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몰랐던 '빅뱅'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몰랐던 '빅뱅'의 천재!
[이명현의 '사이홀릭'] 존 파렐의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
2013.06.21 18:58:00
아인슈타인이 몰랐던 '빅뱅'의 천재!
누가 어떤 것에 대해서 내게 물어오면 나는 답을 하기에 앞서 나에게 설명할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되묻곤 한다. 가령 어느 순간의 내 느낌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냥 1초의 시간 동안 '벅차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한 시간 동안 내 마음의 격동을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느낌으로부터 연상되는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몇 날 며칠을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빅뱅우주론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거두절미하고 빅뱅우주론은 '팽창우주론'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슬쩍 '상대론적 우주론'이라는 말도 설명 없이 덧붙이고 넘어간다. 시간이 좀 더 주어지면 '우주 팽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을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팽창하는 우주'라는 관측 사실 하나로부터 어떻게 우주의 나이며 우주의 크기며 우주의 초기 상태며 우주 속의 물질의 생성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지 설명을 해나간다. 우주 진화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빅뱅우주론의 가장 강력한 관측적인 증거인 우주배경복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존 파렐 지음, 진선미 옮김, 양문 펴냄). ⓒ양문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가속 팽창하고 있는 우주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운명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래도 또 시간이 남으면 우주 초기의 급팽창 이야기를 좀 하고 호기가 발동하면 양자역학 이야기나 초끈 이론 이야기를 꺼낸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중우주로 이어진다.

시간이 좀 더 주어져야 나는 비로소 천문학자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빅뱅우주론에 대한 과학적 개념 설명이 늘 우선이니 주어진 시간 동안 빅뱅우주론을 완성시킨 천문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팽창우주의 관측적인 증거를 제시한 허블과 함께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동안엔 내가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 특별한 천문학자가 빅뱅우주론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이야기했다.

르메트르에 대해서 조각처럼 모인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정보를 발설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존 파렐 지음, 진선미 옮김, 양문 펴냄)이다. 빅뱅우주론에 얽힌 이야기를 허블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닌 르메트르를 중심으로 기술한 책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보다는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 문득 이렇게 하는 것이 문명의 발달의 척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알려진 결과가 보여주는 단선적인 역사에서 벗어나서 더 깊고 더 넓은 눈으로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 이것도 또한 문명의 발달의 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에게만 쏠린 시선을 바로잡고 진정한 역사 속 주인공을 찾아내고 복권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문명을 한 걸음 앞으로 밀어 올리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이 그런 역할에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르메트르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뉴턴 물리학이 아닌 아인슈타인 물리학으로 교육받은 첫 번째 우주학자였다고 볼 수 잇다. 르메트르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학자들(그의 스승이기도 했다)인 아인슈타인, 에딩턴, 드 시터, 그리고 톨먼과 로버트슨 등은 나이가 더 많았으며 르메트르에 비해 좀 더 고전적인 교육을 받은 물리학자들이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당대의 학자들은 새로운 우주론의 문제에 "신-뉴턴주의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포스트-뉴턴주의적 방법으로 근사치를 추정하고 일반상대성이론의 신-뉴턴주의적 해석을 강조했다." 르메트르는 이러한 방법론을 사용하기보다는 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상대성이론의 중력장방정식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이것은 스승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이었다. 수학에서 곧바로 상대성이론으로 옮겨온 르메트르의 학문 경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직접 옮겨가기 보다는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수학을 물리학적 사고에 필요한 학문으로만 배웠다.

결국 르메트르가 과거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론을 펼친 첫 세대라는 말이다. 그것도 수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하지만 르메트르의 스펙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이미 아인슈타인을 직접 만나서 자신의 우주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결과는 참담했지만) 영국을 방문해서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던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에딩턴과 함께 연구를 했다. 르메트르는 곧바로 상대성이론을 사용해서 우주론을 펼치는 분야에서 1인자가 되었다.

그는 팽창우주의 관측적인 증거를 발견한 허블도 만났고 그 본산인 미국의 윌슨 산 천문대도 방문했다. 팽창우주의 실마리를 제공한 은하들의 적색이동 현상을 발견한 슬라이퍼가 있던 미국 애리조나 주의 로웰 천문대도 방문했다. 1920년대 당시 은하 연구의 또 다른 본산이었던 하버드 천문대에서는 샤플리와 함께 연구를 했다. 박사학위는 미국 MIT에서 받았다.

벨기에 출신의 사제이기도 했던 르메트르는 1920년 당시 가장 혁신적인 물리학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응용하면서 동시에 탄탄한 수학 실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천문학의 가장 프런티어에서 연구하고 있던 당대의 대학자들을 방문해서 같이 연구를 하면서 이론 뿐 아니라 관측 방법에 대해서도 완벽한 이해를 갖췄다. 현대우주론을 완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 바로 르메트르였다.

하지만 르메트르의 학문 여정은 굴곡 그 자체였다.

빅뱅우주론 즉 팽창우주론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논문으로 흔히 허블의 1929년 논문을 꼽는다.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우리로부터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허블이 발견했고 오늘날 우리는 이 관계를 허블의 법칙일고 부른다. 하지만 르메트르는 2년 앞선 1927년에 이 관계를 먼저 발견했고 논문도 발표했다.

현재 이에 관해 남아 있는 기록들은 없지만 르메트르는 1927년의 논문을 작성하기 전 몇 해 동안 허블이 발표한 은하의 멀어짐뿐만 아니라 우주팽창의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자신의 편지를 잘 보관해두지 않기 때문에 좋은 통신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허블은 자신에 대한 어떤 것에 대해서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킨다고 생각되는 통신기록이라면 남겨두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접촉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논쟁이 오고 갔을 수는 있지만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동료 천문학자의 이름을 붙여 '허블의 법칙'이라 부르는 데 대해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았다.

▲ 천문학자 조르주 르메트르. ⓒwikipedia
허블의 1929년 논문에는 르메트르에 대한 언급이나 그의 1927년 논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버린 사건의 경황을 알았다면 바로잡아주면 될 것이다. 허블이 르메트르의 작업에 대해서 알았는지의 여부는 과학사학자들이 더 연구해야할 주제지만 팽창우주의 발견을 알리는 이 은하 속도-거리 관계에 르메트르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것이 문명의 발달을 가늠하는 잣대라고 생각한다. '허블의 법칙' 대신 '르메트르-허블'의 법칙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허블이 수행한 숱한 관측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빅뱅우주론의 관측적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르메트르의 시간을 앞선 혜안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르메트르는 팽창우주에 대한 이론적인 모형도 만들었다. 1927년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우주 모형을 설명했지만 당시 우주론의 패러다임이었던 정적인 우주론을 믿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를 무시하고 만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자네의 수학적 계산은 정확하지만 자네의 물리학은 지겹다네.

르메트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빅뱅우주론의 관측적 증거가 되는 관계를 올바르게 발견하고 예측했고 해석했다. 그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우주모형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바로 그 모형이다. 우주론 교과서 곳곳에 그의 이름이 조각처럼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의 업적은 여전히 땅속에 묻혀서 발굴을 기다리는 고고학 자료같이 긴 잠 속에 빠져 있다. 르메트르야말로 실질적인 빅뱅우주론의 주인공인 것이다.

빅뱅우주론에 미친 르메트르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빅뱅우주론의 몇 가지 현안 문제를 해결해주었던 급팽창이론을 내세운 구스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발견한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는 공간은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상대성이론의 우주론적 초기의 해들 중 하나였다. 나는 드 시터의 1917년 우주론 방정식을 재발견했는데 이것은 르메트르의 1925년 MIT 박사논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르메트르는 빅뱅우주론의 가장 강력한 관측적인 증거인 우주배경복사의 이론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빅뱅우주론의 초기상태에 대해서 고찰한 첫 번째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을 도입해서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1998년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부활했다. 우주상수의 이론적 실제적 유용성에 대해서 르메트르는 1920년 당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중성자별과 블랙홀이 존재를 예측하는 이론적 토대 마련에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르메트르는 1950년대를 기점으로 우주론을 다루는 국제무대에서 고립되고 사려져간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951년 교황이 빅뱅우주론을 억지로 해석해서 창세기와 끼워 맞추는 도발적인 발표를 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교황은 이제 르메트르의 팽창우주 모형, 즉 원시원자이론이 성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주었다고 생각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르메트르를 거의 광분하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르메트르는 그 일로 인해 많은 동료 과학자들, 예를 들어 특히 호일과 보너 등이 자신의 빅뱅이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당연시하게 되었다고 생애 마지막 순간 가슴 아파했다. 즉 물리학이 아닌 르메트르의 신앙심이 초고밀도 상태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팽창이론의 영감을 주어 빅뱅이론이 제안되었다고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르메트르는 이 일이 있은 후 사실상 우주론의 국제무대에서 은퇴하고 은둔하게 되었다. 벨기에의 루뱅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천체역학 문제 풀이에 몰두하면서 나머지 삶을 이어가게 된다. 당대의 저명한 우주론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 제안에 대해서도 번번이 뿌리쳤다. 그가 우주론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면 빅뱅우주론은 훨씬 더 빨리 표준우주론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천문학자이면서 사제였던 르메트르에게 종교와 신앙이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그의 삶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현대를 살았다면 무신론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회의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교황청의 멍청한 방해를 받지 않고 더 멋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역으로 도킨스가 중세에 살았다면 그는 분명히 수도원의 사제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나 종교적 갈망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 사제였으니 호기심 많은 도킨스는 지식욕을 따라서 십중팔구 사제가 되었을 것이다.

르메트르는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현재 일부 정치적 영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소위 진화의 지적 설계 이론에 관심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성서의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뉴에이지 사상의 광풍이 불어오자 인문학 분야에서 상대론이 대두되고 과학과 기술의 부정적 영향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멸시가 유행했다. 그러나 르메트르는 이들 중 어느 쪽에도 동감하지 않았다.

물리학자 폴 디랙은 <르메트르의 과학연구>에서 이렇게 적어 놓았다고 한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그리고 르메트르가 제시한 웅대한 그림에서 느꼈던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종교에 가장 가까운 학문은 과학 분야의 우주론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르메트르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 종교와 가장 가까운 학문은 심리학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르메트르는 그 당시 이미 진화생물학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교와 가장 가까운 학문을 심리학으로 이야기한 것에는 다분히 다의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신 같은 가상의 존재를 믿는지를 연구하는 이른바 '믿음의 엔진'에 대한 연구가 진화심리학의 이슈 중 하나인 것을 생각해보면 르메트르의 사고체계가 얼마나 현대적인 것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에는 이 글에서 잠깐 다루었던 이야기 외에도 더 풍성하고 더 디테일한, 매력적이면서 불우했던 르메트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른 시선으로 우리가 놓친 역사의 순간을 찾아서 복원하는 문명의 발전에 작은 기여를 하나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한 마음으로 르메트르를 흠모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의 생각 하나하나를 공감하면서 그에게 스며들어가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르메트르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족 1 : 66쪽 8~9줄의 '겉보기에 더 밝을수록 밝기 주기가 길고 어두운 별일수록 주기가 길다'는 문제가 있는 문장이다. 오역이거나 원문의 오타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밝기(절대 밝기)가 더 밝을수록 주기가 더 길다' 정도의 내용이 포함되도록 고쳐야 한다.

사족 2 : 72쪽 맨 아래 줄에서 73쪽 첫줄에 걸쳐있는 '이 도표는 별이 진화해가는 일련의 단계에서 겉보기 등급에 따라 별의 위치를 설정해주는 것으로, 작고 희미한 젊은 별이 밝고 큰 적색 거성 단계를 거쳐 가는 순서를 보여준다'도 문제가 있는 문장이다. 역시 오역이거나 원문의 오타일 가능성이 크다. '겉보기 등급'을 '절대 등급'으로 바꿔야 맞다.

사족 3 : 제목이 왜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인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의 110쪽을 펼쳐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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