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이 두렵던 아이, 하와이에 간 뒤엔…"
[우리 아이는 왜 거울을 안 볼까] '시선의 감옥'을 부수다
2015.01.01 08:28:50
"수영장이 두렵던 아이, 하와이에 간 뒤엔…"
가스레인지 위에는 기름이 팔팔 끓고 있었다. 요리 준비를 하던 아빠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아기가 보행기를 끌고 주방으로 갔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이 냄비 손잡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후로도 아기는 줄곧 혼수상태였다. 전신에 50%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아기 부모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했다. "혹시 깨어난다 하더라도 시력 장애나 언어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생사를 오가던 아기는 2주 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나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기름에 눈꺼풀이 녹아 어린 살이 서로 달라붙은 탓이었다. 갓 돌이 지난 아기는 수술대에 올랐다. 이대현 씨의 18년 전 얘기다.

"우리 아들은 괴물이 아닙니다"

너무 어릴 때의 일이다. 그때 아팠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 없다. 눈꺼풀이며 두피 쪽에 조금 뻣뻣한 느낌은 있지만 어떤 통증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하루 자라면서, 이 씨에게는 마음의 통증이 생겨났다.

이 씨가 들여다본 거울 속 모습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TV에 나오는 연예인과도 달랐고, 매일 보는 엄마의 모습과도 달랐다. 

"아기 때부터 저는 보통 사람들이랑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여섯 살 때는 엄마한테 '나는 언제 평범한 사람 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이 씨의 마음속 통증은 더욱 깊어졌다. 집 밖에 나가면 이 씨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걸 매 순간 확인해야만 했다. 

"대현이가 4~5살 때였어요.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같이 탄 아이가 대현이를 보고 '괴물이야'라며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 아이의 부모는 오히려 자기 아이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감싸더라고요. 괴물한테서 자기 아이 보호하듯이…. 우리 대현이가 괴물이 아닌 데도요."

이날의 기억은 이 씨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 민현기 씨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민 씨는 이날 이후로 엘리베이터에 잘 타지 않게 됐다고 했다. 

"넌 어쩌다 그렇게 됐니"

화상 흉터를 보며 '징그럽다', '무섭다'며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따돌리는 것만 상처가 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별 생각 없이 저한테 툭툭 '넌 어쩌다 그렇게 됐니'라고 해요. 전 별로 얘기하기 싫은데…. 저한테 쏟아지는 관심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수영장에 가는 게 정말 싫었어요. 다 저만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요."

어린 시절 이 씨는 원치 않는 관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친구들이 놀리면 맞서지 못하고 혼자 쌓아두기만 했다. 울컥한 마음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흉터는 치료해서 없앨 수 있는데 심리적인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받은 그 상처들은 제 안에 그대로 고여 있어요."

'기러기 가족'을 택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이 씨는 여느 또래 남자아이보다 머리가 길었다. 머리카락으로 흉터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중학교에 가면 학교 규율에 따라 무조건 짧게 잘라야만 했다.  

이 씨의 부모님은 가뜩이나 내성적이고 예민한 이 씨가 중학교에 가서 외모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했다. 결국 부모님은 외삼촌이 계시는 하와이에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 씨는 가기 싫다며 한 달을 버텼다.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도 있지만, 반대로 챙겨주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 친구들을 몽땅 잃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 씨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계속 설득했다. 

사실 이민 갈 형편도 아니었다. 집안의 돈을 다 끌어 모아 겨우 초기 정착 비용을 마련했다. 생활비는 이 씨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하와이에 보냈다. '기러기 가족'이 된 것이다.

"옷을 벗고 다녀도 쳐다보지 않는 곳,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행히 이민 간 보람이 있었다. 마음의 상처가 가득했던 이 씨는 미국의 개방적인 문화 속에서 차별받지 않았고, 손가락질당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요. 지금이야 익숙한데 처음엔 놀라웠어요. 내성적인 사람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또 하와이는 섬이라서 옷을 벗고 다니는데도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지 않아 자신감이 생겼어요."

수영장이 싫었던,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을 두려워했던 이 씨의 성격은 언제부턴가 몰라보게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이랬다면…"

이 씨네 가족은 이 씨가 미국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차별에 엄격한 미국의 교육 방침이 한몫했다고 입을 모은다. 민 씨는 학교에서 날아온 가정 통신문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인종 차별이나 성별 차별, 장애인 차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미의 '차별 금지(discrimination)' 문구를 발견하고서다.

학교의 이 같은 방침은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성적에 따라, 집안 형편에 따라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대현이 단짝 친구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진급을 못 할 상황이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직접 과외 선생님을 구해서 공짜로 붙여주면서 어떻게든 학업에 쫓아가게끔 하더라고요. 공부 못 한다고 차별하지 않고, 그 아이를 오히려 더 격려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우리 대현이가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 씨는 한국에서도 교육을 통해 차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차별 금지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대현이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아이에게 '괴물'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겠죠. 설령 아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차별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를 혼을 냈을 거고요. 결국 교육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린 날 낯선 나라로 가야만 했던 이 씨는 "기회만 된다면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아마 한국에서도 제가 놀림 받지 않는 환경에 있었다면 저는 한국에 있던 친구들과 떨어지지 않아도 됐을 거고, 굳이 큰돈을 들여가면서 이민 가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연애는 '평범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어요"

이 씨는 내년 여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지난여름 1차 수술에 이어 지난달 2차 조직확장수술을 마쳤다. 수술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수술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도, 대현이가 '실망은 했지만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주셨어'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어렸을 땐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었는데 점점 더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특해요."

이 씨가 이렇게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 데는 여자 친구의 힘도 컸다. 고등학교 동급생이었던 여자 친구는 이 씨에게 '천사' 같은 존재다.

"여름에 1차 수술을 하고 일주일 지나서 여자 친구를 만나러 홍콩에 갔어요. 늘 머리를 기르고 다녀서 상처를 누구한테 보여준 적이 없는데, 수술을 하면 머리가 짧아지잖아요. 여자 친구가 제 흉터를 다 봤죠. 제가 '흉터를 보고도 괜찮으냐'고 물었는데, 애틋하게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했어요.

예전에 전 제가 연애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건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그래서 저는 평생 못 할 것 같은 거부감이 있었어요. 저를 좋아하는 친구한테 험한 말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여자 친구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했고, 덕분에 성격이 많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이 씨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곧 스무 살의 멋진 청년이 된다. 여자 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어렸을 적 꿈꾸던 그런 평범한 삶.

"사고는 잠깐이지만 나머지 인생은 길다"

이 씨도 화상 환자 자조 모임 '해바라기' 회원이다. 오찬일 ‘해바라기’ 회장은 "사고는 잠깐이지만 나머지 인생은 길다"고 했다. 

"화상은 다른 질병과 달리 상처 치료만 잘 하면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대현 씨도 그렇듯, 화상 환자들은 수술한 뒤 원래 생활을 되찾으려 부단히 노력합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흉터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화상 환자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은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 입장에선 편치 않은 일입니다. 누구나 화상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화상 환자에 대한 편견을 버렸으면 합니다."

▲ 이대현 씨는 지난달 2차 조직확장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지만, 이 씨는 낙담하지 않는다. 사진 왼쪽이 이대현 씨, 오른쪽이 어머니 민현기 씨. ⓒ프레시안(최형락)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mendram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