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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로 몰린 수녀! '금욕' 세계의 실상은?

[프레시안 books] 크레이그 할라인의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

임병철 신라대학교 교수 2012.11.23 18:36:00

"17세기 수녀원의 내밀한 역사." 이 책의 부제는 선정적이다. 금지된 무엇인가에 이끌리곤 하는 인간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열면, 그곳에는 세속적인 인간 세계와 결연한 단절을 공표했지만 여전히 그 세계를 움직이던 분파적이고 차별적인 정치와 경제의 힘에 따라 작동하던 또 다른 작은 세계가 그 은밀한 속살을 드러낸다.

이렇듯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이영효 옮김, 책과함께 펴냄)의 저자 크레이그 할라인은 알기 어려운 금단의 세계, 또 알고 있다 해도 우리 모두가 모르는 체하기 일쑤였던 수녀원의 모습을, 17세기 벨기에의 작은 수녀원에서 고욕의 삶을 살아야했던 한 수녀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공동체 생활을 꿈꾸던 자신의 수녀원에서 많은 이들의 적이 되었던 고집불통의 이상주의자 마가렛 스뮐더르스였다. 미국의 종교사가인 할라인은 벨기에의 여러 문서 보관서를 뒤지던 중 그녀에 관한 한 다발의 자료를 발견했다. 그 자료는 마가렛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던 메헬렌의 대주교 야코브 보넌에 관한 할라인의 이전 저작 <주교의 이야기(A Bishop's Tale)>에서 이용되었다. 하지만 할라인에게 마가렛이 자필로 쓴 생생한 자료들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그는 바로 이 책에서 마가렛을 주인공 삼아 흔히 접하기 어려운 여성 수도자의 목소리로 종교개혁 이후의 혼탁한 유럽 세계의 모습, 더 엄밀히 말해 수녀원이라는 신비의 베일 너머에 존재하던 인간 군상의 비극적 드라마를 그려낸다.

하지만 번역본의 제목(원제는 <마가렛 수녀의 고난(The Burdens of Sister Margaret)>이다)과 달리,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마가렛의 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수녀원에서 벌어지던 분파적 권력관계 내의 핵심인물에 가까웠다. 즉 그녀는 기존의 수녀원 세력에 대항하던 반대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왜 그녀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단언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수십 쪽에 걸쳐 그녀가 자필로 쓴 편지 그리고 관련된 동료 수녀들이나 상급 성직자들의 증언들을 고려하건데, 아마도 그녀는 성마른 성격의 이상주의자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금욕과 청빈, 은둔과 자기 수양이라는 수도원의 이상이 '형식화된 이미지'로 구성원들의 삶에 다가오던 17세기의 수녀원에서, 그녀는 철지난 이상에 기대어 권위와 질서에 대항하는 고루한 전통주의자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마가렛은 종신 서원 수녀였음에도 자신의 수녀원에서 두 차례의 추방을 당해야 했다. 이러한 그녀에게 씌워진 최초의 죄목은 아마도 그녀가 악마의 사주를 받는다는 전통적인 마녀술(witchcraft)과 관련된 혐의였다. 물론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진실과 허구, 이성과 감성, 세속과 영적 세계 사이의 경계가 오늘날과 달랐던 근대 초의 유럽 사회에서, 그녀 스스로도 어쩌면 고해신부에게 자신이 당했던 '육체적 공격'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후 그녀의 삶은 상급 수녀들에 의해 자행된 부도덕한 일상에 대한 고발과 비난으로 점철되었다. 권력과 파벌에 기초한 파행적인 수녀원 운영, 담장 밖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의도적인 세속 세계와의 관계 맺기, 수도원의 기본적인 일과를 무시한 세속 관행의 답습 및 유행. 안타깝지만 이것들이 바로 마가렛의 눈에 비친 수녀원의 참된 실상이었다.

동성애나 부도덕한 성적 관행을 암시하는 여러 언급들을 차치하더라도, 수녀원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그녀의 적들에게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들이 단순한 교회 개혁이나 수녀원의 정화라는 문제를 넘어, 개인의 영적 고양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수도원 운영과 관련된 복종과 주도권 싸움이라는 해묵은 갈등을 표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크레이그 할라인 지음, 이영효 옮김,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따라서 마가렛이 자신의 적들에게 가한 비판의 칼날이 수도원 정신의 훼손이라는 점을 겨냥하고 있었듯이, 그녀의 적들 역시 수도원의 이상인 공동체 정신을 훼손하는 분파주의자라고 그녀를 낙인하고 공격했다. 이 점에서 마가렛의 고난은, 수녀원이 그 자체로 순수한 영적 공간이라기보다 엄정한 권력의 질서 속에서 작동하던 폐쇄적인 인간관계의 덩어리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도 자신이 어느 쪽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공동체주의와 파벌주의의 충돌이 마가렛과 그녀의 적들이 직면한 갈등의 핵심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복잡한 권력의 작동이 수녀원이나 종교적 차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이 모든 사단이 발생한 베들레헴 수녀원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그리고 당시에도 그리 크지 않은 소규모 수녀원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어느 수녀원에 입회했는가, 수녀원 내의 위계질서는 과연 어떠한 기준에 따라 마련되었는가 등과 관련된 여러 복잡한 문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세속 세계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위계가 적어도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할라인이 언급하듯이 마가렛 역시 자신의 부나 지위에 맞는 낮은 수준의 베들레헴 수녀원에 입회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곳에서의 그녀의 지위도 그녀가 가져온 부와 사회적 영향력에 좌우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수녀원은 외부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그렇다면 마가렛의 불행한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외부 세계의 공적 질서가 그대로 투영된 지극히 '세속적인' 수녀원 세계에서서 살아야 했던 한 저항적인 수녀의 이상이 결과한 비극의 드라마였다.

어쩌면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가 지니는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리 은밀하다고도 할 수 없는 이러한 수녀원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이 비밀의 폭로는 바로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을 살았던 주인공 수녀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근대 이전의 역사 자료에서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점이 이 책의 다른 아쉬운 부분을 모두 상쇄시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내러티브의 핵심을 이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여성사의 시각이 거의 개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흔치 않은 자료를 통해 구성된 이야기가, 권력과 종교의 문화사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고해신부나 대주교 등 상급 성직자들과의 관계나 마가렛과 그녀의 적들 사이의 문제가, 전통적인 종교나 정치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해석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저자 할라인은 이 책이 전형적인 미시사의 방법으로 저술되었다고 강조한다. 미시사가 작고 특수한 개별적인 인간의 경험을 줌인(zoom-in)하여 그것을 만화경 삼아 보다 넓은 세계의 모습을 살펴보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이 과연 어느 정도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가? 프로테스탄티즘의 도전에 직면한 가톨릭 세계의 노력과 그로 인한 결과인 트렌토 공의회의 교의, 30년 전쟁이 낳은 유럽 질서의 근본적 재편, 그리고 이 모두와 연결되어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벨기에의 복잡한 정치·문화적 상황. 과연 외부 세계의 경험을 보는 창으로서의 마가렛의 삶이 과연 그것들과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마가렛의 평범하지 않은 삶이 보편적이고 비역사적인 그저 그런 수녀원의 이야기로 함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은 것의 소중함, 구조 속에 함몰된 인간 목소리 재생. 분명 할라인은 이것들을 책에서 의도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역사'가 이 책에서는 퇴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작은 것을 이야기할 뿐, 그것이 줌인된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적어도 '역사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는 그리 커다란 매력을 발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작은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커다란 것에 대한 향취를, 그리고 더 나아가 옛 이야기에서 오늘의 문제를 반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것은 단순히 '순수의 이면'에 자리 잡은 인간관계의 추악한 실상이 수녀원이라는 신비의 공간에서 그 내면의 속살을 드러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통해, 관념적으로든 아니면 물질적으로든, 지금 이 순간 발을 딛고 사는 이 세계 밖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인간 삶의 본원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언된 비정치성이 내포하는 신랄한 정치성을 더욱 많이 절감하게 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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