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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주의 경제학'은 경제 위기 해법 아니다"

[케인스 혁명②] '케인스주의 혁명'과 '케인스 혁명'

박만섭 고려대 교수 2009.03.24 11:07:00

미국 금융 위기로 시작한 세계 경제의 미래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다만 1970년대 말부터 득세한 시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가 어떤 식으로든 바뀌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경제학자는 단연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이런 분위기에서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쓴 케인스의 전기가 국내에 소개되는 등 케인스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되묻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케인스의 사상에 정통한 국내 경제학자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케인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에 이어 박만섭 고려대 교수의 답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최근 출간된 스키델스키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의 서평 형식을 빌려 지금 필요한 것은 "'케인스 정신의 부활'에 기반을 둔 진정한 '케인스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준비 기간을 포함해 30여 년에 걸쳐 완성한 3부작 케인스 전기는 (적어도 케인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3부작의 제1권은 <희망의 좌절, 1883-1920>로 1983년에, 제2권은 <구원자로서의 경제학자, 1920-1937>로 1992년에, 그리고 제3권은 <영국을 위한 싸움, 1937-1946>으로 2000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그 방대한 양 때문에 특히 비영어권 독자들에게는 조금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한국어 독자들은 스키델스키가 자신의 3부작 전기를 60% 정도로 축약한, 그리고 3부작에서 전달했던 일부 잘못된 정보들을 교정한 케인스 전기를 고세훈(고려대) 교수의 4년여에 걸친 노고 덕에 한국어로 읽을 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2003년에 두터운 한 권으로 출판되었던 원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번역본에서 두 권으로 분리되어 출판되었다. 3부작의 60% 축약본의 번역인 데도 불구하고, 제1권이 900여 쪽, 제2권이 73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이 중 68쪽에 이르는 '인명사전'은 양 권에 공통으로 수록되었다.)

고세훈 교수의 번역은 그 자체로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선물이다. 그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두 권의 책이 금방 읽히는 것은 스키델스키의 유려한 문체와 더불어 고세훈 교수의 깔끔하고 정확한 번역이 결정적이다. 때로는 통상적인 국어의 어법보다 훨씬 더 많은 쉼표들이 들어간 문장들이 생소하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원문의 뜻을 정확히 옮기는 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학자로서, 케인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학자로서, 그리고 고세훈 교수가 "다소 난삽하지만" 경제학 전문가들을 위한 국내에 찾아보기 힘든 케인스 경제학 연구서로 평가한 책의 편집자로서, 본 서평자는 그의 업적에 시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스키델스키의 전기를 통해 케인스는, 아버지의 학문적 희망 속에서 철저하게 훈련받는 아들로서, 당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차지하던 영국의 국민이면서 또 영국 내의 최고의 지적 산실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젊은 학생으로서, 케임브리지의 고답적인 학문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사상적 조류의 선봉에 있던 문인들 및 예술가들과 열정적으로 교류했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동성애 과거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세간의 비우호적 눈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발레리나인 리디아 로포코바와 죽을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남자로서, 반유대주의 경향을 지녔고 히틀러에 대해서도 크게 반감을 갖지 않았던 자기가 속한 사회계급의 산물로서, 자기를 키워준 스승인 마셜과 피구의 경제학을 그 내부로부터 혁파하려는 '불온'한 의도를 갖고 활약한 경제학자로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던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은 정치가로서,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스키델스키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케인스는 무엇보다도 대학시절 철학자 무어의 영향 하에 각인됐던 사고, 즉 우정과 사랑의 실천, 미의 추구, 지성의 훈련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의 선한 상태'를 달성할 수 있고 '선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사고를 경제학 이론과 정치적 실천에서 실현하려고 했던 철학자이다. 케인즈가 <일반이론>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줄기차게 주장한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선한 삶'을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는 이유 때문에 케인즈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스키델스키 3부작 제2권의 제목이기도 한 '구원자로서의 경제학자', 그리고 현 번역본 제2권을 시작하는 제6부의 제목이기도 한 '구원에 나선 경제학자'는 케인스 자신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스키델스키는 자신의 접근법이 "경제학적 교양을 지닌 역사가"의 것이라고 밝힌다. 번역자는 이것을 스키델스키의 "경제학 지식에 대한 겸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스키델스키의 의도는 그것 이상이다. 스키델스키는 자신이 채택한 '역사가'의 관점이 해로드(1951년)와 모그리지(1992년) 같은 경제학자들이 작성한 케인스 전기와 자신의 것을 구별해주는 장점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스키델스키는, 경제학자들이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역사학자는 특정적이고 예측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역사학자가 더 훌륭한 전기 작가가 된다고 말했다. 역사가로서 스키델스키는 경제학자와 정치가로서의 케인스를 그가 살았던 시기와 경험의 산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화폐개혁론>은 1920년대 개방체제하의 영국 경제, <화폐론>은 1920년대의 영국 금융체제, 그리고 <일반이론>은 대공황에 대한 케인스의 부단한 현실적 관심과 정확한 분석이 경제학자로서의 케인스가 가진 학문적 통찰력 및 연구의 연속성과 결합한 결과이다. 대공황이 없었다면, 그리고 <화폐개혁론>과 <화폐론>이 없었다면, <일반이론>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스키델스키의 판단이다. (케인스가 대학에서 교육받았던 고전과 철학, 그의 신학적 관심, 그리고 그의 예술적 성향과 능력이 케인스의 경제학에 끼친 커다란 영향이 설득력 있게 기술된 것도 스키델스키의 '역사가'적 관점 덕이다.)

물론 그렇다고 케인스의 경제학이 1920~30년대의 영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케인스에 열광하거나 그토록 케인스에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케인스의 경제학은, 특히 <일반이론>에서 전개된 그의 경제학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일반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케인스학파(혹은 케인스주의) 경제학'과 '케인스의 경제학'을 구분하는 일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케인스의 <일반이론>이 출간되자마자, 해로드, 미드, 힉스, 나이트 같은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의 이론을 마셜과 피구의 '고전학파' 경제학을 재포장한 것으로 해석하거나, 적어도 '고전학파' 경제학의 틀과 양립 가능한 것으로 해석했다. "단순하면서도 미묘하고, 모호하면서도 심오"한 <일반이론>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케인스의 경제학'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으로 변모되었다. 스키델스키는 '케인스주의 경제학'과는 구별되는 '케인스의 경제학'의 진수를 정확하게 밝힌다. "케인스가 고전경제학의 비전과 결별한 것은 불확실성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확률로도 표현될 수 없는 근본적인 불확실성 하에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한다. 화폐는 그런 노력의 결과로 발생했다. 화폐는 주류경제학에서 이해하는 것처럼 단순히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화폐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득을 소비하거나 투자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기 위해 고안해 낸 수단, 즉 '가치의 저장' 수단이다.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는 대상, 즉 '화폐'는 경제에서 다른 그 어떤 상품보다도 더 높은 유동성을 지니고 있고 저장비용이 거의 0에 가까운 것이기에 '화폐'로 채택된다. 현재에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고 화폐의 형태로 가치를 저장하는 개인의 행위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의 합리적 행위는 경제 전체에 유효수요 부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 결과는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 이하에 머무르는 과소고용 상태이다.

근본적인 불확실성은 기업가의 생산(투자) 활동에도 영향을 끼친다. 불확실성 하에게 기업가들은 세세하고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투자 결정에 있어 관습과 자신들의 '동물적 충동'에 의존한다. 그런데 '동물적 충동'은 외부 충격에 민감하여 불안정한 성격을 지닌다. 투자의 불안정성과 함께 경제도 불안정한 경기변동의 모습을 보인다.

유효수요의 부족과 투자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경제는 장기에 걸쳐서도 완전고용 이하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수준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과소고용 상태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치유될 불균형 상태가 아니라 장기에 걸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균형 상태다. 이 균형 상태는, 케인스 이전에 마셜과 피구가 주장했고 케인스 이후에도 수많은(소위 '케인스주의자'들을 포함한)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가격과 임금의 경직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근본적인 불확실성 하에서 가격과 임금의 유연성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뿐이고, 그럼으로써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근본적인 불확실성 하에서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경제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자동적으로(즉, 순전히 시장 작동만으로는) 성취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 케인스가 주장하는 정부의 역할이 있다.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일이다. '투자의 사회화'로 널리 알려진 케인스의 정책 제안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투자의 사회화'는 민간부문의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총수요를 안정화시키는 정책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를 '미세조정'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내세운 주장이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아 보인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해법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아니라 '케인스 경제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케인스가 경제학자와 정치가로서 활약하던 시기가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 결과 국제금융체제가 개혁 속에 있었던 시기였음을 고려할 때, 한국어 번역본은 기막힌 타이밍으로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케인스는 전 세계와 각국이 겪고 있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진단할 것이고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

작금의 세계적 경제 위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로부터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전 세계의 금융위기와 경제 위기로 확산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 케인지언'을 대표하는 미국의 폴 데이비드슨은 <챌린지>에 실린 기고에서, 경제학자들과 실천가들이 실제의 금융시장 작동을 이해하는 데 케인스의 유동성 선호이론을 망각하고 그 대신 고전학파 경제학의 전통에 있는 효율적 금융시장이론을 채택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효율적 금융시장이론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① 금융상품의 구매자와 판매자들이 서로 충분한 정보를 갖고 규제 없는 자유로운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하기만 하면, 금융상품의 시장가격은 항상 시장청산 가격 수준으로 조정된다. ② 시장 작동에 의해 시장가격이 조정되어가는 시장청산 가격은 미리, 시장의 '근본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③ 그런데 고도의 성능을 자랑하는 컴퓨터에 기반해 있는 현대의 금융시장은 시장청산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정보와 시장의 자유를 보장한다. ④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시장 운용은 전 세계적으로 거래자의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거래자 수의 증가는 시장청산 가격을 중심으로 한 시장가격의 분산을 대폭 감소시킨다. ⑤ 따라서 현대의 금융시장은 조직적이고 질서 있게 작동한다.

위의 주장들에 따르면 현대의 금융시장에서 어떠한 금융상품의 경우에도, 채무자가 채무변제를 이행하지 못할 위험의 확률이 회계상으로 확실하게 알려져 있다는 조건이 만족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한 금융상품들과 그 상품들에 대한 보험상품들의 시장은 바로 이와 같은 효율적 금융시장이론에 근거하여 생성되었다. 그러나 케인스의 유동성 선호이론에 따르면 경제는 근본적인 불확실성 하에 있다. 근본적 불확실성 하에서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자료에 근거하여 믿을 만하게 예측될 수 없다. 현재와 과거의 확률분포함수는 미래에 대한 믿을 만한 지침이 될 수 없다. 근본적 불확실성 하에서 채무변제 불이행 위험의 확률은 회계상으로 확실하게 알려질 수 없고, 시장작동에 따른 시장가격의 변화는 '시장청산 가격'으로 수렴될 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근거한 금융상품 시장에서의 채무변제 불이행 위험은 사전적으로 예측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도 케인스의 유동성 선호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근본적 불확실성 하에서 금융시장의 기본적 역할은 유동성의 공급이다. 원활한 유동성 공급을 위해서는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즉,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시장 형성자'가 있어야 한다. 이 시장 형성자는 유동성이 필요한 경우 필요한 양만큼의 유동성을 항상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시장 형성자'는 중앙은행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체 혹은 중앙은행 그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 서평자의 관점에서 볼 때, 스키델스키의 전기가 갖는 장점 중의 하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그리는 케인스의 모습이 아니라, 위와 같은 '케인스의 경제학'이 그리는 케인스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상기시키거나 그런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스키델스키의 이런 해석은 주류경제학자들로부터 지나치게 '포스트 케인지언'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포스트 케인지언임을 자처하는 서평자에게 스키델스키의 해석은 매우 친숙하고 반갑다.

작금에 많은 사람들이 '케인스의 부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케인스의 부활'은 케인스가 그의 책과 연설문과 실제의 실천에서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역사가로서의 스키델스키가 쓴 케인스 전기는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케인스의 경제학'이 케인스의 삶에서 보여준 구체적 형태는 케인스가 살았던 시대의 구체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케인스의 부활' 보다는 '케인스 정신의 부활'이 필요한 듯이 보인다. 서평을 맺으면서 본 서평자는 번역자가 역자서문의 제목으로 삼은 문장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인스 혁명은 일어나 본 적이 없다" ― '케인스주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으로) 존재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