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지하경제는 건드리지 말자? 황당한 궤변
[정책쟁점 일문일답] <7>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부자의 지하경제는 건드리지 말자? 황당한 궤변
1. 지하경제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동의하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이와 관련해서 어떤 공약을 내놓았나요?
⇨ 양당이 대선 직전 공개한 공약집을 보면, 박 후보는 "국세청의 금융 정보 활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했고, 문 후보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 현금 자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성"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 됩니까?
⇨ 국제적으로 지하경제 연구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27% 정도입니다. 반면 국책연구소인 조세연구원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GDP 대비 17%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의 보고서들을 보면 18~22%라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참고로 OECD 회원국들의 지하경제 규모는 10~12%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선진국의 2배 수준이라 보면 됩니다.

3.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선진국의 수준으로 낮춘다면 세수는 어느 정도 확보됩니까?
⇨ 선진국들의 지하경제 규모가 GDP 대비 10~12% 수준이고 우리나라가 20~22% 수준이라 가정하면, 양자 간 차이는 10%포인트입니다. 이 차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GDP가 1300조 원이라 가정할 때 대략 130조 원 정도입니다. 이 차이를 줄여서 지하경제 규모를 선진국 수준으로 낮출 경우 확보되는 세수는 25~30조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4. 박근혜 당선인 측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세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 5조 원 내외입니다. 가짜 석유 근절을 통해 5000억 원을 확보하고, FIU(금융정보분석원)법을 개정해서 4조5000억 원을 확보한다는 것이 인수위 측의 복안입니다. FIU는 2001년에 자금 세탁 및 불법 거래 방지를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기관은 수상한 금융 거래를 분석하고 불법 거래, 자금 세탁과 관련됐다고 판단되면 관련 정보를 법 집행 기관에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국세청과 인수위 측은 FIU에 보고된 고액 현금 거래 자료를 일반 세무조사에 활용할 경우 매년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5. 금융기관은 수상한 금융 거래나 고액 금융 거래 자료를 FIU에 보고하고 있는데요. 주로 어떤 자료들이 FIU에 보고됩니까?
⇨ 현재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 기관은 1000만 원 이상 거래 때 불법 재산이나 자금 세탁, 테러 자금 등으로 의심되면 FIU에 혐의거래보고(STR)를 해야 합니다. 2011년의 경우 이런 거래는 모두 33만 건에 달했습니다. 이 중 국세청에 제공된 자료는 7500건으로 전체의 2.3%에 불과합니다. 국세청은 33만 건의 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면 엄청난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6. 선진국에서는 FIU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 OECD의 주요 국가들도 각국의 FIU 정보를 국세청과 공유하는 등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의 국세청은 FIU의 금융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독일, 스페인 등 6개국은 국세청에 금융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고,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국 역시 자발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세청이 요청한 정보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탈세 혐의를 분석하기 위해 FIU 자료를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없고, 탈세 혐의를 검증하는 일반 세무조사 단계에서도 FIU에 일부 정보만 요청할 수 있습니다.

7.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가 FIU의 고액 현금 자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성을 확대한다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딴죽을 걸고 있다고요?
⇨ 일부 정치인들과 한국납세자연맹이 이 좋은 공약에 딴죽을 걸고 있습니다. 모든 정책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큰 정책은 추진하는 게 원칙입니다. 물론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지요.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국가투명도 순위는 선진국 순위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그런데 국세청의 권력이 약간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지하경제를 방치하자? 정말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8. 선진국 순위와 국가투명도 순위는 어느 정도로 일치하나요?
⇨ 선진국 순위를 1인당 GDP 순위라 가정하고 살펴보겠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32개국 중에서 26개국의 국가투명도가 32위 안에 들었습니다. 이것은 선진국 순위와 국가투명도 순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산유국(국가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을 제외하면 그 관련성은 더 높아집니다.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26개국(산유국 제외) 중에서 24개국의 국가투명도가 26위 안에 들었습니다.


9. 우리나라의 1인당 GDP 순위와 국가투명도 순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GDP 순위는 33위이고, 국가투명도 순위는 45위입니다. 산유국을 제외하고 따져 보면 1인당 GDP 순위는 27위이고 국가투명도 순위는 43위입니다. 1인당 GDP 순위에 비해 국가투명도 순위가 낮은 대표적인 나라라 볼 수 있습니다.

10.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은 국세청의 권력 비대화가 걱정된다고 합니다.
⇨ 서민과 중산층이 포함된 자영업자 조세 투명성 확보를 위해 현금영수증을 확대하는 것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부자들의 지하경제 축소에 왜 그렇게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민들의 지하경제를 줄이면 국세청의 권력이 커지지 않고, 부자들의 지하경제를 줄이면 국세청의 권력이 커진다니 황당한 궤변입니다.

11. 선진국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조세 투명도를 높이고 있나요?
⇨ 지난 1월 11일 <한국일보>가 "납세 실적은 공공정보, 누구나 투명하게 공개"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내용이 좋아 소개합니다. 이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이웃과 친하지 않아도 이웃이 무슨 차를 샀는지, 명품을 구매했는지,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철저히 보호되는 학교 성적이나 질병 등 개인사나 사적인 취향과 달리 개인의 수입과 지출 내역이 언제든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보호할 개인정보와 사회적 의무를 위해 공개할 정보로 나눠 접근합니다. 아무리 개인정보라 하더라도 사적 정보와 공공 정보를 구분해서 다룹니다.

12. 핀란드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세금 납부금액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떳떳한 사람들은 이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 우리나라에서는 뒤가 구린 사람들이 많아, 핀란드 납세 정보 공개 시스템이 두려운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13. 만에 하나 FIU법 개정이 무산되어 박근혜 당선인이 지하경제 양성화에 실패할 경우, 그의 복지 재원 조달 공약은 대부분 물 건너갔다고 봐야지요?
⇨ 박 당선인 복지 재원 조달 공약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 조정으로 약 14조 원을 확보하고, 둘째 세제 개편과 세정 개혁으로 10조 원을 확보하며, 셋째 복지 개혁과 공공 부문 개혁으로 3조 원을 확보한다는 겁니다. 또 이 중 세제 개편과 세정 개혁 방안을 보면 역시 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비과세감면 축소로 3조 원, 지하경제 축소로 3조 원, 체납 정리 강화와 금융 소득 과세 강화로 3~4조 원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하경제 축소로 3조 원, 체납 정리 강화와 금융 소득 과세 강화로 3~4조 원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이 개혁도 제대로 못해 낸다면 다른 개혁은 대부분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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