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영어'…아이들만 멍든다"
"'묻지마 영어'…아이들만 멍든다"
[기고] 초등교사가 본 조기 영어교육의 폐해
"'묻지마 영어'…아이들만 멍든다"
최근 '실용주의'를 입에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실용주의'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다. 하지만 '합리성'이 '실용주의'를 구성하는 한 요소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불합리한 실용'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어색하니까.

그런데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들의 주장에서 '합리성'을 찾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명박 당선인 측이 내놓은 영어교육 정책이 이런 경우다. 합리적인 경제 원리는 늘 '한계 속에서의 최적'을 추구한다. 이런 원리를 공부에 적용하면, 제한된 시간과 역량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당선인 측이 영어교육을 강조한다면, 학생들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의 범위 안에서 영어 습득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최적치인지를 구해야 한다. 요컨대 영어 능력을 위한 훈련과 다른 교육 활동이 각각 어떤 비율을 차지하게끔 하는 게 합리적인지를 따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영어를 공부하는 목표부터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도달해야 할 수준을 학생의 유형에 따라 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 측의 영어교육 정책에서 이런 내용은 찾기 힘들다. 무턱대고 "영어가 중요하다"라고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정신 활동에 쓰는 시간의 '전부'를 영어 익히기에 쓰자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경제적인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국민들이 기업 경영인 출신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영어가 전체 학습 시간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채, 영어교육만 강조하는 것은 당선인 측이 강조하는 이른바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해롭다.

이른바 지식경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논리적인 사고력을 갖춘 창의적인 사람인데, 다른 지적 활동에는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은 채 단순 암기와 반복 훈련으로 이뤄진 영어 익히기에만 골몰한 학생이 이런 유형의 어른으로 자라기 어려우리라는 점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미국인의 발음을 흉내내는데는 능하지만, 사고력과 감수성은 둔한 어른으로 자라기 십상이다. '신종 우민화 정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법 하다.

그런데 이처럼 '합리성'이 결여된 정책이 시행될 경우,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결국 교육 현장이다. 그리고 이미 상당수의 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이런 혼란을 겪고 있다.

외국 체류 경험과 사교육으로 인한 영어 능력의 차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 현상을 낳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에서 한국 아이들이 미국 사람의 입놀림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같은 한국 아이들을 따돌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영어 회화 능력이 교사를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사보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 막고 미국인의 발음을 흉내내는 연습에 골몰한 교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학교가 정상적인 곳일리는 없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사교육비 부담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의 고통은 굳이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교육 현장의 풍경을 담은 글을 소개한다.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초등학교 박진환 교사의 글이다.

앞서 게재된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의 글("영어 교육, '변방 엘리트'의 욕망부터 떨쳐내야"), 경기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의 글("'콩글리시'는 '잘못된 영어'가 아니다")과 마찬가지로, 전국영어교사모임과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새 정부 영어교육 정책의 진단과 모색"이라는 주제로 21일 서울 대학로 전국국어교사모임 건물 강당에서 마련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이다. 박진환 교사의 글을 주최 측과 필자의 허락을 얻어 전재한다. <편집자>

10년 전 어느 날, 이유를 모른 채 참가했던 의무 연수

초등학교에 영어가 도입되던 1997년의 이듬해 1998년 1월. 나는 '영어 기본과정 연수'라는 이름으로 120시간이 넘는 장기간의 연수를 받아야 했다. 갑작스레 받았던 의무연수였다.

하지만 당시 많은 초등 교사들은 '왜' 영어연수를 받아야하는지 몰랐다. 그저 국제화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정부정책에 이끌려 해마다 줄을 지어 연수를 받아야 했다. 연수대상도 20대 교사에서부터 퇴임을 바라보는 50대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꽤나 넓었다. 심지어 점수를 따기 위한 방편이 된 연수는 승진을 앞 둔 중년의 교사들에게는 영어연수라고 해서 다른 연수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따금 연수 점수 문제로 젊은 영어강사들과 심심치 않게 벌이는 신경전은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지역교육청 단위에서 추진되는 직무연수가 대개 그렇듯 영어연수도 다른 연수와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성인용 회화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는 초등교사 연수

이렇게 10년 동안 장시간 진행된 기본·심화 과정 영어연수를 많은 초등 교사들이 받아 왔지만, 실제로 공교육 내의 영어 교수학습 방법의 질이 개선되고 학생들의 영어활용능력이 향상되었는지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실패의 길을 걷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동안 진행해 온 초등 교사 대상 영어연수의 내용을 보더라도 충분한 연구와 준비에 따른 정책추진이 아니어서인지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가 뚜렷하지 않아 성인 수준의 영어회화 교육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교사가 교실에서 영어수업을 진행하는데 연수가 직접 도움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였다.

영어 연수는 그저 통과의례일 뿐…"영어에 투자한 결과도 이야기해보라"

요즘에는 연수진행 초기와 달리 교수학습방법적인 연수영역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방법적인 변화가 학교 영어교육의 수준을 바꿀 수 있을 정도였을지 의문이 든다. 점점 초등 교사들에게 영어연수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 여겨지게 됐다.

교육청 측에서도 투자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져 보이는 듯 했던지 연수대상의 폭도 줄여 나가며 점차 다른 방향을 찾고 있다. 지나치리만큼 한 교과에 투자한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무엇을 위한 투자였고 어떠한 성과를 이루어냈을까?

거짓과 진실이 섞인 말들이 떠돌지만 정책을 추진한 주체인 교육 관료들 어느 누구도 뚜렷하게 답을 내놓는 이들은 없다. 그저 그들의 실패를 성공한 것인 양 예쁘게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만 든다.

사교육 도움으로 영재 행세하는 아이들을 위한 전시행정

영어연수 외에도, 10년간 지역 교육청 단위에서 목소리 높여 외쳐대는 구호는 늘 '영어교육의 내실화'였다. 그 내실화 방법의 실체는 한국 교육행정 풍토를 그대로 답습하는 변함없는 전시주의요, 실적주의였다.

각종 영어교육 관련 연구시범학교와 영어 말하기 대회를 추진하고, 영어 노래 부르기, 방학 중 단위 학교별 영어 캠프 추진 실적 쌓기, 교육청별 영어영재 모집 캠프 운영 따위가 지역교육청이 할 수 있는 영어교육 내실화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행사에 동원되고 실적을 쌓도록 도움을 주는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 유학이나 사교육을 받아왔던 아이들이어서 공교육기관이 사교육의 실적을 검증하는 역할을 하는 기이한 교육 풍토만 재생산해 왔다.

더구나 이 아이들은 사교육의 도움으로 영재 행세를 하는 것인지, 아님 실제 영재인지 과학적인 판별도 되지 않은 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각종 영재캠프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추가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공교육은 늘 사교육으로 훈련 받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늘 전국의 모든 교육청에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고 내실화 하겠다며 줄곧 주창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교육은 늘 사교육에서 훈련 받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명분과 실적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상실감과 격차는 그 그늘이 더욱 짙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학기나 방학에 상관없이 재력 있는 부모의 도움으로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오는 학생들이 점차 늘면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과 더불어 일종의 무리를 짓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자연스레 교실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과 그렇지 않는 학생들 간에 구분이 지어지고 영어를 못하고 외국을 다녀오지 못한 것 때문에 놀림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도 '영어는 권력'…영어 왕따 현상까지

"서울 상계동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B양은 지난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영어학원에서 반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아이들은 B양의 영어 발음이 이상하고 목소리도 너무 작다며 자꾸 핀잔을 줬다. 엄마 몰래 자주 학원을 빠지던 B양은 결국 올 초 다른 학원으로 옮겼지만 새 학원에서도 왕따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계속 놀림거리가 됐다.

… 초등학생 5명 중 1명은 영어 때문에 직·간접적인 '왕따'를 경험했고 절반 가까이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 그러나 영어로 인한 왕따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66%는 '영어를 계속 배우고 싶다'고 답했고, 51%는 '영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밝혀 초등학생들 사이에 영어강박증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 2007년 7월 10일)"


차츰 아이들에게 영어는 일종의 권력이 되어 가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반민주적인 풍토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천차만별의 사교육, 믿을만한가?

그렇다면, 과연 사교육의 질과 폭은 어떨까? 아이들이 받는 사교육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습지를 받아 보는 아이들이 있다면 보습학원 형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있고 개인 또는 여러 명이 함께 모여 비용부담을 줄이는 형식의 교습 형태가 있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있는데, 학원의 수준과 명성에 따라 학원비의 차이도 엄청나다. 알다시피 명성이 있는 학원에 들어가려면 시험까지 치러야 하는데 이런 지방에서도 그 경쟁률은 엄청나다.

이밖에 최근에 한창 붐이 일어나는 해외어학 연수는 필리핀을 중심으로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르는데, 가장 큰 효과를 보고 있는 듯하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미 격차는 그만큼 벌어져 있다. 사교육이라고 해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 땅의 부모들은 좀 더 비싼 사교육이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도 '영어교육의 내실화'만 공염불처럼 외치는 교육관계자들의 독려는 그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

'영어의 권력화', 교사도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억압의 기제'와 '영어의 권력화'는 비단 아이들에게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영어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은 교사들의 사고와 문화를 알게 모르게 바꿔 나가고 있다.

초등학교에 영어가 도입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초등교사에게 주는 압박감은 매우 컸다. 많은 교사들은 이미 다가올 교단의 모습은 '영어'가 초등 교사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어 연수를 받았던 2년차 교사는 연수과정에서 끊임없이 강사와 관료들로부터 이제 초등 교사들도 영어를 못하면 교직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는 말들을 들었다고 한다.

막연한 불안감 "영어 못하면, 쫒겨나겠구나"

그 교사가 내게 던진 말은 듣고 보니 이제 영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김해지역 학급운영 모임을 이끌면서 선생님들에게 학년 초 학급운영 계획서와 자기 계획서를 짜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다. 놀랍게도 20명의 모임 회원 가운데 7~8명이 자기 계획에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딱히 공부해야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미래를 대비한다거나 다시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막연한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창 아이들과 뒤섞여 지내며 아이들을 공부해야할 젊은 교사들에게 영어는 보이지 않는 생존의 도구, 억압의 기제가 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교사의 조건은 영어 점수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

초등은 중등에 비해 담임이 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루 내내, 일 년 내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초등학급 운영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학급운영이라는 독특한 체계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고 전국에서 많은 교사들이 그 사례들을 나누고 있다. 그만큼 초등학교 과정은 초등학생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발달단계에 맞는 정서교육과 인성교육을 교과공부보다 앞서 강조해 왔다.

따라서 좋은 초등 교사, 능력 있는 초등 교사의 기준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이해해주고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잘 알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이들과 떨어져 자격증 준비한 교사가 높은 평가 받는 교육 현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풍토는 행정이 중심이 되는 체제여서 그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는 교사들이 더 나은 대우와 인정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보다 교실과 아이들을 떠나 업무에 매진하는 교사가 더 능력 있는 교사로 대접을 받는다. 현재 교원평가니 다면평가니 말들이 많지만 이런 풍토에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15년 전 학교에 컴퓨터가 들어온 뒤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컴퓨터 활용능력이 점차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10년이 지나면서 활용능력에 차별이 줄어들 즈음 각종 자격증에 대한 가산점을 만들어 그 능력을 객관화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서 영어로…비교육적인 평가 기준

그만큼 교내에서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교사는 학급운영이나 교과지도와 상관없이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그 다음 자리를 영어가 차지하려 줄을 서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초등교사 임용고사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른바 프리토킹이 되지 않는 초등교사는 뽑지 않겠다는 것이 각 지역교육청들이 내세우고 있는 임용 조건이다.

이제 영어활용능력이 초등 교사의 능력을 판단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일까? 이쯤 되면 영어가 교사를 억압하는 또 다른 기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초등교육은 기초 교육…"왜 영어만 강조하는가"

사실 초등학교 교사는 9~10개 교과를 자유롭게 다뤄야 하는 처지에 있다. 교과전담이 1~3개의 과목을 맡아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분량의 교과를 담임이 책임을 저야 한다.

이런 부담을 안고 있는 교사지만, 나름대로 각 교과가 가지는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기초교육과 감성교육, 문화예술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할 초등교육에서 특정 교과만을 배려하고 투자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국어, 수학, 예체능 연수도 받고 싶다"

지난 10년 간 많은 교사들이 교육청에 요구하고 때로는 비판을 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도울 연수가 왜 영어교과에만 치우쳐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교과가 영어인 것은 알지만, 우리 교사들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예체능 모든 과목을 정기적으로 받아 전문성을 신장할 기회를 얻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언제나 영어 이외의 교과들은 교사들이 어렵게 찾아 자비부담으로 연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학교현장에는 교육경력이 30년이 넘도록 1급 정교사 연수 이외에 질 높은 국어나 수학, 예체능 관련 교과연수를 받지 못한 교사들이 수두룩하다.

초등교육의 정체성마저 흔드는 영어. 초등교사에게 영어는 과연 무엇일까?

지자체마다 '외고 설립', '원어민 교사 배치' 경쟁
▲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 입구.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영어교육 관련 기관을 경쟁적으로 세우고 있다. ⓒ파주 영어마을

이쯤해서 우리 지역 사회의 영어교육 풍경들을 살펴본다. 내가 사는 곳은 경남 김해이다. 인구 50만으로 인근의 창원과 인구가 맞먹는 경남의 최대도시이기도 하다. 김해시는 이 지역을 교육과 문화의 도시로 만들어 타 지역 인구를 끌어들이고자 많은 교육지원 정책을 펴나갔다.

영어만 관련해서 예를 들자면, 많은 반대에도 설립한 김해 외국어고등학교를 비롯해 4년 전부터 전 초등학교에 원어민을 배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어민 교사를 학교에 배치하는 문제도 투자에 비해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과 원어민 교사의 수준 때문에 전교조를 비롯한 지역시민단체의 많은 반대에 부딪쳤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김해시는 추진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첫해에는 임용할 원어민 교사들을 모집해 합숙까지 시켜가며 학교현장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켰다.

이와 더불어 이들 원어민을 지원하고 보조할 보조교사(Co-Teacher)를 각 학교마다 한 교사씩 뽑아 갑작스레 연수를 받게 했는데 원어민의 생활지원까지 해야 할 상황까지 벌어져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어민 교사 정책의 부작용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머물지 않고 막상 원어민교사가 학교현장에 왔을 때, 지원교사와 협력체제가 잘 구축이 되지 않거나 학교와 마찰이 생겨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영어수업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어민 교사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어서 사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무단이탈하거나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롱하며 장난을 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시 예산으로 일 년에 일인당 삼 천 만원이나 되는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에서도 충분히 예견될 일이라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영어 도서관 세우면, 계층간 영어 격차 줄어들까?

가까운 부산에서는 영어교육에 좀 더 구체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최근 부산시교육청에서 발표한 부산지역 초·중학생의 영어교육 격차는 지역구별뿐만 아니라 교실 내에서조차 계층 간의 그 차이가 뚜렷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안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부산지역 영어교육 전문가와 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영어 전용 도서관'이다. 사교육에서 벌어지는 영어교육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서는 영어에 노출될 환경을 누구에게나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부산지역 전문가와 행정가들의 의견이었다.

계층에 관계없이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과 일부 중산층을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해서 영어교육의 격차가 해소가 될까?

영어는 문화자본, 영어에 오래 노출한다고 격차 줄지 않아

그렇다면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이 무료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므로, 모든 아이들이 독서력의 격차가 없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해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저소득층 아이들 삶과 맞벌이 부부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저 영어에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만으로 영어의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와 판단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거나 오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다음의 글이 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사회에서 영어는 단순히 기능적인 습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영어실력은 부모의 경제적 자본과 이어진 일종의 문화자본이 돼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을 보장받는 능력과 성품으로 간주되는 영어실력이 사실상은 부모의 경제적 자본과 밀접하게 관련된 체화된 문화자본이며, 영어실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통해 공적으로 능력으로 인정을 획득한 제도화된 문화자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한국사회에서의 영어실력은 제도화된 자본이며, 이를 갖지 못한 집단으로부터 능력과 성공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강력한 문화재생산의 기제이다.(최샛별, "한국사회에서 영어실력은 문화자본인가",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127쪽)
"

'왜 영어에 돈을 쓰는지, 그래서 얻는 효과가 무엇인지'도 이야기하자

김해와 부산 지역의 영어교육실태와 진단을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왜 영어를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전제는 철저히 무시되거나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해시는 해마다 한 중소도시의 예산을 몇 십억 원씩 들여가며 원어민 교사를 써야 하는지, 그래서 얻는 영어교육의 실제 효과는 어떠하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어떠한 중간 평가가 분석도 내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 부산시에서 추진하는 영어전용도서관 설립을 주창하는 전문가와 교육 관료들도 영어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와 범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왜 모든 아이들이 영어에 매달려야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도대체 왜 영어만?…다른 분야도 중요하다

정작 기초과학과 이공 계열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장기적인 수출전망을 어렵게 한다는 말들과 위기의식이 팽배하지만, 전 국민이 과학을 배워야 하고 1,2학년 때부터 과학실험수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왜 들리지 않는 걸까?

학생들의 과학교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과학 전용도서관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왜 영어만이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아할 유일한 길이어만 하는가?

이제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영어는 마땅히 익혀야 할 맹목적인 목적 그 자체가 돼 버린 것일까?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성과에 대한 평가 없이 추진되는 영어교육 정책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초등학교에 영어교과를 들여오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해 왔다. 아울러 그동안 추진되어 온 영어교육 정책을 여러 근거를 들어 실패라고 주장하고 초등학교 1,2학년까지 영어교육 연령을 낮추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졸속행정이라 비판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초지일관 2008년도까지 추진하는 시범학교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추진할 의지를 보였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교육을 앞세워 영어 외에 다른 교과까지 영어를 사용하겠다는 의지까지 내 비추고 있어 과학적인 분석과 검토는 제쳐두고라도 민주적 절차와 과정까지 빠져버린 상태여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교사들, 무리인줄 알면서 왜 침묵하나

이런 상황 속에서 초등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정책이 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영어교육의 방법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는 동의를 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그 동의가 어디서 기인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영어교육정책이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추진됐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을 많은 교사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이런 식의 비효율적이고도 안일한 정책 추진은 예산만 낭비하고 학생들 간의 격차만 벌려놓을 거라는 전망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1,2학년까지 영어교육연령을 낮춘다고 해도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거라는 게 많은 교사들이 말하는 영어교육 개선의 가장 큰 이유다.

영어 교육의 목표에 대해 침묵하는 교사들

하지만,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동의를 하는 것이지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영어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달지 않는다.

심지어 주변의 적지 않는 교사들과 관리자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이 시대의 흐름이라며 영어교육 확대에 찬성해야지 반대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뒤편을 살포시 넘어다보면, 이는 교사의 입장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논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직업이 교사지만 그들도 자기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보살펴야 하는 부모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 자녀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생의 모든 길에서 고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영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 지점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소신 있게 자녀교육을 하는 일이 과연 바른 길인가에 의문이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빠진 교사들, 학교가 죽어간다

결국 교사들도 정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교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고 추락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에서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는 학교 안으로 이어져 교사들의 교육관과 학생관을 결정짓게 만든다. 결국 점점 학교라는 사회는 입시를 정점에 두고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을 몰아가는 사육공간이 돼 가고 있다. 이곳에는 어떠한 교육철학도 어떠한 교육적 원리도 필요 없다. 학교가 죽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논의는 이러한 개개인들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는데 있지는 않다. 비판한다고 해서 달라질 현상들도 아니다.

"토론 생략한 불도저식 교육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초등교육 체제가 교육철학의 부재로 방황하고 쓰레기장처럼 뒤섞여 있어 학교에 어떤 정책들이 들어와도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정책이 초등교육 현장에 들어왔을 때,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교사에게 주어지는 목표와 과정, 예상되는 결과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조차 공유되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만 재생산되고 입시위주의 단순한 틀만 남아 사교육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이른바 '열린 교육'이 교육계의 흐름을 한창 주도했지만, 수많은 학습지들만 써버린 채 어느새 뜯어냈던 교실문과 복도를 다시 만들어 세우는 일 시간을 보냈다.

7차 교육과정으로 수행평가가 강화되고 수업과 평가문화의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지만, 학력저하라는 핑계로 일제고사라는 1970~80년대식 지필평가가 다시 부활되어 아이들은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시험 때만 되면 학원으로 가야하는 시대가 돼 가고 있다.

"'왜'도 없고, '저항'도 없는 학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벌써부터 관리자들은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겠다는 정부방침에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며 지필평가의 횟수를 늘이자고 난리다.

시험을 많이 치면 많이 공부하고 학력이 올라간다는 근거 없고 일련의 철학도 없는 '짝퉁 학원'식 공부만이 초등학교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

왜'도 없고 '저항'도 없는 학교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교에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고 1년간 전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겠다고 하는 새정부의 몰상식한 주장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우리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조기 영어교육 10년의 역사, 사교육만 살찌웠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초등교육은 영어로 인해 그 정체성이 더욱 흔들렸다. 오히려 사교육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며 사회 양극화를 교육 양극화로 그 심각성을 드러내주는데 큰 몫을 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조기 영어교육 10년의 역사는 우리나라 사교육의 판도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공교육의 중심을 영어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절망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명문대 진학과 대기업 취업의 절대 기준도 영어실력이 된 지 오래며, 직장 승진과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 또한 영어능력이 되었다.

이제 영어 상용화, 공용화, 제2언어화, 모국어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떳떳한 일이 되었다.

"'영어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은 어디서 보상받나"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정권을 돌려받았지만, 영어 몰입교육과 영어교육의 확대정책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 앞에서 우리 초등 교사들은 영어교육으로 '잃어버린 초등교육 10년'을 보상받을 길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문제로 학부모들과 면담을 하면 그들의 답은 뚜렷하다. 그들에게 영어교육은 중학교 대비를 위한 준비였다.

중등과정에서 영어가 다른 아이에게 뒤처지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과목처럼 사교육을 받아야 하고 이따금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경쟁력 이야기해도, 학생과 부모에게 영어는 '입시용'일 뿐"

정부는 국가경쟁력을 이야기 하지만, 부모와 학생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과 대학이 보인다. 영어는 한국사회에서 단순한 언어소통수단 이상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몰입교육'과 '전 교과를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과 같은 발상은 오히려 사교육의 폐해와 공교육의 기능을 더욱 약화시키고 경제자본에 따른 아이들의 영어격차만 더욱 벌이는 상황만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만 보인다.

그런데도 나 같은 초등교사에게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생존 수단으로서의 영어, 초등교육 정체성 흔든다"

적어도 나에게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감성을 아름답게 잘 드러내고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는 곳이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더불어 세상을 사는 행복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고 깨우쳐야 한다. 무수한 시험들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지워내고 오로지 체제에 순응하는 길들여진 성인을 키워내는 일은 진정 교육이 아니다.

가르침이 희망이어야 하고 배우는 것이 행복이어야 하는 삶터에 생존수단의 도구로 무장한 영어가 자리 잡는 일은 초등교육의 정체성을 더욱 흔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다가올 10년은 더욱 암울해 보이기만 하다. 그렇다고 당장 초등교육에서 영어를 집어 치우라고 말한들 영어가 교육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로운 대안과 준비가 필요하다.

"교육에 대한 관점부터 제대로 세우자"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야 하고 초등교육이 무엇인지 중등교육은 무엇인지 공교육에 대한 관점도 다시 만들어가며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는 교육관들을 만들어가는 환경도 만들어가야 한다. 그제야 영어교육도 비로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을성을 갖고 오랜 세월 준비하고 싸워 나가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우리 교육을 밑바닥부터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역사가 없지 않은가. 이것이 내가 '영어 광풍'에서 '초등교육'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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