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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임금,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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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개성공단 임금, 무엇이 문제인가?

[기고]개성공단 근로자와 파독간호사

최근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북한 개성공단 경제특구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중 일부가 노동당이나 군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를 부인하고, 북한 노동자들의 월 임금 총액은 최저노임(미화 50달러)과 사회보험료(7.5달러)를 포함한 미화 57.5달러인데, 그 중 15달러는 사회문화시책비로 원천 징수되고, 35달러는 북한 원화 또는 배급표 등으로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북한 당국은 노동자 1인당 월 57.5달러 중 12.5달러를 근로소득원천징수제도(pay as you earn tax system)를 통해 부과ㆍ징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3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공포한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북한 당국인 총국에 원천징수 개념으로 납부하게 돼 있고 이는 개성공단 출범당시 합의된 사항이다.
  
  여기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첫째, 노동자가 마땅히 수령해야 할 35달러 중에서 미화 30달러가 노동당에 들어가고 있는가 여부, 둘째, 북한당국이 한국기업과 북한 노동자에게서 징수하는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용도, 셋째, 북한당국이 임금으로 미국 달러를 모두 수령한 후 북한 원화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간접지불방식 등 세 가지다. 이중 첫째 쟁점은 사실을 따져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언급하겠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쟁점은 나름대로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사항이다. 그 각각을 중국의 경제 특구에서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해외취업노동자 송금에 대한 정책을 기준으로 비교검토해보겠다.
  
  먼저 개방한 중국은 어떠했는가?
  
  중국의 경우 노동자의 소득 및 생활보장제도를 그가 소속된 단위(單位)에 맡겨 운영해 왔다. 단위란 기업ㆍ농장ㆍ상점 등 노동자가 소속된 조직을 뜻하는 말로, 외자기업에서는 기업이 단위다. 중국 정부는 1991년부터 기업 내 보장의 사회보험화 정책을 추진하여, 5대 사회보험과 기타 생활지원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5대 사회보험은 양로보험(고용보험)ㆍ의료보험ㆍ실업보험ㆍ산재보험(工傷保險)ㆍ생육보험(출산보험)이고, 기타 생활지원금 명목으로 주택적립금 제도가 있다. 중국 정부는 노동자 임금의 약 19%를 사회보험료 등으로 원천 징수하고, 회사로부터 노동자 임금의 약 49%에 달하는 금액을 추가로 징수한다. 근로소득세를 별도로 징수하는 것도 물론이다.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등은 한국이나 북한과 마찬가지로 근로소득원천징수제도를 통해 징수하고 있다. 체제에 관계없이 노동자들의 임금이 유리지갑이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편, 개혁ㆍ개방 초기 중국에서는 노동자들을 일본으로 집단 송출(勞務輸出)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중국 정부는 그 임금의 절반 이상을 세금 또는 사회복지비 명목으로 징수했다. 그들이 빠져나감으로써 소속 단위에 미친 피해를 보상하고 아울러,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기한다는 이유였다. 노동자들은 국가에서 원천징수한 나머지 임금을 중국 위안화로 받았지만, 그들의 임금수준은 국내에서보다 몇 배 높았기 때문에 별다른 반발 없이 무마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중국은 경제특구의 외자기업이나 해외이주노동자의 송금을 국가가 관리하면서 사회보장비 또는 세금 명목으로 징수한 것이다. 세금 또는 사회복지비를 징수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주권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한편, 북한 당국이 한국기업으로부터 달러를 받은 후 북한 원화나 배급표 등으로 지불하는 것은 '외환집중관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파악된다. 개혁ㆍ개방 초기 중국의 경제특구인 선전의 외자기업들은 중국 당국을 통해 노동자를 채용하였고, 그들의 임금은 중국 당국이 기업에서 외화로 받아서 위안화로 환전하여 노동자에게 지불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명목의 공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1989년 무렵에 가서야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발전 초창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한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우리도 시행했던 외환집중관리제도, 그리고 암달러상
  
  외화를 그대로 지급하지 않고 자국 화폐로 지불하는 방식은 외환집중관리제도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보편적인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1988년까지 외환집중관리제도를 실시했다. 과거 독일ㆍ베트남ㆍ중동 등으로 노동자를 송출하였을 때, 한국 정부가 그 임금을 외화로 받아서 한국 돈으로 바꾸어 지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사항은 당시 한국정부의 노동청 규정에서 표준근로계약서의 조항에 "임금은 계산 마감 당일 한국은행 매입불에 의한 원화로 지급함을 원칙으로 한다"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을 통해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의 환율은 시장가격과 많은 차이가 나고 있었다. 80년대의 암달러상이 그런 허점을 노려 돈을 벌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해외파견근로자들은 손해를 본 것이고 정부는 이익을 본 것이다. 그것으로 한국 정부는 경제개발에 투여했다.
  
  중국에서 경제특구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선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를 진단하기에는 지금은 시기가 너무 이를 수 있지만, 북한의 개혁ㆍ개방 과정의 한 과정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평화와 화해의 염원이 핵실험 자금으로 전용되었을 경우 그에 대해서는 응당 제재가 가해져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관행은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새롭게 밝혀진 북한의 임금지급실태
  
  최근 임금지급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 대부분은 생필품으로 지급됐다는 것이다. '고려합영회사'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120여개 품목을 공단근로자들에게 배급했다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단 그동안 궁금했던 임금지급의 현실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 의문이었던 57.5달러의 임금지급 중 노동당으로 들어갔다는 비판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35달러가 어디로 쓰여졌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다만 환율차를 이용한 북한당국의 이익을 챙기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근로자를 착취한다거나 노동당으로 현금 유입된다고 하는 주장 등은 현실을 매우 왜곡시키는, 근거가 미약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과의 경협에 비판적인 언론들도 일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개성공단은 우리의 과거다
  
  분명히 합의됐던 임금직불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정부가 계속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체제의 상태다. 현재 그들은 경제력 저하에 따른 이중 환율시스템이다. 공식 환율대로 환전해 주면 생활하기 힘들고 시장환율로 직접 환전해주면 그들은 최상층의 생활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그들 체제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마치 중국과 우리나라가 과거에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는 노동자들에게 형평성을 들어 외환직불제를 실시했듯이 지금 북한도 그런 상황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우리도 하지 않았던 임금직불제를, 북한 당국이 원칙적으로라도 합의한 것은 이 사업에 대해 북한당국이 부여하고 있는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물자 자체가 없는 북한의 현실에서 가치가 높은 배급권, 거기다 외제물품을 사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근로의욕이 높아질 것이다. 오죽하면 북한당국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올 여름부터 한 가구 당 1명만 근무하도록 제한하였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가슴에 진한 회환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경제개발의 큰 주역이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그들을 위문하면서 함께 오열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1976년까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는 1만226명으로 1960년대 보릿고개를 넘는 일등공신이었다. 이들이 한달 월급은 100마르크(당시환율10만 원)로서 장관 월급이었으며 이들이 보내온 돈은 당시 상품 수출액의 39.9%, 무역외 수입의 30.6%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외환직불제로 몇 분의 일로 평가절하 된 돈을 받게 된다.
  
  더구나 그들의 월급은 강제 예치됐다. 초기에 서독은 한국은 간곡한 요청에 의해 차관 1억5000만 마르크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으나 지급보증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서독에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파견하기로 하고 이들의 급여를 3년간 코메르츠방크에 매달 강제 예치하는 담보방식으로 해결했다. 우리 정부는 그들에게 너무도 많은 피해를 준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보면 혹시 박정희의 눈물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중요한 것은 경제협력강화 원칙이다.
  
  따라서 당시 이들의 처지와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상태를 비교해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임금문제도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보고 중국 등 제3세계국가들의 예를 볼 때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북한 당국의 여러 정치적인 행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감정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체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경제협력강화를 통해 북한의 상태를 개선하고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우리가 걸어 온 길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 아니 걸어 오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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