 다급한 어조인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삼성 경영진은 '주는 뇌물'이라는 사다리를 과연 걷어찰 용기가 있을까. 그의 전망은 불안해 보인다. 이 책의 부제가 "삼성이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없는 이유"인 것을 보면 말이다.

지난해 나온 <삼성을 생각한다>가 삼성 직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면, 최근 출간된 <부패전쟁>은 삼성 임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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