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입양인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입양인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정치인이었다"
[DJ를 기억하며] 국경을 뛰어넘는 화해
"그는 입양인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정치인이었다"
해외입양인들에게 모국인 한국은 참으로 아픈 나라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이지만 자신을 내친 나라이기도 하다. 해외입양을 통해 그들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탈당했다. 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친부모가 있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찾은 한국은 낯선 땅이다. 입양인에 대한 작은 배려나 미안함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잊혀진 역사'였다.

이런 입양인들의 아픔에 일찍부터 알아준 정치인이 있다. 그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82년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편지에서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89년 야당 총재 시절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나는 한국의 고아입니다.한국은 돈을 받고 나를 팔아먹었습니다.경제사정이 좋아진 지금도 아이들을 팔아먹고 있습니다.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던 입양인 레나 킴과의 만남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레니 킴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한 뒤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고, 그와 이희호 여사는 해외입양인들을 여러 차례 청와대에 초청했다. 안타깝게도 김 전 대통령 재임시 해외입양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관심으로 '잊혀진 역사'인 해외입양 문제가 공론화된 것도 사실이다. 해외입양인들이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문을 보내왔다. <편집자>

한국 입양인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며

27년 전 감옥에서 아내에게 쓴 한 유명한 옥중편지에서 김대중은 한국 사회의 해외입양에 관한 이슈를 제기했다. 경제적 성장과 국가적 번영의 시대 한 가운데서 해외입양의 도덕적 문제들을 숙려하던 중, 김대중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입양인들의 존재를 위한 투쟁에 감명을 받았고 또한 자기 나라에 태어난 아들들과 딸들을 국가적으로 유기하는 일에 대해 수치스러워했다.

야당 지도자로 살았던 기간과 고국을 떠난 망명자로 살았던 수년의 세월 동안, 김대중과 그의 아내는 수많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를 대표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수많은 한국 입양인들에 대해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89년 스웨덴의 스톡홀롬을 방문해서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입양의 이슈가 그를 사로잡았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입양 문제에 대한 김대중의 이해는 깊이를 더해 갔다.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은 1998년 10월 23일 특별 초청을 받아 8개국으로부터 온 29명의 입양인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것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20만 명의 한국인 입양인들의 존재를 비로소 그리고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보다 해외입양문제에 관심을 표했던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연합
그 다음 해에 김대중은 친생가족을 찾아 돌아오는 입양인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준정부적 성격의 글로벌 입양 정보 사후서비스 센터가 설립되었다. (나중에 입양정보센터가 되었고, 2009년 7월부터 중앙입양정보원으로 바뀌었다.) 그로 하여금 저명하게 만들었던 화해의 정신 안에서, 이 기구는 한국 입양인과 한국의 친생가족 사이의 재회를 가능케 하는 단계들을 관장하여 그것을 매우 용이하도록 계획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 남짓 동안, 친생가족을 찾는 요청이 9만 건을 넘어섰다. 이것은 해외입양인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이들 중 2.7%에 못 미치는 이들만이 성공적으로 친생가족을 재회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에는 한국 입양인들의 독특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대략 500-1000명 정도되는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장기거주자들로 살고 있고, 해마다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수천 명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차이나타운이나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에 산재한 코리아타운과 비슷한 입양인타운이 서울에 형성되고 있다. 비록 아직 작긴 하지만 성장하는 모습으로.

우리가 고 김대중 대통령께 경의를 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국제적으로 입양된 한국인 커뮤니티인 우리에게 있어서, 그는 상호 인정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이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 한국에서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최고의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은 입양인의 존재와 고통, 그리고 우리의 망명을 끝내고자 하는 일생의 투쟁을 공식적으로 인식한 바로 그 최초의 대표적 한국인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우리가 존재했으며 존재하고 있고 미래에 한국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첫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큰 존경을 가지고 우리의 전임 대통령과 그의 국경을 뛰어넘는 화해의 비전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한분영, 덴마크/한국 (숭실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과정)
Kim Su Rasmussen (서길승), 덴마크(서울대학교 강사, 철학 박사)
Tobias Huebinette(이삼돌) 스웨덴 (다문화연구소, 한국학 박사)
Kelsey Hye-Sun March(김혜선) 미국/한국 (국외입양인연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인턴)
Nicole Sheppard(김영은), 한국/미국(법무법인 화우, 상표부 국제협력)
Malena Swanson, 스웨덴 (환경부, 법학 박사)
Hanna Sofia Jung Johansson, 스웨덴 (과학과 테크놀로지 박사, Korean @doptees Worldwide 서기)
제인 정 트렌카 (정경아), 미국/한국 (작가, 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회장)
Heidi Borg Jørgensen, 덴마크 (덴마크교통부, 통제자)
Lena Kim Arctaedius, 스웨덴 (AKF - association korean adoptees in Sweden의 설립자)
마야 이 랑와드 , 덴마크/한국 (작가)
Jan Lee Hoejmark-Jensen, 덴마그/한국
Denis SungHo Janssens, 벨기에/한국 (클래식 기타리스트)
Maya Weimer, 미국, 서울/뉴욕 (미술가 & 영화 제작자)
박정수, 덴마크/한국 (한국 영춘 협회, 원장)
신주애, 미국/한국(영어강사)
Christiane Baudraz, 스위스 (Kimchi association 회장)
Lars Liebing, 덴마크/한국 (G.O.A'L-해외입양인연대, 영어강사)
Eli Park Sørensen 덴마크/한국 (경희대학교 영문학, 교수, 비교문학박사)
Nadine Allemann, 스위스(주부)
Mads Jung Nielsen, 덴마크/한국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박사과정)
제니퍼 권 돕스, 미국, (St. Olaf College, 교수, 시인)
Ross Lee Schreck (김준원), 미국/한국 (Vore Studios, Design Manager)
Valérie Burnet, 스위스 (Kimchi Association, Asamco Association)
United Adoptees International (UAI) Netherlands


Reconciliation Without Borders

Adopted Koreans Pay Tribute to President Kim Dae-Jung

Twenty-seven years ago, in one of the famous prison letters to his wife, Kim Dae-Jung brought up the issue of transnational adoption from Korea. While contemplating the moral aspects of intercountry adoption in a time of economic growth and national prosperity, he was equally moved by the existential struggle of the adoptees returning to Korea and ashamed of the nation's reckless abandonment of its sons and daughters.
During the long years in opposition and exile from his own country, Kim Dae-Jung and his wife had many opportunities to meet with individuals and representatives from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He was both surprised and stunned by the large number of adopted Koreans he encountered on his travels. In 1989, while visiting Stockholm, Sweden, the adoption issue was brought to his attention during his public speech by the audience and his understanding of the issue deepened during the following years.
On 23 October 1998, as the democratically elected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Kim Dae-Jung officially apologized on behalf of the nation to a specially invited group of twenty-nine adoptees from eight different countries. The Korean nation, for the first time, officially acknowledged the existence of 200,000 transnationally adopted Koreans.
The following year, Kim Dae-Jung initiated efforts to provide support for returning adoptees that search for their birth families. That resulted in the opening of the semi-governmental organization Global Adoption Information and Post-Service Center (then 입양정보센터, which was recognized as 중앙입양정보원 from July 2009). In the spirit of reconciliation, which he was famous for, the organization was supposed to centralize and simplify the steps towards a possible reunion between the Korean adoptee and the Korean birth family.
Over the past decade, more than 90,000 requests for search have been made. That means roughly half of all the individuals sent for overseas adoption have made an average of at least one official request to find their Korean families, and yet, less than 2.7% of all adoptees have been successfully reunited with their families.
Today, there exists a unique community of transnationally adopted Koreans in Seoul. Approximately 500-1,000 overseas adoptees have returned to live in Korea on a more or less permanent basis, while several thousands visit each year. Similar to the 'China Towns' and the 'Korea Towns' in American and European cities, there is a small, but growing 'Adoptee Town' in Seoul.
There are numerous reasons to pay tribute to late President Kim Dae-Jung. For us, for the community of transnationally adopted Koreans, he symbolizes the very best in Korea: the value of mutual recognition, the respect for human dignity, and an uncompromising fight against injustice.
But more than anything, Kim Dae-Jung was the first representative of the Korean people to officially acknowledge our existence, our suffering, and our lifelong struggle to end our exile. He was the first to acknowledge that we are, we were, and we will remain Korean. We therefore, with the greatest respect, pay our tribute to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and his vision of reconciliation without borders.
onscar@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