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겠습니다" 그가 훌쩍 떠난 곳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그가 훌쩍 떠난 곳은?
[이명현의 '사이홀릭'] 권오철의 <신의 영혼 오로라>
2013.07.05 19:10:00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그가 훌쩍 떠난 곳은?
해질 무렵 서쪽 하늘에 떠있던 이름 모를 밝은 별 하나가 유치원 시절 내겐 최고의 천문현상이었다. 늘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시던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골목길에 서서 쳐다보던 그 별. 바로 금성이었다. 나중에 그 별의 정체를 알게 되고 망원경을 통해서 달처럼 그 모양이 변하는 금성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천문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달의 크레이터를 천체망원경으로 보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우주 쇼'가 금성에서 달로 바뀌었었다. 여주 강변에서 어느 여름밤 은하수를 맨눈으로 밤새도록 보면서 나의 최고의 쇼는 또 바뀌었다. 쌍안경으로 은하수를 훑어내려 가면서 보냈던 수많은 여름밤은 은하수를 내 마음속 최고의 쇼로 각인시켜놓았었다.

▲ <신의 영혼 오로라>(글·사진 권오철, 이태형 감수, 씨네21북스 펴냄). ⓒ씨네21북스
2001년의 사자자리 유성우는 각별했다. 몇 년 전부터 사자자리 유성우 때가 되면 버릇처럼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는데 그때는 정말 많은 별똥별을 볼 수 있었다. 평생 볼 수 있는 것을 다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즈음에는 유성우가 마음속 최고의 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었다.

비록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지던 악조건 속에서 봤던 2009년의 개기일식과 2012년의 금환일식의 경험은 개기일식이야말로 우리가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천문현상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밝음과 어둠을 넘나드는 몇 분간의 숨 막히는 희열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지금도 호시탐탐 다음 개기일식 여행을 갈 기회를 노리고 있다.

천체사진가 권오철은 기회만 되면 자신이 찍은 오로라 사진과 동영상을 내게 보여주곤 했었다. 심지어는 금환일식 관측을 같이 갔던 일본에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조차도 노트북을 틀어서 오로라 동영상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가 오로라와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가슴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온통 오로라가 들어차 있을 거라고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서글픈 것 중 하나가 가슴 저미는 것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스무 살 청춘 같았다. 오로라가 새롭게 내 마음속에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별 보는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봐야할 세 가지 천문현상을 꼽으라고 하면 개기일식, 오로라, 대유성우일 것이다.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신의 영혼 오로라>(씨네21북스 펴냄)가 나왔다.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하고 사진가이기도 한 권오철의 혼이 담긴 사진집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오로라를 직접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차례 권오철과 다른 천체사진가들과 함께 오로라 관측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번번이 이런저런 이유로 어긋나버렸었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권오철이 그동안 찍은 오로라 사진을 모은 사진집이다. 이 사진집을 보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세 권짜리 학습도감 제1권 지구와 우주 편을 보고 또 보면서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던 그 시절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의 그 설렘이 복원되는 것 같았다. 오로라가 개기일식을 밀어내고 지상 최고의 우주 쇼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를 띤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잡혀 이끌려 양 극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지구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낸다. 대기 중의 어떤 성분과 반응하느냐에 따라 초록색부터 붉은색, 핑크색 등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로라다. 형광빛의 거대한 커튼이 너울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오로라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이 매우 신비롭다.

▲ ⓒ권오철

권오철의 말대로 오로라는 늘 볼 수 있는 천문현상이다. 개기일식은 1~2년에 한번 정도 특정한 지역에서 몇 분 동안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마침 그 지역의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 날이 되어도 볼 수 없다. 대유성우도 마찬가지다. 예측을 할 수는 있지만 흔한 이벤트가 아니고 당연히 그날의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지구가 유성우를 일으키는 혜성 잔해 속으로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규모가 결정되곤 한다. 개기일식이나 대유성우는 그야말로 장관을 보여주는 극한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지만 그만큼 만나기 어려운 기회이기도 하다.

반면에 오로라는 매일 밤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 규모를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해진 곳에 시간과 돈이 허락할 때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권오철은 맨눈으로 오로라를 관측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밤이 긴 겨울철 자정 무렵 캐나다의 옐로우 나이프가 가장 좋은 옵션이라고 권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오로라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가야지 가야지 그런 주문도 같이 맴돌고 있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오로라 사진집이다. 권오철이 쓴 오로라 설명 글도 아름답지만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오로라 사진이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냥 사진만 보면서 이 책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천천히 넘기면서 읽었다. 아니 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이 책은 그냥 사진집 자체로도 이유가 있는 멋진 작품집이다.

<신의 영혼 오로라>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될 줄 알았다.

천체사진가 권오철은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지에 남기려고 직접 썼다는 이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면서 머리말을 시작하고 있다. 머리말의 제목도 '우물쭈물하지 말고 오로라'로 달았으니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좀 더 넘기다보니 2009년 처음 오로라 관측 여행을 다녀온 후 고민 끝에 권오철이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던졌던 한마디와 마주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 ⓒ권오철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로라 관측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권오철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직업적인 천체사진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린 스무 살짜리 열혈 청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는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해왔고 (나도 그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의견을 주던 사람 중 한명이다.) 현실적인 대안도 나름대로 마련한 다음 행동에 옮긴 현명한 선택을 한 사람이었다. <신의 영혼 오로라>에는 그런 그의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책이다. 그 방향이 오로라를 향하든 자신의 새로운 삶을 향하든지 간에.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혜안을 주는 책이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오로라 사진집이고 떠나려는 사람들을 위한해서 방향을 제시하는 인생의 가이드북이면서 동시에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이기도 하다. 책의 많은 부분을 실제로 오로라를 보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치 여행안내서처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로라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로라 촬영법도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한번은 그림만 봤고 한번은 그림을 다시 보면서 글을 찬찬히 읽었다. 다른 한 마디가 필요 없는 권오철의 인생이 담긴 책이다. 자신의 꿈을 알았고 그것을 위해서 떠났고 그것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려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니 이 책이야말로 그의 인생이 온통 각인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려니 참으로 어렵다. 그대, 일생에 한 번은 오로라를 만나보라. 혹시 아는가, 나처럼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 그 길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아니 오로라 잡으러.

사족: 이 책 21쪽에 '139억 년 전 우주의 시작이 궁금하고'라는 글귀가 나온다. 현재 우주의 나이의 측정값은 137억년과 138억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139억년에 가까운 관측값도 간혹 보고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글에서는 가장 안정되게 인정받고 있는 WMAP이나 플랑크 관측위성의 현재 결과 값인 137억년이나 138억년을 쓰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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