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오타쿠, '크고 아름다운' 그것에 반하다

[마니아 서재] 조성면의 <질주하는 역사, 철도>

전현우 철도 동호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14 1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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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용하지만, 사실 철도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소하고 대중화되지 못한 취미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 철도에 대한 단행본이 나오다니, 철도 동호인으로서 매우 반가웠다. 하지만 반갑다고 해서 평가를 게을리 하면 안 될 일이다. 조성면의 <질주하는 역사, 철도>(한겨레출판 펴냄)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를 상세히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 조금 긴 여정을 떠나보자.

경인선과 백만 개의 삶

철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달린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은 그 가운데서도 발군이다. 경인선 20개 역사에서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수는 환승객을 빼더라도 하루 약 80만 명에 달한다. 인천 지하철 1호선(부평역에서 환승)과 서울 지하철 7호선(온수역에서 환승)과 환승하는 사람들을 합치면, 하루에 백만 개의 삶이 경인선을 지나가는 셈이다.

이 수치가 대체 어떤 수준인 것인지 좀 더 상세히 분석해 보자. 사람 숫자에 각각의 사람들이 탑승한 거리를 곱한 수치인 '인-거리' 값은 연 약 25억 인-킬로미터에 달한다. 한국철도공사의 여객 수송량은 약 368억 인-킬로미터니 경인선은 불과 27킬로미터의 2복선(동인천~인천 간은 복선) 선로로 국내 철도 여객의 7퍼센트 정도를 처리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내 철도의 연장은 총 3549킬로미터(2011년 말 현재)이므로, 경인선의 연장은 국내 철도의 0.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경인선 1킬로미터는 국내의 평균적인 선구보다 10배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바쁜 선구에서는, 옛 단선 시절의 경춘선이나 정동진역을 거쳐 가는 영동선 철도와 같이 조용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아침 시간에는 용산 급행열차만도 3분 간격으로 플랫폼에 진입한다. 역마다 각각의 열차에 수백 명의 승객을 실어 보낸다. 용산 급행열차가 송내역·부천역에서 승객을 싣고 나면 열차 안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장 혼잡한 역곡-구로 구간에서는 한 량에 320명이 넘는 승객이 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간이 없다보니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사치다. 승객들의 체온 덕에, 겨울에 냉방을 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심지어, 승객의 압력이 높아지면 앉아있는 남자의 가랑이 사이로 젊은 여성이 밀려들어오기도 한다.

바로 내가 그 앉아 있는 남자였던 적이 있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열차가 혼잡해도 경인선을 이용했는가? 답은 물론 용산 급행열차가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경인선이 사고로 불통되면 집에서 서울로 나가는 길은 배차가 부실한데다가 극심한 정체에 시달리는 경인고속도로 및 서울 시내 도로에 의존하여 운행하는 삼화고속 광역 버스밖에는 없었다. 경인고속도로에 기약 없이 갇혀 있다 보면, 신도림역을 출발할 경우 아무리 늦어도 30분이면 주안역에 데려다 주는 동인천 급행열차가 너무나 그리웠다. 다행히 최근 몇몇 철도가 새로 개통되어 쓸 만한 대안들이 생겼지만, 경인선은 여전히 주된 내 발이다. 그리고 경인선 급행열차보다 빨리 집에서 신도림역·영등포역·서울역에 나를 데려다 줄 수단은 아직 없다. 아마도 인천을 떠나지 않는 한, 내 삶도 경인선을 축으로 이뤄질 것이다.

<질주하는 역사, 철도>는 이런 풍경이 100년 넘게 이어진 경인선, 그리고 한때 협궤(762밀리미터) 열차가 운행했던 것으로 유명하고 지금은 소래포구를 잇는 전철로 다시 태어난 수인선을 주제로 삼은 책이다. 저자 조성면은 이 책을 통해 철도를 거쳐 가는 백만 개의 삶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길어 올려야 할 것인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철도에 대한 글의 유형학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 이유는, 철도를 둘러싸고 상당히 많은 책과 글이 국내에서도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형을 나눠보고, 조성면의 책은 철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분류해보도록 하자.

철도는 그 자체로 수많은 지식이 집약되어 있는 기술이다. 철도는 차량과 재료 관련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운행할 수 없다. 철도가 방대한 배후 산업 파급 효과를 일으켜 19세기 산업 성장의 기관차로 작동했다는 것은 고등학교 세계사에서도 배울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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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주하는 역사, 철도>(조성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오늘날의 철도는 19세기나 20세기 초중반의 철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많은 빈도로 운전하며, 적어도 대도시와 그 근교에서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런 과업을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만도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철도 회사에 소속되어 이런 노고를 치르고 있다.

철도 차량, 결제 시스템, 토목 건설처럼 연관 산업도 많다. 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기술 교과서들은 철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또 하나의 시스템 구성 요소다. 이들의 양과 종류는 방대해서, 시내 대형 서점을 살펴보면 관련 교과서와 입시 서적이 서가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철도를 다루는 또 다른 중요한 유형의 글은 철도 부설이나 시설 개량이라는 행위가 철도뿐만 아니라 그 바깥의 사회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추적하는 글이다. 이런 글들은 철도 부설이나 개량이 철도와 그 주변 세계에 대해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예측을 바탕으로, 여러 유형의 작업들이 이뤄진다. 국책 연구소가 생산하는 타당성 조사 보고서들은 경제성을 비롯한 여러 척도에 비춰보았을 때 예측된 효과가 전체 사회의 공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평가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이나 지방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 생산하는 정책 연구 보고서들은 어떤 기술 유형이나 사업 유형의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것들이 실현되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날 것인지를 예측한다.

이들 모두는 반사실적 조건문을 중요한 도구로 사용한다. 즉, '철도 노선 A가 생겼다면, 이러저러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이 도구를 통해 조작과 효과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이들 유형에 속하는 글은 일종의 실험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실험 보고서들은 교과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제도적인 차이다. 각 유형의 글들은 서로 다른 제도상에서 작동하고 있다. 타당성 조사 보고서나 정책 연구 보고서들은 현장 기술직들의 의사 결정에서 참조되기 위해 작성되는 것이 아니라, 철도 회사 본사 차원이나 정부, 더 넓은 일반 대중과 다른 연구자들의 판단에서 참조되기 위해 작성된다.

이런 차이는 글의 기능 덕분에 빚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업에 대해 타당성 평가를 하고, 사업의 장단점을 정리하여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일은 철도 업계 바깥에 대해 철도에 대한 각각의 투자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뤄지는 일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글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설비를 점차 바꿔나간다.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이 문제가 되자 철도 부분에서도 법안과 정책 연구를 거쳐 요구와 현실적 제약 사항들에 맞추어 각종 지침들이 제시되었고, 이에 의한 투자가 현재 집행 중이다. 이런 조치들의 세부를 교육하는 기술 교과서의 독자는 철도 업계 바깥이 아니라 관련 업계 종사자이며, 또 해당 글은 그들을 설득하는 목적을 가졌다기보다는 확립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글이다.

제시한 두 유형의 글은 그 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철도 체계의 건설과 운영을 위해 봉직하는 글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실험 보고서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조작 조치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철도 체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또 그 내용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확립된 교과서에 수록되면, 철도원들은 그것을 참조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된다.

교과서는 이처럼 가끔 수정되지만 전반적으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항상성을 띌 것이다. 교과서의 항상성은 곧 의사 결정의 항상성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철도 체계 역시 항상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다시 말해, 실험 보고서와 교과서는 각기 철도 체계의 변화와 항상성을 위해 생산된다. 이 두 계기 덕분에 철도 체계는 이 나라에서만도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조성면의 책은 이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교과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실험을 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철도 체계를 이러저러하게 개량하자는 주장을 하는 보고서도 아니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실린 글의 반 정도는 기행문이고, 4분의 1 정도는 경인선 전철 개통 및 수인선 협궤 열차 운행 종료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4분의 1 정도는 철도와 관련된 문학사의 이야기이다. 철도에 대한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과서나 실험 보고서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인 셈이다.

▲ 스티븐슨이 만든 기관차 로켓 호(사진: Wikimedia Commons, by Svein Sando) 본문 172페이지. ⓒ한겨레출판

물론 교과서나 실험 보고서의 시각과는 다르게 철도를 보려는 시도 가운데 조성면의 시도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있어 철도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주제다. 미국 수량 경제사학계에서는 19세기에 철도가 없었더라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을지, 가능했다면 어떤 수준이었을지 묻는 이른바 '철도 논쟁'(로버트 포겔은 관련 연구 업적으로 199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도 일어난 바 있다.

19세기 철도 승객이 접하게 된 새로운 시각적 경험에 대한 연구 서적도 번역된 바 있다(<철도 여행의 역사>(볼프강 쉬벨부시 지음, 박진희 옮김, 궁리 펴냄). 철도와 관련된 시각적 경험에 대해서는 국내 저자의 평론(<기계 비평>(이영준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이나 인천에 소재하는 공공 미술 단체의 작업(<2007 인천 REPORT>(인천도시문화탐사대 지음, 도서출판 빔 펴냄))과 같은 성과도 있다. 이수광은 아예 단행본 규모로 철도와 관련된 단편 소설집을 낸 바 있다(<경부선>(효형출판 펴냄)).

이들 작업들은 철도 기술 교과서에서는 신경 쓸 이유가 없고, 모종의 효과를 위한 철도 체계의 조작 방법을 설계하기 위해서도 대체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철도 부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검토 그리고 열차를 타는 사람들 각자의 경험에 대한 묘사가 그것이다.

경인선이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한 글 그리고 이 글의 서두에 써놓은 것과 같은 개인의 경험에 대한 글은 낡은 침목을 갱환(更換)하는 절차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이나 경인선 급행 속도 개선 효과 연구에 대한 글과는 달리 철도 체계를 개선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다.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짐작하기도 힘든 아주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서일 것이다.

결국 조성면의 책을 비롯한 일련의 시도들은 굳건하고 육중한 철의 네트워크를 상세히 분해해서 소개해 놓거나, 그것을 평가하여 기능적 개선을 가능케 하는 쓸모는 거의 가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철도는 육중한 쇳덩어리인 것만도, 엄정한 평가의 대상인 것만도 아니다. 철도계가 엄격한 규율과 세세한 평가를 통해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하루에 문자 그대로 백만 명이 지나가도 끄떡 않는 튼튼한 체계다.

이 튼튼한 토대 위에서, 우리는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술 교과서나 실험 보고서가 만들어내는 토대는 업계인과 철도 동호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고, 그 위에서 움직이는 백만 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조성면의 책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철도가 지닌 '무게'

하루 백만 명이 경인선을 이용하고, 이들 모두는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이들 모두는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면서 열차를 이용한다. 함부로 선로에 내려가서는 안 되고, 정해진 통로로만 이동해야 하며, 정당한 지불을 하고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규칙 말이다. 이들 규칙은 일종의 틀로서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한다. 나는 이로부터, 철도로부터 길어 올린 이야기 역시 서로 공유하는 모종의 형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 머릿속에서 철도는 그 중후 장대함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이미지를 띄고 있다. 신도림역 급행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보면, 경부 1선으로 질주하는 열차들로부터 오는 묵직한 진동. 아니면 몇 년 전 대전 조차장에 갔을 때, 침목보다도 낮은 높이에 서서 보았던 특대형 디젤 기관차(그 무게가 130톤이 넘는다)로부터 울려 퍼지던, 뱃속까지 울리는 듯한 장중한 저음.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용산 급행열차 한 편성에 3500명을 실어 나르고도 또 끝없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수송량. 나를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100분 만에 데려다 주는 속도. 나는 이런 중후 장대한 모습이 보여주는 역학적 힘 때문에 철도에 매료되었다. 이 역학적 힘이 내게 만들어 주는 감정은 이른바 '역학적 숭고'의 좋은 사례일 것이다.

▲ 경인선 복선 한강철교 개통식 때의 한 장면(사진제공 한국철도박물관) ⓒ한겨레출판

반면 조성면의 책 <질주하는 역사, 철도>는 놀랍게도 이런 위용이 담긴 사진을 거의 싣지 않았다. 철도박물관에 정태(靜態) 보존 중인 파시형 증기 기관차나, 철도박물관 옆 경부본선을 통과하는 8000호대 전기기관차 견인 양회 화물 열차, 1965년 경인선 복선 개통 당시의 열차 사진 정도를 빼면 표준궤 본선용 열차의 모습은 책에 수록되지 않았다. 서울역, 영등포역, 수원역처럼 언제나 수많은 여객 열차를 볼 수 있는 곳도 다루고 있으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이 내심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조성면의 책이 내가 매료된 것과는 다른 미감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당혹스러움은 철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조성면은 철도가 가진 또 다른 무게에 주목하고 있었다. 철도 뒤에 버티고 있는 두터운 역사가 주는 무게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의 미감과 무게가 무엇인지, 조성면의 책에서 찾아보자. 경인선과 수인선은 서로 다르다. 경인선은 110년 이상 계속해서 수도권의 주요 간선으로 기능하고 있고, 수인선은 협궤열차가 다니다가 1995년에 완전 폐지된 뒤 최근 재개통되었다. 이 덕분에, 두 노선에 얽힌 역사는 모두 두텁지만 그것들이 주는 미감은 조금 다르다.

경인선은 번성하는 인천, 부천, 서울의 도심지를 관통하며 달린다. 조성면은 도시를 구경하는 산보객 이야기나(주안역, 50~56쪽), 주변 산업 이야기처럼 도시의 번영이나 성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반면 수인선으로 넘어가면, 폐선,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최용신의 묘, 유학자 이익의 묘, 삭아가는 구소래철교처럼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텨왔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것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현우


아마도 그는 수인선에 더 큰 애정을 주는 것 같다. 영등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철도에도 역사와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84쪽)는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여하간 이렇게, 경인선의 현 모습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수인선에 대한 애틋함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조성면이 주목하는 미감일 것이다.

번영을 100년간 누렸지만 선진국보다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경인선 그리고 역사의 한 구석으로 물러나 조용히 예전을 증언해주는 수인선. 이런 미적 판단은 이들 선구가 지닌 두터운 역사 덕분일 것이다. 두터운 역사를 감안하여 내리는 판단은 몇 년간의 변화로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조성면이 주목했을 법한 무게다. 물론 오늘날 경인선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자들이나 탑승하는 "사막의 공간(77쪽)"이 되었다는 진단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철도가 지닌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미덕을 먼저 주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철도는 작은 변화에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 육중한 '무게'를 가진다. 그것이 내가 매료되었던 물리적인 것이든, 조성면의 관심을 끌었던 역사적인 것이든 말이다. 바로 이 무게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철도를 다루는 글이 공유하는 모종의 형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가운데, 조성면은 '무게'로부터 나온 은유적 개념의 한 갈래인 '역사적 무게'를 잘 보여주었다.

단, 아쉬운 점은 스마트폰 사용과 같은 최근의 풍속에 대해서는 그리 무게 있는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차륜 차량은 차량이 충분히 무겁지 않으면 바퀴와 레일 사이의 마찰력이 부족하여 바퀴가 헛돈다. 철도와 관련된 사태에 대한 평가 역시, 충분한 무게를 싣고 이뤄지는 평가인지 언제나 각별히 주의하여 살필 필요가 있다.

편집팀이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없었을 실수를 지적하면서 이 글을 끝내겠다. 17쪽 지도는 도저히 제대로 된 지도라고 할 수 없다. 해안선, 산, 강과 같은 다른 지형지물과 경인·수인·수려선의 위치가 완전히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테니, 실제 지도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옮겨 그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혹시 다음 쇄를 찍으면 반드시 지도를 교체했으면 한다.

조성면의 책과 같은 총서로 함께 출간된 책 가운데 다른 두 권에도 지도가 실려 있는데,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강제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화교 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유중하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역시 정확하지 않거나 도트가 깨져 보이는 편집이 이뤄져 있었다. 수정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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