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낭독 태화관이 보스턴에 있었다면…
[김경민의 도시이야기]<20> 북촌에 ' 3·1 독립의 길' 만들자
독립선언서 낭독 태화관이 보스턴에 있었다면…
보스턴은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건물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연설한 장소 등이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보스턴 시는 보스턴 '자유의 길(the Boston Freedom Trail)'이라는 미국의 건국 역사와 독립 기념과 관련된 명소들을 이어주는 길을 만들어 역사성을 기리고 있기도 하다. 보스턴 자유의 길은 인위적으로 새 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다. 자유의 길은 기존 도로에 표식을 새우고 표식과 표식을 연결해 만들어졌다.

보스턴 자유의 길의 총 길이는 2.5마일(4킬로미터) 정도 되며, 보스턴 도심(다운타운·금융지구 인근)을 따라 걷는 길이어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또 건물과 장소마다 역사적인 사건(스토리)이 새겨져 있어, 단순히 길을 걷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보스턴과 그 역사를 길 전체가 '스토리 텔링'하고 있다는 매력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덕에 보스턴 자유의 길은 후세를 위한 교육 기능뿐 아니라 관광 상품의 역할도 하고 있다.

▲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 '자유의 길(the Boston Freedom Trail)
▲ 왼쪽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구 주의사당(Old State House). 오른쪽은 보스톤 '자유의 길(the Boston Freedom Trail)' 표식. ⓒ김경민

250년 역사 보존한 보스톤, 100년 전 건물 부순 한국

서울 종로 북촌 활성화는 기존 상권과 달리 골목길 자체가 매력적일 수 있단 사실을 알려주었고, 이 지역에서는 지금도 각 지점에 깃든 사연(스토리)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그 스토리가 단편적으로 건물 또는 장소 단위에서 그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에 반해 보스턴 자유의 길은 도시의 여러 장소를 네트워크로 서로 이어지게 하여, 각 장소뿐 아니라 도시 전체에 대한 매력적이고 연결력 있는 스토리를 제공한다.

북촌 일대는 보스턴 못지않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장소와 역사가 충분히 존재한다. 이들을 엮어서 '3.1 독립의 길(3.1. Freedom Trail)'이라는 새로운 '스토리 길'을 만들 수 있다. 3·1 운동은 처음에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그리고 학생 세력을 중심으로 개별 추진되다가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을 중심으로 운동의 일원화를 이루어내면서 급류를 타게 됐다.

이때 그 주요 거점이 바로 종로와 그 배후 주거지였던 북촌(北村)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없어져서 1919년 3.1 운동의 역사를 느끼는 데에 큰 한계가 있다. 보스턴이 250년 전 역사적 사건과 건물들을 보존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불과 100년 전 역사적 건물들을 부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1 독립의 길', 이렇게 만들 수 있다

3·1 운동이란 거사의 준비와 추진 과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하의 내용은 장규식의 2003년 논문 <일제하 종로의 민족운동 공간 : 침략과 저항의 대치선>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계동 1번지 중앙고보: 1919년 1월 중순, 일본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중앙학교를 방문하여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에게 동경 유학생들의 거사 준비 상황을 보고하고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

▲ ⓒ김경민

재동 68번지 보성고보 교장 최린의 집 : 송계백(보성학교 출신) 방문을 계기로 최린, 현상윤, 송진우, 최남선 등이 수차례 회동하여 거사를 모의함.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 대표를 교섭하는 한편 이승훈을 통해 기독교 측과의 합작을 시도 - 3·1 운동의 초기 조직화 / 2월 21일 이승훈과 최남선 최린 회합, 기독교 측과 천도교 측의 합작 재시도. (원형이 보존되어 있지 않음)

계동 130번지 김성수의 집: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2월 11일 상경한 이승훈이 현상윤의 중개로 송진우와 회합, 이승훈이 송진우의 거사 참여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기독교계와 천도교계의 일원적 거사를 위한 발판을 마련. (원형이 보존되어 있지 않음)

소격동 133번지 김승희의 집: 2월 17일 재차 상경한 이승훈과 송진우 회합. 송진우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천도교 측과 연락이 닿지 않자 이승훈은 기독교계 단독 거사를 고려함. 2월 21일 최린의 집에서 이승훈과 최린, 최남선이 전격 회동하여 기독교와 천도교 측 합작 재시도. (원형이 보존되어 있지 않음)

송현동 34번지 천도교 중앙총부: 2월 24일 이승훈 함태영이 최린과 함께 손병희를 방문, 기독교 측과 천도교 측의 합동 성립 - 3·1 운동의 일원화 (현 덕성여중)

▲ 계동 43번지 한용운의 거처. ⓒ김경민
계동 43번지 한용운의 거처: 최린과 한용운 회합. 불교계 참여

종로2가 9번지 YMCA회관: 박희도가 지도하는 학생YMCA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단 독립운동의 진원지 (원형 보존돼 있지 않고, 1967년 재건축됨)

관수동 144번지 중국음식점 대관원: 1월 27일 중앙YMCA 학생부 간사 박희도의 주선으로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 회합, 학생단 거사에 대해 처음으로 의견 교환. (원형 보존되지 않음)

수송동 44번지 보성사(현 조계사 서편 경내): 2월 27일 밤 독립선언서 2만 1000매 인쇄. 여기서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경운동 78번지 이종일(보성사 사장)의 집으로 운반되어 다음날 각지로 배포.

▲종로2가 9번지 YMCA회관. ⓒ김경민
가회동 170번지 손병희의 집: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3인이 지면을 익히고 독립선언식의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회합. 인사동의 명월관지점 태화관으로 거사 장소 변경. (철거됨)

인사동 137번지 승동예배당(연희전문 학생대표 김원벽이 다니던 교회): 2월 28일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 회합, 학생 조직 동원을 최종 점검하고 독립선언서의 배포를 분담.

인사동 154번지 태화관: 3월 1일 오후 2시, 33인 가운데 29인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선언식 거행. (원형이 보존되지 않음)

종로2가 38번지 탑골공원: 3월 1일 오후 2시, 학생과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별도의 독립선언식 거행. 경신학교 출신의 정재용이 공원 팔각정 단
▲ 손병희 선생 집터. ⓒ김경민
상에 올라 독립선언서 낭독, 독립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에 돌입 - 거족적인 민족 운동의 시발점.

이처럼 3.1운동은 북촌 일대에서 활발히 논의되었고, 마침내 태화관과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확대된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적어도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 태화관 만큼은 원형을 보존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점이다. 태화관은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태화빌딩이 들어섰으며, 그 외 3·1 운동을 탄생시킨 많은 역사적 건물들은 철거됐거나 사라졌다. 미래에 그 원형을 다시 재건한다는 가정하에 주요 현장의 동선을 '3.1 독립의 길'이는 이름을 붙여 그리면 다음과 같다.


ⓒ김경민

* 2주 전 연재에서 만해 한용운과 비교를 하기 위한 인물은 문인이면서 독립에 관여했으나 변절한 장지연이었다. 필자의 실수로 손병희를 언급하였다. 바로 잡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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