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뒤덮인 소치 올림픽, 평창은?
2014년 소치의 길 vs. 2012년 런던의 길
2015.04.15 11:14:49
피로 뒤덮인 소치 올림픽, 평창은?

2013년 2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건설 과정에서 일명 '황금 도로' 논란이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의 해안과 산악 클러스터를 잇는 45킬로미터짜리 도로를 지었는데, 이 도로 예산으로 무려 2600억 루블(5조4600억 원, 현재 환율 기준)이 들었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도로 1킬로미터당 2억 달러(2203억 원, 현재 환율 기준)가 쓰였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였던 고(故)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는 "황금 500만 톤으로 이 도로를 포장해도 같은 비용이 든다"고 꼬집기도 했다. 건설 과정에서 부패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에 무려 56조 원을 쓰면서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재정을 낭비한 국가로 회자됐다. 그렇다면 이른바 '올림픽 황금 도로'를 지었던 건설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요한 린드홀름(Johan Lindholm) '노르딕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NBTF)' 위원장은 "소치 올림픽은 건설 노동자들의 피로 뒤덮여 있다"고 말했다. 소치 올림픽 관련 시설을 짓다가 사망한 노동자가 70여 명이고,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는 1만 명에 달한다고 그는 전했다. 


<프레시안>은 방한한 국제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BWI : Building and Wood Workers' International) 소속 크리스터 발리바라(Christer Walivaara) 노르딕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과 요한 린드홀름 위원장, 이진숙 BWI 글로벌 캠페인 실장을 13일 서울 명동에서 만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양질의 일자리 캠페인'을 벌이고자 방한한 이들은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차이로 '투명성'을 꼽았다. 런던 올림픽에는 노동조합이 사업 계획에 참여해서 예산이 투명하게 공개됐지만, 소치 올림픽은 불투명하게 운영돼 노동자들이 착취당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은 벌써 "평창 올림픽 도로와 시설 건설 과정에서 임금 체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하고 있다.

린드홀름 위원장과 발리바라 사무총장은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를 인권과 분리하면 안 된다"며 "한국 정부와 올림픽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노동자 70명 죽고 1만 명 임금 체불당한 소치 올림픽 


▲ 요한 린드홀름 스웨덴 건설노조 위원장 겸 노르딕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에서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죽은 줄은 몰랐다.

요한 린드홀름 : 소치 올림픽은 건설 노동자들의 피로 뒤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올림픽 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를 포함해 건설 노동자 70명이 죽었다. 공식적으로는 60명인데, 우리 추정치는 최소 70명이다. 그마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소치에서 횃불을 가져와서 받았는데, 그 횃불은 피로 물든 횃불이다.


이진숙 : 소치 올림픽 건설 노동자의 70%가 카자흐스탄, 동남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세르비아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였다. 그들은 6~9개월 동안 임금을 체불당했고, 주거 시설이 열악했고, 밥도 자기 돈으로 사 먹었고, 안전 장비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현대판 노예였다. 공사가 끝나고는 여권을 압수당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노동조합을 통해 겨우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극한의 상황이었다.

프레시안 : 소치 올림픽에는 무려 56조 원이 투입됐는데, 왜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구조가 됐을까?

크리스터 발리바라 : 소치 올림픽에서 건설 예산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많은 예산 중에 이주 노동자에게 간 돈이 없다. 소치 올림픽에 투입된 노동자 7만 명 중에 1만 명에게 체불 임금이 생겼다. 진짜 문제는 이를 감시하려는 노동조합에 현장 접근이 완전히 차단됐다는 점이다.

요한 린드홀름 : 소치는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러시아 정부를 포함해) 모두가 쉬쉬했다. 소치 올림픽 개막을 몇 주 앞두고야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우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BWI 사절단이 이주 노동자들의 고향에 가서 나중에 노동 조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말하는 화려한 스포츠 경기의 이면에는 이처럼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있다. 이들 조직은 자신은 비정치적이라고 선전하지만, 이는 거짓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FIFA나 IOC는 왜 스포츠와 인권을 분리하나? 그런 행동 자체가 정치적이다.

▲ 2014 소치 올림픽 폐막식에서 이석래 전 평창군수가 올림픽기를 넘겨 받아 흔들고 있다. 요한 린드홀름 노르딕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평창이 소치에서 받은 횃불은 (죽은 노동자의) 피로 물든 횃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예산 투명하게 집행한 런던 올림픽, 사망자 수 0명

 
프레시안 :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 관련 시설과 도로 등이 지어지고 있는데,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떤가?

크리스터 발리바라 : 한국에서 건설 노동자가 매일 두 명씩, 1년이면 700여 명이 죽는다고 들었다. 슬프다. 만약에 변호사, 교사, 경찰이 하루에 두 명씩 죽어 나갔다면 어땠을까? 한국 정부는 '국가 위기관리 기구'를 만들고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건설 노동자가 죽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은, 건설 노동자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 같다. 우리의 주택과 경기장을 짓는 노동자들의 가치가 폄하돼선 안 된다.

프레시안 :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요한 린드홀름 :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노조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의 경우 공사 시행 이전부터 노동조합이 사업 계획에 참여해서 공사 계획을 함께 세웠다. 런던 올림픽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예산도 투명하게 공개됐다.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 건설사, 노동자 3자 기구가 예산 수립부터 시행, 추후 관리까지를 함께 집행했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스웨덴, 유치 신청 과정에서부터 '노동권 협약' 체결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신청했다가 철회한) 스웨덴 스톡홀름의 경우, 우리는 올림픽 유치 신청을 할 때부터 스톡홀름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와 노동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올림픽 개최 도시가 입찰 과정에서부터 노동 규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하게끔 한 것이다.

우리는 스웨덴 내 아이스하키협회, 축구협회 같은 스포츠협회뿐만 아니라 올림픽에 광고를 주는 후원사와도 대화를 시도했다. 인권을 지키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규정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그중에 삼성도 있어서 우리가 삼성에 '인권 원칙을 존중하겠느냐'는 내용의 질의서를 보냈는데, 답변이 오지 않았다.

▲ 크리스터 발리바라 노르딕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후원사들은 후원만 할 뿐인데, 그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나?

크리스터 발리바라 : 후원사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IOC와 FIFA에 수십억 원씩 준다. 러시아 소치 벌판에 노동자들의 피가 흩뿌려질 때, 후원사 브랜드에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후원사도 FIFA나 IOC가 노동권과 인권을 지키도록 압박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환경 올림픽' 표방한 IOC, '노동권 보장' 추가해야


프레시안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크리스터 발리바라 : IOC를 상대로 대화와 압박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노동조합이 현장이나 올림픽 사업에 접근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국제 기준을 지키겠다는 협약을 체결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소치에서처럼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진숙 : IOC와 FIFA는 자신들이 '비영리 조직'이라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노동권을 보장할 책임은 개최국 정부나 건설사에 있다'고 발을 뺀다. 하지만 IOC와 FIFA도 돈이 많다. 그들은 비영리 조직처럼 굴러가지도 않고 독립적이지도 않다. 재벌처럼 움직인다.

앞으로는 IOC가 스포츠 행사 유치 신청 단계에서부터 입찰 국가나 도시에 대한 '책임 있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IOC는 지금도 '지속 가능한 올림픽', '환경 올림픽' 등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양질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올림픽'이라는 원칙도 포함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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