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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1책 전격수다]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김용언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1.09 1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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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위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경제혁명 사이, 그 사이 30년 동안 중국은 맹렬한 변화를 경험했다. 삶 속에서 직접 그 30년을 관통해온 작가 위화는 "열 개의 단어가 내게 열 쌍의 눈을 주어 열 개의 방향에서 당대 중국을 응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펴냄)를 썼다.

인민, 영수(領袖: 마오쩌둥을 뜻함),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모방, 짝퉁 제조, 권리 침해, 규범 위반, 농담, 못된 장난 등을 아우르는 단어), 홀유(忽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뭔가를 덮어씌움을 뜻하는 단어) 등 열 개의 단어들 중 어떤 것은 보편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또 어떤 것은 중국의 컨텍스트 내에서만 사용되는 낯선 언어다. 그 단어를 차근차근 해설하는 위화의 글을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층이 한 겹씩 쌓여간다. 위화는 결코 현학적인 말투를 구사하지 않은 채, 각 에세이마다 거대한 역사로부터 아주 사사로운 가족의 기억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독자들을 손쉽게 중국의 세찬 흐름 속으로 끌어들인다.

도서평론가 이권우(한양대 특임교수), 서평가 이현우(필명 '로쟈'), <프레시안> 기자 김용언 세 명이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토론하는 자리, '3인 1책수다'에서 준비한 10월의 책은 바로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이다. 이 책 수다는 인터넷 매체 <Banni>(☞바로 가기)에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용언, 이권우,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이현우 : 현대 중국의 3대 소설가라면 위화, 모옌, 쑤퉁을 꼽을 수 있겠죠? 그중에서도 쑤퉁이 국내 독자들에게는 좀 덜 알려진 편 같더라고요.

이권우 : <쌀>(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아고라 펴냄) 같은 작품은 좀 그로테스크하죠.(웃음)

이현우 : 전 위화의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장이머우의 <인생> 정도 봤고요.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 명단에 추천했고, 이번 대담의 주제로도 선택하게 됐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위화가 서문에서도 썼다시피 '5월 35일'이라는 표현처럼 돌려가며 완곡하게 쓴 글이 아니라, '6월 4일'식 글쓰기,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돌직구적인 그런 글입니다. 즉 중국 내 검열 때문에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던 1989년 6월 4일을 5월 35일이라 칭하는 게 일반적인데,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6월 4일' 스타일로 중국의 현실에 대해 직접 기술합니다. 1960년생인 위화가 경험한 중국 현대사 30년을 매우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책입니다.

한국 번역서 제목이 아주 시적으로 뽑혔는데, 부제가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잖아요. 말 그대로 중국을 표현할 수 있는 10개의 열쇳말을 선정했고, 11번째 단어를 고른다면 '자유'일 것이라고도 했고요. 전 위화가 선택할 그 다음 10개의 단어가 무엇일지도 아주 궁금합니다.(웃음)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이권우 : 마오쩌둥 키드의 진솔한 자기고백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봤어요. 또 이현우 선생이 방금 언급한 작가 서문은 문학도들이 꼭 읽어봐야 할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픽션화하면 중국 내 검열에 걸리지 않지만 논픽션으로 썼을 땐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 자체가 의미 있는 것 같고요. 이 책이 대만에선 출간되었지만 본토에선 금서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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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이현우 :
중국식 검열이 좀 희한한데, 홍콩이나 대만에서 출간되는 것은 괜찮지만 본토에서는 안 된다고 하죠. 당연히 홍콩과 대만에서 본토로 유입될 텐데 말입니다.(웃음) 외관 관리가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당에선 허용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는 부재하는 책입니다. 대신 몰래 읽는 것까지 터치하진 않아요.

이권우 : 얼마 전에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은 소설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너무 아깝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쓰면 자서전이고 한 번 더 가공하면 소설이라고. 위화라는 개인의 삶을 통해 보는 중국의 현대사기도 합니다. 요즘 중국 책 엄청 나오죠? 그런 어떤 책들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국내 독자가 중국 관련 교양서에 입문할 땐 이 책부터 고르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현우 : 흡입력과 재미가 있죠. 대학생 독자들도 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위화의 낙관적 믿음

이권우 : 10개의 키워드 중 '독서' 항목을 보면 만국의 책벌레들에겐 공통의 경험이 있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죠.(웃음) 중국에 마오쩌둥 키드가 있다면 한국엔 박정희 키드, 전두환 키드가 있잖아요. 어릴 땐 그들의 정치적 이념이 국가와 민족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면 얼마나 허망했는가 반성하게 됐고요.

또 당시 사상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지적 열망과 문화적 감수성이 공통적인 경험 같아요. 우리가 예전에 프랑크푸르트 학파 책,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책을 통해 마르크스 사상이 무엇인지 거꾸로 복구하면서 공부했던 것처럼, 위화 역시 어린 시절 마오쩌둥 어록에 달린 각주를 열심히 읽었다는 고백이 나오지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오 주석의 글을 공부하는구나, 당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는구나 싶었겠지만 그는 사실 주석들에 담긴 다른 팩트들에 열광했다는 거죠. 아마 본문에 언급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기술한 각주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을 한 작가와 나의 개인적 경험이 일치하는 걸 읽었을 때, 위화가 '독서' 편에 썼듯이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바로 그런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용언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솔직히 별로 끌리진 않았습니다. 낯간지럽게 느껴졌거든요.(웃음) 가벼운 에세이집이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하며 책을 집어 들었는데 서문에서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건 자세를 바로잡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바로 와서 집중하고 정독을 시작하게 됐죠.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아무 관심이 없는 편이라 관련 책도 읽은 게 거의 없었어요.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위화의 이 책은 제가 처음으로 읽은 중국의 현대 도서입니다.(웃음) 여태까지 뉴스를 통해 중국 소식을 접할 때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현대사의 굉장히 폭력적인 개입이 나라 전체의 분위기, 사람들의 성정, 그리고 예술 작품에 반영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어 충격적이기도 했고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통해 비로소 중국에 대해 궁금해졌고, 이 책 이후에 또 다른 중국 관련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는 용기가 생겼어요.

이권우 : 용언 기자는 제목이 너무 에세이풍이어서 이 책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했는데, 제 느낌으로는 분명 책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아니라도 잘 뽑은 제목이었던 것 같아요. '인민' 편에 등장하는 이 문구가 중국에 대해 위화가 갖고 있는 낙관을 잘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1989년 톈안먼 사건 직전,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던 위화가 1만 여 명의 시위자들과 마주치죠. 정치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이 밤중에 모여 국가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위화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합니다. 위화는 아마도 이것이 중국 인민이 내뿜을 수 있는 민주화 의지의 최대치로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 내가 중국의 검열자라면 이 책은 절대 검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웃음) 왜냐하면 이 책은 중국 인민에 대한 굉장한 낙관을 표하고 있고, 정치민주화를 외치던 그 목소리들이 중국 현대사를 밝게 빛내리라는 신념을 보여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제목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현우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6월 4일'식 글쓰기기 때문에 중국 본토 내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는데,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같은 경우와 비교해보면 흥미롭지요. 2010년 반체제 인사였던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중국 정부도 모옌의 수상을 환영했는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옌이 혹시 '6월 4일'식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상당히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용언 : 궁금한 게, 모옌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뉴스들을 보면 미술가 아이웨이웨를 비롯한 비판적 지식인들이 모옌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모옌은 단 한 번도 국가를 거스른 적이 없다, 체제 순응적이다, 이번 수상은 문학에 대한 모욕이다 등. 항상 애매모호하게 서서 당국의 미움을 사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는 기회주의적인 작가라고요. 위화의 책을 읽고 난 뒤 그 뉴스를 접해서인지, 혹시 모옌의 태도 역시 '5월 35일'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긴 했는데요. 이권우 선생님께서는 <개구리>(모옌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민음사 펴냄)를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이권우 : 위화 책을 읽은 분들이 모옌 소설도 같이 읽으면 좋겠더라고요. 중국의 대표적 작가들이 문화대혁명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흥미로운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용언 : 두 사람이 나이도 비슷하죠?

이권우 : 모옌이 1955년생이니까 위화보다 5년 선배네요. 전 사상 검열이나 출판 검열이 있는 나라에서 문학 활동을 한다는 건 독일 히틀러 시대의 '국내 망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인 저항을 하진 않지만 자기 작품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극히 경계하는 것 말이죠. <개구리>를 봤을 땐 모옌도 분명 문화대혁명에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느꼈습니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을 수행하며 강제로 임신 중절 수술을 해야 했던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인데요, 마지막에 이르면 그녀는 자신이 지웠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죄다 점토인형으로 빚은 다음 그 영혼을 달랩니다.

위화가 이 책에서 불편한 중국 현실에 대해 직언하고 있다면, 모옌은 <개구리>에서 중국의 빛나던 혁명 정신이 어떻게 억압됐는지, 그 비통한 과거를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해 문학적 화해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체제적인 문화적 형상화나 언어적 형상화의 능력보다는 조국 현실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중요시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얼마든지 모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전 중국 현대사의 격변을 겪은 작가가 문학적 화해를 모색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위화나 모옌 모두, 문화대혁명 시기가 얼마나 천박했고 어처구니없었는지,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갖고 있던 가치를 얼마나 쉽게 부숴버렸는지, 이걸 재건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똑같이 이야기한다는 점이거든요.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의 직언과 모옌의 <개구리>의 문학적 형상화를 같이 보시면 굉장히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중국의 경제혁명 역시 문화대혁명의 유산이다

이현우 : 위화의 책이 중국 이해에 요긴하게 도움과 자극을 주는 책이라는 데 대체적인 합의가 된 것 같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각자 꼽아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용언 : 전 '산채' 편이요. 하지만 실은,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잘 안 서요.(웃음)

이권우 : '짝퉁'이죠.(웃음)

이현우 : 짝퉁보다는 조금 더 넓죠.

김용언 : 한국도 불법 복제 문제가 심각하지만, 중국에서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해적판을 보면서 사실 좀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저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위화가 얘기하는 산채는 꽤 복잡한 상황을 한꺼번에 다루더라고요. 해적판이나 짝퉁이라는 좁은 의미도 지칭하지만 동시에 통제의 손길이 가 닿지 못하는 무정부주의적 상황도 얘기하잖아요. 권위를 조롱하고 풍자할 수 있는 영역을 그 안에서 확보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까지 담아내고요.

저로서는 사실 이 부분에 100퍼센트 동의할 순 없었는데, 어쨌든 '산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중국의 현재도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건 확실했어요. 대중문화를 예로 들더라도, 한국이나 일본의 콘텐츠들을 서슴없이 전유하며 드라마, 광고, 영화로 쏟아내는 걸 이해하려면 '산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현우 : 본인 인터뷰 얘기도 하잖아요. 하지도 않은 인터뷰가 실려서 기자에게 항의했더니 아주 당당하게 '산채판' 인터뷰라고 해서 할 말을 잃었다고. (일동 웃음) 위화의 통찰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게 역시 문화대혁명이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문화대혁명이 부정적인 결과들을 많이 낳았고 역사적 재앙으로 기록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하게 부정할 수만은 없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사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강자 집단에 대한 약자 집단의 혁명 행위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의의가 현재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에도 영향을 준다는 시각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오와 마오 이후의 시대, 즉 마오의 시대를 부정했던 덩샤오핑의 시대로 딱 잘라서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두 가지가 그렇게 상반되는 게 아니며, 문화대혁명과 이후 경제혁명 사이의 연속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위화의 주장입니다. 310쪽을 한번 볼까요.

"내가 오늘날의 중국을 얘기하면서 자꾸 문화대혁명 시기로 돌아가는 이유는 이 두 시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형태는 이미 판이하지만 일부 정신적 내용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우리는 전민운동(全民運動) 방식으로 문화대혁명을 진행한 데 이어 똑같이 전민운동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진행해왔다."

이에 대한 자세한 예시는 '혁명' 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1950년대 대약진운동 시기 국가의 지도하에 철강 제련에 대대적으로 동원되던 풍경이 1990년대 경제발전 시기에 되풀이됩니다. 농민들이 다시금 흙으로 제작한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제련하는 식으로 엄청나게 많은 철강을 만드는 풍경으로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설명할 수 없는 생산 방식이 중국에서는 일어났다는 거지요. 그런 태도나 방식, 인민들의 의식의 기원이 문화대혁명에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이권우.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말씀하신대로 '산채'는 굉장히 중요한 챕터입니다. 위화가 보기에 중국 현대사는 '극단의 시대'였어요. 그 극단의 한쪽은 정치적 열망, 또 한쪽은 경제적 열망이죠. 310쪽에 보면 "1980년대의 중국 사회에서는 돈을 벌려는 광적인 열기가 혁명의 광기를 대신하면서 순식간에 무수한 민영기업이 생겨났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책 전체를 통틀어서 이 같은 생각이 계속 반복돼요. 203쪽에서는 "중국은 정치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마오쩌둥의 흑백시대에서 덩샤오핑의 경제지상주의 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라고도 하고요. 톈안먼 사건을 분기점으로 정치 과잉 시대에서 경제 과잉 시대로 넘어갔다는 건데, 이 과잉이라는 연속성의 배경이 결과적으로는 강자 집단에 대한 약자 집단의 혁명 행위라는 거죠.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시대와 참 비슷했던 것 같아요.

이현우 : 스케일 차이는 확연히 있지요. 마오쩌둥 키드들은 '사령부를 타도하라'라는 지도 하에 권력자들을 무너뜨리잖아요. 당 간부들까지도 어린 청년들에게 비판과 숙청의 대상이 되는데. 이런 경험을 했던 세대가 인류사에서 또 있었을까 싶은 겁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처음 시작될 때 각 지방으로 흩어진 홍위병의 숫자만 1천 몇 백만 명인데, 그만한 스케일로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완전하게 전복하라는 혁명을 수행했던 나라가 또 있을까요? 한국 역시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에 그만큼 완벽하게 위로부터의 명령에 스스로를 일치시키진 않았잖아요?

이권우 : 과잉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한국도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정치 과잉이 90년대 넘어오면서 경제 과잉으로 넘어가니까요.

김용언 : 마오주의는 68혁명 이후 프랑스 쪽에서 특히 중요하게 이슈화됐던 걸로 아는데요.

이권우 : 네. 미셸 푸코 같은 경우 본인이 마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마오주의 운동집단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현우 : 알랭 바디우도 마오주의자이지요.

김용언 : 제 궁금증은 이겁니다. 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은 왜 마오주의를 배척하고 러시아 쪽 사상을 더 가깝게 받아들였던 걸까요?

이현우 : 80년대 대학가 운동권들 사이에는 러시아 편향이 분명 있었어요. 레닌주의가 적통이론이고 마오주의는 변형으로 여겨졌는데, 모리스 마이스너의 책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김수영 옮김, 이산 펴냄)를 보면 레닌주의와 마오주의의 차이에 대해 잘 정리돼 있습니다. 1960년대 중·소 영토 분쟁이 있을 때 중국과 소련 사이가 약간 틀어졌어요. 중국은 소련이 수정주의라, 소련은 중국이 교조주의라고 비판했죠. 흐루시초프 시절 미국에 대해 좀 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데 반해 중국은 훨씬 강경한 태도를 가졌고 거기서 의견 차이가 빚어졌지요.

양쪽의 가장 큰 차이는 인민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달랐다는 점입니다. 레닌주의의 관점은 여전히 지식인 중심주의였죠. 엘리트가 농민들과 인민들을 계도하고 그들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쪽이고요. 마오주의는 정반대로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거죠. 문화대혁명이 가능했던 것도 인민들에게 직접 봉기하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이고요.

김용언 : 홍위병의 구호가 '조반유리(造反有理: 반역은 정당하다)'였지요.

이현우 : 네. 엘리트 계층이 계몽하는 게 아니라, 인민들이 직접 엘리트를 타도할 수 있다고 부추겼던 거지요. 그런 기대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걸 한국 상황에 적응해보면, 80년대에도 여전히 엘리트 중심주의가 있었어요. 농활을 생각해봐도 민중은 여전히 계도의 대상이었고요. 80년대 후반부터 소위 '학출'이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그런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요. 학출이라는 말 자체가 함축하는 바가, 대학생 지식인 계급이 먼저 각성해서 아직 각성되지 않은 민중을 계몽한다는 프레임이지요. 그 전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을 따릅니다. 공산주의 혁명 이전에 부르주아 혁명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논의요. 따라서 인민들에게는 부르주아적 교양이라는 게 필요하며, 그걸 경험한 다음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거죠.

마오가 생각한 문화대혁명은 그런 부르주아 단계를 건너뛰어서 전근대 전통 사회에서 바로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회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거대한 실험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20세기 혁명론은 레닌주의와 마오주의인데, 둘 다 실패했지만 오늘날 반면교사가 됐죠. 그런 면에서 무작정 부정하는 게 아니라 유익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권우 : 위화가 문화대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오쩌둥의 실책이라고 보는 쪽 같습니다. 계급을 타도하자고 했는데 계급에 뭐가 있었던가? 과연 타도할 계급이 있긴 했던 건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찌르라고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모옌의 <개구리>에서도 문화대혁명 시절에 벌어진 엄청난 테러들이 역사책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세밀하게 묘사되는데, 이건 말 그대로 도가니에요. 모든 것들이 융해되고 인간의 모든 속성이 다 드러나죠.

▲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이현우 :
여러 문제점이 노출된 실패한 혁명이라는 건 잘 알려진 부분이고 그에 대한 부정으로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노선이 나오긴 했지만, 그 이면에 문화대혁명의 경험이 각인되어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그린비 펴냄)를 쓰신 백승욱 교수의 책도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주제에 대한 탐구잖아요. 문화대혁명은 그 주제를 실험해본 사례가 되고요.

이후에 얘기된 거지만, 마오가 당시 권력 핵심에서 비껴나 있었는데 다시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과격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해석도 나오지요. 아마도 문화대혁명 말기에는 마오 스스로도 대중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공산당 권력 자체를 무력화하는 수준까지 나갔기 때문이죠.

김용언 : 사실 당시 내걸었던 '사령부를 포격하라', '반역은 옳은 것이다'라는 표어가 궁극적으로는 공산당 최상층까지 타도하라는 지시일 텐데요.(웃음)

이현우 : 아마도 마오 생각엔 '나만 빼고'가 아니었을까요?(웃음) 굉장히 거대한 역사의 실험이었고 많은 교훈을 주기 때문에, 그냥 실패했던 참담한 재앙으로만 격하하기에는 그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287쪽을 보겠습니다.

"공산당이 이끈 지난 60여 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중국의 풀뿌리 계층에 거대한 기회를 두 차례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문화대혁명은 정치 권력의 새로운 분배라고 할 수 있고, 개혁개방은 바로 경제 권력의 재분배였던 셈이다."

오늘날 빈부격차가 엄청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인민들에게 부의 기회를 준 거기도 하잖아요. 100만 명 이상의 억만장자가 있다고 하죠. <중국을 읽다 1980-2010>(카롤린 퓌엘 지음, 이세진 옮김, 푸른숲 펴냄)를 보면 80년대 초의 상하이와 지금의 상하이 사진이 실려 있어요. 80년대 초의 상하이는 음…, 우리 개항기 무렵의 인천항 비슷해요.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은 마천루 숲이죠. 30년 만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거예요. 문화대혁명에 대한 철저한 부정 속에서 그게 가능했던 게 아니라, 문화대혁명의 에너지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만나면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거죠.

역사책에선 읽을 수 없는 중국의 생생한 현실

이권우 : 저와 이현우 선생이 위화의 책을 읽는 포인트가 다르네요. 이 책에는 분명 두 가지 기류가 흐르고 있지요. 권력을 인민에게 넘겼을 때의 극단적 폐해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한편, 중국과 중국 인민의 에너지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고요. 이 책을 통해 인민에게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을 분배해주었던 혁명의 역할을 강조하는 게 이현우 선생의 시각이고, 저는 그 극단의 양태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쪽이고요.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실 때 그 두 가지 시선을 염두에 두고 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현우 : 더 알아보고 싶다는 동기를 자극한다는 게 이 책의 주요한 장점이죠.

이권우 : 자고로 좋은 책은 다른 책을 더 읽게 하는 책입니다.(웃음) 김용언 기자는 백승욱 교수의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를 참고했다고 했는데, 어땠나요?

김용언 : 어떤 의미에서 문화대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계기는 톈안먼 사건이고요. 인민이 지도부를 공격했던 문화대혁명의 10년의 세월이 끝난 다음에도 그 대중의 힘에 대한 공포가 아직도 정부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톈안먼 사건 역시 큰 공포로 다가왔다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통제를 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끔찍했던가, 당신들도 돌아가기 싫지?'하면서 계속 공포를 조장하고 억압하고, 톈안먼 사건 같은 반역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억압함으로써 지금 체제를 유지한다는 거죠. 그 전제 하에 마오의 시대를 총체적으로 재평가하고 점검하는 이 책이, 박제된 지식으로만 문화대혁명을 기억하던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권우 : 역사의 추체험이라는 점에서 위화와 겹치는 부분이 있군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의 '영수' 편, 56쪽을 잠깐 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마오쩌둥 시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 그들에게 마오쩌둥 시대는 비록 생활이 궁핍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보편적인 잔혹함이나 생존경쟁은 없었다. 단지 공허한 계급투쟁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가치관의 변화와 재화의 재분배가 사회분열을 조성하고 사회분열은 사회충돌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중국이야말로 계급과 계급투쟁이 만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몰락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박정희 시대의 향수가 부활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마오쩌둥 시대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분명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위화 책을 읽어보고 백승욱 책을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롭겠네요.

이현우 : 문화대혁명 이전에 50년대 후반 대약진운동이 실시됐을 때 그 역시도 끔찍한 실패로 끝났지요. 당시 아사자만 해도 수백만 단위였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자료들에선 당시 중국 사람들이 워낙 넓은 땅에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보니까, 중앙에서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다들 그 죽음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자연재해 등으로 죽은 걸로 생각했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희생당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요.

이권우 : 모옌의 <개구리>에도 보면 너무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못했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흔히들 문화대혁명이 인간 개조 실험이었다고 하는데, 그 점에서 마오주의가 좀 순진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개개인이 아니라 제도와 체제가 중요한 건데, 그 체제의 변화를 통해 공동체적이고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대신 인간 개개인을 바꾸려다가 거대한 실패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언 :
위화의 책에서 '차이' 편과 '혁명' 편에 가슴 아픈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자식에게 바나나 한 송이를 사줄 수가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부모가 자살하는 내용이라든가, 시장에 다녀와 보니 그 사이 집이 불도저로 철거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 내용이라든가. 정말이지 환상소설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 현실에서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죠. 이 부분에서 위화는 마오쩌둥의 교시를 인용합니다. 244쪽에 나오죠.

"혁명은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도 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건 자수를 놓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그렇게 우아하고 조용하며 그렇게 문질빈빈(文質彬彬)하고 그렇게 공경스럽고 겸손한 것이 아니다. 혁명은 폭동이다. 한 계급이 한 계급을 전복하는 폭력행동이다."

이같은 교시 하에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자행되었을지 저로서는 상상도 가질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을 처음 접했던 게 영화에서였는데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 오프닝에 이 문구가 뜨거든요. 그땐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안티 히어로를 정당화하는 제스처로서 최상의 문구라고까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위화가 중국 내 첨예한 문제인 철거 현장에서 마오의 저 문장을 떠올렸다고 기술할 때 그런 제 생각이 얼마나 낭만적인 허구에 불과했는지 실감났습니다. 마오가 말하는 혁명은 정말 대중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각성한 상태였겠지만, 현재 중국에 이르면 집들이,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일제히 소거되는 끔찍한 현실과 병치된다는 게 놀라웠어요.

이권우 : '홀유' 챕터에서도 중국의 현재의 고통이 잘 드러나죠. 간단하게 말하면 '사기'인데, 도로명이라든가 문패번호를 마구잡이로 파는 행위들을 보면 한심해요. 어떤 도시에서 교사 자질 시험을 실시하는 에피소드도 너무 재밌잖아요? 배우자가 사망했거나 이혼한 상태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교사들은 시험을 면제해준다고 하니까, 교사들이 앞 다투어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니까 다시 재결합하는데, 그 와중에 '때는 이때다'하면서 재결합을 거부하는 부부들도 있었고요.(웃음) 권력이라는 게 참, 어디까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바꿔나갈 수 있는 걸까요.

이현우 : 인민들의 적응력은 정말 대단합니다.(웃음)

이권우 : 모옌의 <개구리>에도 그런 구절이 나와요. 강이 30년은 왼쪽으로 흐르고 30년은 오른쪽으로 흐른다고. 중국 인민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저력이라는 게, 굉장한 변화를 연달아 겪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저렇게 해봐야 오래 못 간다는 낙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대혁명이나 지금의 위기를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는 것도, 권력의 힘이 아니라 삶에 대한 대중들의 깊이 있는 지혜가 바탕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문학이 있는 거고요.

이현우 : 역사책에선 읽을 수 없는 순간들이죠. '차이' 챕터에 보면 10년 전 어린이날, 중국 각지의 어린이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뭔지 인터뷰하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베이징의 한 남자아이는 진짜 보잉 여객기를 갖고 싶다고 하고, 시골 지역 여자아이는 흰색 운동화를 받고 싶다고 해요. 이 놀라운 격차야말로 오늘 중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정확한 에피소드 같습니다. 100만 명의 억만장자가 있지만 또 1억 명의 극빈층이 공존하거든요. 그게 중국의 현실이자 과제구요. 중국의 국정 과제라고 한다면 그런 계급 간 격차를 완화시키는 방안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중국식 경제 민주화가 어떤 또 다른 혁명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관심 있습니다. 정치 혁명, 경제 혁명 이후 또 다른 사회 혁명으로 향할 수 있을지,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상태로 지켜보는 중입니다.

이권우 : 201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한쪽은 휘황찬란하고 평탄한 길이며 다른 한쪽은 각박하고 가파른 절벽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물론 중국과 규모를 비교할 순 없지만(웃음) 한국에서도 경제 민주화가 중요한 화두인데, 두 국가의 유사한 체험 속에서 이 급박한 차이를 어떻게 해야 이겨낼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중국 제5세대 감독들의 영화도 중요한 레퍼런스

김용언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중국 본토에서 출간될 수 없었잖아요. 영화 쪽도 아직까지 검열이 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외향적으로는 스크린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제작편수도 놀랍게 늘어났지만,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는 내용은 어김없이 정부 측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요. 글자보다 시각 이미지가 더 자극적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8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중국 제5세대 감독들, 장이머우나 첸카이거 등의 유명 감독들도 초창기에는 당국과 굉장히 사이가 안 좋았지만, 90년대 넘어오면서 모종의 화해를 하고 이후부터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예술적이고 적당히 재미있는 영화들을 만드는 쪽으로 선회했거든요. 그 이후에 톈안먼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은 젊은 감독들, 소위 제6세대 감독들의 고충은 훨씬 심했습니다. <소무><스틸 라이프>의 지아장커, <수쥬><여름궁전>의 로우예 등은 자국 내 개봉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해외 영화제에서는 놀라운 아티스트로 손꼽혀도 고국에서는 전혀 소통할 길이 없었죠.

요즘 들어서는 주류 영화계에서도 이들을 끌어들이는 상황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젊은 감독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싸움을 벌입니다. 그들이 찍는 다큐멘터리가 바로 위화의 책에 나오는 것 같은 중국의 현실을 집요하게 찾아다니며 굉장히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작품들인데요, 이런 '6월 4일'식 영화들은 정식 개봉을 할 수가 없죠.
▲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2006)

이현우 : 문화혁명을 다루는 영화들로는 아무래도 그 제5세대 감독들의 작품들을 꼽을 수 있겠죠?

김용언 : 그런데 문혁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생각보다 그리 많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현우 : 약간 후일담 쪽에 가깝죠.

김용언 : 네. 후일담 내지는 가족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배경으로 슬쩍 깔아놓거나.

이권우 : 영화도 직언을 할 수 없었던 거군요.

김용언 : 레이 초우의 <원시적 열정>(정재서 옮김, 이산 펴냄)에 굉장히 흥미로운 지적이 나와요. 전 장이머우나 첸카이거의 80년대 영화들을 볼 때 대부분 시골의 이상한 관습들을 다루니까, 재미있긴 하지만 별로 와 닿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이해가 가더라고요. 저자는 문화대혁명의 하방(下放)을 경험한 뒤 1980년대 초에 영화학교를 졸업한 그 감독들이 왜 자연과 황무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는지 밝힙니다. 농촌과 황무지를 개조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의도가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거죠. 인간은 실패했지만 자연은 그대로 남아있다, 자연을 우리 뜻대로 바꿀 수 없다는 그 체험이 영화 속에서 텅 빈 공간, 압도적인 자연으로 형상화되고, 그것이 결국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도전이자 반항, 철저한 부정으로 해석된다는 결론입니다.

이현우 : 첸카이거의 <황토지>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겠네요.

이권우 :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도 떠오르고요.
▲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1988)

김용언 : 네. 이런 80년대 영화들과 현재 중국 소설들을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80년대 그 영화들이 문화대혁명 이후 철저한 자기부정을 취했다면, 지금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위화와 모옌의 소설들은 정반합의 과정을 치면서 좀 더 폭넓은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권우 : 그렇다면 이번 대담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처음에 이야기했던 위화의 '11번째 단어', 즉 '자유'에 대해서 차례로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이현우 : 위화는 '우리에겐 아직 6월 4일의 자유가 없다, 5월 35일의 자유만이 있다'고 했는데요, 한국 사회라고 다른 건 아니잖아요. 여전히 불온서적 리스트가 있고 각종 금기들이 존재하고, 가령 트위터에서 북한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트윗을 농담 삼아 리트윗한 박정근 씨가 기소될 만큼 패러디가 통하지 않는 사회죠. 어떤 의미에선 '5월 35일'조차 금지되는, 그것조차 문제가 되는 그런 사회입니다. 전 한국 사회를 말해줄 수 있는 10개의 단어가 뭘까, 그런 걸 써줄 수 있는 작가는 누굴까 생각해봅니다.

김용언 : 이만큼 부자유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뛰어난 원천으로 삼는 작가라면, 그가 생각하는 '6월 4일'의 자유가 도래했을 때 얼마만큼 내키는 대로 쓸 수 있을까, 혹은 거꾸로 그 변화에서 오는 충격, 자유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이 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궁금해집니다.

이권우 : 전 위화가 11번째 단어로 '자유'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면, 이 책 12쪽에 나오는 그 얘기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5월 35일'식 자유는 일종의 예술이다. 인터넷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독립적인 사상을 표현할 때 정부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언어의 수사 작용을 충분히 활용하여 암시와 비유, 풍자와 조소, 과장과 연상 등을 극대화하여 발휘한다."

위화는 인민들이 권력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자유로운 투쟁과 자기 영역 확보의 힘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유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하면서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홀유' 아닙니까?(일동 웃음) 긴 시간 대화 감사합니다. 그럼 한 달 뒤에 새로운 책으로 또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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