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 '변방 엘리트'의 욕망부터 떨쳐내야
영어 교육, '변방 엘리트'의 욕망부터 떨쳐내야
영어 교육 논란, 목적과 방향부터 점검하자
영어 교육, '변방 엘리트'의 욕망부터 떨쳐내야
"영어를 대학입시에서 빼자"라고 주장하는 교수가 있다. 사범대에서 영어교육을 가르치는 교수의 주장이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여러 인터뷰에서 "입시에서 영어를 빼거나, 일정 기량을 갖추면 패스, 논패스(합격, 불합격) 처리해 그 이상의 배점을 하지 않는 게 영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기르는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력이 좌우하는 영어 점수, 입시에 반영말자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학생의 영어 점수가 성실성과 지적 능력을 상당 부분 반영하던 과거와 달리, 교실 밖에서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은 지금은 영어 점수가 학생이 속한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판단이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계속 대학입시에 포함시키면, 학부모들이 영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경쟁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입시 결과와 미래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관 관계를 갖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은 많은 학부모에게 절망감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은 학생 입장에게도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영어 점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학생들은 학습 의욕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병민 교수는 "학교에서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한 학생들이 비좁은 경쟁으로 내몰리는 동안, 외국 체류 경험 등을 통해 영어를 '제2언어'로 공부한 학생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단일 모국어 국가인 한국에서 공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단지 주눅드는 느낌이 싫을 뿐"…부풀려진 관념에 기반한 영어정책

그런데 이런 불공정한 상황이 정당화되려면, '우리 학생들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익혀야 하는 이유'가 사회적으로 공유돼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만 나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힌 이명박 당선인 측은 이런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병민 교수가 보기엔, 이런 상황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영어가 중요하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영어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보면 대개는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교수가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소개한 일화는 주목할 만하다.

당시 이 교수는 "통신회사 임원인 친구가 영어 타령을 하기에 물어봤다. 얼마나 영어를 쓰냐? 1년에 한두 번이라고 하더라.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간부회의 때 통역이 붙는데, 유학했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통역 없이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가 싸늘해진단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눅 드는 거다. 그 느낌이 싫어서 '영어, 영어' "하는 거다. 문제는 그런 문화에서 한두 마디 영어 잘하기만 해도 승진 같은 데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실제 쓸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지표랄까 권력이 돼 온 나라가 '영어, 영어' 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 차원의 정책이라면 이런 부풀려진 관념은 걸러야 한다. 그런데 인수위는 아예 그 관념에 기반해 정책을 내놓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영어는 '국내용 권력'…"교육의 목적과 방향부터 정하자"

요컨대 무턱대고 영어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수요 파악에 기반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근거 없는 분위기에 휩쓸린 까닭에 "우리 학생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영어를 익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영어교육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영어를 '국내용 권력'으로 활용하는 자들뿐이다.

마침 이 교수가 오는 21일 '영어교육의 목표와 방향'에 관한 글을 발표한다.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와 국어교사,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가 한데 모이는 자리다.

전국국어교사모임과 전국영어교사모임이 "새 정부 영어교육 정책의 진단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서울 대학로 전국국어교사모임 건물 강당에서 마련한 토론회에서 이 교수가 발표할 글을 주최 측과 필자의 허락을 얻어 미리 소개한다. <편집자>

영어가 수문장 (守門將)이다

영어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중요한 수문장 역할을 한다. 중요한 길목마다 영어 울타리를 처 놓고 사람들을 걸러내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는 물론 직장을 구하고 조직에서 승진을 하고자 할 때에도 영어는 언제나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닌다. 해방 이후 60여년 간 진행된 이런 관행을 통해서 영어는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남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언어 이전에 영어는 점수이고, 실력이고, 개인의 능력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영어를 잘하면 국제중학교와 같은 특수학교 진학은 물론 특목고에 진학이 용이하고 특목고에 진학하면 소위 일류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진다. 좋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자신에게 보다 많은 길이 열리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인생의 험난한 계단을 올라가는 첫 단계부터 영어가 버티고 서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영어 열풍은 우리 사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 영어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무조건 "영어가 중요하다"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영어는 수요 공급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영어는 국제어이고 세계어로서 필요하다고만 주장할 뿐 언제 얼마나 필요한 언어인지 구체적인 진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명확한 목표도 없다.

우리 국민 중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영어를 접하고 살고 있는지 영어가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필요한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기업에서도 영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모든 분야에 영어가 필요한지는 알 수 없다. 무조건 영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분야에 관계없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영어 능력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영어교육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라고 질문하면 상황은 더 혼란해진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모든 대안들이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 민족어를 말살하면서 어떻게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 수 있는가 반문한다.

한쪽에서는 우리 모두 싱가포르나 인도처럼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영어교육은 현재 수준으로 충분하며 다만 현 수준에서 어떻게 영어교육 환경을 좋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어 익히기'도, 건물 짓듯 해서야

우리가 삼성전자와 같은 초일류 기업을 만들고 30여년 만에 수출 세계 11위에 7천억불 목표를 달성했듯이 영어의 문제도 비슷한 차원에서 다뤄진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하고,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이 우리의 문화가 되었건 우리의 언어가 되었건, 우리의 하드웨어가 되었건 소프트웨어가 되었건 바꾸고 만들고 추진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영어를 반도체나 초고층 건물이나 고속도로처럼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배우고 사용할 수 있을까? 왜 지배세력의 언어인 만주어가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사라졌으며, 왜 2천년전 로마제국의 언어인 라틴어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은 왜 그토록 영어를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다른 것은 못해도, 영어만은 잡겠다'는 열기, 국제적 교류의 수요와 다르다

영어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잘 하려고 한다. 목표는 적당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목표가 원어민 수준이 되기도 한다.

영어는 다른 여러 가지 능력이 서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만이라도 잡으려고 한다. 그 내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영어열풍'은 바로 '교육열풍'과 맞닿아 있다.

영어열풍 속에는 국제화 또는 세계화로 대표되는 국제적 교류나 내부적으로 존재하는 실질적인 의사소통의 필요에 의해서 발생한 수요라기보다는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서 다른 기회를 잡고자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영어는 엘리트들의 언어인가, 세계 시민의 공용어인가?

우리 사회 영어열풍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교육적 가치뿐만 아니라 영어를 둘러싼 전 세계적인 경향을 반영한다. 언어 제국주의를 주장하는 영어학자 로버트 필립슨(Robert Phillipson)은 영어는 영어권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엘리트들의 언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어로 기능하고 있지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인도가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지만 10억 인구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은 2%인 2천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영어는 엘리트들의 언어라는 성격이 짙다.

라틴어가 로마제국에서 차지한 위치와 영어 열기를 비교해 보자

영어가 엘리트들의 언어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로마시대 라틴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등장하고 그리스 문화에 기초한 헬레니즘 문명이 라틴 문명으로 전이되고 서부 유럽과 아시아 일부 그리고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형성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오랜 전의 일이다.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지만 그 흔적은 중세시대 유럽을 통해서 그리고 민족주의 시대 유럽을 거치고 미국 대륙에까지 남아있다. 로만스어라고 불리는 불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등이 그 흔적이다. 또한 영어에도 그 흔적은 우리말에 남아있는 한자만큼이나 뚜렷하다. 라틴어의 경우 현재는 죽은 언어이지만 지금도 유럽과 미국 대학에서 라틴어 강의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엄청난 영향을 미친 로마제국의 언어인 라틴어는 당시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세계 속의 중심 언어였다. 로마 공화정에서 로마제국으로 변화하면서 라틴어는 제국을 지배하는 언어였던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당시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라틴어는 로마제국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을까?

당연히 로마에 있는 사람들은 라틴어를 생활 언어로 사용했겠지만, 로마제국의 변방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을까하는 점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모국어와 로마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제국의 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공용어였던 라틴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우고 가르쳤을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영어에 대해서 던져야 하는 질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미FTA, 기러기 아빠…중심에 다가가려는 변방의 몸부림

이쯤에서 로마 얘기를 잠깐 접고 오늘날 세계를 살펴보자. 오늘날 로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온 현재 역사에서 로마와 같은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가 없는 세계 질서에 로마와 비슷한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구태여 어느 특정 나라를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 통일된 제국으로서 로마가 세운 제국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그 무엇은 있다. 당시 라틴어가 로마제국을 지배했다면 오늘날에는 영어라는 언어가 세계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라는 그 무엇은 음으로 양으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나 로마제국의 라틴 문화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영어에 의해서 영어로 만들어지고 영어로 포장된 문명과 질서는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힘과 실체로 다가온다.

그러한 흔적을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어교육 열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어권 국가들과는 지리적으로 수천마일 떨어져 있고 지난 오랜 역사에서 교류의 흔적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에 편입된 지 겨우 60여 년 만에 우리 사회 영어가 갖는 영향력은 매우 강하다. 강하다 못해 폭풍우처럼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다.

경제적으로 한미 FTA가 논의되고, 일상생활에서 기러기 아빠로 대표되는 모습 속에서 로마제국 당시 변방에 살고 있는 아니면 변방에서 로마제국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어느 한 민족의 몸부림을 보는 것 같다.

로마제국에서도 라틴어만 쓰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우리는 라틴어처럼 세계어가 되어 버린 영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 속에서 영어교육 정책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일까?

로마제국의 변방에 살고 있는 평범한 어느 한 시민에게 라틴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에게 라틴어라는 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만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까?

다시 말해 그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 이외에 라틴어라는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면 로마제국의 중심과 교류를 맺어야 하는 변방의 엘리트들에게 라틴어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오늘날에도 그런 것처럼 당시에도 라틴어는 변방의 시민들에게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엘리트 언어는 아니었을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어는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그들과 교류하기 위해서 아니면 또는 다른 변방의 세계 시민들과 교류하기 위해서 필요한 엘리트들의 언어는 아닐까?

역사는 강력한 로마제국이 존재하고 제국의 공용어가 라틴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리스어가 상당히 중심적인 세계어로서 기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제국에서도 일반인은 다양한 민족어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공식어는 그리스어였던 것이다. 물론 라틴어는 이집트 관료들을 비롯해 군대에서 사용하는 공식어였으며 라틴어는 "매우 중요한 언어(Latin as a super-high language)"로 기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라틴어를 배우고 모든 사람들이 라틴어를 자유롭게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시대 사용했던 언어를 보면 아래와 같이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언어가 존재했으며 각 민족은 그들 나름의 언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1. 움브리안(Umbrian), 2. 패리그니안(Paelignian), 3. 베네틱(Venetic), 4. 에트루스칸(Etruscan), 5. 골리쉬(Gaulish), 6. 이베리안(Iberian), 7. 켈티베리안(Celtiberian), 8. 페니카안(Phoenician), 9. 퓨닉(Punic), 10. 아라메익(Aramaic), 11. 그릭(Greek), 12. 히브르(Hebrew), 13. 트라키안(Thracian), 14. 게르만익(Germanic), 15. 베버(Berber).

이렇듯 제국의 강력한 언어인 라틴어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변방의 민족들이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모두 라틴어로 옮겨가지는 않았다.

영어열풍, '변방의 엘리트'로 살고자하는 욕망의 반영일 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영어는 누가 언제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영어가 세계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엘리트 언어라면 엘리트들에게 꼭 필요한 언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나머지 일반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지금과 같은 영어 광풍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영어교육이 초중등 교육에 집중되고 대학이나 그 이후에는 개인에게 맡겨놓는 현재의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영어열풍은 결국 변방의 엘리트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열망이 표현된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영어열풍은 엘리트 집단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변방의 교육열풍이 그 본질이다.

영어가 힘이 되고 중심으로 편입하여 활동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교육열 속에 우리의 현재 모습이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고생의 영어 능력과 지적 능력의 상관 관계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찌되었건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가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망과 갈증은 이제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학교 영어교육이 전체 공교육의 틀 속에 묶여 있는 동안 사교육 분야에서 영어는 무한 진화를 계속해왔다. 민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어 실험은 학교 영어교육을 보완하는 단계에서 이제 점차적으로 이를 대체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전에 영어능력은 곧 실력이 되었던 적이 있다. 모두가 학교에서만 영어를 배우고 해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한 반에 고스란히 모여 있을 때 영어 능력은 곧 지적 능력이었고 개인 노력의 결과였고 학업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문법과 독해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학생 자신의 가지고 있는 논리력과 분석력이 중요했다.

영어 능력과 다른 지적 능력 사이에 상관관계도 높았다. 그래서 대학입학의 전형 자료로 영어를 사용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시험이었다.

영어가 교실 밖으로 나온 지금, 영어 경쟁은 교육부의 손을 떠났다

그러나 영어는 이제 더 이상 학교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교과목이 아니다. 영어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만 배우는 외국어가 아니다. 아이들은 이미 전 세계를 누비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또한 교실 밖에는 수많은 영어 학습 공간이 존재한다. 전국적으로 영어 학원이 없는 곳이 없다. 영어 아파트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아이들은 영어를 여전히 외국어로 접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영어를 제2언어 또는 모국어로 접하고 있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것과 제2언어로 배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학교 영어 시간에 몇 시간 정도 영어를 배우는 방식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라면, 제2언어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실제로 영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모국어와 더불어 또 다른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외국어로 학습할 경우와 제2언어나 추가적인 언어로 해당 언어를 배울 때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외국어로 학습할 경우 해당 언어가 내부에서 의사소통의 도구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영어 공교육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기존의 틀 속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민간에서 영어를 둘러싸고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방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학교 영어교육을 둘러싼 공정한 경쟁은 이미 교육부의 손을 떠나버린 상태다.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한 학생 대신, '제2언어'로 익힌 학생에게 '샛문' 열어주는 대학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나 국가 지도자들이 영어를 보는 눈은 크게 변화가 없다. 사회에서 영어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이 없다. 기업이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 점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많은 일자리와 기회를 영어 능력 우수자들에게 할애하고 보다 넓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국제학부'나 영어를 기준으로 선발하는 영어 특기자 전형 등은 정상적인 방식으로 영어를 배운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충실하게 영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좁은 대학문을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하는 사이에,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운 아이들은 국제학부라는 '그들만의 샛문'을 통과해서 대학에 들어간다.

영어를 '제2언어' 혹은 '추가적인 언어'로 요구하는 사회, '학교 영어'는 설 자리가 없다
▲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영어 교재를 고르는 부모들. 많은 어른들이 조기 영어교육을 강조하지만, 정작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과 방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뉴시스

다른 많은 곳에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배운 아이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아이들이 똑같이 경쟁을 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난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면 늦다고 하니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너도나도 그 대열에 뛰어드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학교 영어교육이 갖는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미약해질 대로 미약해져서 실은 존재의의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학교는 여전히 영어를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일주일에 3~4시간 영어 수업을 실시한다. 이런 영어교육 방식은 해방 이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영어를 제2언어나 추가적인 언어(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실시하겠다는 발상은 영어가 되지 않으면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 능숙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영어 공교육 과정을 통해서 이런 정도의 수준을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영어를 제2언어나 추가적인 언어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그렇게 가고 있다.

학교 영어 교육과 사회적 수요의 간극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교육은 여전히 외국어 틀 속에 묶여 있다. 문법과 번역은 학교 영어교육을 결정하는 큰 틀이며 영어교육 시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초등학교부터 학교 공교육을 통해서 제공되는 전체 영어교육 시간은 10년 동안 약 730시간 정도다. 이를 하루 8시간 정도 영어에 노출되는 것으로 계산하면 100일도 안 되는 시간이다.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언어를 유창하게 배울 수는 없다.

더구나 듣기부터 시작해서 읽기, 쓰기, 말하기를 동시에 배워야 하는 우리나라 영어교육과정에서 이 정도 시간으로 영어의 네 가지 능력을 초보 수준 이상 끌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영어교육과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어교육 사이에 벌어진 틈은 크다. 영어를 통해서 보다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영어 능력이라는 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이를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볼 사람은 없다.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영어 잘 하면 과연 경쟁력 생기나"라는 질문은 빠져

영어열풍이나 학교 영어교육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넓은 세상을 많이 경험한 학부모들이 영어교육을 선도했고, 그들 주변에서 이들 선도 그룹을 지켜본 많은 학부모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제는 전 국민이 그 대열에 뛰어 든 것이다.

그 속에는 영어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영어를 잘 하게 되면 정말 혜택은 있는 것인지, 영어를 통해서 우리 국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그 대열에 끼고 싶은 것이고, 영어를 통해서 최소한의 열매를 따고 싶은 것이다.

'부모의 부와 관심=> 아이의 영어 실력=>미래의 사회적 지위' 구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영어 광풍을 잠재우고 영어의 무한질주를 멈출 수 있는 장치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무한 경쟁 체제 아래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보다 좋은 교육을 받는 사람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아무리 달라져도 아무리 공교육이 새롭게 바뀌어도 무한 경쟁이라는 입시 경쟁이 존재하는 한 영어를 둘러싼 경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부모의 관심과 부가 아이의 영어 능력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영어가 희소가치가 있고 영어능력이 개인의 지적능력으로 통용되는 사회. 영어가 인생의 굽이에서 중요한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사회에서 그것을 따려고 하는 촌부의 몸부림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계속 외국어 틀 속에 묶어 놓고, 대학이나 사회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우수한 영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고, 영어 조기교육을 강조하고, 모든 영어교육을 초중등교육 기간 동안에 끝내겠다고 하는 발상이 존재하는 한, 영어를 통해서 기회를 잡겠다는 개인의 욕망과 몸부림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결국 전 세계를 떠돌면서 영어를 배우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공교육으로서 학교 영어교육이 설수 있는 자리는 더욱 작아질 것이다.

학교 영어교육과정, 해방 후 60여 년간 변화 없었다

교육과정은 소위 어떤 교육을 추구하기 위한 계획된 목표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소위 문서로 나타난 것만이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 교육과정은 실제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그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공교육 과정에서 영어만큼 다양한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국가에서 제시하는 영어교육과정을 갖고 있다. 교육부의 책임 하에 제공하는 교육과정은 국가에서 마련하여 각 시도교육청을 물론 각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통 계획이고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육과정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으며 누구나 쉽게 그 근거를 밝힐 수 있는 명시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육과정에 의해서 학교 교육내용이 결정되고 학교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학교 수업이 진행된다.

물론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전국 단위의 평가시험이나 기타 모든 공교육에서 진행되는 내용이 이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교육부가 제시하는 영어교육과정이 해방 이후 60여 년 동안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영어 공교육과 영어 사교육의 숨바꼭질

물론 이런 주장에 반대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초등영어가 도입되었고, 교육 시간이나 교육 방법론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교과서 또한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부분적인 변화는 인정하지만, 과연 그것을 통해서 영어교육이 달라졌을 것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영어교육은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의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 달라지는 것이지 글귀나 문서의 내용이 달라지고 교과서가 달라졌다고 해서 교육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영어교과의 경우 교육 시간은 교육 내용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학교 영어교육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영어교육의 소비자인 사회와 학부모들은 어떤 영어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나라 영어 공교육의 모순이 존재한다.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영어 공교육과 영어 사교육의 숨바꼭질의 본질도 여기서 출발한다.

영어 콤플렉스의 심리적 기원, "외국 나가니 말 한마디 못하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영어권에 끝임 없이 편입되어 왔다.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동구권의 몰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체제 변화는 영어권의 편입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일반 국민들은 다른 어떤 교과목보다 중등교육에서 배운 내용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영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골의 촌부도 이제는 일 년에 몇 차례씩 해외여행을 나가는 상황에서 10여 년 동안 배웠다고 생각한 영어가 전혀 기능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쉽게 그 책임을 영어교육에 전가할 수 있는 심리적 기저를 갖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국민들을 포함해서 일반 기업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우리 영어교육이 비효율적이고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보자"라는 어른들

그리고 우리도 한 번 영어를 잘해보자. 싱가포르도 잘 하는데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북구의 작은 나라들도 영어를 잘 하는데 왜 우리만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언론과 정부 정책을 통해서 영어교육은 하나의 큰 물줄기를 이루면서 의사소통 중심/듣고 말하기 중심이라는 교육목표를 설정하게 되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LG 그룹의 경우 그룹차원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간단계의 조직이 이런 조처를 취하게 되면 수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영어교육을 받았건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새롭게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특히 학교 교육과정과 기업이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그러한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것은 학교 영어교육을 비판하는 가장 상징적인 표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학부모를 비롯해서 기업이나 일반 국민들이 요구하는 영어교육의 목표는 영어를 통해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속 시원하게 말하고 듣고 원어민들과 만나서 유창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이 기대하는 영어교육과정이다.

필자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일부 학부모들의 경우 자신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원어민과 대화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게 해주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영어교육의 목표라고 제시하고 있다.

영어 교육의 목표, 대학ㆍ정부ㆍ기업ㆍ학부모 모두 제각각

서로 다른 영어교육과정을 갖고 있기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대학은 나름대로 중요한 수문장 역할을 한다. 대학입학시험을 통해서 대학은 나름대로 중등교육을 통제하고 중등교육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논술시험과 같은 입학시험이다.

여기에 영어도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다른 영어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중등교육에 요구한다. 대학에서 원하는 영어교육과정은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학에 있는 구성원들은 듣고 말하는 능력과 함께 영어를 읽고 잘 쓸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대학에서 사용하는 영어 원서나 기타 영어 강의를 잘 따라갈 수 있는 학생들을 원한다.

대학입학 시험에 자율권을 요구하고 논술시험에서 영어 읽기 지문을 통해서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평가하겠다고 하는 내면에는 학생들의 영어능력에 대한 기대나 요구가 국가나 사회의 영어교육 목표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영어와 관련하여 기대하고 요구하고 목표로 하는 수준이나 내용을 보면 통일된 그 무엇을 찾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목표, 영어를 둘러싼 이해 관계의 충돌

학교는 국가에서 정해진 국가 영어교육과정에 따라서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명시적 교육과정에서는 의사소통 중심으로 영어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으며,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네 가지 기능을 모두 골고루 교육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반 국민들은 우리 영어교육이 말하기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면 영어를 공용어 수준으로 끌어 올려서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외친다.

기업에서는 영어가 국가 경쟁력이며 영어를 통해서 우리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하고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한편 대학입시라는 중요한 장치를 통해서 대학은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뽑고 싶어 한다. 영어라는 언어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영어라는 글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인재를 뽑고 싶어 한다. 국가에서 설정한 영어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학생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단 1점이라도 높을 수 있으면 그러한 인재를 뽑고 싶은 것이며 그 기준은 국가 영어교육과정과 다르다. 대학이라는 고등 교육기관에서 영어로 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논문을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읽기와 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학교는 발이 묶이고, 사교육은 날개를 달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영어를 둘러싸고 각 이해 집단들이 서로 상이한 기대와 목표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 학생들은 누구의 기준에 따라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속에서 과연 학교 영어교육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산업사회의 교육 모형에 의해서 국가가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하고 통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학교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수요를 맞추어 가장 먼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관이 바로 사교육 기관이다.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특목고나 기타 특수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영어 점수를 한 점이라도 더 맞아야 하고 그 기준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국가 수준의 영어교육을 충실히 따라가서는 좁은 바늘구멍 같은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 알아서"…책임지는 기관이 없다

한편 아무리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이라고 하지만, 학교에서 그렇게 이끌어갈 수 있는 환경이나 교사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평가를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국가영어교육과정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영어 능력을 길러야 한다.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영어는 그동안 대학이나 중등학교에서 배운 영어와 또 다른 성격의 것이다. 이제 영어를 자유자재로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든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 그 몫은 언제나 개인에게 주어져 있다. 각 이익단체들은 서로 상이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기준을 내세우지만, 어느 한 기관도 제대로 책임을 지고 그 다음 기관이 원하는 수준의 영어교육을 시켜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결국 사교육으로 쏠리는 사람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어교육과정'으로 인해서 영어 공교육과 사교육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 사교육을 통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고 있다.

영어조기유학, 영어 어린이 학원, 원어민 영어강의, 영어 보습학원, 영어 단기 어학연수, 영어캠프, 영어회화 학원, 영어 파출부, 영어 학습지.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런 모든 형태의 사교육들은 영어교육의 목표가 서로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기관도 제대로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학교 영어교육의 목표'에 대한 합의 도출해야

이제 영어교육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몇 가지 물음이 남아있다. 첫 번째 질문은 영어교육의 목표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학교 영어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국가영어교육과정을 바꿔야 하는데 그 목표와 기준이 무엇이며 학교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고 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할 때, 각 이해집단이 내세우는 영어교육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특히 대학에서 내세우는 것과 일반 사회에서 기대하는 영어교육과정의 목표가 학교에서 할 수 있고 달성할 수 있는 영어교육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때 다시 학교 영어교육이 설자리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 벌려놓고 뒷감당 못하면, 결국 사교육만 배 채운다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은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영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한 일반적이고 거시적인 큰 그림의 원칙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정 학교 영어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영어 사교육을 없애고 싶으면 각 이해집단이 서로 달리 가지고 있는 영어교육 목표를 일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학교에서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는 하겠다고 해놓고 일을 벌려 놓고는 뒷감당을 못하고 사교육이 그 부분을 대신해버리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유창한 영어'가 목표인가? 만약 그렇다면 현행 공교육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영어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구사력을 필요로 한다면 현재의 영어 공교육 체계는 한계가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현재와 같은 영어교육과정 체제 하에서 아무리 조기에 영어교육을 시작한다고 해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다.

특히 읽기를 제외하고 듣기와 말하기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효과는 매우 미약하다. 그렇다고 조기에 영어 몰입교육 형태와 같은 것을 시작하는 것은 필요성이나 효율성 그리고 비용의 측면에서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

오히려 청소년 시기에 집중적으로 몇 년 동안 주요 교과목을 영어로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영어교육을 초중고등학교 과정으로 끝내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대학에서도 집중적으로 영어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대학의 '영어관련' 학과에서는 몰입교육이나 기숙형 영어교육 환경을 도입해서 영어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영어를 왜 못하나…'단일 모국어 환경'에서는 당연하다

영어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왜 영어를 못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우리말 구조가 영어와 달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영어를 조기에 배우지 않아서도 아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못 가르쳐서도 아니다.

우리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평생 한 가지 언어만을 사용해서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단일 모국어 언어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다. 기껏해야 일본이 우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두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영어 능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이중 언어를 사용해본 경험이 일천하며,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영국, 미국 식민지' 역사 가진 국가와 단순 비교 말아야

언제부터인가 말보다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렇게 훈련받고 교육을 받았다. 학교 공교육 영어 시간은 영어의 여러 가지 능력을 골고루 발달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영어라는 매우 낯선 언어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조건과 역사적 경험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학교 교육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서 의사소통하고 영어라는 언어를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것이 싱가포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인도나 말레이시아나 노르웨이나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다른 점이다.
더 이상 우리를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인도, 필리핀, 싱가포르와 단순 비교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도, 필리핀이 영어 쓰는 이유는 '영어 교육' 때문이 아니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며 민족적 구성도 다르고 언어적 배경도 다르다. 인도에는 수백 개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으며 상황은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랜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영어를 사용해왔으며 영어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 때문에 국가적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수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들에게 다른 언어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서 내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

본질이 다른데 그 나라를 자꾸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초등학교 어린이 보고 왜 대학생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 스웨덴, 핀란드의 영어 정책, 굳이 따를 필요 있나?

그러면 우리는 누구와 비교할 것인가? 우리를 혹시 프랑스나 스웨덴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 두 나라가 영어를 선택한 길은 매우 흥미롭다. 프랑스는 나름대로 자국어를 통해서 사회를 통합하고 영어는 매우 소극적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스웨덴은 영어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영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뿐일 뿐만 아니라, 영어를 내부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영어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며 일상생활에서 방송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손쉽게 영어에 노출될 수 있다.

이미 영어는 스웨덴 내부에서 생활언어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스웨덴 인으로서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어와 국민 정체성(L. Oakes, Language and National Identity: Comparing France and Sweden, 2001)>을 보면 두 나라 국민들이 영어를 수용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언어는 언어이고 수단으로 받아들여 활용할 뿐 그것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얻을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싱가포르나 핀란드 또는 스웨덴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그 목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영어에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말과 함께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영어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온 국민이 영어에 자유로울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을 목표로 학교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인가?

싱가포르, 스웨덴, 핀란드가 영어 강조하는 이유는 인구가 적기 때문

다시 유럽의 사례를 살펴보자. 유럽에서 우리와 비슷한 경제 규모와 인구 분포를 가진 나라를 꼽으라면 생각만큼 많지 않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정도가 우리와 비교할 정도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 나머지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같은 나라는 인구 천만도 안 되는 소국들이다. 자국의 경제 규모나 인구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꾸려나갈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남과 교류하면서 살아야 하고 자신의 언어만으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하고, 다른 나라 정보와 문화와 다른 모든 생산물을 사용해야 생존이 가능하고 발전이 가능한 나라들이다.

어느 특정 분야에 자신들의 언어로 책 한권 찍어내도 볼 수 있는 사람은 몇백명 되지 않는다. 자국의 언어로 책을 출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러 가지 언어 중에서 영어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영어를 택한 것이다. 러시아어나 프랑스어를 택하는 것보다 영어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효용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도 전 국민을 상대로.

인구 5000만 국가가 외국어를 모국어 지위에 놓으려 한 사례는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단 부정적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인구 5천만에서 8천만 정도가 되는 어느 한 국가가 그것도 단일 언어를 통해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내부적으로 언어를 통한 민족적 갈등이 전혀 없는 한 국가가 어떤 외국어를 위해서 자신의 모국어가 갖는 지위에 의문을 제기한다든지 그 외국어를 자신의 모국어를 대신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시킨 사례는 없다.

또한 하위 개념인 외국어교육 정책을 위해서 국가 언어정책을 변경하거나 뚜렷한 언어정책도 없이 외국어교육 정책을 임의로 수정해서 외국어교육 정책에 언어정책을 끼워 맞춘 사례는 없다.

결국 싱가포르나 다른 북유럽 국가들이 간 길을 우리가 갈 수는 없다.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은 일정 수준의 영어이면 충분할 것이다.

일부는 평생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며, 일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매일같이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높은 수준의 영어교육은 필요에 따라서 소수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각론 논하기 전에 목적지부터 정하자

우리는 지금 영어교육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없이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각론에 매몰되어 다시 이것저것 영어교육 정책을 남발하게 되면 종국에 우리가 어디로 갈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보다 일관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시간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현실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어느 정도 필요하며, 어느 수준의 영어교육을 원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에 맞추어 국가 영어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한편 국가영어교육과정과 사회의 변화나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영어교육과정은 수준과 목표에서 너무나 벌어져 있다. 사회의 요구와 현행 영어교육과정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큰 방향 못 잡으면, 부유층 자제만 유리할 뿐…우리말과 영어의 관계 설정부터 고민해야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 진행되는 추세로 보아 사교육에 의해서 영어교육이 주도될 것이며 결국 부모들의 관심과 부(富)에 의해서 학생들의 영어 능력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무작정 영어교육을 확대할 수는 없다. 그 끝은 우리말과 닿아 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말을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그래서 단순히 영어교과목으로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열풍 속에 국민의 정체성, 경제, 사회, 민족, 교육의 문제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눈여겨보고 그 토대 아래에서 영어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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