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섬 지심도, 원시림의 섬 내도"
[알림] 2월의 섬학교 참가 안내
2013.01.11 19:42:00
"동백의 섬 지심도, 원시림의 섬 내도"
파리 사교계의 여인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한 달 내내 밤이면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다녔습니다. 25일간은 흰 동백, 나머지 5일간은 붉은 동백. 그래서 동백꽃 여인으로 불렸지요.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의 소설 <춘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동백의 계절입니다. 정열의 상징 동백꽃. 동백은 겨울에 피어야 동백(冬柏)입니다. 선운사 동백처럼 따뜻한 봄에 피는 동백은 동백이 아닙니다. 춘백입니다. 가을에 피는 것은 추백입니다. 한겨울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동백이야말로 진짜 동백이지요. 한 겨울에는 많은 동백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 한 송이일지라도 한파를 뚫고 피어오른 동백을 보아야 진짜 동백을 봤다 할 수 있습니다. 설중매가 최고의 매화인 것처럼 말이지요.

▲ 겨울에 피어야 동백이다. 한 겨울에 핀 지심도 동백꽃 ⓒ섬학교

섬학교 제12강은 2013년 2월 2(토)∼3(일), 1박2일로 진짜 동백이 피는 섬으로 갑니다. 답사지는 경남 거제시의, 동백의 섬 지심도와 원시림의 섬 내도입니다. 지심도는 수 백년 된 고목 동백나무가 섬 전체 면적의 70%를 뒤덮고 있는 진짜 동백섬입니다. 동백과 후박, 소나무 거목들로 가득한 지심도는 걷는 내내 숲 터널을 통과하게 됩니다. 경상도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로 꼽힙니다.

내도는 외도 옆의 섬입니다. 외도가 인공의 섬이라면 내도는 원시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연의 섬입니다. 외도에 비해 무명이지만 거목들로 가득한 그 원시의 숲은 에니메이션 <원령공주>의 숲처럼 신비롭습니다. 걸을수록 행복해지는 숲길들입니다. 참, 이번 거제 섬 나들이 길에는 겨울 거제 외포항에 제철의 별미 생대구탕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거제 지세포의 해녀와 어부가 직접 잡은 자연산 전복, 소라, 성게, 벗굴 등 해산물과 자연산 생선회도 기다립니다. 특별한 맛이 될 것입니다.

강제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2013년 2월 답사지인 지심도와 내도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거제 지심도행 배는 장승포항이 아니라 장승포 동사무소 앞 도선장에서 뜹니다. 동백섬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사철 지심도를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졌지만 한겨울에는 상대적으로 한가롭습니다. 따뜻할 때는 작은 섬이 사람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니 걷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심도는 이런 겨울에 가야 제 맛입니다. 2월의 어떤 날, 오후 4시 30분, 지심도행 막배를 타고 들어갑니다. 여객선은 나는 듯이 지심도 포구에 도달합니다.

장승포항에서 불과 5킬로, 짧은 거리지만 배가 끊기면 섬은 다른 세계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찌할까요. 뱃길이 끊어진 시간 동안 섬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세계가 됩니다. 섬에 깃든 생명체들은 모두가 한 운명이 되는 것이지요.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가 여행자라고 비껴가지 않습니다. 삶을 넘어서고 싶은 열망으로 섬에 왔으나 섬은 다시 삶입니다. 세상 밖의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섬의 유일한 운송수단은 짐수레를 매단 오토바이들입니다. 짧지만 섬은 초입부터 언덕길입니다. 주민들은 짐을 싣고 가파른 길을 오릅니다. 부두에는 어선 한 척 떠 있지 않습니다. 섬에 방파제가 없는 까닭이지요. 폭풍으로부터 배를 숨길 곳이 없으니 섬이지만 섬의 주업은 어업이 아닙니다. 섬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무 터널이 시작됩니다. 동백나무, 소나무, 팔손이,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가 원시림의 숲으로 남아 있는 이 땅에 보기 드문 보물섬입니다. 섬의 소유권자는 국방부입니다. 섬의 땅 주인이 국방부였다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불운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무들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지심도는 면적 0.356㎢(10만여 평), 길이 1.5㎞, 너비 500m, 해안선 둘레 3.7㎞에 불과한 작은 섬입니다. 더 오랜 옛날에도 살다 떠나고 들어와 살기를 거듭했을 터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살이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이 섬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현종 때인 17세기 후반부터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이 아닙니다. 선주민들은 일제시대 제국의 군대에 의해 쫓겨났고 8.15 해방 때까지 섬에는 일본군 일개 중대가 주둔했습니다. 해방 이후에야 다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지요. 섬의 지주인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 뒤편에는 일제의 포진지와 탄약고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지심도는 섬 숲의 70%가 동백나무 군락인 진짜 동백섬이다. ⓒ섬학교

민박집, 학꽁치를 뜨다

민박집 주인 내외와 저녁 밥상을 함께 합니다. 나그네가 운이 좋았습니다. 주인이 떠온 학꽁치 회가 푸짐하군요. 주인이 떴다는 말은 회를 떴다는 것이 아닙니다. 뜰채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왔다는 뜻입니다. '반대'라고도 하는 뜰채 낚시는 대나무에 매단 큰 그물로 뜰채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재래식 어로방법입니다. 홍합 부스러기 따위의 밑밥을 넣은 대나무 뜰채를 바다에 던져 놓으면 물고기들이 몰려듭니다. 어부는 그것을 들어 올려 거두기만 하면 되지요. 그야말로 물에서 물고기를 거저 떠오는 셈입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섬에는 열다섯 채의 집이 있다는군요. 두 집은 빈집이고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은 열세 집이랍니다. 다들 민박으로 생계를 꾸린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집에 사람이 상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섯 집 정도만 붙박이로 살고 나머지는 장승포에서 드나들며 민박을 친다합니다. 섬이 부업거리 일터인 셈이지요. 해방 이후부터 살아온 선주민은 세 가구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근자에 들어온 후주민들입니다.

후주민들은 장승포 등지에 사는 주인에게 세를 주고 집을 빌려 민박업을 하거나 식당이나 카페를 합니다. 이 민박집 주인 역시 십 수 년 전 우연히 여행 왔다가 빈집을 사 고치고 또 새로 지어 눌러 살게 됐다합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경로로 섬에 정착했습니다. 낚시나 여행을 왔다가 섬에 매혹돼 눌러 살게 된 것이지요. 섬에는 일본에서 여행 왔다가 주저앉은 일본인 부부도 살고 있습니다.

지심도는 모든 땅이 국방부 소유라 집주인들도 땅에 대한 권리가 없고 오로지 건물에 대한 권리만 있습니다. 민박집 주인은 그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지심도가 유명세를 타자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섬을 통째로 불하 받기 위해 협의 중이며 섬을 넘겨받은 후에는 대대적인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합니다. 섬의 소유권이 시로 넘어가면 주민들은 강제 이주 당하게 될 것이 두려운 것이지요.

"주민들이 몇 번씩이나 산불 난 것을 껐어요. 2000년엔가 그때도 산불이 났었지요. 그 때도 주민들이 합심해서 불을 안 껐으면 원시림이 다 타 없어져버렸을 겁니다. 그때는 저 위 국방과학연구소에 석유가 몇 만 톤이나 있었거든요. 한꺼번에 기름을 쟁여 놓잖아요. 불길이 거기로 번졌다면 섬 전부가 타 없어져 버렸을 거예요. 그걸 우리 주민들이 껐는데. 그래서 저 원시림이 남아 있는 건데..."

민박집 주인은 주민들 스스로 섬과 섬의 원시림을 지켜낸 탓에 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가 처음 들어와 살던 10여 년 전만 해도 섬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섬은 순식간에 유명 관광지가 됐지요. 동백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이 작은 섬에 하루 1,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주인은 섬을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까지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는 섬이 개발되기보다는 지금 그대로 보존되기를 희망합니다.

▲ 내도 숲에서 어미 잃고 헤매는 어린 염소 ⓒ섬학교

겨울에 피어야 동백이다

아침부터 바람이 제법 붑니다. 민박집 정원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초본 식물들로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용설란은 주인이 10여 년 전 섬의 마끝 절벽에서 캐왔다 합니다. 주인이 들여다 심은 뒤 안의 종려나무들도 세월 따라 울창해졌으나 바람과 추위에 시달려 모색은 초췌합니다. 그들이 살기에는 이 섬의 기온이 너무 매몰찬 것일까요. 민박집 뒷길, 섬의 정상에는 잔디가 깔린 '활주로'가 있습니다. 활주로라 이름 붙어 있지만 경비행기도 착륙하기 어려운 짧은 거리입니다. '활주로'는 비행기 활주로가 아니라 헬기 착륙장입니다. '활주로' 옆 숲길을 따라 섬의 동북쪽으로 갑니다. 추운 날입니다. 이런 추위에도 섬은, 섬의 나무와 풀들은 다들 맨몸으로 견뎌냅니다.

섬은 그 전체가 원시의 숲입니다. 태풍이라도 불면 모든 숲이 바닷물을 뒤집어 쓸 만큼 작은 섬에서 끝내 살아남은 나무들은 대체로 뿌리가 깊어 바람에 강하거나 염분에도 잘 견디는 나무들입니다. 그들 중 동백나무의 개체 수가 월등히 많습니다. 섬이 동백섬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2월의 섬은 동백의 시절이 아닙니다. 남해안 섬에서 오래 살았던 나그네가 그것을 모르고 온 것은 아니지요. 지심도로 나그네를 부른 것은 동백꽃이 아닙니다. 동백 숲과 아주 오래된 동백나무들입니다. 꽃만을 볼 요량이었다면 동백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12월이나 3월이 지나서 왔을 것입니다.

겨울 중 가장 추운 때인 이즈음은 동백이 많이 피지 않고 대부분의 꽃들은 꽃망울을 머금고 날이 풀리길 기다립니다. 동백은 대개 11월 말 경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합니다. 겨울에 꽃이 핀다 해서 동백(冬柏)입니다. 겨울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백은 세 계절에 거처 물경 반년 가까이 피는 꽃입니다. 동백나무에는 동백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백(秋柏)도, 춘백(春柏)도 살다 갑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3, 4월의 동백은 실상 동백(冬柏)이 아니라 춘백(春柏)인 것이지요.

한겨울 추위에도 섬에는 피어 있는 동백꽃이 간간히 눈에 띕니다. 꽃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아무리 동백이라 한들 얼어버릴 듯한 추위야 어쩌겠습니까. 추위가 오래 계속된다면 저 동백꽃들도 동사하고 말 것입니다. 설령 견뎌낸다 해도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름값을 하고 죽는 것이 열매를 얻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요. 이 겨울 대책 없이 타오르다 붉게 지는 목숨, 저 꽃으로 인해 동백은 비로소 동백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 원시림의 섬. 내도 세심전망대에 서면 마음의 묵은 때가 씻어지는 듯하다. ⓒ섬학교

숲은 바람 속에서 깊어진다

동백의 숲으로 난 흙길을 걷습니다. 이 섬보다 더 작은 섬에도 자동차 길이 나 있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다행이도 지심도에는 자동차 길이 없습니다. 섬은 짐수레 매단 오토바이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만큼 좁은 오솔길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섬의 일부는 포장도로지만 활주로에서 샛끝별여 부근 망루로 난 길을 비롯해 섬의 여러 갈래 길들은 고스란히 흙길입니다. 이런 비포장의 흙길은 어느 섬에서도 좀체 만나기 어려운 행운입니다. 참으로 귀하고 귀한 길이지요.

길의 본 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 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나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자연과 소통하고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길들은 자동차와 온갖 장애물들의 위협으로 더 이상 생각에 몰두해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들은 오로지 통로로서의 기능만 할 뿐입니다. 이런 오솔길, 흙길들, 사람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들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만드는 소중한 토양이 아닐까요. 나그네는 많은 길들이 '사유의 확장' 기능을 되찾을 때 이 소란하고 얕은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더 깊고 고요해질 것을 믿습니다.

왕대나무 숲 부근에 섬의 방향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동서남북의 방위를 알려주는 표지석. 바다가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에 들어와서야 섬의 방향이 제대로 가늠됩니다. 매일 매일 삶이 혼돈스럽습니다. 내 삶의 방향 표지석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실상 삶에는 방향 표지석 따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저 주어진 삶은 없습니다. 어디에서도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일 뿐입니다. 어둑한 숲의 터널을 빠져나가면 환한 빛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숲의 끝은 절벽입니다. 넘어서고자 하지만 건너 뛸 수 없습니다. 삶 건너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해안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소리 거세지고 숲은 바람 속에서 깊어집니다.

▲ 거제 공고지에서 바라본 내도 ⓒ섬학교

원시림의 섬, 내도

거제 외도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외도 옆의 내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내도가 있으니 외도가 있습니다. 외도가 인공의 식물원이라면 내도는 자연의 섬입니다. 내도는 이 땅에 드물게 원시림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지심도 만큼이나 원시의 숲이 잘 보존된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 마을에서 보았을 때 바깥쪽에 있는 섬이 외도이고 안쪽에 있는 섬이 내도입니다. 구조라 해수욕장이 있는 구조라 선착장에서 10분 거리니 손 내밀면 닿을 듯 지척이지요. 면적 0.256㎢, 해안선 길이 3.9㎞에 불과한 작은 섬. 최고점도 131m로 아주 낮습니다.

2011년,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내도의 원시림 숲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탐방로를 만 든 뒤 육지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탐방로는 온통 수백 년 된 상록수 거목 터널입니다. 섬은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감탕나무, 까마귀쪽나무, 소나무 거목들로 신령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숲 탐방로의 세심전망대에서는 외도와 거제의 서이말 등대가 보이고 맑은 날이면 일본의 대마도까지도 훤히 보입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에는 오래된 나무가 드뭅니다. 일제 때 무차별적인 산림 수탈과 주민들의 화목으로 나무가 벌목된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섬들은 숲이 무성해도 거목들은 희귀합니다.

근처 지심도야 국방부 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거목들이 보존됐다지만 내도에 원시림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민들에게 물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주민과 대화 중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섬은 옛날부터 물이 부족했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이유였습니다.

숲이 무성하면 대체로 물이 풍부한 법인데, 내도는 땅을 파도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더군요. 그래서 물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웠고 늘 적은 수의 사람밖에 못살았다 합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까닭에 숲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겁니다. 사람이 많이 살았다면 진즉에 벌목으로 원시의 숲이 사라졌을 테지요. 내도 같은 원시의 숲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자 희망입니다.

▲ 내도 건너 서이말등대. 지형이 쥐의 귀끝 같다 해서 서이말이다. ⓒ섬학교

섬학교 2013년 2월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월 2일(토)>

07:00 서울 출발(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11:30-12:30 통영 도착, 점심식사(통영 <미늘식당>에서 통영식 해물탕요리)
13:30 거제 장승포 도착
14:30 장승포 출항
14:50 지심도 도착, 걷기.
선착장→동백숲터널→산책로→샛끝 해안전망대→활주로(잔디밭)→폐교→포진지

→마끝 해안절벽→선착장(약 3.5km)
16:50 지심도 출항
17:10 장승포 도착
17:30-19:10 저녁식사 겸 뒤풀이
(지세포 <강성횟집>에서 해녀와 어부가 직접 잡은
해산물 모듬-자연산 전복, 소라, 벗굴, 성게, 해삼, 문어 등-과 자연산회>
19:20 숙소 도착(장승포 <웰컴모텔>), 자유시간 및 취침(다인실)

▲ 지심도, 내도 걷기 지도 ⓒ섬학교

<2월 3일(일)>
07:00 기상
08:00-09:00 아침식사
(장승포 <해양식당>에서 졸복국, 볼락매운탕요리 중 택1)
09:30 구조라 출항
09:40-11:40 내도 걷기
선착장→편백숲→세심전망대→연인길삼거리→신선전망대→희망전망대→
내도안내센터→선착장(약 3km)
12:00 내도 출항
12:30-13:30 점심식사
(외포 <국자횟집>에서 생태구탕요리)
13:30-14:00 외포 대구마을에서 장보기
14:10 서울 향발


*내도는 태풍만 아니면 배가 뜨지만 지심도는 바람이 심히 불면 못 뜰 가능성도 있음. 혹, 지심도행 배가 못 뜰 경우 내도 숲길 걷기와 거제 해변 걷기(지세포→서이말등대→공곶이→와현해변→구조라)로 대체합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방한/방수 등산복/배낭/등산화/장갑), 스틱, 아이젠, 온수통, 윈드재킷, 우의(+접이식 우산),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 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버스가 섬에 들어가지 않음)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

섬학교 제12강 답사 참가비는 왕복 교통비, 숙박비, 4회 식사비와 뒤풀이,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23만원입니다. 이 답사는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기상 악화로 섬 체류가 연장되는 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참가 신청과 문의는 인문학습원 섬학교 www.huschool.com 문의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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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심도의 집들은 모두 바다 건너 거제 본섬을 그리며 앉았다. ⓒ섬학교

[학습자료]

[지심도(只心島)]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부속섬. 거제8경의 하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섬의 형태가 마음 心자 모양이라 지심도란 이름을 얻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지세포에서 동쪽으로 6㎞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면적 0.356㎢, 해안선 길이는 3.7㎞, 최고점은 97m. 조선 현종 때 주민 15세대가 이주하여 시작했으며 일제 때는 군의 요새로서 일본군 1개 중대가 주둔했다. 섬에는 동백나무·소나무·유자나무·후박나무 등 37종의 수목과 식물들이 자란다.

[내도] 본래 '안섬'이었다. 한자 표기 과정에서 내도가 됐다 .1.5m 남쪽 해상에 바깥섬 외도가 있다. 면적 0.25㎢, 해안선 길이 3.5㎞. 한려해상국립공원 해금강지구에 속한다. 내도에는 외도의 형성과 관련해 떠내려 온 섬 전설이 전한다. 섬에는 흔한 전설이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대마도 가까이에 있던 외도(남자섬)가 구조라 마을 앞에 있는 내도(여자섬)를 향해 떠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놀란 동네 여인이 "섬이 떠 온다"고 고함을 치자 섬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그 떠내려 온 섬이 외도다. 1982년에는 내도분교 운동장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인 조개무더기와 토기 등이 발견된 바 있다.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보길도의 숲과 하천,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6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으며, 현재 프레시안에 <통영은 맛있다>를 연재중입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 걷기 좋은, 참으로 귀하고 귀한 흙길 ⓒ거제시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런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물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섬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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