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맹파업 '가리봉 오거리', 그 기억이…
[김경민의 도시이야기]<31>산업민주화 위한 노학연대 발생지
최초의 동맹파업 '가리봉 오거리', 그 기억이…
오늘날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 오거리는 과거 가리봉 오거리로 불렸다. 가리봉 오거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노동 3권 보장과 최저 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열렸던 투쟁의 장소이다. 학출(학생출신 노동자)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은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을 하여 노동자와의 연대를 구축하게 되었고 가리봉 오거리는 노학연대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1985년 구로 동맹 파업(구동파)이 발생했던 장소로서 추억이 서린 곳이다. 구로 동맹 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 파업이며 초보적이지만 정치 투쟁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에서 한국노동 운동사에 큰 획으로 여겨진다. 이때도 많은 학출이 파업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구로 동맹 파업은 1985년 6월 22일 대우어패럴 노조 지도부 3명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6월 29일까지 구로지역 노동자들이 벌인 대우어패럴 투쟁 지지 동맹 파업이다. 24일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가리봉 전자, 선일섬유 노조를 시작으로 28일 부흥사 노조까지 총 5개의 노조가 파업에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남성전기 세진전자, 롬코리아, 삼성제약에서 지지 투쟁이 벌어지고 노동운동 단체 주도하의 가두시위와 지지농성과 성명이 잇따랐다.

이 회사들 중 부흥사와 롬코리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새로운 건물들로 탈바꿈되었고, 가리봉 오거리는 디지털 단지 오거리로 이름마저 바뀌었다. 산업 민주화를 이루려던 노학연대 투쟁의 장소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다행인지는 모르나 수많은 유인물이 뿌려졌던 1970년대 중반에 건립된 가리봉 오거리 코너의 건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리봉 오거리를 디지털 단지 오거리로 이름을 바꾸는 것은 과거의 ‘가리봉 수준’을 탈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구동파의 기억과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서린 장소에 대한 작은 기념비나 설명 판이라도 세우는 것이 가리봉 오거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김경민


가리봉동에는 좋은 대중교통 편의성 이외에도 패션과 리테일 쇼핑몰 등 즐길 거리가 많고, 조선족 타운이라는 독특한 문화와 가능성 있는 역사 자원들이 존재한다.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노동자들의 숙소가 남아 있으며, 상습 민주화 시위 지역이었던 가리봉 오거리 (1980년대 노학 연대 투쟁의 대명사)를 비롯하여 구로 동맹 파업 등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대변했던 거대한 스토리가 있다. 인물들로 치면, 김문수, 손학규, 심상정, 이재오, 이해찬, 한명숙, 황석영, 박노해 등이 거쳐 갔던 곳이 ‘외딴 방’ 벌집이다. 

일본 요코하마 내 별 볼일 없는 스토리를 지닌 지역에 만들어진 게스트 하우스와는 차원이 다른 스토리, 한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던 지역이라는 거대한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어느 곳이 관광 상품화의 가능성이 더 높은가?

구로공단과 가리봉동.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기념할 수 있는 장소들이 지워지고 잊힌 채 남아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필자 주석
①, ② 출처 : 책 <학출 : 80년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오하나 지음, 이매진 펴냄)

*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됩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는 책 <리씽킹 서울-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김경민 지음, 서해문집 펴냄)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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