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주자들이 봐야 할 책!
2012년 대선 주자들이 봐야 할 책!
[철학자의 서재]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2012년 대선 주자들이 봐야 할 책!
1. 세계 인민들의 현존의 적, 금융세계화와 자유화

역사를 통한 경제와 정치 및 사회에 관해 철학적인 사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철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다. 존재론과 인식론의 영역을 더군다나 형이상학까지 들먹이면서 천착하느라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구체적인 삶을 저버리고 그야말로 사유의 깊은 놀이 속에 빠져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철학을 위한 철학 공부가 아니라, 삶을 위한 철학 공부라면 부득불 사상의 영역으로 잠입해 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이란 철학과는 달리, 어떤 방식으로건 심하게 고통을 받은 나머지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태세를 취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민 모두가 진정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 아닌가.

이같이 사상을 형성하고자 할 때, 개개인의 특수한 삶의 처지들을 힘껏 파고들어 헤아릴 수 있어야 함과 동시에 현존의 세계사적인 흐름을 전체적으로 그 뼈대에서부터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존의 세계사적인 흐름을 전체적으로 그 뼈대에서부터 파악한다는 것은 우선 현존의 세계에서 지배적인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개개 국가와 그 특정한 국가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개개 인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 상황을 여전히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세계사적인 위력은 과연 무엇인가?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입각한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인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체제의 지배가 아닌가.

▲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펴냄). ⓒ길
더욱이 세계 금융 자본의 '현금지급기'로 불리면서 이른바 금융파생상품시장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한국이야말로 금융체제 중심의 세계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너무나도 강력하게 소용돌이치는 '돈 놓고 돈 먹기'의 거대한 노름판에서 한국 인민의 삶이 과연 정상적일 수 있을까. 무슨 수단을 동원하든 간에 오로지 국가사회적인 부를 형성하기만 하면 만사오케이라는 식으로 모든 정치적인 역량들이 총동원되는 느낌이다.

지난 대선 때에 '경제 살리기'라는 다섯 글자로 대권을 장악한 것이 실제의 인민의 자유롭고 열린 사회정치적인 삶에 어떤 치명적인 부작용들을 가져왔는가를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의 대선 판도 역시 인민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그에 따른 이념과는 아무 상관없이 경제 중심으로 판가름이 날 판국이다. 차이가 있다면 복지가 이슈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복지 문제조차 자칫 서민들의 표를 의식한 사탕발림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FTA가 아닌가. 2008년 미국은 이러한 금융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강력한 드라이버의 부작용을 견디다 못해 자그마치 미국 총생산의 2년 치에 해당하는 신용경색을 가져왔었다.

그 세계사적인 파급효과가 현재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월가 점령 운동에서 비롯된 99:1이라는 부의 성장에서의 차별을 잊을 여유가 전혀 없다. 결국은 수많은 노동자 계급의 하층 인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교란에 의한 부작용의 엄청난 하중을 목숨을 내걸고 견뎌야 하는 계급은 바로 늘 생존에 급급한 노동자 하층 인민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핵심은 절대 다수의 인민들이 누리는 현존의 삶을 가능케 하는 뭇 가치들의 정의로운 분배에 있다. 가장 시급한 정의는 나의 이득 때문에 남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뭇 가치들이 분배되도록 법과 제도를 꾸리고 시행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이러한 정의로운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자 하는 법과 제도이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신자유주의에 의거한 금융세계화의 자유화임은 물론이다.

2. <거대한 전환>의 의도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세계화의 자유화는 최근의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칼 폴라니가 1944년에 출간한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이다. 이 책은 다음과 말로 시작된다.

19세기 문명은 무너졌다. 이 책은 이 사건의 정치적 ‧ 경제적 여러 기원들 그리고 그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룬다. (…)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는 것은 네 개의 제도였다. 첫 번째는 유럽강대국들 사이에 장기간의 파괴적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한 세기 동안이나 방지한 세력 균형 체계(balance-of-power systems)였다. 두 번째는 세계 경제라는 19세기의 독특한 조직체의 상징이었던 국제 금본위제(international gold standard)였다. 세 번째는 전대미문의 물질적 복지를 낳았던 자기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었다. 네 번째는 자유주의적 국가(liberal state)였다.

이 제도들 중 두 개를 경제 제도, 다른 두 개를 정치 제도라는 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두 개는 국내 제도, 다른 두 개는 국제 제도라는 식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우리 문명의 역사는 이 네 개의 제도들 사이에서 그 대략적인 특징이 결정되었던 것이다.(93쪽)

이를 바탕으로 해서 볼 때, 폴라니가 이 책을 통해 분석하고 설명하는 주된 내용은 바로 '백년 평화'라는 제1장의 제목에 해당하는 19세기 문명의 정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책 제목으로 선택한 '거대한 전환'은 바로 19세기 문명이 붕괴되고 새로운 20세기 문명이 시작되는 것을 일컫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폴라니는 '19세기 문명'을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결정적인 것은 금본위제이고,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모든 제도들을 동원 ‧ 희생했으나 결국 금본위제 파탄에 이르러 19세기 문명이 몰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93~94쪽 참조) 이와 관련해서 위 네 개의 제도들 간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19세기 체제가 나오게 된 원천이자 모태였던 것은 자기조정 시장이었다. 19세기라는 독특한 문명이 발흥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자기조정 시장의 출현이라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란 이 국내의 시장경제 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또 세력 균형 체제란 이 금본위제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국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이었다. 결국 19세기 문명의 제도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는 시장경제를 통제하는 여러 법칙에 있었던 셈이다.(94쪽)

'자기조정 시장'의 탄생, 즉 사회적인 일체의 규제로부터 풀려나버린 세계사적인 특이한 사건이 세계 인민들로 하여금 팔아서는 안 되는 토지(자연), 노동(인간), 화폐(사회계약)를 상품으로 만들어 이른바 '악마의 맷돌'에 넣어 갈아버리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폴라니에 따르면, 그러한 '자기조정 시장'이 생겨나긴 했지만 폴라니가 살아 있을 동안 실제로 정확하게 가동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국가와 시장 간의 길항작용을 거치면서도 결국에는 사회 조직을 무너뜨리는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폴라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보호 조치이든 취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을 망가뜨리고 산업의 일상적 작동을 혼란에 빠뜨렸기에 사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시장 체제의 발전 과정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 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94쪽)

핵심은 자기조정 시장이 결코 실현될 수 없는데도 실현하고자 하면 할수록 파괴를 향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도 19세기 동안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함으로써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과 (인간과 자연으로 구성된) 사회 간의 대 격돌이 필연적이라는 것, 이 격돌을 통해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따라서 자기조정 시장은 자신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불가능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3.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미국의 록펠러 가문이 결합하여 세계금융자본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축을 형성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그들의 재산은 아예 상상을 불허할 만큼 엄청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서 칼 폴라니가 제시하는 개념은 '오트 피낭스(haute finance)'이다. 역자인 홍기빈 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이 오트 피낭스는 "주어진 경제 시스템 내에서 경제활동의 자금을 중개한다는 보통의 금융 업무의 수준을 넘어 그러한 시스템을 아예 창출하거나 변동하는 것에서 큰 수익을 얻는 높은 수준의 대형 금융 자본의 활동을 지칭하는 말"이다.(105쪽 역주)

폴라니는 이러한 오트 피낭스가 특히 로스차일드 가문을 중심으로 위력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어느 나라나 정부에도 구속받지 않으면서 오히려 여러 나라와 정부를 규율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칼 폴라니는 심지어 오늘날 마치 선진 정치 체제의 대명사인 양 금과옥조로 떠받들어지는 의회민주주의라는 것도, 그 혈통을 보자면 거대 금융 자본인 오트 피낭스가 국제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한 중요한 장치였다고 말한다.(112~113쪽 참조)

정부와 의회는 당연히 국제 경제의 현실을 반영해서 특히 국가의 대외 신용도를 고려해서 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거대 금융 자본이 해당 국가의 대외 신용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강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 복지 정책을 강화하여 정부의 재정 상태를 불안정한 방향으로 끌고 갈 때, 여러 국제 신용평가기관에서 이를 분석하여 신용도를 하향 조정이라도 하는 날이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폴라니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국제 신용평가기관이라는 것들은 모두다 오트 피낭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106~107쪽 참조)

문제는 칼 폴라니가 1944년에 분석 진단한 바, 불가능한 유토피아로서의 자기조정 시장이 지난 약 20년을 통해 세계화 및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서 실제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 들어 중국이 미국에 이어 제2의 국가적인 부를 영위하는 국가로서 크게 부상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이 그야말로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제도개혁을 대대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급격한 부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기조정 시장의 확대에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도에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중미 간의 '태평양의 격돌'이 갈수록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도 나름의 위상을 차지하면서 나름의 독자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융자본을 호랑이 발톱처럼 숨기고서 결코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는, 세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금융자본에 의한 자기조정 시장의 '악마의 맷돌'을 한국이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가 요체다.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한국의 통치권을 누가 어느 세력이 거머쥐는가가 핵심이다. 여전히 거대자본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서 아부를 일삼는 자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뒤집어엎고서 나름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내세워 새로운 해방의 역사를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자를 택할 것인가?

가장 불행한 것은 겨우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통치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리라.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고 한국이 과연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통치자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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