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격차 지옥'? 10년 뒤 한국 앞설 복지국가!
[프레시안 books]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중국이 '격차 지옥'? 10년 뒤 한국 앞설 복지국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인구 13억의 거대한 중국이 시장경제로 변하여 후발 공업화에 성공하고 있다. G2로 부상한 거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중국은 항공모함과 핵무기로 무장한 막강한 군사력을 얻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바로 그 옆에 위치한 한반도의 두 분단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요즘 책방에 가면 오늘날의 중국 경제에 관한 책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다. 그 대부분은 중국에서 무역 등 비즈니스를 하려는 이들을 독자로 겨냥한 책들이며, 중국을 '관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단히 자본주의화된 나라로 묘사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부패한 관료들과 더 호화판인 부자들, 더 가난한 유랑 농민공들에 관한 묘사는 중국이 곧 공중 분해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낳게 한다. 관광차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도 하나같이 서울보다 더 호화로운 상하이와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연상케 하는 가난한 내륙 도시들의 격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일까? 중국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도 저런 자본주의가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개혁·개방을 통해 변화된 1990년대 이후의 중국을 신자유주의 체제로 비판하는 좌파적 관점의 책들도 꽤 있다. 그에 반해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 경제이며,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뭐가 뭔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프루동이야말로 중국의 희망, 인류의 희망? 

 

▲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중국에 관한 매우 흥미진진한 새 책이 등장했다. 제목부터가 아주 '섹시'하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게 펴냄).
 
이 책은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 사회주의'라는 전통적 사회주의 사상에 도전장을 던진다. 저자인 추이즈위안은 마르크스가 아닌 프루동이야말로 사유재산권과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해 제대로 깊이 이해한 위대한 사상가였다고 찬미한다. 오늘날의 중국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이 아니라 프루동이 쓴 <소유란 무엇인가>를 읽어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게다가 저자는 토지단일세를 주장한 미국의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토지경제론 역시 마르크스주의 이론보다 더 훌륭하게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토지제도 개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활동한 영국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197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가 펼친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 즉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 사상이야말로 중국의 희망, 인류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자유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저자는 스웨덴 등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및 복지국가 사상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프루동과 독일의 페르디난트 라살레, 그리고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 등이 19세기 유럽의 주요 사상가라면, 20세기의 역사가 베르낭 브로델과 경제학자 제임스 미드 등도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자이다.

 

중국을 배회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유령

 

이 책의 문장은 발랄하며 저자의 문제의식과 생각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추이즈위안의 관점과 견해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오늘날의 중국 경제와 그 변화 방향에 대하여 이렇게 사상적 깊이를 가지고 논의한 책을 본 적이 없다.

 

저자인 추이즈위안은 1963년 생으로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칭화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 정치경제학계의 논의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추이즈위안의 이 책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난 200년간 논의되어온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의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의 제관점 속에서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경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이야기된다.

 

책의 첫 페이지는 앞으로 펼쳐질 모든 내용을 집약하고 있다. 첫 페이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첫 문장을 슬쩍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의 유령, 프티부르주아(소자산 계급) 사회주의라는 유령이 중국과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세계 각지에서 마르크스주의든 사회민주주의든 모두가 이미 그 정치적, 사상적 동력을 상실했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멸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제도가 건설되는 상황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이론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난망 속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사회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영원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머무르도록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프티부르주아 계급의 보편화가 미래의 희망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그리고 기존 금융시장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또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정치적 목표는 '경제민주주의와 정치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13쪽)

▲ 2012년, 제18차 당대회를 앞두고 경비가 강화된 톈안먼 광장. ⓒAP=연합뉴스


토지소유제와 주주 유한책임, 노자 합작 기업 - 사회주의의 위대한 실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 이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먼저 프루동과 존 스튜어트 밀, 제임스 미드와 브로델, 제임스 조이스와 로베르토 웅거 등의 관점에서 오늘날 인민공사 해체 이후의 중국 농촌의 토지제도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서구의 (그리고 한국의) 상당수 좌파 인사들이 인민공사 해체 이후 중국의 농촌이 자본주의적 소유제로 변했다고 잘못 생각한다고 비판하면서, 오늘날 중국의 농촌 토지소유제는 일종의 프루동식 사회주의에 부합하는 위대한 실험이며, 그것은 내재적 모순과 함께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민을 수탈하지 않으면서 사회화를 통해 대규모 생산을 실현하는 것이며, 마르크스주의의 (특히 카우츠키 및 스탈린의) 전통적인 농업관을 뛰어넘는 위대한 중국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존 스튜어트 밀이 19세기 중반의 영국 의회에서 '주식회사 주주의 유한책임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떻게 분투했는가를 보여주면서, 놀랍게도 그 자유주의 원칙이 어떻게 중국에서 (마르크스와 레닌 등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노자 합작 기업'(즉 노동권과 자본권이 합작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주식회사)이라는 위대한 실험에 적용되는지를 설명한다.

 

사회민주주의 비판과 기본소득론, 사회적 배당

 

그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제임스 미드가 제안한 노자 합작 기업('자유주의적 사회주의' 회사 형태)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따라서 노동시장 경직성 및 고임금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 책은 제임스 미드가 제안한 '사회적 배당'을 최근 한국과 세계에서 크게 유행하는 기본소득론(basic income)과 연계시킨다. 이 책에 따르면 사회적 배당(즉 기본소득)은 그 수혜자들이 낮은 수입의 직업이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까닭에, '조건부 수입'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보다 우월하다(25쪽). 노자 합작 기업이라는 새로운 소유형태를 기반으로 하는 기본소득(사회적 배당)은 이렇듯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참고로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중국의 신좌파 지식인 및 공산당 일각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시라이와 충칭 모델

 

선전이 1980년대의 중국을 대표하고 상하이가 1990년대의 중국을 대표한다면, 21세기의 첫 10년 중국의 발전을 대표하는 것은 충칭(중경)이다. 이 책의 제2부는 충칭 모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자 그 모델에 대한 사상적 긍정이다.

 

▲ 보시라이 전 충칭 시 당서기. ⓒAP=연합뉴스

충칭 모델은 보시라이라는 인물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태자당의 일원인 보시라이가 홍색(공산혁명) 가요 부르기와 폭력조직 소탕, 비판인사 탄압, 부자들의 재산 강탈과 같은 좌파적 노선을 걸으면서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모방했다고 비판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보시라이가 그런 좌파적 행동을 한 것은 인기를 끌려는 출세주의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는 사리사욕에 물든 타락한 관료이자 범죄자일 뿐이라고 격하시킨다.
 
그렇지만 이 책의 설명은 매우 다르다. 충칭 모델을 만들어낸 충칭 시 공산당 지도자들의 구상과 기획, 그 실천 속에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위대한 실험들, 즉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실험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헨리 조지와 제임스 미드, 프루동의 개념과 이론을 사용하면서 (게다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알랭 바디우까지 언급하면서) 충칭 모델의 위대한 의의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1부에서 저자가 전개한 다양한 사상적, 이론적 논의들이 현실 속에서는 충칭 모델로 구체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책은 충칭 모델을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실험이자 성과로 묘사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보시라이 전 충칭 시 당서기를 무기징역형에 처해 정치적으로 매장했지만, 실제로는 보시라이의 정책인 '충칭 모델'을 전면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관찰도 미국 등 서방에서 제기된다. 최근의 중국 공산당이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사회복지와 생태·환경을 중시하고 있으며, 중국식 복지국가가 출현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저자는 이러한 중국의 최근 변화를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보아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인가, 동아시아 발전국가인가?

 

그런데 최근 중국의 변화를 설명하는 관점에는 추이즈이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박정희 체제), 대만(장제스 체제)이 전개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또는 개발독재의 관점에서 최근 중국 및 중국 공산당의 노선을 이해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훙호펑·조반니 아리기 외 지음, 하남석 외 옮김,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추이즈위안의 책을 계기로 나는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훙호펑·조반니 아리기 외 지음, 하남석 외 옮김, 미지북스 펴냄)라는 책도 읽어 보았다. 이 책에 실린 엘빈 Y. 소의 글은 최근 20년간의 중국을 2단계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의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대외 개방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에 집중했다면, 2006년을 기점으로 노선이 크게 변화했다. '관리되고 통제된 대외개방'과 함께 민족주의와 반신자유주의, 국가(중앙정부) 및 공공부문(공기업 및 국유은행)의 경제적 역할 부활,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사회복지 체제의 질적·양적 재편, 농민공의 지위 향상과 노동권 신장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엘빈 Y. 소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한 유형이다. 5개년 경제계획을 수행하고, 국유화된 은행을 이용해 대기업들을 조종하고 통제했으며, 정부 관료들이 대기업의 이사회 멤버처럼 행동하고, 다국적 기업들로 가득한 시장 경쟁으로부터 자국 기업(국적 자본)을 보호한다. 단, 일본과 한국 등의 발전국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냉전 체제와 미국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1950~80년대의 미소 냉전 시기와 GATT 체제 하에서 미국으로부터 파격적인 지원 혜택을 받은 일본, 한국, 대만과 달리 중국은 소련 붕괴와 WTO 체제 하에서 미국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불리한 환경에서 후발 공업화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리한 점을, 화교 자본이라는 (일본과 한국에는 없는) 자기 나름의 장점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한국, 일본, 대만의 발전국가와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엘빈 Y. 소는 평등주의를 지적한다. 즉 마오쩌둥 체제 하에서 10억이 넘는 인구가 참여한 혁명적 사회주의를 경험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헌법에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라는 원리가 건재한 중국은, 타국에 비해 불평등과 가난, 착취에 대해 국가관료 및 당 간부들이 훨씬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충칭 모델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중국 정부의 노력이, 사회주의 신 농촌 건설과 농촌에 대한 대대적 투자,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주택 등 대대적인 사회복지 투자를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 증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엘빈 Y. 소는 2006년 이후의 중국, 충칭 모델을 전국 모델로 채택한 중국이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발전주의(state developmentalism)로 전환한 모델이라고 명명한다.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론과는 이론적 관점이 사뭇 다르다.

 

발전국가론이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론이건, 어느 것이건 좋다. 내가 관심 갖는 것은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한국의 그것보다 더 나은 복지국가가 더 빨리,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19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를 거쳐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 의해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한국에 비해, 중국 경제는 여전히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의 노선을 지속할 경우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어떻게 될까. 중국 경제와 중국인의 삶의 질이 한국 경제와 한국인의 삶의 질을 앞서는 것도 상상 가능하다. 경제 성장의 비결과 빠른 복지 제도 완비의 경험을 배우러 먼 스웨덴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중국으로 건너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아가 그때가 되면 친미 사대주의가 아닌 '중화 사대주의'가 이 땅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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